나이 먹으면 힘이 약해지는 게 맞지? 그러니까 내 말은 한 마흔 정도 넘어갔을 때 말이야.
아무래도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으면 그럴 수밖에 없지. 기본적으로 남자는 35세 이후에는 지방을 제거하고 근육을 붙게 하는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의 분비가 확 줄어들거든. 그럼 당연히 근육은 줄어들고, 군살은 늘어나지. 근육량이 줄어드는 만큼 힘이 20대에 비해 약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

그치? 그럼 <선덕여왕>에서 칠숙이 한창 나이인 비담이랑 막상막하로 겨루고, 문노는 화랑 수십 명을 가지고 노는 건 좀 뻥이지?
아무래도 극적인 효과를 생각한 거겠지? 칠숙이나 문노나 살짝 희끗한 머리로 무슨 백색의 간달프처럼 완전 ‘포스’ 넘치게 돌아왔는데 젊은 애들이랑 싸우다가 골다공증 때문에 ‘어이구, 젊은 놈이 사람 치네’하면서 팔 부러지고 그러면 그림이 영 아니잖아. 그렇다고 또 완전히 거짓말이라고 하긴 좀 그렇다. 젊었을 때 당대 최고의 무인이던 사람이 자기 관리를 철저히 했다면 아직 경험이 부족한 젊은 무인을 이기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으니까.

아까는 무슨 테스트론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에 힘이 약해진다며.
그랬지.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닌데 아까 말한 것처럼 철저한 자기 관리가 있으면 그런 약점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는 거야. 만약 20대 때에 하루 한 시간 정도만 대충 운동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밥이랑 술을 양껏 먹어도 근력이 유지되던 사람이 40대에도 같은 방식으로 몸을 관리하면 과거보다 훨씬 못한 효과가 나오겠지. 하지만 그건 훨씬 체계적이면서도 강도 높은 훈련과 철저한 식단 관리를 한다면 젊은 시절에 근접한 근력을 가질 수 있단 얘기기도 해. 우선 문노와 칠숙은 갑자기 신라에서 사라지기 전과 비교해도 배가 안 나왔잖아. 물론 설원랑이나 미실처럼 얼굴도 그대로인 사람들도 있지만. 어쨌든 둘의 몸 상태를 봤을 때 괜히 어느 동네 주점에서 자기 젊었을 때 무용담이나 떠들기보다는 상당한 관리를 했다는 걸 알 수 있지.

상당한 관리? 너무 어영부영인데? 기사 날로 먹을 셈이야?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러니까 이런 거야. 기본적으로 서키트 트레이닝, 그러니까 각기 다른 부위를 자극하는 운동을 연속으로 하는 훈련으로 20대 못지않은 체력을 유지하는 게 가능해. 예를 들어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턱걸이 등을 중간 휴식 없이 이어서 하는 거지. 그걸 5분짜리 세트로 묶어 몇 세트씩 하면 아마 멋있게 칼싸움하다가 1분 만에 숨차서 항복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문노라면 아마 비담을 가르치면서 일종의 스파링도 했겠지. 그러면서 실전 감각을 유지해온 거고. 그리고 식이요법이라면 역시 비담처럼 문노도 닭고기를 이용한 고단백 식사를 하지 않았을까. 뭐, 내게 문노를 위한 처방을 하라면 굴도 많이 먹으라고 말하겠지만. ‘날로’ 먹으라고.

뭐? 내 말에 불만 있던 거야?
불만까진 아니고 그냥 좀 귀에 거슬려서… 아니, 그냥 목소리가 좀 튀었다고. 아무튼 굴은 아연이 풍부한데 아연은 아까 말했던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도와주거든. 아연 섭취가 부족하면 젊은 남자도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확 줄어들 정도로 아연 섭취는 중요한 문제야.

무슨 얘기인지는 알겠는데 그러면 자기 관리도 잘하고 먹을 것도 좋은 것만 챙겨먹는 젊은이에겐 또 안 되는 거잖아.
정확한 지적인데 그건 나중에 문노랑 유신이랑 붙어봤을 때나 비교할 수 있는 거고. 그리고 무엇보다 문노와 칠숙의 경우에는 오랜 실전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는 분명히 젊은 화랑들보다 유리하다고 할 수 있지.

