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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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은 첫 번째 할리우드 진출작 ‘라스트 스탠드’ 이후 국내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실사화 하는 ‘인랑’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인랑’ 프로젝트가 지연되면서 ‘카워드(Coward)’로 다시 한 번 미국 시장에 도전하게 됐다. ‘카워드’는 ‘배트맨: 웃는 남자’ ‘캡틴 아메리카의 죽음’ 등으로 유명한 그래픽 노블 작가 에드 브루베이커(Ed Brubaker)의 작품이다. 김지운과 그래픽 노블의 만남이라니.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Q. 차기작이 할리우드 작품 ‘카워드’다.
김지운:
지금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중이다. 미국 작가도 자기 버전으로 쓰고 있는데, 나중에 두 개를 합치게 될 것 같다.

Q. 미국 작가라 함은 ‘카워드’ 원작자 에드 브루베이커를 말하는 건가?
김지운:
맞다. ‘카워드’는 그 작가가 쓴 ‘크리미널’이라는 그래픽노블 시리즈의 첫 번째 에피소드다. 각색 작업을 함께 하게 됐다.

Q. 에드 브루베이커는 DC와 마블을 가리지 않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다. ‘씬 시티’의 프랭크 밀러와도 자주 비견되더라.
김지운:
프랭크 밀러 이후 최고로 평가받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래픽 노블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상도 받은 인물이고. 사실 그렇게 유명한 작가인 줄 몰랐다. ‘카워드’가 차기작이라는 발표가 나간 후, 내가 좋아하는 영화 사이트에서 관련 기사 댓글을 봤는데 마니아들이 많더라.

Q.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가.
김지운:
연출 제의해 온 사람이 제이미 패트릭 코프라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은 만들어 온 프로듀서다. 라이언 고슬링-미셸 윌리엄스 주연의 ‘블루 발렌타인’과 라이언 고슬링-브래들리 쿠퍼 주연의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가 그 프로듀서의 작품이다. 제안을 해 오면서 “이 영화를 ‘달콤한 인생’과 ‘악마를 보았다’ 사이에 있는 어떤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보니까 장르도 범죄 느와르고. 내가 조금 더 잘 할 수 있고, 내 개성을 많이 녹일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젊은 배우와 작업할 수 있겠다 싶어서 제안을 받아들였다.(웃음)
김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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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웃음) 지금 거론되고 있는 배우가 있나?
김지운:
제이미와 작업했던 배우들이 아무래도 자주 거론된다. 그랬을 때 라이언 고슬링이나 브래들리 쿠퍼인데, 라이언 고슬링은 비슷비슷한 영화에 너무 많이 출연한 게 걸린다. 그래서 두 사람을 1순위로 간다면, 고슬링을 너무 좋아하긴 하지만, 라이언 고슬링 보다는 브래들리 쿠퍼라고 얘기해뒀다. 두 사람 외에 내가 원하는 배우 리스트도 말해 놓은 상태다.

Q. 평소, 그래픽노블에는 관심이 있었나? 세 살 때부터 그림을 그린 걸로 아는데.(웃음)김
지운:
일찍이 만화를 그리긴 했는데, 그래픽노블은 딱히 찾아보지 않았다. 다 영어잖아.(웃음) 지금이야 많이 번역돼 나오지만. ‘왓치맨’은 프로듀서가 선물해 줘서 봤는데, 재미있게 읽었다.

Q. 자료를 찾아보니, ‘크리미널’은 성인 취향의 현실적인 그래픽 노블이라고.
김지운:
아주 신선하거나 아주 획기적이라기보다는 굉장한 리얼리티로 높이 평가 받는 작품인 것 같다.

Q. ‘라스트 스탠드’를 가리켜 “B급 코드의 영화적 재미를 서부극에 버무리는 게 핵심”이라고 했었다. ‘카워드’의 핵심은 어디에 두고 있나.
김지운:
거기까지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는데,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처음 원작을 봤을 때, 이야기보다 캐릭터가 더 재미있게 다가왔다. 캐릭터 열전을 한번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악인열전’ 같은. 성격이 다른 캐릭터들이 부딪혔을 때 어떤 에너지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 캐릭터들을 어떤 배우들이 연기하게 될지도 궁금하고.

Q. 만약 한국 배우를 캐스팅 한다면 누가 어울릴까.
김지운:
시나리오에 악당 두목 하나가 나오는데 작가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김윤석이나 송강호를 쓰면 어떻겠냐고 했다.(웃음) 악당 두목이 원래는 흑인인데, 지금 아시아 갱들도 많으니까 설정을 살짝 바꿔서 하자고. 질문에 대답을 안 했다. 미국까지 가서 김윤석 송강호와 일할 필요야~(일동 웃음)

