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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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기간 5년, 1964년 은퇴할 때까지 단 네 편의 작품을 남겼다. 그리고 3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되고 있다. 1960년 고(故) 김기영 감독의 ‘하녀’에서 기괴하면서도 욕망 가득한 하녀를 연기한 배우 이은심(80) 이야기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2010)에서 전도연이 연기한 하녀의 ‘원조’라고 하면 설명이 빠를까. 1982년 돌연 브라질로 떠났던 이은심이 33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 새까맣던 머리카락엔 하얀 눈이 앉고, 건강했던 피부엔 주름이 들어섰지만, ‘하녀’에서의 얼굴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었다. 뭐랄까. 영화로 따지면, 33년의 시간을 점프 컷으로 보는 기분이었달까. 그렇게 그녀는 시간을 가지고 이 곳에 왔다. 오랜만에 밟은 고국 땅에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Q. 33년 만에 한국을 찾은 기분이 어떠신가요.
이은심: 부산국제영화제 측에서 너무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기쁩니다. 잘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니까 너무 좋네요. 제가 나이가 많습니다. 아마 영화제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예요. 오늘 제가 말을 잘 못하더라도 이해 부탁해요.(웃음)

Q. 지난 33년 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혹시 자녀나 손주 중에 배우나 연출을 하는 분이 있는지요.
이은심: 연예계 관련된 쪽에 있는 식구는 없습니다. 브라질은 남편 누님이 있어서 가게 됐어요. 원래 외국에 대한 동경도 있었고요. 1982년에 브라질에 들어갔다가 1983에 한번 한국에 온 적이 있어요. 그러곤 다시 떠나서 브라질에 쭉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저희 영감님(故 이성구 감독)회고전도 있고 해서 오게 됐죠. 딸과 손녀와 함께 오니까 더 좋네요.

Q. 부산국제영화제와는 어떻게 연락이 됐나요?
이은심: 영화제에서 두 달 동안 절 찾았다고 하더라고요. 브라질 분을 통해 전화해 주셨어요.

이은심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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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하녀’의 김기영 감독님은 완벽주의자로 유명하신데,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요.
이은심: 당시에 제가 신인이고 연기를 전혀 모르니까 “배우는 인형”이라며 본인께서 원하는 연기를 해달라고 했어요. 직접 연기를 하면서 지도를 해줬죠. 감독님 뿐 아니라, 스태프들이 옆에서 도와주셔서 어려운 건 없었어요. 연기라고 할 것도 없었죠.(웃음)

Q.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이은심: 저는 영화배우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어요. 영화배우를 꿈꿨던 것도 아닙니다. 호기심에 영화인들이 자주 가는 다방에 갔다가 김기영 감독님 눈에 띄어서 하게 된 거예요. 당시 김기영 감독님이 ‘하녀’에 적합한 인물을 물색하고 다니셨어요. 제가 예뻐서가 아니라 뭔가 김기영 감독님이 생각한 이미지와 비슷했나 봅니다. 제안을 주셔서 배우를 하게 됐죠. 그런데 ‘하녀’ 이전에 유두연 감독의 영화 ‘조춘'(1959)을 먼저 찍었어요. ‘하녀’는 두 번째 출연작이죠.

Q. 한국을 떠난 이후, 영화에 대한 그리움은 없으셨는지요.
이은심: 전혀 없었어요.(웃음) 저는 연기에 대한 자신이 없었습니다. 잘 할 자신이 있었으면 계속 했겠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작품 시나리오가 계속 들어왔는데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거절했죠. 하고 싶었던 작품이 하나 있긴 했어요. 촬영 당시 제목이 ‘내일의 광장’이었는데 개봉은 ‘지게꾼’으로 했을 거예요. 예술영화였고, 야심이 느껴지는 영화였죠. 몇 번 찍었는데 힘들어서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Q. 어떤 부분이 힘드셨던 건가요?
이은심: 연기는 주고받는 거잖아요? 상대방에게 감정을 전달해줘야 하는데 그걸 못했어요. 그러니까 상대배우가 화를 내더라고요. “(이 실력으로)‘히녀’는 어떻게 했냐” 그러면서.(웃음) 창피를 당한 거죠.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어요. 그걸로 끝이었죠.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어요.

