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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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고등학생. 하지만 작품 속 그의 모습에선 고등학생의 앳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외모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연기에서 힘이 느껴진다. 여느 성인 배우 못지않게, 아니 때론 그 이상으로. 아역부터 차근차근 걸어온 여진구, 2005년 ‘새드무비’로 첫발을 뗐으니 어느덧 벌써 10년이 흘렀다. 그 시간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흡수한 모양이다. 누가 뭐래도, 그는 무서운 배우다. 어린 나이지만, 10년의 내공이 겹겹이 쌓인 것 같다.

‘내 심장을 쏴라’에서도 여진구는 여전했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병원을 드나드는 병원생활 6년 차 모범환자 수명이 그가 맡은 역할이다. 영화 자료에 나와 있는 설명만으로도 ‘참 쉽지 않은 역할’이라는 게 보인다. 원작을 읽었다면, 그 생각은 더할 것 같다. 또 이민기와 12살 차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동갑내기 호흡도 잘 맞아떨어진다. 이는 여진구의 노력이 뒷받침됐다는 의미다. 그래도 여진구는 여전히 10대다. 주민등록증 발급에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대학 입시를 걱정하는. 배우 여진구와 10대 여진구, 그 사이를 잠시 다녀왔다.

Q. ‘화이’ 이후 많은 시나리오가 갔을 것 같은데 ‘내 심장을 쏴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여진구 : 수명이란 인물에 가장 끌렸던 것 같다. 작품 선택할 때마다 모호한 기준이긴 한데 끌리는 게 있다. 아직은 계획적으로 생각하는 편은 아니다. 좋아도 안 끌릴 때가 있고, 모호한데 끌리는 것도 있다. 이번 경우에는 읽으면서 궁금했고, 도대체 어떤 인간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Q.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내 심장을 쏴라’는 어떤 의미였나.
여진구 :
하고 싶었다. 여태까지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작품을 하진 않았다. 하고 싶은 거에 끌린다.

Q. 원작은 원래부터 알고 있었나.
여진구 : 영화 때문에 알게 됐다. 시나리오를 받은 상태에서 원작을 먼저 읽고, 시나리오를 읽었다.

Q. 유명 원작이기 때문에 완성도에 대한 믿음은 있었겠다.
여진구 : 사실 어떻게 나오겠다는 게 감이 잘 안 잡혔다. 후반 작업할 때 내레이션을 하면서 ‘우리 영화가 이렇게 나오는구나’ 싶었다. 그전에는 잘 모르겠더라. 연기할 땐 내레이션이 없으니까. 그게 큰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감정 등이 다행히 잘 맞았다.

Q. 또 한편으론 고민도 많았겠다.
여진구 :
싱크로율에 신경을 섰던 것 같다. 원작에선 하얗고 여리여리한 느낌이다. 그래서 선크림도 많이 바르고. 하하. 외적으로 여성스러움이 보이는 캐릭터라고 생각해 최대한 여자처럼 보이려고 살도 빼고. 다행스럽게 긴 머리 가발이 잘 맞아서 좀 더 여성스럽게 보였던 것 같다.

Q. 극 중 수명은 25살이다. 그런 나이에 대한 걱정은 없었나.
여진구 :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노력한다고 해서 크게 변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건 관객들의 판단에 맡기자고 생각했다. ‘우리 잘 어울리죠’ 이런 걸 보여주려고 하진 않았다. 두 사람의 모습이 자연스러우면 어색하진 않을 거로 믿었다. 그래서 정말 편하게 지냈다. 띠동갑인데 그것도 못 느꼈다. 민기 형이 잘 받아줘서 정말 고맙다.


여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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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럼 10대의 여진구는 25살의 수명을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하고자 했나.
여진구 : 처음에는 소심하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작가님께서 똑똑하다고 하는 거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수명은 탈출 시도 자체가 무의미다는 것을 일찍 깨달은 거다. 탈출해봤자 좋은 것도 없고, 지금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덜 힘들고, 덜 아픈 길을 빨리 찾았다고 볼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자기 자신을 설득했다는 의미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공감은 못 했다. 그래서 초반에 캐릭터 잡기가 어려웠다.

Q. 영화를 보고 나서는 어떤 생각이 들었나.
여진구 :
아쉬운 점이 많았다. 영화적으로 아쉬운 게 아니라 연기가 매우 아쉬웠다. 사실 촬영 초반에 연기가 흔들렸다. 나와 다른 캐릭터고, 주변에서 볼 수도 없는 캐릭터다. 폐쇄병동을 찾아갈 수도 없고, 정신 질환을 다룬 영화는 있어도 수명 캐릭터는 없었다. 순간 막막했다가 원작을 다시 한 번 보게 됐다. 그러다 보니 나만의 표현방법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소설 속 수명에 얽매였던 것 같다. 초반에는 몰랐다. 연기 모니터를 하면서 ‘왜 이렇게 경직돼 있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영화 중반에 접어들면서 소설 속 인물을 가져와서 연기하니까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걸 알았다. 그때부터는 정리가 안 되는 감정이 있더라도 얽매이지 않았다. 현장에서 느끼는 대로 했다. 그런 측면에서 많은 성장을 하게 해준 작품이다.

