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명사를 독점한다는 것은 틀림없이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등장하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다니엘 헤니는 줄곧 독보적인 ‘젠틀맨’이었다. 이국의 신비로움을 가진 이 남자는 광고에서 걸어 나와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속의 헨리가 되어 자신이 살아 있는 생명체임을 알렸고, 영화 <마이 파더>를 통해 겉모습이 아니라 가슴으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배우임을 선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어떤 억지스러움도 흉포함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는 젠틀한 방식으로 자신의 계단들을 천천히 걸어 올라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다니엘 헤니는 고향을 찾아 온 반듯한 청년이 아니라, 세계가 주목하는 기대되는 배우로서 새로운 걸음을 내딛었다. “원작 만화의 열렬한 팬이었어요. 그렇게 큰 시리즈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영광이었습니다”라고 밝힐 정도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 <엑스맨 탄생 : 울버린>에서 다니엘 헤니는 냉정하고 잔인한 에이전트 제로를 연기했다. 그것은 보다 큰 무대로 자리를 이동하는 것인 동시에, 젠틀하고 따뜻하기만 했던 그의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하는 결단이기도 했다.

실제로 다니엘 헤니는 마냥 부드러운 남자는 아니다. 마을의 유일한 동양계였던 그는 인종차별과 집단 따돌림 때문에 괴로운 사춘기를 보내야 했다. 그 시절을 견디기 위해서 그는 농구를 했고, 음악을 들으며 자신을 다스렸다. 그의 다듬어진 태도들은 평온함보다는 오히려 강인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눈물을 삼켜 미소를 피워낸 이 남자가 사랑하는 음악 다섯 곡을 골랐다. 그리고 그 음악들은 예상대로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멜로디가 아닌 `터프한 남자의 음악들`이다. 소개된 곡들을 들으며 이 남자의 반전을 즐겨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되겠다.




1. Kings Of Leon의
“최근에 제가 가장 열광하고 있는 밴드에요. 아직 한국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머지않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알게 될 겁니다. 정말이에요. 진짜로 끝내준다니까요.” 다니엘 헤니가 두 손가락을 치켜들며 첫 번째로 추천하는 밴드는 미국 네슈빌 출신의 형제들로 구성된 Kings Of Leon이다. 목사인 아버지의 전도 여행을 따라 미국 북부를 다양하게 경험한 이들은 강력한 연주와 섬세한 멜로디로 미국보다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큰 반향을 얻고 있다. 전체적으로 개러지 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문득 브릿팝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올해 발표된 는 ‘Sex On Fire’로 최근 재점화된 이들의 인기를 이어가는 중요한 싱글이었다.




2. Nirvana의
“어릴 때 친구들과 averice라는 이름의 밴드를 조직했었죠. 목요일과 금요일에 마을의 바에서 공연을 했는데, 그 분위기가 정말 우스꽝스러웠어요. 어르신들이 술을 마시고 있는데 우리끼리 하드락을 연주했었거든요. 그때 우리가 원했던 게 바로 너바나 같은 느낌이었죠. 막 얼터너티브가 유행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는데, 너바나는 그 중에서도 최고의 빅밴드였어요.” 많은 한국의 청춘들과 마찬가지로 다니엘 헤니 역시 자신의 십대를 상징하는 가장 강렬한 밴드로 너바나를 꼽았다. 그리고 역시 최고의 앨범은 이견 없이 1991년 발표된 다. “대부분 사람들은 ‘Smells Like Teen Spirit’을 좋아하지만, 저는 ‘lithium’이 더 좋아요. 같은 앨범의 ‘Polly’도 추천합니다. 단순하면서도 폭발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 앨범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정말 선명하게 감동을 주죠.”




