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구가의 서〉이유비, 이유비는 이제 이유비일 뿐이다
에서 청조를 연기한 이유비" /><구가의 서>에서 청조를 연기한 이유비

청조. 파랑새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슬픈 소녀에게는 반인반수 강치(이승기)나 그런 강치를 사랑하게 된 여울(수지)만큼이나 아픈 인생이 주어졌다. 그녀의 인생은 판타지 속에 머물렀던 강치와 여울의 슬픈 사랑 이야기와는 달리, 현실에 꼭 발을 붙인 아픔이라는 점에서 보는 이의 가슴을 더욱 갑갑하게 만드는 면도 있었다.

부족할 것 없이 명문가의 딸로 살던 그녀는 조관웅(이성재)에 의해 가문이 멸족하자, 기방으로 팔려간다. 그 처지도 가슴을 치며 원통해할만 한데 이번에는 조관웅이 그녀를 취하겠다며 시시각각 숨통을 조여 온다.

어쩌면 그 자체가 또 다른 한 편의 드라마였던, 청조라는 여인의 버거운 삶의 무게를 이제 겨우 데뷔 2년차인 신인 이유비는 때로는 독기서린 눈빛으로, 때로는 한없이 처연한 표정으로 조금씩 채워가기 시작했다.

실은 전작 KBS2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이하 착한 남자) 당시 만해도 이유비는 ‘견미리의 딸’로 더 자주 불렸었다. 그러나 25일 막을 내린 MBC <구가의 서>를 통해 청조의 아픈 삶을 건너온 이유비를 더 이상은 ‘견미리의 딸’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유비는 청조로 인해 그렇게 완전한 이유비가 되었다.

Q. <구가의 서> 청조와 이별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겠다. 지금 어떤 기분이 드나.
이유비 : (한숨을 푹 내쉬더니) 너무 아쉽다. 괜히 울적하기도 하다. 실은 <착한 남자>가 끝났을 때도 아무 이유 없이 우울했었는데, 이번에는 무언가가 빠져나가버린 허한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훅 그런 느낌이 들었다.

Q. 마지막 촬영을 하던 순간은 어떤 생각을 했었나.
이유비 : ‘이렇게 또 끝이 왔네’라는 생각. 실은 스태프 분들 한 분 한 분과 인사를 나누고 이성재 선배님과도 인사를 하는데 울컥하기도 했다.

Q. 극중에서 청조와 조관웅은 철천치원수인데, 현장에서는 다정했나 보다.
이유비 : 현장에서 이성재 선배님은 후배들을 배려해주시는 분이시다. 다만 카메라만 돌면 ‘그분’이 갑자기 오신다. 현장에서는 너무나 유쾌하시고 장난도 많이 치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조관웅 역을 하면서 많이 힘들어하셨다고 하더라. 현장에서는 전혀 몰랐는데, 기사를 보고야 알았고 놀라면서 한편 공감했다.

Q. 공감을 했다는 것은, 청조 역을 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는 말로 들린다.
이유비 : 그렇다. 내게는 너무나 버거운 역할이었다. 물론 내가 청조라는 배역에 몰입해 그 감정에 갇혀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아직 그 정도의 배우가 못된다. 이성재 선배님이야 워낙 베테랑이시니까. 다만, 나는 청조의 감정신들이 많다보니 그것을 잘 해내야한다는 스트레스가 컸다. 원래는 현장에서 밝은 편인데, 청조의 감정을 쫓아야 하다 보니 스태프분들과도 살갑게 지내질 못했다. 그래서 더 한없이 우울해지는 탓도 있었다.

Q. 그렇게 힘들게 연기했던 만큼, 정말 내가 청조에 다가갔구나 싶어 뿌듯했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이유비 : 24일 방송분 중, 강치를 생각하며 우는 장면이 있었다. 찍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팠고 그 신을 준비하면서도 너무 가슴이 아파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다. 그 장면 속 청조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팠던 것인데, 연기하면서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순간, 내가 아주 조금은 청조에게 다가갔구나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내게 단 한 신도 간단하고 쉬운 것이 없었다. 보시는 분들에게는 간단한 표정만 등장하는 신이더라도 내게는 버거웠다.