하녀 이은심
하녀 이은심

Q. 그래도 연기를 하면서 좋았던 순간이 있었을 텐데요.
이은심: ‘하녀’ 때 제가 연기를 못해도 상대역인 고(故) 김진규 씨가 화도 내시지 않고, 잘 타일러 주셨어요. 그 분에게 너무 감사해요

Q. ‘하녀’는 당시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인 영화였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으신지요.
이은심: 마지막 장면이 어려웠어요. 계단에서 구르는 장면을 찍을 땐 솔직히 겁이 많이 났죠. 그 외에는, 잘 모르니까 그냥 했던 것 같아요.(웃음)

Q. 임상수 감독이 리메이크 ‘하녀’를 보셨나요? 보셨다면 소감이 궁금합니다.
이은심: 네. 봤어요. 큰 화면에서 보지는 못했어요. 집에서 컴퓨터로 봤는데 그래서인지, 별로 큰 감흥은 없었어요.(일동 웃음) 하지만 전도연 씨는 참 연기를 잘 하더라고요. 제가 한 ‘하녀’보다 훨씬 월등하다고 생각합니다.

Q 영화제에 와서 만난 분들 중, 반가운 분이 계신가요?
이은심: 최하원 감독님이라고 이성구 감독님 조감독을 하셨던 분이에요. 그래서 저를 잘 알죠. 신성일 씨도 만나서 반가웠어요. 나이 든 배우는 저와 신성일 씨만 남은 것 같네요.(웃음). 저는 이제 완전히 노인 같은데 신성일 씨는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아직 젊어 보이더라고요. 게을러서 운동을 전혀 안하고 살았는데, 이제라도 운동을 좀 해야겠어요.

Q. 이번 영화제에서 젊은 관객들과 함께 ‘하녀’를 다시 보셨는데, 기분이 남다르시겠습니다.
이은심: 큰 영광이죠. 무엇보다 김진규 님을 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함께 온 딸에게는, 영화 속 연기를 못해서 조금 창피했고요.(웃음)

이은심4
이은심4

Q. 그렇다면 궁금하네요. 따님하고 손녀 분을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이날 인터뷰에는 그녀의 딸 이양희씨(50)와 손녀 김희연씨(21)가 동행했다.)
이양희: 이번에 두 번째로 봤는데, 너무 오래된 영화라서 그런지 오버 액션이 많은 것 같아요.(웃음)
김희연: 음악이 굉장히 컸어요. 할머니 표정도 똑같은 장면이 몇 번 반복돼서 웃기더라고요. 오버액션도 웃겼고요.(일동 웃음)
이은심: 음악은 큰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오버 액션은 하지 않았다고요.(일동 폭소)

Q. 남편인 이성구 감독은 어떤 분이셨나요?
이은심: 예민하고 신경질적이고 내성적이어요. 클래식 음악과 책, 낚시를 좋아했고, 영어·불어·이태리어 공부에도 열심이었어요. 그런데 함께 TV를 보면 제가 좀 괴로웠어요. 브라질은 아나운서들이 웃기도 하고 애교도 부려요. 그 모습을 보면서 근엄하지 못하다고 훈계를 두는데, 신경질이 나서 함께 못 봤다니까요.(좌중폭소)

Q. 한국영화를 브라질에서도 보셨는지요. 한국영화계에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은심: 저는 상파울루에서 비행기로 1시간가량 떨어진 산타카타리나라는 지역에서 살고 있어요. 한국인이 한 사람도 없는 곳입니다. 독일인이 80%를 차지해요. 조금 외롭긴 해요. 그 곳에 한국방송이 들어오지 않아서 한국 소식을 모르고 살았어요. 이번에 다시 한국영화들을 봤는데 ‘와’하고 감탄할 뿐입니다. 참 많이 발전한 것 같아요. 앞으로 더 발전하겠죠.

부산=정시우 기자 siwoorain@
부산=사진. 팽현준 기자 pangp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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