Q. 그래도 작품 준비를 할 때 캐릭터에 대해 분석을 하지 않나. 나름대로 상상도 해봤을 테고.
여진구 :
당연히 해봤다. 상상도 하고, 분석도 해 봤는데 갑자기 ‘내가 과연 상상한 게 맞나’란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이렇게 할 거야’라는 추측성 상상일 뿐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던 수명을 다 지웠다. 그렇게 배역을 만들면 캐릭터가 그에 갇히게 되더라. 그게 걱정되고 막막해서 원작 소설을 읽었는데, 또 원작 소설에 갇히고 만 거다. (웃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원작 소설을 배경으로 해서다. 아마 마음대로 추측해서 했다면 더 벗어나기 힘들었을 거다.

Q. 혼자 해결하기 어려울 때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하기도 하는데, 감독이나 작가한테 조언은 구하지 않았나.
여진구 :
작가님께 여쭤보긴 했다. 수명 역을 맡았는데 너무 어렵다.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려주면 안 되겠느냐고 물어봤다. 다른 건 다 감독님과 얘기하시고, 알아서 표현하면 되는데 수명이 똑똑하다는 건 알아주셨으면 하더라. 그때 순간 놀랐다. 나는 솔직히 바보라고 생각했다. 하하. 그런데 똑똑하다고 하니까. 놀라서 다시 돌이켜보긴 했다.

Q. 수명이 놓인 상황이 쉬운 건 아니다. 워낙 특수한 경우니까. 그런 점에서는 승민(이민기)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였겠다.
여진구 :
무슨 감정으로 승민을 바라봐야 할지, 연민이나 안타까움도 한두 번이지 계속 그럴 순 없었다. 더욱이 수명은 비정상 중에서도 비정상이다 보니 내가 생각한 리액션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딱히 정해놓고 연기하진 않았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나 표정들을 최대한 살리려 했다. 감독님 덕분인데, 감독님이 배우한테 맡기는 디렉팅을 해준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감독님이나 여러 선배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캐릭터를 잡아갔는데 이번에는 혼자서 배역을 잡아가는 거니까. 그래서 원작에 기댔던 것 같기도 하다.

Q. 감독님이 연기자들한테 맡기는 스타일이어도 놓치지 않고 싶었던 건 있었을 것 같은데.
여진구 :
감독님과 그건 신경 썼다. ECT(전기충격치료)나 물리적인 치료를 받는 장면 등은 리얼리티를 살리고 싶었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어렵더라. 자료도 없고. 지금은 ECT도 사용하지 않는다더라. 과거 그 치료를 사용할 때 정신병원에 근무했던 간호사를 현장에 불러 주셨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많이 물어봤다. 증상이나 그 치료를 받고 나서의 모습 등을.

여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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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런 역할을 하고 나면 한동안 후유증이 있을 것 같다.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
여진구 :
그러진 않는다. 오히려 다른 인물이다 보니까 잘 떨치는 것 같다. 선이 명확하게 정해진다. 비슷한 인물이면 모호해서 현실에서도 나올 텐데, 나와 다른 인물이다 보니 일상생활에는 별다른 지장 없었다. 오히려 내 성격은 승민하고 비슷해 평소에 승민 같은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나와 민기 형도 비슷하다.

Q. 성격적으로 비슷한 승민을 탐냈을 법도 하다.
여진구 :
친밀하고 편안한 캐릭터라는 생각은 있는데 나와 다른 인물한테 끌리는 것 같다. ‘저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저런 행동을 할까’를 주로 보게 되는데 수명한테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Q. 나이에 맞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은 좀 멀어지는 것 같다.
여진구 : 요즘에 그런 생각 들긴 하다. 10대 마지막이긴 하니까. 내 또래들이 할 수 있는 하이틴 장르 해보고 싶다. 성인이 되면 사실 힘드니까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기도 하다.

Q. ‘내 심장을 쏴라’는 청춘에 전하는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요즘 청춘에 있어 가장 큰 고민과 걱정은 ‘진로’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여진구는 굉장히 빨리 진로를 정했다.
여진구 :
정말 진로가 확실히 정해졌다. 요즘 친구들이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고, 좋아하는 게 생겨도 주변의 반대나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하기 힘들다. 그런데 나는 어쨌든 좋아하는 일이고,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관심 가져주시고, 응원해주니까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가장 큰 장점이다. 단점은, 음. 단점은…. 진로를 빨리 찾은 거에 대한 단점은 없는 것 같다. 별로 못 느꼈다.

