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의 새로운 시리즈 <캐슬>은 현재는 물론 80~90년대 시리즈들의 낯익은 공식으로 안일하게 만들었다는 야유를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 각종 미디어는 <캐슬>이 기본적으로 여성 고정팬을 끌어모으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인 ‘자주 투닥거리지만 서로 강하게 끌리는 남녀 파트너’와 수사물의 공식을 따르고 있다고 말한다. 비슷한 공식으로 방영 중인 시리즈로는 폭스의 인기 시리즈 <본즈>와 NBC의 <라이프>, CBS의 <멘탈리스트>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1993년부터 2002년까지 방영됐던 폭스의 도 있다. 하지만 <캐슬>이 진정으로 영향을 받은 시리즈들이 있다면 단연 ABC에서 1985년부터 4년간 방영된 <블루문 특급> (Moonlighting)과 이 시리즈 보다 약간 먼저 1982년에 시작해 1987년까지 계속됐던 NBC의 <레밍턴 스틸>로 볼 수 있다. 사실 위와 같은 시리즈는 모두 셰익스피어의 희곡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나왔다고도 볼 수 있다.

부와 명예를 가진 작가, 재미로 사건을 해결하다

브루스 윌리스와 시빌 셰퍼드가 주연한 <블루문 특급>은 ‘남녀 수사물’의 인기 공식에서 가장 대표적인 시리즈다. 특히 이 시리즈를 방영했던 ABC는 과거의 영광과 인기를 되찾기 위해 별반 특별할 것 없는 <캐슬>을 편성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캐슬>에는 <블루문 특급>처럼 주인공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화학작용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밍숭맹숭한 커플이 등장한다. 여자 주인공인 뉴욕시경 강력계 형사 케이트 베켓(스타나 카틱)은 전혀 경찰스럽지 않고, 심각한 척은 하지만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이같은 시리즈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유머 감각이 젬병이다. 그렇다고 베켓과 함께 일하는 경찰 팀에 눈길이 가는 캐릭터가 있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캐슬>을 소개하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주인공 릭 캐슬 역을 맡은 네이선 필리온 때문이다. 이미 <파이어플라이>나 <세레니티>, <닥터 호러블의 싱-얼롱 블로그> 등을 통해 ‘말발’을 자랑해 왔던 필리온은 <캐슬>에서는 거의 날아다닌다. 릭 캐슬은 베스트셀러 작가에 돈도 명예도 다 가졌지만, 심심하다. 자신의 분신인 소설 속 인기 캐릭터에 싫증났기 때문이다. 물론 몇권 더 우려내서 편하게 돈을 벌 수도 있겠지만, 그는 돈에는 별반 관심이 없다. 뉴욕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고, 뉴욕시장과도 절친한 사이인 그는 작가라기 보다는 흥미로운 것만을 찾아다니는 장난꾸러기 소년 같다. 이 때 베켓이 캐슬을 찾아온다. 캐슬의 인기 소설 속에 묘사된 그대로 사람을 죽인 살인사건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소설을 가장 잘 아는 캐슬은 일종의 수사 컨설팅을 맞게 되고,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난다.

이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물론 캐슬은 형사들, 특히 베켓에게 협박같은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범인을 검거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그리고 여기서 영감을 얻은 캐슬은 자신의 다음 소설의 주인공을 베켓으로 정한다. 뉴욕시장에게 허가를 받은 후 뉴욕시경에 다시 나타난 캐슬은 이 때부터 베켓의 사건 수사에 ‘자료 수집’이라는 명목으로 붙어 다니며 그녀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캐슬>이 많은 수사물 시리즈와 조금이라도 다른 점이 있다면, 처럼 과학적인 수사방법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관점에서 사건을 거꾸로 유추해 낸다는 것이다. 캐슬은 작가의 시각으로 사건을 보는 것은 물론 소설을 쓰면서 조사했던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탄탄한 인맥관계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이에 반해 베켓은 캐슬이 오버하는 것을 때로는 말로, 때로는 귀를 잡아 당기는 ‘육체적인 고통’을 줘서라도 바로 잡아준다.

여기에 캐슬의 15살짜리 딸 알렉시스와 어머니 마사 로저스라는 캐릭터가 더해진다. 캐슬의 호화로운 맨해튼 아파트에 함께 사는 이들 역시 그 만큼이나 독특하다. 알렉시스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집안에서 가장 어른스럽다. 과거의 브로드웨이 배우였던 마사의 유일한 낙은 잘 나가는 아들 기 죽이기. 아들의 소설이 출판되면, 인터넷을 검색해서 소설에 대해 혹평한 리뷰를 꼭 찾아내고야 만다. 아무리 삼류 평론가의 것이라도 말이다. 그러나 <캐슬>은 과거 인기 시리즈들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기에 시리즈 포맷 면에서나, 다른 수사물들에 비해 독특한 면이 거의 없다. 하지만 네이선 필리온의 제철 만난 듯 물 오른 코믹 연기를 보면, 열거했던 단점들이 더이상 문제되지 않는다. 바람이 있다면, 베켓 역을 맡은 스타나 카틱이 꽁하고 갇혀있는 연기에서 벗어나 필리온과 호흡을 좀 맞춰줬으면 하는 것 뿐이다.

글. 양지현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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