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까르망’으로 돌아온 장재인 / 사진제공=미스틱엔터테인먼트
‘까르망’으로 돌아온 장재인 / 사진제공=미스틱엔터테인먼트
사랑의 가장 큰 장애물은 결국 끝이 올 거라는 두려움이다. 이별 후엔 누구나 다신 사랑을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지만, 예고 없이 찾아오는 핑크빛 순간에 또 무릎 꿇고 만다.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마음도 누군가를 원하니까. 장재인도 그 불변의 진리를 깨달았고, 노랫말로 녹여냈다. 1년 8개월 만에 프랑스에서 진홍빛을 뜻하는 얼반·퓨전재즈곡 ‘까르망’으로 돌아왔다.

‘그녀에게’를 보고 가슴이 쿵, 베를린의 한 전시관을 빠져나오는 순간엔 잡생각이 사라졌다. ‘비포 미드나잇’ 속 주옥같은 대사는 잊고 싶지 않아 휴대전화 속에 고이 모셔뒀다. 고여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장재인은 대중의 선택으로 가수의 꿈을 키웠듯, 앞으로도 대중의 곁에서 성장해가는 모습을 숨기지 않을 생각이다. 장재인에게 음악은 사랑이고, 완성해가는 과정은 연애만큼 즐겁고 설렌다.

10. 1년 8개월 만에 세상에 내놓는 결과물이에요. 떨리기도 하고, 묘한 기분도 들 것 같은데요.
장재인 : 회사 생활을 오래 하면 대리, 과장이 되는 것처럼 인턴 때보다 상황이 보인는 것 같아요.(웃음)

10. 어떤 상황이 보이는 건가요? 해야 할 것들을 미리 알 수 있다는 말일까요.
장재인 : 신곡 작업을 마쳤으니, 뮤직비디오를 찍으러 갈 테고 인터뷰를 진행한 뒤 음반이 나올 거라는 과정을 알게 된 거죠. 또 행사도 하고 라디오도 하겠죠?(웃음) 조금 덜 긴장되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도 덜 받고, 컨디션도 유지할 수 있고요. 다음날 스케줄에 따라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도 알아요. 대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어요.

10. 특히 이번엔 박근태 작곡가와의 만남으로 더 주목을 받았어요.
장재인 : 박근태 작곡가가 같은 회사에 소속돼 있고 다양한 아티스트로 협업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어요. 저와 한 번 음악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하셨나 봐요. 저 역시 그런 말을 한 적 있거든요. 그리고 1년 뒤에 미팅이 이뤄졌어요. 그땐 바로 연락이 없길래 생각이 없으신가 보다 했죠.

10. 첫 미팅은 어땠나요?
장재인 : 작업실에 놀러 오라고 해서 갔는데, 제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셨어요. 본격적으로 음악 작업을 시작한 건 10월? 11월부터였어요.

10. 음악 작업을 하고 싶었던 뮤지션과의 작업이 성사돼 기뻤겠네요.
장재인 : 박근태 작곡가의 스타일이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아티스트를 만나서 성향을 파악하고 곡을 쓴다고요. 아마 저를 만나 사람을 파악한 뒤에 곡을 쓴 것 같아요. 가이드를 듣고 미션을 받았어요. 1월까지 가사를 써오라고요.(웃음)

10. 나를 파악하고 쓴 멜로디에 가사를 붙이는 건 쉽지 않았겠어요.
장재인 : 사실 책임감 때문에 잘 써지지 않더라고요. 기타 라인도 어려웠고, ‘어떻게 부르지’ 싶었어요. 초반엔 안 써졌는데, 어느 순간 떠오른 것들을 써서 완성했습니다. 그간 음악 작업물을 내지 않아서인지 자신감이 약간 없었거든요.

10. 가사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장재인 : 그 순간의 분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멜로디를 듣다 보면 뭔가 희미하게 떠올라요. 그걸 가사로 풀어내죠. 당시엔 사랑에 대한 고찰을 하고 있었어요. 뭔가 사랑에 대한 두려움도 생기고, 연애와 이별을 하면서 회의감 같은 것도 좀 들었고요. 같은 패턴의 연애를 해야 하나라는 의구심도 있었거든요. 이걸 곡에 담아도 될까 싶었는데, 그냥 가자! 했죠. 이게 나오는 걸 보니, 지금의 ‘나’이구나 싶어서요.

10. 완성된 가사를 가져갔을 때, 바로 합격점을 받았나요?
장재인 : 바로 오케이(OK)를 받았어요. 자신감이 붙었죠. 그 다음 곡부터는 하루 만에 쓰고 그랬어요.(웃음) 다 박근태 작곡가 덕분이에요. 사라졌던 제 자신감을 찾아주셨으니까요.

