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년 여성들이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리움’이라는 정서 때문인 것 같다” 지난 6월 3일부터 5일까지 서울시와 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의 주최로 열린 제4회 아시아 방송작가 컨퍼런스에 참석한 일본의 드라마 작가 오오이시 시즈카는 자신의 주위 친구들도 한국 드라마에 관심이 많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일본의 유명 드라마 작가들과 한국 감독, 배우들이 함께 만들어 올 하반기 일본의 TV 아사히와 SBS에서 방영 예정인 텔레시네마 프로젝트에서 <천국의 계단>의 이장수 감독이 연출하고 강지환, 이지아가 주연을 맡은 <얼굴과 마음과 사랑의 관계>의 각본을 쓴 오오이시 시즈카 작가는 86년 데뷔 후 NHK 대하사극 <공명의 갈림길>(功名が辻;), TBS <한도쿠>(ハンドク), <퍼스트 러브> 등 수많은 작품을 쓴 중견 작가다. 특히 일본의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무명의 장수였던 야마우치 카즈토요(카미타와 타카야)와 그의 현명한 아내 치요(나카마 유키에)의 일대기를 그린 <공명의 갈림길>은 2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고, <명성황후>, <신돈> 등의 사극을 집필한 정하연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서로 전쟁을 하고 사람을 죽이는 가운데서도 그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싸우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 일본인들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낸다. 시대가 흘러가는 대로 운명이 휩쓸리는 연약한 사람들이 그 안에서 정의와 평화, 자유 같은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감동적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시청률 30%를 기록했던 NHK 연속 TV 소설 <쌍둥이>(ふたりっ子)를 비롯해 나가세 토모야, 니노미야 카즈나리 주연으로 깡패 출신 의사의 이야기를 그린 <한도쿠>, 교사와 학생에서 언니의 약혼자와 약혼녀의 여동생으로 재회한 주인공들의 러브 스토리인 <퍼스트 러브>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을 써 왔던 오오이시 시즈카 작가는 “어떤 장르를 쓰던 간에 전문적으로, ‘올마이티(almighty)’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잘 쓰고 싶다. 그런데 가장 큰 바람은 코믹이건 시대극이건 인간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거다. 이쪽과 저쪽,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한국 시청자들에게도 소개하고 싶은 일본 드라마 몇 편을 추천했다.

日 <행복> TBS
1980년

“일본의 유명 드라마 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무코다 쿠니코 상의 드라마다. 무코다 쿠니코 상은 이 작품을 비롯해 <시간입니다>(時間ですよ)나 <테라우치 칸타로 일가>(寺内貫太郎一家)같은 따뜻한 가족 드라마를 많이 썼는데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입체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이 좋다. 어느 정도냐면, 같은 작가 입장에서 경외심이 들 정도다. (웃음) 무코다 쿠니코 상은 81년에 비행기 사고로 작고했는데 그 이후로도 그의 각본이 여러 번 드라마로 리메이크되고 있을 정도로 훌륭한 작가다. 이런 작품들에 비해 요즘 일본 드라마는 인간을 다면적으로 그리지 못하고 한쪽 면만 보여주는 것 같아서 다소 단순하고 미성숙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日 <북쪽의 나라에서>(北の國から) 후지 TV
1981~2003년

“무코다 쿠니코 상과 같은 이유로, 인간의 다양한 면을 그려낸다는 면에서 쿠라모토 소우 작가의 드라마를 좋아한다. <북쪽의 나라에서>는 도쿄에 살던 가족들이 고향 홋카이도로 돌아가 후라노라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인데 가족의 따뜻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정말로 잘 보여주는 드라마다. 굉장히 오랜 기간에 걸쳐서 방송되었는데 드라마가 끝난 이후에도 극 중 주인공들이 살았던 집이 관광명소가 되었고 드라마의 로케이션 현장도 많이 보존되어 있다.”

日 <4개의 거짓말>(四つの嘘) TV 아사히
2008년

“내가 쓴 작품이다. (웃음) 4명의 여고 동창생들이 40살을 넘겨 그들 가운데 한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시작은 캐나다에 있던 친구가 사고로 죽자 그를 알던 동창들이 서로 연락해서 만나게 되는데, 사실은 죽은 친구가 그들 가운데 한 명의 전남편이었던 남자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식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그리 친하지 않았고 직업과 성격도 각기 다른 여자들이 자신만의 비밀을 가지고 살아가다 점점 진실에 가까워지는 내용인데 4명의 주인공의 마음을 다양하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작가는 바탕을 감독, 배우, 스태프들이 전체를 함께 만들어 간다”

텔레시네마 프로젝트에서 오오이시 시즈카 작가가 집필한 <얼굴과 마음과 사랑의 관계>는 예쁜 여자만을 좋아하지만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미녀와 추녀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 남자가 누가 봐도 못생긴 여자에게 반하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코믹하게 그린 작품이다. “세상 사람들은 ‘얼굴이 아니라 마음을 보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그냥 솔직하게 ‘얼굴이 다’라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 하는 의미에서 써본 이야기”라고 말하는 그는 감독과 통역을 거쳐 대화하고, 평소에 잘 알지 못했던 배우들이 자신이 만든 캐릭터를 연기하는 이번 작업이 예상과 다르면서도 즐거웠다고 회상한다. “작가가 쓰는 극본을 ‘다리 각(脚)’ 자를 쓰는 ‘각본(脚本)’이나 ‘토대(土臺)’라는 말에서 쓰는 ‘대본(臺本)’이라고도 하는 것처럼, 작가는 바탕을 만들고 감독과 배우와 스태프들이 전체를 함께 만들어 가는 거다” 그리고 그는 언젠가 한번 함께 일해보고 싶은 한국 배우로 “연기를 정말 잘 한다고 생각하는” 이병헌을 꼽았다.

사진제공_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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