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핫. 그거 봤어, 그거? 이번에 MBC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 이혁재 친구로 나온 이윤열이란 프로게이머가 로봇춤 추는 거? 진짜 깨더라.
흠흠. 말조심해. 이 코너 문 닫게 할 일 있냐. 솔직히 나도 흠칫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새벽 1시에 연습 끝나고 나서 쉬지 않고 연습한 춤이라잖아. 솔직히 손바닥 펴고 앞뒤로 흔들던 춤은 안 했으면 어땠을까 싶긴 하지만 열심히 해서 좋던데 뭐.

아니, 솔직히 1시에 연습 끝난다고 해봤자 결국 오락하는 거잖아. 오락 실컷 하고 춤 연습한 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물론 나라도 소녀시대랑 소개팅 있으면 새벽 4시에 마감하고서 로봇춤이건 차력이건 연습하겠지. 그런 면에선 대단한 게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윤열을 비롯한 프로게이머가 하는 활동을 그냥 오락이라고 말하는 건 완전 난센스야. 예를 들어 점심시간에 남학생들이 축구하는 건 그냥 노는 거잖아. 그건 일종의 오락이겠지. 그런데 만약에 박지성 선수가 1시까지 축구 연습하면 넌 그걸 연습이 아니라고 할 거야? 아니지?

축구는 몸으로 하는 거잖아. 솔직히 나는 스타크래프트를 e-스포츠라고 하는 거 자체를 이해 못하겠는데?
그건 이삿짐 나르는 건 일이고, 키보드로 자판 쳐서 기사 쓰는 건 일이 아니라고 하는 거랑 똑같은 말이야. 정신노동도 노동인 것처럼 머리를 쓰는 게임도 스포츠야. 이걸 흔히 마인드 스포츠라고 하거든? 대표적인 게 너도 알만한 체스랑 바둑인데 체스는 1999년에 세계올림픽위원회로부터 스포츠로 인정받았고, 바둑도 최근에 대한체육회에 스포츠로 인정받았어. 심지어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바둑이 정식 종목으로 들어가 있고. 다른 게임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스타크래프트만큼은 이런 마인드 스포츠로 분류해도 아무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난.

그…그래? 그렇다고 해도 그런 컴퓨터 게임 좀 잘한다고 팬카페 회원이 16만 명이 넘고, 게임계의 아이돌 어쩌고 하는 건 좀 오바 아니야?
응, 아니야. 네가 말한 것 모두. 적어도 한국에서 스타크래프트는 ‘그런’ 게임이 아니고, 이윤열은 ‘좀’ 잘 하는 게 아니야. 게다가 게임계의 아이돌이란 표현은 인기 프로게이머를 얘기할 때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고.

아니 대체 내가 한 말을 다 틀렸다고 하는 이유가 뭔데? 납득할만하게 설명을 해보시지.
지금 널 붙잡고 스타크래프트의 게임 방법이랑 전략을 다 설명하는 건 완전히 무리니까 간단하게 말해줄게.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아이디 ‘쌈짱’ 이기석이란 1세대 프로게이머가 코넷 CF에 출연한 적이 있어. 그게 1999년이니까 10년 전인데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단 말이지.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오락실에 깔린 스트리트파이터 2가 철권 4로 바뀔 시간이라고. 이런 인기가 가능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야. 게임 개발자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전략들을 우리나라 게이머들이 만들어내면서 게임 자체의 진화를 이끌어냈고, 이런 프로게이머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하면서 일종의 아이돌 스타 시스템을 만든 거지.

종종 얘기하지? 이런 거 설명할 땐 지구어로 얘기하라니까.
하아… 그러니까 누군가 일렉트릭 기타를 만들었어. 하지만 그 사람이 기타로 가능한 모든 주법을 알고 있던 건 아닐 거 아니야. 지미 헨드릭스나 지미 페이지부터 잉베이 맘스틴,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의 톰 모렐로 같은 연주자들이 새로운 연주 기법을 통해 기타의 진화를 이룬 것처럼 스타크래프트라는 악기는 그대로인데 우리나라 게이머들이 계속 새로운 연주법을 만드는 거지. 그 중에서도 이윤열은 잉베이처럼 빨리 치는 거랑, 스티브 바이처럼 창조적으로 치는 것 모두에 능숙한 연주자인 거고.

이윤열이 그렇게 대단한 선수인 거야?
아니 왜 너는 내가 실컷 얘기한 걸 다 귓등으로 흘려듣고 같은 소리 반복하게 하냐. 우리나라 스타크래프트의 양대 메이저리그가 있는데 하나는 온게임넷 스타리그고, 하나는 MSL인데 두 리그 모두에서 우승을 3번 거둔 건 이윤열이 유일해. 이것도 준우승 같은 기록은 그냥 귀찮아서 뺀 거다. 더 대단한 건 게이머의 세대교체가 이뤄진 지금도 현역에서 쌩쌩하다는 거지. 이번에 붐이 이윤열 보고 16강까지라고 말했다가 번복했잖아. 붐에겐 진짜 다행인 게 이윤열이 MSL 8강에 올랐거든. 이건 농구로 치면 주전에서 물러난 우지원이 풀타임으로 뛰면서 20득점 하는 수준이야.

그렇다고 방송에서 천재 프로게이머 어쩌고 하는 건 좀 낯 뜨겁지 않아?
우선 천재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선수기도 하거니와 그런 호칭을 방송에서도 어렵지 않게 한건 이윤열의 별명이 ‘천재’라서 그래. 아까 말한 것처럼 스타크래프트가 이렇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건 플레이어들에 캐릭터를 부여하면서 스타처럼 만드는 시스템이 있어서야. 가령 너도 아는 임요환은 ‘황제’가 별명이야. 그렇게 ‘영웅’ 박정석, ‘투신’ 박성준, ‘괴물’ 최연성, ‘마신’ 마재윤, ‘혁명가’ 김택용, ‘최종병기’ 이영호 등등 선수들 개성에 맞게 별명을 붙이고, 이들의 경기를 화려하게 홍보하고 중계하는 거지. 에릭 클랩튼이랑 비비 킹이 합동 연주를 하면 ‘기타의 신’ 대 ‘블루스의 황제’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게 더 주목을 끌 거 아냐. 이런 스타 시스템이 있으니까 이윤열의 팬카페 회원이 16만 명이나 생길 수 있는 거지.

말을 들으면 대단한 것 같긴 한데 그건 너무 그들만의 세계인 거 아냐?
그건 솔직히 어느 아이돌에게나 해당되는 문제 아닌가? 물론 내가 빅뱅 팬이 아니더라도 빅뱅 팬덤은 어느 정도 아는 것 정도의 대중적 인지도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도 나처럼 소녀시대도 좋아하고 이윤열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 프로게이머 팬덤도 그렇게 비대중적인 것만은 아니야.

그렇구나… 그런데 넌 그냥 소덕후에 스덕후인 거 아니야?
그래서… 내가 친구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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