3. Radio head의
다니엘 헤니가 세 번째로 추천한 노래 역시 한국 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다. “다양한 음악 장르가 등장하는 시절에 십대를 보냈어요. 건즈 앤 로지즈나 포이즌을 좋아했는데 어느새 너바나, 사운드 가든처럼 새로운 록 뮤직을 하는 밴드들이 탄생하고는 했었죠. 굉장히 많은 밴드들을 동경했지만, 솔직히 가장 많이 따라 부르고 연주했던 노래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영국 밴드인 라디오 헤드의 ‘creep’입니다. 생각보다 연주하기 쉬운 곡이거든요.” 라디오 헤드는 비평과 인기 측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는 세계적인 밴드로 ‘creep’은 영화 <씨클로>에 삽입되는 등 오랫동안 사랑받는 넘버로 기억되고 있다. “라디오 헤드의 대단한 점은 계속해서 진화한다는 점이죠. 나중에는 일렉트로닉한 분위기를 차용하면서 보다 깊은 음악세계를 보여주는데 그 역시 좋아하고 있습니다.”



4. Dr. Dre의
“엄마는 힙합 음악을 못 듣게 했는데…”라며 다니엘 헤니가 네 번째로 추천한 음악은 닥터드레가 창시한 G-펑크의 교과서와 같은 앨범 , 그 중에서도 스눕독의 래핑과 닥터 드레의 프로듀싱이 앨범의 절정을 만들어 내는 ‘Nothin’ But A “G” Thang’이다. 2PAC 최대의 히트곡 ‘California love’를 함께 부르기도 했던 닥터 드레는 스눕독, 에미넴 등 수많은 래퍼들을 발굴하고 프로듀싱한 것으로도 유명한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대부. “1993년을 전후로 힙합 음악이 크게 유행하기 시작 했었죠. 그 당시 학교에서 친했던 흑인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힙합 테이프는 죄다 갖고 있었어요. 덕분에 저도 힙합 음악을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지 음악을 주로 듣던 저에게 힙합의 가사나 비트는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5. 넬의
“터프하다고 할 수 없는 건 알아요. 그렇지만 젠틀하지 않은 건 분명하죠. 한국에 와서도 좋은 음악들을 많이 발견 했어요. 모던록을 좋아하는데 델리스파이스의 음악도 상당히 기억에 남았고, 강하면서도 어떤 정서가 느껴지는 윤도현 밴드의 노래들도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넬은 정말로 굉장하다고 생각했어요.” 얼터너티브, 그런지 풍의 밴드들을 대부분 좋아하지만 브릿팝의 예민한 정서에도 기호를 갖고 있는 다니엘 헤니가 선택한 최고의 한국 밴드는 넬이다. 그리고 그들의 3집에 수록된 ‘Good night’은 김종완의 감성적인 보컬과 밴드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잘 어우러진 노래라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어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국적 상관없이 그들에게 반할 겁니다. 전 좋은 노래를 혼자만 알고 있는 걸 안타까워하는 사람이거든요. 하하.”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아주 짧은 순간에 이루어져요”



현재 다니엘 헤니는 그가 바람둥이 의사로 출연하는 CBS의 메디컬 드라마 <쓰리 리버스>가 첫 선을 보이는 10월을 기다리고 있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아주 짧은 순간에 이뤄지게 되어 있어요. 한국에서 드라마 출연을 할 때는 두 번 다 출국 직전에 연락을 받고 체류를 결정하는 식이었지요. <쓰리 리버스>도 <울버린> 때문에 일정 조율이 어려운 프로젝트였는데도 불구하고 공항으로 가기 직전에 출연이 결정되었어요. 제작진이 저의 입장을 상당히 고려해 줬지요.” 그는 운명적인 일이라고 설명하지만, 사실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제작진이 그를 붙들었던 것은 그만큼 그가 매력적인 배우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더욱이 미국 드라마에서 그는 영어로 대사를 하는 만큼, 그가 보여주는 캐릭터는 한국 작품에서보다 운신의 폭을 넓게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곳에서나 멋진 이 남자가 과연 어떤 인물이 되어 바다를 건너 등장하게 될지, 벌써부터 가을이 기다려진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