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 요리계의 큰 별인 하선정 선생님께서 유명을 달리하셨다. 자신의 이름을 딴 여러 식재료와 여태 연구해온 조리법을 모두 남겼지만 가장 중요한 하나는 남길 수 없었다. 바로 하선정이라는 개인의 손맛이다. 이건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그녀가 평생 재료를 다듬고, 양념의 양을 조절하며 만든 최상 비율의 레시피는 뇌가 아닌 손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가 눈으로 건반을 확인하는 횟수가 많을수록 건반을 잘못 누르는 빈도도 높아진다는 연구결과처럼 수 만 번의 반복으로 숙달된 달인의 손은 반사적인 움직임으로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한 사람의 인생을 보기 위해 손금을 보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 주름 안에는 그 사람이 평생 반복해온 삶의 궤적이 가장 확실하게 새겨져있다.

손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방대한 컬렉션을 만든 미술컬렉터 헨리 불 역시 손 안에 담긴 인생의 궤적을 중요하게 생각한 건 아닐까. 대림미술관에서 3월 5일부터 진행하고 있는 ‘The Buhl Collection: Speaking with Hands’展은 헨리 불이 1993년 <골무를 낀 손>이란 사진 작품을 구입한 이후 일관되게 모아온 손을 주제로 한 사진 116점과 조각 31점을 소개한다. 이 중 역시 흥미를 끄는 건 테레사 수녀와 예술가 앤디 워홀, 복싱 선수 조 루이스 등 유명인들의 손을 찍은 사진작품들이다. 남을 위해 헌신한 삶을 읽을 수 있는 테레사 수녀의 손과 룸펜 지식인 같은 느낌의 매끈한 앤디 워홀의 손처럼, 따로 설명을 보지 않아도 누구의 손인지, 어떤 인생인지 확인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순간을 경험한다면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란 말 대신 ‘손은 인생의 거울’이란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손이 지배하는 세상>
2002년│마틴 바인만 지음

이 책의 부제는 이렇다. ‘정신의 부속 도구가 아닌 창조자로서의 손’. 골지건 기관이니 콜라겐 섬유다발이니 하는 의학용어가 등장할 때마다 턱 하니 숨이 막히지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리 어렵지 않다. 하나의 도구 정도로만 생각하는 손이 실제로는 두뇌만큼, 아니 두뇌 이상으로 중요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섬세하다는 것이다. 손이 얼마나 천대받았는지, 하지만 얼마나 중요한지는 다음 구절에 잘 드러난다. ‘철학자들은 척도와 시계에 관해 언급할 때 마치 척도와 시계, 그리고 거기서 파생하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애초부터 존재했던 것인 양 취급한다. 하지만 척도와 시계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신노동자들이 그렇게 경멸했던 육체노동자들의 손 덕분이었다.’

<크레이지 핸드>
1999년│로드먼 플랜더 감독

<이블 데드>에서 좀비화된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자 잘라내 버리는 에피소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 한 코믹 호러 영화다. 다만 좀비에 물려서가 아니라 악령에 빙의되어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이 설정이 코믹 호러에 어울린다는 것은 손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자유자재로, 또 섬세하게 움직일 수 있는, 아니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던 손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인다는 것은 나의 두뇌가 나와 상관없는 생각을 하는 것만큼이나 낯설고, 두렵고, 어이없는 일이다. 그만큼 내 것이 아닌 손은 생각하기 어렵다. 영화에서 주인공 안톤은 결국 자신의 손을 자르는 선택을 하는 건 그 괴리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