장재인 / 사진제공=미스틱엔터테인먼트
장재인 / 사진제공=미스틱엔터테인먼트
10. 왜 자신감이 떨어졌을까요?
장재인 : 창작가로서의 제가 너무 강했던 거예요. 앞선 음반 때 자작곡이 들어가지 않았어요. 그게 충격과 놀람이었어요. 싱글로 바로 낼 수 있었지만, 거기서 수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싱어송라이터라는 나의 정체성을 실천하지 못했다는 것이, 스스로 무너진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돌이켜서 유연하게 보니까 정해놓은 것이 전부는 아니더라고요. 혼자 상처받은 거죠. 그 시기를 겪으면서 마음이 열린 것 같아요.

10. 하루만에도 완성되는 장재인의 가사 작업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장재인 : 요즘은 패턴이 비슷해요. 어떻게 보면 박근태 작곡가의 접근 방식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요. 부르게 될 아티스트를 만나서 그 아이를 파악하죠. 부를 때 창피할 가사를 만들어주고 싶지 않아요. 자신감 넘치게 부를 수 있도록 하고 싶기 때문에 미리 그 친구의 글을 받아서 감정을 느껴보기도 하고 그래요. 정말 재미있어요.

10. 창작의 고통도 동반할 것 같은데요.
장재인 : 엄청난 애정을 쏟아서 만들고 난 뒤 텅 빈 것 같고, 허한 기분은 있어요. 연애를 해도 채워지지 않는 그런? 마치 ‘까르망’처럼요. 하하.

10. 나왔네요, 신곡 제목이. ‘까르망’이죠.(웃음)
장재인 : 상의도 많이 하고 수정 녹음도 굉장히 많이 이뤄졌는데, 그게 정말 좋았어요. 말하지 않아도 박근태 작곡가는 계속 수정 녹음을 해주니까요.(웃음)

10. 보통 작곡가와 수치를 비교해준다면, ‘많이’라는 느낌이 더 와 닿을 것 같네요.
장재인 : 음…보통 작곡가의 10배예요. 칼같고 꼼꼼해요. 그러니까 든든하죠. 저도 완벽주의자의 성향이 조금 있거든요. 수정할 부분을 찾으려고 하면 이미 다 해줘요.(웃음)

10. 확실히 이번 박근태 작곡가와의 호흡으로 기분도 전환이 됐겠네요. 얻은 것도 많을 테고.
장재인 : 새로운 스타일이었어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일주일에 3번씩 하신다고 해요. 송(Song)캠프도 참여하고, 도태되지 않으려고 하는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이었어요. 저 역시 어느 순간에 빠져 있고 싶지 않거든요. 많이 배웠어요. 윤종신 오빠와는 또 다른 장점을 가진 분이에요.

10. 윤종신과 박근태, 두 사람은 어떻게 다른가요?
장재인 : 윤종신 오빠는 유연하고 넓은 시야를 가졌어요. 박근태 오빠와는 또 다른 색깔이 있죠. 정말 저는 복받은 것 같아요. 좋은 선배님들, 프로 중에 프로들을 만나 정말 많이 배웠어요. 내 것을 해야한다는 게 강해서 정해놓고 살았던 것이 있었는데, 그걸 내려놨어요. 좀 더 나중에 진짜 저만의 뚜렷한 걸 하고 싶으니까 더 연마해서 나가고 싶어요.

10. 1년 8개월 전 장재인과 지금, 가장 크게 다른점이 있다면요?
장재인 : 늘 신곡을 내놓기 전엔 긴장됐는데요, 이번엔 괜찮아요.(웃음) 순위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하고, 저는 해야 할 음악 공부가 많이 있어요. 해야할 일들이 생겨서 정말 좋아요. 배움을 계속해야겠다는 자세로 한 달간의 스케줄이 빼곡해요. 만들어놓은 음악도 많거든요. 그걸 어떤 방식으로든 발매하고 피드백을 얻고, 또 다른 작업물을 만들려고 해요.

무엇보다 많이 유연해졌어요. 음악을 잘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큰 그림을 그리면서 음악을 대하게 됐죠. 음악이 정말 좋아요.(웃음) 연애랑 같은 것 같아요. 처음엔 잘 몰라서 어떨 땐 밉기도 하고 다투고 헤어지기도 하고, 그런데 연구하고 배려하고 파악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죠.

10. 그간 여행, 영화 감상 등 다양한 경험으로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고 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얻은 것,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장재인 : 여행은 용기를 줬어요. 서바이벌이었거든요.(웃음) 2015년에 혼자 유럽을 처음 갔는데, 베를린 숙소가 난방이 되지 않아서 정말 추운 거예요. 살아남기 위해서 지리를 파악하고 좋은 곳을 찾으니까 알차게 보내게 되더라고요. 몰랐던 걸 발견하면서 뭐랄까, 삶의 지혜를 얻었어요.(웃음)

사실 그 지혜는 2012년과 2013년 뉴욕에서도 느꼈어요. 2012년은 촬영차, 또 2013년은 여행으로 뉴욕을 갔는데요. 2012년엔 뉴욕에 100년 만에 허리케인이 온 거예요. 지하철이 물로 가득 차고 불도 없고, 실화예요.(웃음)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양초를 사고 식량을 쟁여두고요. 해가 지면 야생의 삶인 거예요. 살기 위해서 해가 뜨면 나와서 걷기 시작했어요. 2013년엔 100년 만에 폭설이 왔어요. 추위에 떨면서…(웃음) 그래서 뉴욕을 정말 싫어했는데 지나고 나니 고생한 건 오래 기억에 남더라고요. 값진 추억이 됐죠. 당시엔 ‘이렇게 끝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추웠어요. 하하.

