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동화>, <호텔리어>, <풀하우스>. 멜로드라마의 여주인공 송혜교. 혹은 밝고 씩씩한 송혜교. 우리는 흔히 송혜교라는 이름에서 이런 이미지들을 떠올린다. 그것은 송혜교가 스타이기는 하되 전형적인 장르 안에서 움직이는 배우로 기억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송혜교는 어느 순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영화 <황진이>에 출연해 온전히 자신이 이끌어가는 영화를 경험했고, 독립영화 <시집>을 통해 그 나이 또래의 여성 스타가 하지 않았던 행보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런 송혜교의 새로운 시도에 방점을 찍어줄지도 모를 터닝 포인트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그는 비극이나 코미디가 아닌 일상의 사람들과 드라마 제작 현장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왜 드라마 속의 여주인공 대신 그 드라마를 찍는 감독의 현실 속으로 들어갔을까. 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송혜교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들이 사는 세상> 재밌게 보고 있다. 주변에서 당신과 현빈이 함께 있는 장면 보면서 연애하고 싶다더라.
송혜교
: 그런가? (웃음) 그런데 정작 같이 찍는 현빈은 어리고 예쁠 때는 다른 남자 배우들하고 찍더니 이제야 자기하고 찍는다고 구박하던데. 하하. 물론 농담이고, 경험이 쌓이면서 전보다 상대 배우와 더 빨리 친해지고, 연기할 때도 그런 분위기가 나오는 것 같다.

상대 배우와 쉽게 친해지나.
송혜교
: 예전에는 그러지 못했다. <가을동화> 찍을 때는 원빈과 촬영 내내 “안녕하세요.” 한 마디만 했다. 지금 같은 회사에 소속돼 있는데, 그 때 얘기하면 서로 웃는다.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과 가까워지는 방법을 익혀가는 것 같다.

“지금은 연기 자체에 대한 고민이 너무 크다”

<그들이 사는 세상>의 선배 연기자들과는 친해졌나.
송혜교
: 윤여정 선생님 같은 경우는 영화 <황진이>에서도 함께 출연해서 편하게 잘 지낸다. 워낙 출연하시는 분들이 다 대단한 분들 아닌가. 현장이 다 선생님들인 건데, 그 분들 입장에서는 내가 주연이라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데 조심스러워하시는 것 같다. 하지만 그분들이 말씀 안하셔도 워낙 얻는 게 많다. 얼마 전에는 연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으니까 배종옥 선배님이 나도 <거짓말>을 할 때는 5회까지 고생했다, 누군가 지나가다 툭 쳤을 때 대사가 쏟아질 정도로 외우는 수 밖에 없다고 하시더라. 그리고 지금은 괴롭고 사람들한테 욕먹더라도 드라마 끝나고는 많이 커져 있을 거라고. 그 말씀에서 힘을 얻었다.

주준영을 연기 하면서 무슨 고민을 하는 건가.
송혜교
: 내가 쓰지 않는 말들이 많기 때문인지 대본이 미리 나와 있어도 힘들다. 처음 대본을 받을 때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들이 대사로 나와서 입에 잘 붙겠다 싶었는데, 파면 팔수록 어려워졌다.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뜻이 완전히 달라지니까.

지오와 순정에 대해 말할 때 그게 화내는 건지, 투정을 내는 건지 미묘한 선을 넘나들 때가 있다. 그걸 볼 때 배우가 저 감정을 어떤 생각으로 표현할까하는 궁금증이 들더라.
송혜교
: 그게 정말 힘들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드라마는 슬픈 신, 울기만 하는 신 같은 식으로 나눠졌는데 이번 드라마는 한 신에 짜증냈다 슬펐다하는 것들이 다 있다.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정말 안 해보면 모른다. (웃음) 감독님이 많이 도와주신다.

노희경 작가의 작품들은 보는 사람도 어느 순간 스스로 고민을 하게 만들곤 한다. 당신도 그런가.
송혜교
: 지금은 연기 자체에 대한 고민이 너무 크다. 그 전까지는 어떤 상황에서는 어떤 연기라는 공식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이 사람한테 사랑하고 싶다고 그냥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 없으니까 전과는 다른 공식들이 생긴다. 그래서 대본을 훨씬 많이 보게 된다. 그리고 준영이는 그 순간 자신이 하고 싶은 걸 과감하게 선택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민보다는 내가 그 순간에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한다. 이 순간 이 남자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면 그쪽으로 돌진. 일을 하고 싶으면 일로 돌진.

“류승범, <풀하우스>가 연기 욕심을 내게 한 계기”

10대부터 스타였는데, 준영이의 행동방식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가 이해가 되나.
송혜교
: 사랑에 있어서는 이해가 된다. 사랑은 누구나 하는 거니까. 그런데 직장 상사와의 관계는 잘 이해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감독님한테 물어본다. 그러면 감독님이 느낌을 수정할 때도 있다. 왜 바꾸시냐고 물어보면 우리한테도 어려울 때가 있는데 젊은 사람들한테는 더 어려울 거 같다는 거다. 이해 못할 때도 있지만, 그렇게 계속 물어보면서 배워간다.

