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 MBC 납량특집 미니 시리즈 <혼>의 여주인공 3차 오디션 장에서는 앞서 연기 테스트를 받은 신인 배우들이 심사위원인 MBC 드라마 감독들과 질의응답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1058명의 지원자 가운데 최종 14인에 포함되어 이 날 비교적 안정된 연기를 펼쳤던 임주은에게 한 감독이 농담처럼 질문을 던졌다. “호러물의 주인공을 하려면 볼 살을 좀 빼야겠는데?” 임주은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외쳤다. “매일 2킬로미터씩 뛰겠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덧붙였다. “너무 짧나요? 그럼 10킬로미터씩 뛰겠습니다!” 엉뚱하면서도 의연한 태도에 모두 웃었다. 이틀 뒤, <혼>의 김상호 감독은 장고 끝에 이 눈이 커다란 신인을 10부작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첫 주연작으로 제2의 심은하가 되어버린 스물두 살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어요. ‘으아, 이제 어떡해야 하지? 뭐부터 하지?’ 하는 생각부터 들더라구요.” ‘볼 살’만 뺀 게 아니라 5kg을 금세 줄였다. 매일 방송국에 나가 대본 리딩을 하고, 김상호 감독이 소개한 배우 김여진으로부터 연기 수업도 받았다. 액션 스쿨까지 다니기 시작하자 빡빡한 스케줄에 매니저가 먼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미니시리즈의 주연을 맡았다는 부담감은 쉽사리 줄지 않았다. “그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연기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미니시리즈고 저에게 제2의 심은하니 제2의 이나영이니 하는 온갖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게다가 어린 시절 화재로 친구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트라우마와 쌍둥이 여동생의 죽음, 그리고 엄마의 죽음까지 겪으면서 점차 빙의 능력을 깨우치고 범죄심리학자 신류(이서진)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악인들을 살해하게 되는 끔찍한 운명의 소녀 윤하나 역은 울고 소리치며 온 몸으로 격렬한 감정을 연기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넘기 힘든 산이었다. “격한 감정 신이 있으면 밥도 못 먹고 네댓 시간 동안 차에 앉아서 대본을 보며 감정을 잡았어요. 앞의 연결 신이나, 그 전 회에서의 감정 신을 복습하다가 막막하면 눈물 닦고, 또 닦고. 하하.”

“앞으로 만나는 다른 역할이 하나보다 날 힘들게 했으면”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는 드라마 스케줄은 스물두 살의 신인이 버티기에는 가혹했을 것임에 분명하지만 덕분에 배우로서의 스파르타 훈련을 제대로 받은 임주은은 웃는 얼굴로 그 시간을 떠올린다. “사실 손짓 하나, 눈꺼풀의 떨림 하나까지 다 감독님이 헬렌 켈러의 설리반 선생님처럼 가르쳐 주신 거라, 앞으로는 어떻게 할지 큰일 났다니까요!” 하지만 중학교 시절 우연히 찍은 프로필 사진에서 출발해 모델과 연기 활동을 이어오며 2007년 MBC <메리대구공방전>의 천방지축 여고생 아문, 채널 CGV <램프의 요정>의 신비로운 소녀 수정 등 매 작품마다 쉽게 잊히지 않는 인상을 남겼던 임주은은 나이에 비해서도 보기 드물게 뚜렷한 연기관의 소유자다.

“<혼>을 마쳤으니까 다음에는 공포물이나 로맨틱 코미디 같은 장르보다 ‘드라마’가 강한 작품을 하고 싶어요. 그 사람의 내면을 좀 더 많이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이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게 하나 역할보다 저를 더 많이 힘들게 하길 바라고요.” ‘제 2의’라는 수식어와는 거리가 멀게 실은 누구도 닮지 않은 얼굴, 고혹적인 눈매가 한번 크게 깜박인다. 그리고 눈물로 지샜던 그 많은 밤들을 지나자마자 또다시 스스로에게 어려운 숙제를 내고 싶어 하는 이 욕심 많은 신인에게는 확실히 신데렐라보다 ‘될 성 부른 나무’라는 말이 어울릴 듯싶다.

스타일리스트 문주란 / 헤어&메이크업 타츠, 진수아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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