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정음 씨에게 사과부터 해야 되겠습니다. 가사의 위기에 놓인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우리 결혼했어요’의 긴급 수혈을 위해 실제 연인인 정음 씨와 용준 씨 커플이 투입된다고 했을 때 속으로 ‘잘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호언장담 했거든요. 그게 속엣 말이었기 망정이지 만약 어디 가서 입초사라도 떨었으면 어찌 수습을 해야 했을지 모골이 다 송연합니다. 제가 왜 실제 커플의 등장을 마뜩치 않아 했느냐 하면, 타인의 사랑 얘기에 과연 어느 누가 지속적인 관심을 갖겠나 싶었기 때문이에요. 사석에서도 누군가의 사랑 타령이 계속되면 지겨워하기 마련이잖아요. 더구나 연예인들의 사랑 얘기는 아무리 흥미진진해봐야 토크쇼 두어 개가 한계더라고요. 더 나아가 여기저기 얼굴을 보이면 “또 나왔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되거든요. 게다가 솔직히 정음 씨의 이때까지의 이미지가 좋다고 하기는 어려운데다가 용준 씨는 노출된 적이 거의 없으니 그리 기대가 안 될 밖에요. 그런데 이게 웬일이랍니까. 질리기는커녕 이 커플이 만들어가는 사랑 얘기에 매료되는 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으니 이제 제 손에 장을 지질 일만 남은 거지 뭐겠어요.

정음 씨, 사실 좀 밉상이었어요

고백하자면 저는 정음 씨가 그처럼 사랑스러운 아가씨인줄도 이번에 처음 알았답니다. 오락프로그램에 좌충우돌 캐릭터로 자주 나왔을 적에도 그렇고, MBC <겨울새>를 비롯한 몇 편의 드라마에서 연기력 부재로 고전할 적에도 그렇고, 얼굴만 예쁘지 다소 밉상이다 여겼거든요. 사실 이 프로그램 전의 정음 씨는 며느릿감으로는 노땡큐였다고요. 하지만 화목한 가족이 공개되고 철부지 막내로 한껏 굄을 받으며 자라온 실생활이 눈에 들어오면서 차차 정음 씨를 이해하게 되더군요. 철딱서니 없고 직선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순수한 마음만은 가식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할까요? 사실 며느릿감의 조건으로 순수함만큼 결정적인 게 또 어디 있겠어요. 시즌 2의 성공의 비결로 일명 ‘김용준 빙의’라는 역할 바꾸기를 통해 보여준 찰떡궁합을 꼽는 이들도 있고, 착하고 귀엽고 경제관념 투철한 용준 씨의 발견을 꼽는 이들도 있지만 저는 단연 정음 씨의 뜻밖의 매력의 힘이 제일 크다고 말하고 싶네요.

또한 결혼보다는 가상 동거에 가까웠던 지난 시즌과 달리 실제 연인이 결혼으로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문제들이 부각되면서 감정 이입이 될 상황이 훨씬 다양해졌고, 바로 그 점도 성공에 큰 몫을 했지 싶어요. 저부터도 한번은 정음 씨 어머니의 입장이 되었다, 한번은 용준 씨 어머니의 입장도 되었다 하며, 두 어머니 사이를 오락가락 하고 있거든요. 두 사람이 양가에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갔을 때만 해도 그래요. 마치 제 딸을 예비 사돈댁에 인사라도 보낸 양 혹여 실수라도 할까 조마조마해 하며 지켜보게 되더라고요. 치마가 너무 짧지 않나? 저렇게 둘이 딱 붙어 있으면 어른들이 언짢아하기 십상인데, 뭐 이런저런 훈수를 두며 보다가 용준 씨 어머니가 결혼을 그다지 반기시지 않는 기색이자 내심 서운하던 걸요. 하지만 한편으론 마냥 반색할 수 없는 용준 씨 어머니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됩디다. 남자로서는 이른 나이이고 만약 일을 그르치기라도 한다면 정음 씨는 물론 용준 씨에게도 득이 될 리 없으니까요.

아무리 봐도 두 사람은 천생배필이니 걱정 말아요

뭐니 뭐니 해도 긴장감이 최고에 달했던 때는 상견례 날이죠? 정음 씨가 어머니의 코치에 따라 용준 씨 아버지께 쌈을 싸드리는 걸 보면서 ‘어머니께 먼저 드리는 편이 옳지 않을까? 아버지는 두 번째로 드려도 이해해주실 것 같은데’ 하기도 했고, 용준 씨가 바쁘다는 핑계로 자기 가족은 소홀히 하면서 정음 씨네 집에는 매일이다시피 들렀다는 사실이 폭로되는 순간 제가 마치 용준 씨 어머니라도 된 듯 서운하더군요. 어쩌면 이처럼 일일이 어른들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정음 씨에게는 짜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연애는 둘만 생각하면 되지만 결혼은 내가 선택한 사람에 달려오는 수많은 사람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거거든요. 가족은 물론 친인척에다 친구들, 직장 동료들까지, 어쩌면 수백 명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는 거니까요.

첫 회에서는 용준 씨 친구들에게 날을 곤두세웠던 정음 씨가 가상 결혼식을 올리는 날에는 웃으며 선선히 받아들이는 걸 보면 이 같은 이치를 이미 터득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가하면 함 들어오는 날에 드레스를 입은 정음 씨를 보고 어머님이 눈물을 보이실 때 저도 울컥해져 함께 울기도 했답니다. 어머니는 정음 씨가 ‘용준이가 나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하고 우려했던 것과 같은 심정이셨던 걸 거예요. 철부지 딸이 졸라서 프로그램에 나오긴 했지만 혹시 잘못되면 어쩌나 왜 걱정이 안 되시겠어요. 그러나 외할머님께서 “너 비위 맞출 사람은 용준이 밖에 없어”라고 단언하신 거 기억나죠? 겸양으로 손녀딸을 애써 낮추시긴 했지만 두 사람이 천생배필임을 알아보신 거죠 뭐. 어쨌거나 저의 통찰력 부재를 다시 한 번 사과할 테니 부디 받아주세요. 그리고 보란 듯 프로그램도 성공으로 이끌고 두 사람의 사랑도 따뜻하게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진짜 결혼식 때 청첩장 보내주길 기대해도 될까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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