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윤준필 기자]
배우 박해일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덕혜옹주’ 인터뷰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배우 박해일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덕혜옹주’ 인터뷰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박해일은 영화 ‘덕혜옹주’(감독 허진호)에서 일제에 의해 강제로 고국을 떠난 덕혜옹주(손예진)의 곁을 평생 지키는 김장한 역을 맡았다. 박해일은 실제 인물에 상상력을 더해 만든 캐릭터인 김장한을 너무 과하지도, 결코 모자라지 않게 그려냈다. 평생 덕혜를 위해 노력했던 김장한처럼, 조용하면서도 뜨거운 박해일의 존재감이 영화 ‘덕혜옹주’를 든든하게 지켜줬다.

‘덕혜옹주’는 박해일의 호기심을 자극한 영화다. 섬세한 감정 연출의 대가 허진호 감독의 세계가 궁금했고, 호흡을 맞출 덕혜옹주 역의 손예진의 힘이 궁금했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 안에서 진지하게 다뤄지는 캐릭터가 궁금했다. ‘박해일은 덕혜옹주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0. 어떤 목표를 갖고 ‘덕혜옹주’에 출연을 결심했나?
박해일: 오래 전에 ‘모던 보이’란 작품을 했었다. 배경은 같은 시대이지만 이번 ‘덕혜옹주’에서 내가 맡은 장한과 ‘모던 보이’에서 내가 연기한 인물은 판이하게 다른 캐릭터다. ‘덕혜옹주’를 만나기 전에 좀 더 그 시대를 진중하게 접근할 수 있는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김장한을 만난 것이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부터 매력적이었다. 이 캐릭터를 내가 지금까지의 경험에 잘 융화시키면 다채롭게 해볼 수 있는 지점들이 많아 보였다.

10. ‘덕혜옹주’는 허진호 감독이 4년 만에 연출한 작품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을 간다’를 연출한 감독이라 기대감 같은 것들이 있었을 것 같다.
박해일: 허진호 감독의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감독님의 영화는 인물의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남녀의 거리를 일관되게 유지하며 인물과 인물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보여준다고 느꼈다. 허진호 감독님을 경험해볼 수 있다는 기대감 같은 게 있었다.

10. 장한과 덕혜도 미묘한 사이다. ‘썸타는’ 것 같으면서도 역경을 같이 경험하는 동지 같은 사이다.
박해일: 초반에 인물의 톤을 잡을 때에는 더 직접적으로 덕혜에게 다가가는 방식으로 연기했다. 그런데 보이지 않게 감독님이 약간씩 거리를 만들어줬다. 직접 감정을 표현하기보단 에둘러서 마음을 표현한다던가, 전체적으로 대사에서 느껴지는 감정에서 감독님만의 감성이 느껴진다. 점차 감독님의 연출 의도에 맞춰갔다. 여기에 덕혜옹주는 여기에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상을 반영한 캐릭터였다. 그런 것들이 결합하다보니 두 사람 간의 묘한 멜로를 만들었던 것 같다.

배우 박해일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배우 박해일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10.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멜로 영화와 거리를 두고 있는 느낌이다.
박해일: 내가 받는 시나리오가 물리적으로 정해져 있다. 단지 인연이 안 된 것뿐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입맛이 바뀌지 않느냐. 칡냉면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어느 날부터 함흥냉면, 평양냉면으로 기호가 바뀌는 것처럼 멜로가 싫어서 출연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연기를 오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멜로가 아닌 장르에 더 많이 출연한 것이다. ‘덕혜옹주’도 김장한과 덕혜옹주의 멜로 라인이 느껴지기 때문에 출연한 것은 아니다. 허진호 감독 특유의 연출이 마치 멜로 영화와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다.

10. 허진호 감독다운 장면을 하나 꼽는다면?
박해일: 비밀 가옥에서 장한을 치료해준 뒤 잠든 덕혜에게 장한이 입던 코드를 덮어주는 신이 있다. 그런데 감독님이 그 장면에서 나한테 코트 소매를 덕혜 머리 밑에 대주면 좋겠다는 거다. 속으로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관객들 반응이 꽤 좋더라. 김장한의 멜로는 허진호라고 보면 된다.(웃음) 감독님의 섬세한 감성이 들어갔기 때문에 김장한의 특유의 감성이 나온 것 같다.

10. 작품을 선택할 때의 박해일만의 기준이 있다면?
박해일: 작품마다 좀 다르다. 대체로 호기심이 작품을 선택하는 원동력인 것 같아. 출연을 결정짓고, 촬영을 마치고, 언론 인터뷰를 하고, 나중에 코멘터리까지 녹음하는 것이 완전한 끝이라고 한다면,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 바로 호기심이다. ‘덕혜옹주’는 감독님·시나리오·배우들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고, 내가 작품 안에서 어떤 것들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배우 박해일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배우 박해일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10. 손예진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손예진에 대해선 어떤 호기심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박해일: 지금까지 많은 관객에게 사랑받았고, 배우로서 계속 매력 있는 모습 보여줬는데 그 힘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같은 일을 하는 동료지만 함께 일을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부분이니까. 과정을 알아야 결과를 아니까 많이 지켜봤다. 캐릭터를 이해하는 능력이나, 현장에서의 책임감, 에너지를 쏟아야 할 때와 아닐 때를 아는 감각이 남달랐다. 굉장히 스마트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앞으로 손예진이 또 어떤 걸 보여줄까 궁금해진다. 같은 배우로서 앞으로 어떤 영화에 참여하고 어떤 캐릭터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그런 변곡점에 있는 배우라 궁금하다.

10. 정상훈과는 이번 작품을 통해 많이 친해졌다던데?
박해일: 상훈 형님은 정말 사람이 좋다. 같은 작품에 출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단 기운이 정말 건강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좋은 기운을 전달해준다. 그런 건강한 기운을 영화 안에서도 전달해줬고, 후반부로 갈수록 깊이 있는 감정 연기도 보여준다. 또, 오랜만에 영화에 출연하는 거라 굉장히 설레했다. 현장 분위기도 잘 리드해주고.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10.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는지?
박해일: 억눌려있는 시대를 연기하다보니 배우들이 긴장을 많이 했고, 감정적으로 치달아가는 장면들이 많아서 편하게 찍은 장면이 많지 않았다. 덕혜가 한글학교 세우고 싶다고 해서 천막학교를 쳤던 장면과 덕혜·장한·복동(정상훈)이 바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비교적 즐겁게 찍었던 장면들이다. 바에서 찍었던 그 장면은 감독님께서 알아서 해보라고 말씀하셔서 애드리브로 촬영한 부분이다. 재미있고, 리듬감 있게 나온 것 같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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