Q.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배우를 염두에 두는 편인가?
김지운:
그러지는 않는다. 배우를 생각하면서 쓴 적이 두 번 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송강호와 ‘달콤한 인생’의 이병헌. 그때 딱 두 번이다. 약간 혼합형이 ‘반칙왕’의 송강호다. 당시 송강호가 주연급이 아닐 때인데, 내가 ‘반칙왕’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계속 안부전화를 해왔다.(웃음) 그래서 자연스럽게 송강호를 생각하면서 쓰게 됐는데, 처음에는 주변 반대가 많았다. 주연으로는 불안하다고. 그런데 나는 우리나라에서 이 역할을 할 사람은 송강호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밀어붙였지. 그 외에는 시나리오를 다 쓰고 나서 이 캐릭터가 어떤 배우와 맞을까 고민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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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스태프 구성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라스트 스탠드’때는 김지용 촬영감독, 모그 음악감독과 함께 했는데.
김지운:
‘라스트 스탠드’때와 같은 스텝 구성을 하고 싶다고 얘기할 생각이다. 감독 컨디션을 가장 존중해 주는 시스템이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내가 제이미 패트릭 코프라는 프로듀서가 좋다고 한 건, 그가 어떤 영화들을 만들어 온 사람이라는 것 외에도 감독을 얼마만큼 존중해 줄 수 있는 사람인가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와 함께 하고 싶었던 거고. 내 개성이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Q. 할리우드에서의 두 번째 작업이다. 처음이라 눈감아 줬던 것들이 이번에는 안 먹힐 거다. 막연한 기대감으로 갔던 처음과는 여러 가지가 다를 텐데.
김지운:
부담이 더 많이 된다. 첫 작품은 “빨리 한 작품 하자!”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쉽고 가볍게 만든 거고. 주연 배우가 리암 니슨에서 아놀드 슈왈제너거로 바뀌면서 톤 앤 매너가 바뀐 것도 있다. 처음 리암 니슨이 하기로 했을 때에는 지금보다 훨씬 비장하고 무거웠다. 그러다가 스케줄 문제로 배우가 교체됐는데, 마침 그때가 ‘악마를 보았다’를 찍고 난 후였다. 다음 작품은 가벼운 걸 하고 싶었던 터라, ‘잘 됐다. 가볍게 한번 가 보자’ 생각했던 것 같다.

Q. 정두홍 무술감독이 “대화할 때 가장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는 사람이 김지운 감독”이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 당신이 원하는 정서를 말해주면 머릿속에 그림이 딱 떠오른다고. 신민아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비결이 뭔가. 화술이 좋은 건가?
김지운:
하하. 그냥 내벼려 두고, 원하는 대로 만들어보라고 하니까 좋아하나? 글쎄. 어떤 말을 의식해서 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왜 그럴까.

Q. 현장에서는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들었다.
김지운:
소리 지르는 스타일은 아니다. 한 예로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을 촬영할 때, 바로 옆 세트에서 내가 ‘장화홍련’을 찍고 있었다. 우리 세트에 여배우가 많다는 정보를 입수한 김상경 씨가 놀라왔는데, “너무 조용해서 도서관에 온 줄 알았다”고 하더라. 세트를 바꾸는 순간조차 너무 조용하다며 놀라워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Q. 2006년에 출간한 에세이집 ‘김지운의 숏 컷’에서 “창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게, 다른 말로 한다면 자기 언어를 찾는 사람들 같다”고 했다. 어떤가. 당신만의 언어를 찾은 것 같나.
김지운:
과정에 있는 것 같다. 아까 얘기했듯 나는 나만의 특별한 화술이 있는 사람도, 그렇다고 어떤 말을 의식해서 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찾아가는 중일 뿐. 이런 건 있다. 가령 배우들에게 연기 디렉션을 주문할 때, 로직한 방법으로 설명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본다. “이 장면은 슬픈 거야” 라고 말하는 건 아니라는 거지. 슬픈 걸 몰라서 연기가 안 나오는 건 아닐 테니까. 그렇다면 그 배우의 정서를 건드려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나는 음악을 들려준다거나, 배우의 감성을 충만하게 해 줄 에피소드를 들려준다거나, 그림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배우의 정서에 접근하는 편이다. 나는 연출이라는 것이 ‘점화, 발화, 산화’라고 생각한다. 감독은 불을 다루는 사람인 거다. 어떨 땐 완전히 산화시켜야 하고, 어떨 땐 적당한 온도와 불의 세기로 노릇노릇하게 해야 하고, 어떨 때는 빨리 꺼야 하고. 그래서 배우들이 몸이 굳어 있을 때 ‘어떻게 배우의 마음을 점화시키고 불을 지피느냐’ 하는 것들을 많이 생각한다.
김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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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래서일까. 당신의 영화에는 일관되게 감지되는 기묘한 뉘앙스가 있다. 장르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김지운:
자주는 아니지만 내 영화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내 영화의 주제적인 공통점을 찾자면 ‘덧없음’ 이랄까? 덧없음에 대해 주로 다루는 편인 것 같다. 주인공이 모두 쓸쓸한 사람들이라는 것도 공통점이고. 걷는 장면과 바람도 일관되게 자주 쓰이는데, 그런 기표들 때문에 사람들이 ‘김지운만의 색깔’을 얘기해 주는 게 아닌가 싶다.

Q. 주인공이 왜 모두 쓸쓸한 사람들일까. 당신도 쓸쓸한 사람인가.
김지운:
특별히 나만 쓸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쓸쓸하다.(웃음)

Q. 그나저나 쉬지 않고 일하는 것 같다.
김지운:
그러게. 올해만 세 편 개봉했다. ‘라스트 스탠드’부터 단편 ‘더 엑스’, ‘사랑의 가위바위보’까지.

Q 예전, 긴 백수 시기가 있었던 걸로 아는데.
김지운:
그때 놀았던 대가를 지금 치르는 거지. 영화를 시작하고 나서, 촬영 없이 지나간 해가 한 번도 없더라고. 미친 듯이 일하고 있는데, 일종의 워커홀릭인 것 같다.(웃음)

Q ‘더 엑스’의 요원 엑스(강동원)가 임무를 끝내고 남긴 마지막 대사에 당신의 의중이 반영돼 있다고 들었다.
김지운:
아, 그 대사? 맞다. 요원 엑스가 하나의 임무가 끝나면 그 다음 새 임무를 만나는 것처럼 나 또한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음 프로젝트로 옮겨간다. 요원의 삶과 내 삶이 크게 다르지 않은 거지. 만들어가는 과정은 지옥 같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상처받지 않는다.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다음 프로젝트를 기대하고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는 편이다. 그게 내 삶인 것 같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글,편집.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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