배우와 감독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상반된 직업이다. 배우는 자신에게 집중하고, 감독은 모두를 챙기는데, 감독을 연기하기는 어떤가.
송혜교
: 잠깐 연기하면서 감독의 입장을 다 알 수는 없다. 현장에서 표민수 감독님께 많은 걸 물어본다. 솔직히 내가 감독하라고 하면 못할 거 같다. 나 하나 몰두하기도 힘든데 배우 챙겨야지, 현장 챙겨야 하지.

배우로서 당신은 감독과 어떻게 소통하나. 어떤 배우는 기싸움을 하기도 하는데.
송혜교
: 나는 기싸움을 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좋은 분들만 만나서, 내 연기에 대해 타당한 지적을 해주셨다. 그리고 솔직히 나는 <올인>까지 연기에 대한 의견도 거의 말하지 못했다. 작품을 보는 시야도 좁아서 <올인>때는 내가 나오는 장면만 대본을 본 적도 있다. 그런 어려움을 말해서 상의를 하는 것도 생각 못했고. 원래 해도 되는데 내가 겁먹고 말하지 못했던 거다. 만약에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틀리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많았다.

당신은 연기를 배우는 시점이었지만, 시청자들은 톱스타가 된 당신에게 더 많은 걸 요구했다. 괴리감 같은 건 없었나.
송혜교
: 어렸을 때는 멋모르던 상황이라 겁이 없었다. 상대 배우들이 워낙 좋아서 그 힘도 컸고. 그런데 20대 중반 지나면서 연기에 재미가 붙고 욕심이 생기면서 연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연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런 욕심이 생긴 특별한 계기가 있나.
송혜교
: 류승범 씨하고 <햇빛 쏟아지다>를 할 때 굉장히 재밌었다. 처음으로 내 목소리를 내는 여자의 배역이기도 했었고, 연기 잘하는 류승범이란 배우와 꼭 일해보고 싶기도 했었고. 그 다음에 <풀하우스>에서 표민수 감독님을 만났는데, 그 때 내가 대본에 대해 말하면 감독님이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은 대본에 반영이 되는 게 너무 재밌었다.

“하면 할수록 노희경 작가님의 작품을 또 해보고 싶다”

그러면서 당신의 작품 선택이 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황진이>와 <그들이 사는 세상>을 선택한 건 의외로 다가왔다.
송혜교
: 나는 내가 배우라는 타이틀이 자연스럽게 붙을 만큼의 뭔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안다. 그걸 채워주기 위해서 작품을 통해 연기를 많이 배우고 싶었다. <황진이>는 그 캐릭터가 지금의 내 나이가 아니면 맡지 못할 거라는 생각도 있었고. <그들이 사는 세상>은 말 그대로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어떤 길로 갈 거라고 예상하는 경우도 있을 거다. 쟤는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을 거라고. 그런데 그건 솔직히 재미없다. 난 이미 10년 이상 연예계 생활을 해왔고. 그렇지만 너무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아니까 이런 선택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독립영화 <시집>도 그래서 찍은 건가.
송혜교
: 솔직히 <시집>은 <황진이> 끝나고 쉬기 싫어서 찍은 것도 있다. 시나리오도 너무 재밌었고, 외국 스태프들하고 함께 작업하는 경험도 새로웠다. 찍고 나서 굉장히 만족했다. 내가 연기를 아주 잘해서가 아니라, 그 동안 내가 보여주던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들이 사는 세상>은 표민수 감독님과 다시 작품을 하기로 약속도 했었고, 노희경 작가님과도 늘 작품을 해보고 싶었다. 노희경 작가님의 드라마를 하면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연기력의 바닥이 다 드러난다고 하던데, 그래서 고민도 많이 된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노희경 작가님의 작품을 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작품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어쩌면 다음 드라마를 선택하기 전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노희경 작가와 대본에 대해 상의하나.
송혜교
: 아직 그런 적은 없다. 나는 사실 이전까지 작가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대본이 나오면 무조건 거기에 충실해야 한다는 쪽이었으니까. 작가와 통화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아직은 연기 이야기 보다는 방송 재밌게 봤다는 식이다. 노희경 작가님이 내가 지오에게 “나? 주준영~”하는 것도 동영상으로 보내주시고. (웃음)

그 때 주준영의 캐릭터가 잘 드러나더라. 그 전에는 일 욕심이 많고, 센 여자로 느껴졌는데 그 장면에서 이 사람의 내면이 조금씩 드러나는 것 같았다.
송혜교
: 그 장면은 내 전작이 <풀하우스>라 또 그런 느낌이 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걱정이었다. 내가 여러 색깔을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양하게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아직 그만큼의 여유가 없으니까. 그래서 감독님께 과하게 귀여운 느낌이 있으면 지적해달라고 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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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교 – 김재욱

인터뷰. 백은하 (one@10asia.co.kr)
인터뷰. 강명석 (two@10asia.co.kr)
정리.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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