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슬기 기자]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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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인생인데 꽃길만 걸을 수 있겠어요? 진흙탕 길을 건너야 꽃길이 나타나듯 오르막길을 걸으면 바로 앞에 내리막길이 나타나잖아요. 그게 인생입니다. 인생이란 게 우리 힘으로 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뭐든지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배우 김명민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배우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고 했다. 모든 것을 다 접고 다른 직업을 택하려고 했지만 운명처럼 다시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자신을 슬럼프에 빠뜨린 것도 연기였고 최고의 자리에 올린 것도 연기였다.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김명민을 만났다.

김명민은 지난 23일 개봉한 영화 ‘브이아이피’(감독 박훈정)에서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절차와 법도 무시하는 형사 채이도 역을 맡아 열연했다.

“박훈정 감독과 계속 엇갈는데 이번에야 만나게 됐어요. 사실 채이도 같은 캐릭터는 한국영화에서 많이 보던 형사 캐릭터라서 어떻게 차별점을 둘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박훈정 감독은 너무 어둡지도, 업(up)되지도 않은 중간지점을 원했거든요. 그게 힘들었죠. 영화를 보니까 잘 나와서 좋았어요. 박 감독이 연출을 잘했죠.”

김명민은 지난 6월에 개봉한 영화 ‘하루’에 이어 2개월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현재 영화 ‘조선명탐정3’ 촬영이 한창인 데다 영화 ‘물괴’는 지난 7월 크랭크업했다. 쉴 틈이 없다. 그는 “찾아줄 때 열심히 해야죠”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한 작품 끝나고 다음 작품까지 무조건 쉬어야 했어요. 전작에서 빠져나오고 다음 작품 준비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게 다음 작품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닌 공백이 생기더라고요. 영화는 개봉이 미뤄지거나 무산되는 경우도 많아서 뜨는 시간이 많았죠. 허탈감을 느꼈어요. 나만의 틀을 갖춰놓고 하다보니까 내 뜻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았죠. 타이밍을 못맞춰 좋은 작품을 놓치는 경우도 많아서 지금은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시간이 맞으면 다 하려고 해요.”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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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는 다양해졌지만 예전에 비해 흥행성은 많이 떨어졌다. 과거 드라마 ‘하얀거탑’ ‘베토벤 바이러스’ ‘드라마의 제왕’ 등 다수의 작품을 통해 인생캐릭터를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그럴 만한 작품이 딱히 없었다.

“그 정도 했으면 됐죠. 인생캐릭터나 작품도 운때와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한테 좋은 역할들이 들어왔고 좋은 감독님도 만났고. 합일점이 잘 맞은 거죠. 저는 운이 좋았던 경우예요. 인생캐릭터를 갖고 있다는 건 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모든 배우들이 다 원하지 않나요? 저는 운이 좋은 배우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저 연기를 계속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어요.”

많은 사람들은 김명민을 ‘믿고 보는 배우’라고 평한다. 최근 부진한 성적을 보이기는 했지만 김명민이 출연한다면 한 번쯤 보게 만든다.

“사실 과거 작품들 때문에 흥행에 부담감이 있긴 해요. 그런데 부담감을 가지면 잿밥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중요한 건 제사인데 잿밥에 관심을 갖게 되면 이도 저도 안 되죠. 무던하게 자기 갈 길만 가다보면 또 좋은 작품과 캐릭터를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못 만나면 어쩔 수 없지만요. 솔직히 말해 많은 분들이 저에게 기대할 시기는 지난 것 같아요. 저는 연기를 열심히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박슬기 기자 ps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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