Q. 그런데 또래 친구들 또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못하게 되지 않나. 학창시절의 기억은 다시 오지 않는 건데.
여진구 :
학교생활이나 친구들과 추억은 적은 편이다. 아무래도 수학여행이나 이런 건 못 가니까. 그 대신에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장래를 위해 조금이라도 투자를 한 거다. 이기적인 말이긴 한데, 좋은 추억도 좋지만 지금이 좋다.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지 못해 아쉬울 뿐이지, 그건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큰 단점이라 보지 않는다. 지금도 사이좋게 지내면서 추억을 가지고 있다. 과거 어른들이 못 배운 한이 있다고들 하는데, 지금은 중학교까지는 의미고, 고등학교까지 다니는데. 못 배우거나 못 어울리는 건 없다. (웃음)

Q. 그럼 연기 말고 다른 취미는 없나.
여진구 :
배우고 싶은 건 많다. 운동이나 악기도 좋아한다. 요리도 재밌는 것 같다. 물론 직업이 아니라 취미로.

Q. 직접 다룰 줄 아나.
여진구 :
아무래도 관심을 두다 보니 월등히 잘하는 건 아닌데 기본은 한다. 피아노, 기타, 드럼 등. 아직 많은 분에게 보여줄 실력은 아니고.

Q. 해보고 싶은 직업군이나 역할은 무엇인가.
여진구 : 워낙 해보고 싶은 게 많다. 아직 못 해본 역할도 많고. 이야기하면 한도 끝도 없다. 배우라는 직업이 그게 좋은 것 같다. 연기도 좋지만, 연기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의 삶을 살면서 남들이 겪어보지 못한 상황까지 직간접적으로 겪어볼 수 있다. 여진구의 삶도 있으면서 동시에 여러 명의 삶을 살아본다는 것 그리고 과거도, 미래도 갈 수 있다. 정말 좋은 것 같다.


여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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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벌써 데뷔 10년이더라. 데뷔 10년이라는 게 느껴지나.
여진구 :
전혀. 하하. 전혀 못 느낀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20년, 30년이 돼도 ‘그만큼 됐다’ 싶을 뿐이지. 나이가 들고, 다른 친구들이 와서 ‘선배님’ 하면 실감 날 것 같긴 한데, 지금으로선 그런 게 아니니까. 그리고 그렇다고 연기가 쉬워지는 건 아니다. 더 어려워지고 있다.

Q. 그래도 10년 동안 연기 활동을 하면서 어느덧 20살을 앞두고 있는데.
여진구 :
그건 있다. 주민등록증도 나오고. 하하. 작년에 주민등록증 받았는데 기분이 이상하더라. ‘진짜 나도 이제 성인이구나’란 생각도 들고, 기대도 된다. 한편으론 시간이 빨리 가서 아쉬움도 있다. 근데 앞으로는 더 빨리 간다고 하더라. 하하. 기대가 많이 된다. 연기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여러 가지 할 수 있는 게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아지는 나이다. 또 청춘이고. 무슨 경험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바라는 게 있다면, 뭘 하더라도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망설이는 건 괜찮은데, 후회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Q. 현재 고등학교 3학년이다. 고3이면 피해갈 수 없는 당면 과제가 있다. 바로 입시인데.
여진구 :
‘굳이 대학에 갈 필요 있어’라고 말하시는 분도 계신다. 근데 어려서부터 대학은 가고 싶었다. 지금도 가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과는 아직 정하진 않았다. 연극영화과도 괜찮고, 연기에 도움될 만한 과에 진학하고 싶다. 아예 색다른 과도 재밌을 것 같다. 인문학이나 언어 또는 철학과나 심리학. 근데 대학을 들어갈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웃음) 현실적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어느 과든. 다른 친구들에 비해 진로가 정해져 있다 보니 대학의 현실성을 늦게 알게 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고3이 되니까 순간 ‘대학’이 훅 들어오는 거다. 만만하게 또는 살짝 높게 있다고 봤는데. 중학교 때는 집이 서울대 근처여서 초중고대학교까지 같은 동네에서 나오지 했는데 점점 거리는 멀어진다. 하하. 심적으로는 외국에 있는 것 같다.

Q. 마지막으로 여진구는 20대를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 그리고 싶은 20대의 모습을 그려 달라.
여진구 :
책임감은 느끼고 있었으면 좋겠다. 칭찬을 받던, 비평을 받던 그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관심이 생기고, 도전하고 싶다면 거침없이 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막 하진 않을 거다. 그걸 쉽게 생각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 결과물을 두려워하지 말고, 과정을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충 대충하는 게 아니라. 또 배우는 거 잊지 않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그건 20대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그랬으면 좋겠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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