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금> 같은 드라마와 같은 시간대에 편성된 미니시리즈 같은 기분.” 드라마 PD의 발언이 아니다. 최근 주말 예능 프로그램 시간대에 한 리얼 버라이어티 쇼와 경쟁하게 된 예능 PD의 하소연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기 예능 프로그램과 경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리얼 버라이어티 쇼 시대’는 예능 PD들에게 과거와는 또 다른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붐과 함께, 지상파 3사는 경쟁적으로 리얼 버라이어티 쇼들을 편성 중이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우리 결혼했어요’에 ‘오빠 밴드’를 추가했고, KBS는 <스펀지>가 방송되던 시간대에 리얼 버라이어티 쇼 ‘천하무적 야구단’과 ‘삼촌이 생겼어요’로 구성된 <천하무적 토요일>을 새로 편성했다. 하지만 이들 중 MBC <무한도전>, KBS <해피선데이>의 ‘1박 2일’, SBS <일요일이 좋다>의 ‘패밀리가 떴다’ 등 주말 리얼 버라이어티 쇼 ‘빅 3’와 제대로 경쟁하는 프로그램은 하나도 없다. 프로그램의 완성도도 문제지만,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시청 행태가 예능 프로그램보다는 드라마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예능 프로그램이면서도 캐릭터와 스토리가 있다. 그만큼 시청자들은 한 번 좋아한 프로그램에서 쉽게 이탈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빅 3’가 현재 최소 1년 이상 방영중인 것을 감안하면, ‘빅 3’ 이후에 등장한 ‘꼬꼬마 리얼 버라이어티 쇼’들은 1년 내내 <대장금>이나 <주몽> 같은 드라마와 경쟁 중인 셈이다.

‘빅 3’가 갖지 못한 시청자층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몫

올 상반기 내내 이어진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위기는 후발 리얼 버라이어티 쇼들의 고민을 그대로 보여준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대망’은 코너의 콘셉트조차 명확하게 잡지 못한 채 두 달을 못 채우고 폐지됐고, 이후 ‘퀴즈 프린스’와 ‘힘내라 힘’ 등이 신설과 폐지를 반복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 관계자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상대 프로그램과의 격차가 지나치게 크니 그걸 그대로 보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빅 3’가 다양한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아이템을 선점했다는 점도 후발 주자들의 운신을 어렵게 한다. ‘남자의 자격’의 신원호 PD는 “‘패밀리가 떴다’의 여행이라는 소재나 인적 구성이 전 연령층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천하무적 야구단’의 최재형 PD는 “야구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소재지만 처음 야구를 접한 사람들에게는 야구룰이 어려운 부분도 있더라. 그래서 초반에는 야구룰을 소개하는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후발주자들이 기존 시장을 두고 경쟁하기에는 그만큼 어려운 점이 많은 셈이다.

이 때문에 최근의 ‘꼬꼬마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기존의 ‘빅 3’와의 정면 승부 대신 그들이 미처 공략하지 못한 부분에 집중한다. 신원호 PD는 “‘패밀리가 떴다’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분이 중년 남성 시청자라고 생각했다. 확실한 시청자층을 확보한 뒤 점차 시청자 폭을 넓혀 간다는 생각이다. 최근에는 20대 여성의 시청률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 관계자도 “‘오빠밴드’의 경우 음악에 관심 있는 30-40대 남성들과 아이돌 스타의 팬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단 확실한 시청자층을 만들어가고 있다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대를 노리는 ‘국민 예능’ 대신 특정 시청자층에 확실히 어필할 수 있는 ‘블루 오션’부터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너른 마음과 시간으로 그들을 지켜봐야 할 때

‘빅 3’를 통해 익숙해진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형식을 바꾸려는 시도도 진행된다. ‘천하무적 야구단’은 메인 MC없이 야구단의 스토리 위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최재형 PD는 “MC를 통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 보다는 그들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야구를 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이 그들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결혼했어요’는 MC들이 출연자에게 연애와 결혼에 대해 조언을 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실제 커플인 황정음과 김용준이 출연하면서 단순한 웃음 위주의 진행 보다는 남녀 관계의 팁을 주는 것이 주 시청자층인 미혼 여성들의 공감을 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시대가 되면서 예능 프로그램 PD들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신들만의 경쟁력을 가져야할 때가 된 것이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 방송 관계자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기존 예능 프로그램과는 전혀 다른 장르라는 걸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꼬꼬마 리얼 버라이어티 쇼’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신원호 PD는 최근 ‘남자의 자격’이 시청률 10%를 넘긴 것에 대해 “사실 우리는 가을쯤에나 10%를 넘길 줄 알았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한두 달이 아니라 6개월 이상을 보고 가야 하는 싸움”이라고 말했다. 드라마적인 스토리와 예능의 재미를 동시에 끌고 가는 리얼리티 쇼의 속성상 캐릭터와 이야기가 숙성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단지 몇 번의 ‘큰 웃음’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남자의 자격’은 매주의 이벤트뿐만 아니라 각 멤버들의 집을 찾아가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처럼 장기적으로 진행될 아이템도 여럿 계획 중이다. ‘오빠밴드’ 역시 시청률은 아직 높지 않지만, 좋은 반응과 함께 한동안 폐지를 걱정하지 않게 됐다. 신원호 PD는 “드라마라면 ‘패밀리가 떴다’와의 경쟁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1년 넘게 방송된다. 그게 오히려 가장 큰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시대가 되면서 예능 프로그램도 순발력 있는 기획이나 유명 MC의 영입뿐만 아니라 뚜렷한 색깔이 있는 기획과 장기적인 비전이 필요해진 셈이다. 이미 ‘빅 3’가 흔들릴 것 같지 않은 시청자층을 확보한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시대에서, 아직은 ‘꼬꼬마’인 후발 주자들은 어떻게 이 시대에 적응할 수 있을까.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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