많이 싸워본 사람이 더 잘 싸운다는 뜻이야?
그렇지 않겠어? 빠르게 칼이나 주먹이 오가는 상황을 분석해서 가장 적절하게 대응을 해야 하는데 수많은 경험을 한 사람일수록 과거의 데이터를 이용해 상대방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자신의 대응을 결정할 수 있겠지. 말하자면 감독 같은 거야. 그냥 필드 위에서 축구를 할 때는 메시나 토레스 같은 젊은 선수가 가장 잘 뛰겠지만 전체적인 승부의 전략을 짜는 건 훨씬 고령의 감독이 잘 하겠지? 물론 문노와 칠숙은 아주 고령의 감독이 되기 전 플레잉코치 정도 되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드라마를 보면 칠숙이 비담과 겨뤄보고 나서 그게 문노의 검법이라는 걸 알아채잖아. 문노도 화랑들이 일종의 대오를 이루고 공격할 때 그 허점을 찾아 움직이고. 그게 바로 오랜 경험에서 나온 데이터의 분석인 거지. 그것이 누구의 검법이고 어떻게 진행된다는 걸 안다면 그에 맞춰 싸우는 게 가능하겠지?

너무 그냥 이론적인 얘기 아니야? 말이 되긴 하는데 실제 4, 50대 아저씨들과는 굉장히 거리가 먼 이야기 같은데? 잠깐 조깅하는 것만 해도 헉헉 대는 분들이 태반인데.
그래서 말했잖아. 젊었을 때 당대 최고의 무인들이던 사람이라고. 말하자면 엘리트 코스를 밟은 무도인인 건데 그런 사람들의 경우 40대에도 최고의 모습을 유지하는 경우가 실제로도 있어. 내가 좋아하는 종합격투기에서 활약하고 있는 랜디 커투어 같은 경우는 2년 전, 43세의 나이에 세계 최고의 격투기 무대인 UFC에서 자기보다 12살이나 어린 30대 초반의 챔피언을 이기고 챔피언 벨트를 획득한 적이 있어. 비록 최근엔 벨트도 잃고 2번 연속으로 패배했지만 기량에선 웬만한 20대 A급 선수 이상이야. 또 44살인 지금도 챔피언 레벨로 분류되는 버나드 홉킨스 같은 복서는 나이 40에 ‘골든보이’ 호야를 이기고 4대 기구 미들급 통합전에서 승리한 일이 있어. 그 걸로는 잘 모르려나? 말하자면 이경규가 연말에 3대 공중파에서 모두 연예대상을 탄 거나 마찬가지인 거야.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 40대에도 철저히 관리해서 젊은 사람 이상의 실력을 보여준다는 게?
물론이지. 말이 그렇지 아까 말한 랜디 커투어나 홉킨스 같은 선수들은 정말 아주 가끔의 술 한 잔도 참아가며 모든 생활을 운동을 위해 희생하거든. 어떤 강한 동기가 없다면 불가능할 거야. 문노는 신라에 돌아와 미실을 무너뜨리고 비담을 왕위에 오르게 하겠다는 목표가 있고, 칠숙 역시 신라에 돌아가 명예를 지키겠다는 목표가 있었지. 그리고 특히 싸움에 있어서는 둘 다 자존심이 정말 강하잖아. 문노는 ‘나 국선이야’ 이런 타입이고, 칠숙은 ‘내가 문노보다 못한 게 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경쟁의식이 없다면 자신에게 그렇게 엄격하긴 어려울 거야.

그럼 경쟁의식 강한 비담이랑 유신, 보종도 나이 먹을수록 멋있어지지 않을까? 그것도 많이 기대되는데?
그럼 뭐해. 결국 천하무적 최종병기가 등장하면 초토화될 텐데. 굴이랑 닭고기가 아니라 스테로이드 약물 복용을 해도 못 이겨.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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