10. 뉴욕을 겪은 뒤 베를린이라, 금방 적응했겠는데요?
장재인 : 훨씬 나았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니까요. 그래도 유럽은 처음이라 살짝 긴장은 했어요. 이번에 파리에 뮤직비디오를 찍으러 갔는데,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잘 다녔어요. 사람들을 이끌면서요.(웃음)

장재인 / 사진제공=미스틱엔터테인먼트
장재인 / 사진제공=미스틱엔터테인먼트
10. 다양한 작품과 경험이 뮤지션으로서는 큰 도움이 됐겠어요.
장재인 :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란 영화를 보고 많은 걸 느꼈어요. 예술을 소비하는 걸 멈추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베를린 여행 때도 국립극장에서 전시를 관람했는데, 들어서면서부터 압도됐어요. 머리가 ‘띵’하고요. 현대 미술 작가의 작품이었는데 난생 처음 그렇게 강한 기운을 느꼈어요. 다 보고 나오는데 마음이 평온하더라고요. 잡생각도 하나도 없고요. 계속 더 좋은 걸 봐야겠구나, 내게 도움이 되는구나라고 깨달았죠. 예술을 소비하는 건 정말 재미있는 일이에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많이 보고 싶어요. 아마 그러다 보면 제 작품에도 투영되지 않을까요? 어떤 식으로든 음악에 나올 테니까, 발전된 모습 말이에요. 이번 ‘까르망’의 뮤직비디오, 가사, 음색에도 나온 것 같아요.

10. 사실 장재인에겐 음색이 곧 장르인데, 축복이기도 하면서 또 숙제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장르를 만나도 ‘장재인 화(化)’ 되니까요.
장재인 : 항상 장재인스러운 노래라고 느끼시길 바라요. 어떤 장르를 부르든 ‘장재인스럽다’고 하는 말은 저에게 찬사예요. 고마운 일이고요. 그걸 목표로 삼고 있어요.

10. 곡에 대한 설명에 영화 ‘비포 미드나잇’이 있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 작품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장재인의 어디를 건드렸을까요.
장재인 : 정말 좋죠.(웃음) 좋아하는 장면을 캡처해서 저장해 뒀어요. 아마 저와 좋아하는 부분이 같을 것 같아요. (휴대전화 사진첩을 보여주며) 이 말, 이 장면 정말 좋지 않나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사랑에 대해 고뇌할 때 결국은 전체의 사랑이 중요한 것이구나란 깨달음을 얻었죠.

10.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신데렐라처럼 마이크를 잡았고 독특한 음색으로 주목받아 단숨에 대체불가 가수로도 인정받았어요. 앞으론 더 많은 작품을 볼 수 있었으면 해요.
장재인 : 소속사에 ‘리슨 프로젝트’란 통로가 있으니 새로운 곡을 계속 낼 수 있을거예요. 지켜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고요. 저는 계속 발전할 겁니다. 어떻게 보면 데뷔 전부터 대중과 함께 자란 것 같아요. 성장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봐 주시면 좋겠어요. 전보다 당당해진 것 같아요. 달라졌다고 해주시는 것도 좋고요. 오히려 그걸 원해요. 고정된 이미지는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10. 가수로서 장재인의 큰 그림은 어떤 모습인가요?
장재인 : 우선 지금은 만들어진 곡을 ‘리슨 프로젝트’로 낼 거고요. 경쾌하고 가볍고 담백한 곡들이 있는데, 그걸 먼저 들려드리고 이후 강하고 조금은 어두운 노래도 발표할 거예요. 큰 그림은 희미하게 두고 있는데 결국 이런 사람, 이런 가수는 되지 말자는 걸 정해놓고 살고 있어요.

과거에 머물러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만약 제가 큰 성공을 거뒀다고 쳐요,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계속 음악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항상 주변에 음악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티스트들이 많았어요. 첫 시작을 그분들에게 사랑받으면서 시작해서 좋은 생각이 저절로 잡힌 것 같아요. 저에게 가장 좋은 영향을 주신 세 분이 있어요. 정원영 교수님, 방준석 오빠, 정재일 오빠예요. 이분들이 조건 없이 사랑을 베풀어준 덕분에 그 영향으로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런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웃음)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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