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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때는 연기를 하면 항상 나 자신이 게스트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십 년이 넘어가니까 이제야 내가 드라마의 호스트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에요.”

배우는 참 외로운 직업이다. 화려함의 이면에는 늘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불안이 도사리고 있고, 그 속에서 배우는 계속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나가는 결코 가볍지 않은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 MBC ‘금 나와라 뚝딱!’(이하 ‘금뚝’)을 마친 뒤 마주한 한지혜는 여자로도, 배우로도 이전보다 한층 더 깊이감이 생겼다. 1인 2역을 맡아 몽희와 유나를 오가는 사이, 배우 한지혜는 어느덧 삶의 경험을 연기에 녹여낼 수 있게 됐다.

부침을 거듭한 그녀의 인생이 결혼 후 제자리를 잡았듯, MBC ‘메이퀸’(2012) 이후 다시 한 번 주말드라마에 출사표를 내던진 한지혜는 ‘금뚝’을 통해 ‘주말극의 퀸’으로 입지를 굳혔다. 배우로, 한 명의 여성으로 30대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듯, 한지혜의 연기 인생은 이제 막 새로운 전환점에 다다른 듯했다.

Q. 1인 2역과 50부작, 쉽지 않은 조건인데 결과적으로는 좋은 성과를 얻은 것 같다.
한지혜: 1인 2역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면 작품을 시작도 못 했을 거다. 전작 ‘메이퀸’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촬영에 임했다.

Q. ‘메이퀸’에 이어 ‘금뚝’까지 연달아 두 편에 주말드라마에 출연하게 됐다.
한지혜: 주말극인지, 미니시리즈인지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시놉시스를 봤을 때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이 보였다. ‘금뚝’에 들어갈 때만 해도 전작의 시청률조차 이어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시간대는 대체로 KBS2 ‘개그콘서트’를 보는 시간이지, 드라마 시간대는 아니었다. “내가 들어가서 (드라마를) 한 번 제대로 살려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신감 있게 밀어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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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메이퀸’의 천해주와 ‘금뚝’의 몽희는 캐릭터까지 비슷하지 않았나. 배우로서 부담이 적지 않았을 텐데.
한지혜: 몽희는 해주와 거의 똑같았다(웃음). 솔직하게 말해서 몽희 역만 있었다면 드라마를 안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금뚝’에는 유나가 있지 않았나. 유나 연기를 무척 하고 싶었다. 일단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까 ‘1인 2역이다’, ‘주말극이다’ 하는 것 크게 중요치 않았다.

Q. 유나를 연기하고 싶었다는 것은 당신이 선한 외모 때문에 주로 착한 캐릭터만 맡았던 것에 대한 반발 심리인가(웃음).
한지혜: ‘메이퀸’을 끝내고 “전작에서 못 푼 한을 다음 작품에서 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해주 역할은 워낙 가난하고 착해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그런 이미지가 나에게도 남아서 유나와 같은 캐릭터를 맡을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도 싫었다. 유나는 그런 측면에서 나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Q. 유나 연기는 가히 한지혜의 재발견이라고 할 만했다. 직접 연기하기에는 유나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던가.
한지혜: 몽희가 가진 것은 없으나 마음이 풍족한 여자라면, 유나는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마음이 가난한 여자다. 신경이 날카로워서 신경안정제까지 먹어야 하는 캐릭터를 맡았다는 것은 배우로서도 큰 도전이었다. 한편으로는 유나를 통해 나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유나는 어떠한 장면에서 화면을 캡쳐해도 화보처럼 나올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화보 촬영을 하면서는 화려하고 관능적인 모습을 자주 보였는데, 작품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여드릴 수가 없어서 아쉬움이 컸었다.

Q. 몽희와 유나, 두 쌍둥이를 연기할 때 보면 각각 디테일한 포인트가 잘 살았더라. 기자의 주변에는 아직도 둘이 정말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다(웃음).
한지혜: 실제로 시아버지도 드라마를 보시고 유나가 나와 비슷하게 수술을 한 배우일 것이라고 하시더라(웃음). 나는 웃으면 착한 이미지로만 비치기 때문에 유나 연기를 할 때 웃음기를 빼고 최대한 담백하게 표현하려고 애썼다. 두 사람을 연기하면서 호흡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연기를 보면 액션을 하는 쪽이 있고, 받아주는 쪽이 있지 않나. 몽희와 유나가 붙는 신이 있을 때는 유나가 액션을 하는 쪽을 맡고 몽희는 감정을 넣지 않고 담백하게 받아주는 연기를 했다. 연기의 균형을 잡는 데 중점을 뒀다.

