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나무
권나무
권나무

포크 싱어송라이터 권나무는 청자의 가슴을 멍들게 할 치명적인 매력과 성장 잠재력을 지닌 기대주다. 예명 ‘나무’는 고 김광석이 부른 동명의 노래를 듣고 마치 자신의 이야기 같은 감명을 받아 스스로 작명했다. 그의 노래 가락은 단순하지만 절망적인 아픔을 아름다운 가사로 승화시킨 노랫말과 유려한 멜로디가 빚어내는 울림의 파장이 크다.
권나무 피쳐사진28
권나무 피쳐사진28
그의 성장속도는 LTE 급이다. 지방에서 활동하면서 가내수공업 공정으로 두 장의 정규앨범 급 비공식 EP를 제작했던 그가 인디 포크 팬과 평단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4년 EBS ‘스페이스 공감’ 5월의 헬로루키에 선정되면서부터다. 2014년 11월 첫 정규 앨범 ‘그림’을 발표한 권나무는 타이틀 곡 ‘어릴 때’로 2015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처음으로 신설된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의 원년 수상자로 결정되며 핫 신인뮤지션으로 급부상했다.
권나무 피쳐사진7
권나무 피쳐사진7
첫 술에 한국대중음악상까지 수상한 권나무는 아직 음악적으로 완성체는 아니다. 하지만 권나무의 노래는 자신만의 색채가 선명하다. 마치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소년 같은 순수한 미성으로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는 신선한 창법을 구사하지만 노래를 지배하는 분위기는 70-80년대의 고전적 포크에서나 경험할 아련하고 슬픈 정서로 가득하다. 화려한 편곡 구성없이 꾸밈없는 음색과 따뜻한 선율 그리고 아름답게 조탁한 가사만으로도 진한 감흥을 안겨주는 뮤지션은 흔치 않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스토리텔링 위주로 전개되는 대부분의 노래들은 거의 다 4분을 가볍게 넘길 정도로 길다.
권나무 피쳐사진13
권나무 피쳐사진13
우리 시대의 포크 명곡이라 해도 좋은 1집 타이틀곡 ‘어릴 때’의 러닝타임은 6분을 훌쩍 넘기는 대곡이다. ‘꿈만 같던 순수하고 어린 시절’을 누구나 공감할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 그리고 때 묻지 않은 특유의 미성으로 들려주는 이 노래는 청자를 돌아가고픈 그 시절로 인도하는 블랙홀 같은 마력을 발휘한다. 솔직히 그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감정의 기복이 거의 없는 창법과 평범한 연주 그리고 단순한 편곡에 심심함이 느껴졌다. 다만 뭔가 진한 사연이 숨겨 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언어로 조탁된 가사가 심상치 않았다.
권나무 1집 발매 기념 바다비공연4
권나무 1집 발매 기념 바다비공연4
노래를 반복해 들어보니 은근 빠져들게 만드는 중독성이 강력했다. 결국 음반에서 생성된 묘한 호기심을 풀기 위해 클럽 바다비에서 열렸던 1집 발매 기념공연을 찾아갔다. 그의 첫인상은 묘한 노래만큼이나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비록 작은 공연장이었지만 실내를 가득 채운 관객들의 열기에 놀랐고 90%이상이 여성관객이라는 점에 한 번 더 놀랬다. 고요함이 감도는 가운데 권나무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목소리가 참 좋았다. 마치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말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고 하자 진짜로 초등학교 선생님이라고 주변에서 귀뜸을 했다. 호기심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증폭되기 시작했다.
권나무 피쳐사진30
권나무 피쳐사진30
보통 포크가수들은 감정을 잡기 위해 눈을 감고 노래하거나 관객들과 시선을 맞추지 않는 경향이 있다. 권나무는 달랐다. 착한 미소를 머금으며 눈을 지그시 뜨고 객석을 바라보며 관객 한명 한명이 마치 자신을 위해 노래를 들려준다고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다정하게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다. 독특했다. 여성싱어송라이터 빅베이비드라이버는 ‘그게 바로 여심을 파고드는 권나무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판단이 서질 않아 이후 게스트로 무대에 오른 아메노히 커피점과 벨로주 공연까지 2번의 공연을 더 보았다.
권나무 피쳐사진19
권나무 피쳐사진19
바다비보다 더 작은 공간을 가득 메운 30여명의 관객들과 함께 한 아메노히 커피점 공연에서의 권나무는 뭔가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노래를 했다. 권나무는 그날 예정된 두 번의 공연을 하기 위해 충남 서천에서 올라오던 중에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 나는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했다. 처음 당하는 황당한 상황에 당황한 그의 일정은 자연스럽게 뒤죽박죽되어 버렸다. 그래서 “멘붕 상태에서 공연을 해 쫄딱 망했다”고 아쉬워하는 그의 모습에서 작은 공연일지라도 최선을 다해 노래를 들려주고픈 뮤지션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공연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런 마음 자세라면 제법 믿음직하다는 신뢰감은 안정을 찾은 다음 날 벨로주 공연에서 곧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권나무 피쳐사진15
권나무 피쳐사진15
그의 가치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영광이지만 저 그렇게 순수한 놈이 아닌데 인터뷰 할 자격이 있을까요?”라는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 인터뷰를 통해 해맑은 권나무의 웃음 뒤에 숨겨진 슬픈 음악여정을 인지했다. 또한 그 절망적 시간이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놀랍도록 가슴시린 노랫말을 쓰는 뮤지션으로 거듭나게 만든 자양분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현재 그의 창작 샘은 노래가 쏟아져 나올 정도로 넘쳐흐르고 있다. 발표하지 않은 노래만도 수십 곡이나 된다. 권나무는 격무로 지친 심신에 휴식이 필요하지만 음악활동을 위해 주말마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버거운 환경을 이겨내고 있다.
권나무 1집 발매 기념 바다비공연2
권나무 1집 발매 기념 바다비공연2
초등학교 교사와 뮤지션이라는 멀티플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노래다. 대학시절, 모든 걸 체념하게 만들었던 최악의 상황에서 그를 구원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낸 노래 말이다. 처음 그의 노래를 들었을 때, 단순히 가사가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음악여정을 알고 나니 비수가 되어 가슴을 도려낸다. 어떻게 그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을 이렇게 은유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지 놀랍다. 모든 이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노래는 ‘어릴 때’이지만 권나무 1집의 백미는 그의 슬픔이 농축되어 있는 ‘노래가 필요할 때’와 ‘밤하늘로’라고 생각한다. 그건 단순한 노래의 의미를 넘어 권나무 인생의 노래다.
권나무 피쳐사진26
권나무 피쳐사진26
현재 권나무는 충남 서천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주말에만 시간을 낼 수 있는 그의 피쳐사진을 담기 위해 그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겨울의 찬 기운이 완벽하게 가시지 않았지만 봄바람이 살랑 불어오는 그곳의 논두렁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피어나 있었다. 권나무는 논바닥에 누워 따가운 봄볕을 온 몸으로 맞으며 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이름 없는 들꽃들의 향기를 마시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루 종일 충남 서천의 바다, 들판, 포구, 시골마을 등 구석구석을 함께 누비며 사진을 찍다보니 그가 꽤나 진지하고 성실할 뿐 만 아니라 예민하고 촌스런 이미지가 아닌 스마트해지고 싶은 욕망덩어리임을 알게 되었다. (part 2로 이어짐)
권나무 피쳐사진29
권나무 피쳐사진29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