Q. 1인 2역을 맡아 촬영하는 것도 그렇지만, 준비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겠다.
한지혜: 연기를 준비하며 대본을 읽는데 두 사람의 말투가 자꾸 섞이더라(웃음). 대본을 볼 때는 한 번에 한 명씩 쭉 훑었다. 먼저 몽희 대사를 쭉 보고 연기해야 할 디테일을 대본에 적는다. 그리고 유나 대사를 보며 몽희의 연기에 대한 반응을 예측하며 따로 메모했다. 야외 촬영 나가면 분장 때문에 한 신당 보통 3시간이 걸린다. 특히 마지막 방송을 3일 남겨 놓고서는 밤을 새우면서 촬영했다. 작가가 신명 나게 쓰신 덕분에 소화해야 할 장면이 무척 많았다(웃음). 방송으로는 짧은 분량일지라도 찍는 건 정말 힘들다. 스타일리스트도 고생을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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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원래 몽희가 주인공인데 후반부로 갈수록 유나의 비중이 커졌다.
한지혜: 작가는 마지막에 몽희가 성공하는 모습이 나오니까 만족하신 것 같더라. 다들 아쉬워하셨다. 심지어 몽희는 짝도 없었지 않은가(웃음). 이게 다 유나의 캐릭터가 매력적이라서 벌어진 일이다.

Q. ‘금뚝’은 주연 배우뿐만 아니라 중견 연기자들의 호흡도 정말 좋았다. 이런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한지혜: ‘금뚝’은 주말드라마이지만, 미니시리즈처럼 전개가 빠르고 세련된 느낌이 있다. 중견 배우들의 생활 연기와 젊은 감각이 적절히 배합된 게 이유인 것 같다.

Q. 배우 한지혜가 ‘금뚝’을 통해 얻은 성과는 무엇일까.
한지혜: 인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것?(웃음) 몽희와 유나의 감정선이 달라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금뚝’을 하면서 박봉에 자식을 세 명이나 키워야 했던 아버지나, 언니의 마음도 이해하게 됐다. SBS ‘힐링캠프’에 나가서도 이야기를 했는데 KBS1 일일극 ‘미우나 고우나’(2007)를 하기까지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자신감을 완전히 잃고 문 밖에 조차 못 나가던 시기도 있었다. ‘미우나 고우나’ 이후로 광고도 많이 찍었지만, 마음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지금은 ‘최대한 실생활에 가까운 연기를 하자’는 마음뿐이다. 이제는 연기에 내가 겪었던 외로움과 고통 등의 경험을 녹여낼 수 있다는 게 성과라면 성과다.

Q. 또래 배우들에 비해 일찍 결혼한 것도 영향이 컸을 듯하다.
한지혜: 확실히 결혼 후에 안정적으로 변했다. 솔직히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 더 잘 된 케이스다(웃음). 남들과 다른 길로 가서 나만의 느낌을 찾는 게 나름의 전략인 셈이다. 신민아, 구혜선 등 동갑내기 배우들 속에서 나만의 경쟁력이 무엇일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때 내린 결론은 김남주 선배처럼 되고 싶다는 거였다. 결혼하고도 로맨틱코미디를 할 수 있지만, 분명 일반적인 여배우가 하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세련미가 있달 까. 그런 식으로 나만의 개성을 찾는 게 급선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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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 덕분인지 30대로 무리 없이 진입했다.
한지혜: 나는 20대를 잘 보냈다.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실패도 많이 했지만, 경험을 통해서 배운 것이 더 많다. 30대가 돼서야 나만의 개성과 캐릭터가 잡혀가는 것 같다. 신인 시절에는 연기를 할 때면 항상 나 자신이 드라마에 게스트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물론 아직 갈길 이 멀기는 하지만, 연기 경력이 십년이 넘어가니까 이제는 내가 드라마의 호스트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웃음).

Q. ‘금뚝’을 통해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 앞으로 어떤 연기자로 불렸으면 좋겠는가.
한지혜: 그런 평가가 심적으로는 부담도 된다. 하지만 분명히 배우로서 지금까지 보여드린 모습보다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내공은 부족하지만, 배우로 살아가기 위해서 전문적인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한다. 프로페셔널한 배우, 그리고 즐거움을 주고 영감을 주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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