[INTERVIEW] 〈구가의 서〉이유비, 이유비는 이제 이유비일 뿐이다
에서 청조를 연기한 이유비" /><구가의 서>에서 청조를 연기한 이유비

Q. 잘 했다는 칭찬을 해주려고 했는데, 계속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담금질 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은 칭찬이 들리지 않나 보다.
이유비 : 기본적으로 내가 청조라는 인물의 모든 것을 담아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다만, 청조를 연기하면서 많이 배운 것만은 확실하다. 아직은 서툴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청조에게 몰입한 순간의 눈빛에 시청자들이 공감해주신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렇지만 정말이지, 하아… 스쳐 지나가는 단 한 커트도 쉽지 않았다.

Q. 신우철 PD와 처음 만난 순간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
이유비 : 오디션을 봤고, 당연히 안 될 줄 알았다. 신우철 감독님은 다른 분들이 오디션을 보는 동안에도 내게 다른 대사를 주며 더 연습하라고 하셨다.

Q. 그렇다면 애초에 신우철 PD는 청조 역에 이유비를 염두하고 있었다는 말로 들린다.
이유비 : 좋은 뉘앙스가 결코 아니었다.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말로 들렸다. 그래서 내가 청조가 될 것이라고는 그 순간에는 알지 못했다. 그 때는 청조가 얼마나 어려운 역할인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고, 너무너무 하고 싶다는 열정만이 앞서 있었다. 그러다보니 막상 대본 리딩 현장에서 청조와 마침내 마주하게 된 순간에는 오디션 때와는 달리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때는 감독님이 와서 ‘자신감 갖고 해’라는 말씀을 해주시더라.

Q. 결과적으로는 잘 해낸 셈인데 왜 그렇게 자신이 없었을까.
이유비 : 청조는 내가 연기를 배우면서 단 한 번도 연습도 해보지 못한, 또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그런 캐릭터였다. 이유비와 청조 사이에 간극이 너무 크다고 느꼈다. 노력은 해볼테지만, 나와 안 어울리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이 앞섰다.

Q. 이제는 그런 면에서는 자신감이 붙긴 했겠다. 사극이라는 낯선 장르에 대해 익숙해지기도 했을테고.
이유비 : 아직은 자신감이 붙을 단계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사극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오는지는 확인을 한 상태라, 다음에 또 하게 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Q. 또랑또랑하고 당찬 겉모습과는 달리 애어른 같은 말을 자꾸만 하는 것 같다(웃음).
이유비 : 그런 말 자주 듣는다. 실은 나는 감성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게 어떤 큰 일이 닥치거나 가슴 아픈 일이 생겼을 때, 절대 울지 않는다. ‘이 일도 결국은 지나갈 거야’라며 마치 남의 일처럼 무덤덤하다. 친구들이 내 이런 면을 보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독하다고도 말한다.

Q. 어, 대부분의 연기자들이 지나치게 감성적인 성격인데, 의외다. 그런 성격 탓에 배우가 내 성향과는 맞지 않는 직업은 아닌가라는 고민을 하지는 않았나.
이유비 : 그렇다. 실은 배우를 한 가장 큰 이유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정말이지 호기심이 전부였다. ‘연기를 잘 해내고 유명해져서 한 획을 그어야지’라는 야망도 없었다. 단지 한 번 해보고 싶고, 만약 하게 되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궁금증이 더 강했다. 그래서 오히려 실패했을 경우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Q. 아무래도 엄마의 영향이 컸겠지.
이유비 : 그렇겠지만, 실은 어렸을 때 주변에서 ‘너도 엄마 따라 배우 해야지’ 하면 무슨 오기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절대 안할 거에요’라고 말했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음에도 그 때는 그저 ‘엄마 따라 해야지’라는 말이 너무 싫었던 것 같다. 엄마한테도 ‘절대 안 할 거야’라고 했었다.

[INTERVIEW] 〈구가의 서〉이유비, 이유비는 이제 이유비일 뿐이다
에서 청조를 연기한 이유비" /><구가의 서>에서 청조를 연기한 이유비

Q. 데뷔 이후 2년차, 꽤 빠르게 자리 잡은 셈인데 여기에는 엄마 견미리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하나.
이유비 : 역시 없지 않겠죠. 운이 좋은 것이고 너무 감사하다. 그래서 더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다. 시작할 때는 꼭 잘 되어야지라는 생각이 없었는데 엄마 뿐 아니라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시니까 이제 정말 잘 해야겠다는 생각과 책임감이 커졌다.

Q. 그러나 한 편으로는 ‘견미리의 딸’이라는 수식어가 부담도 될텐데.
이유비 : 아직은 내가 한참 부족하니까. 그러나 그런 타이틀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그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고쳐먹지.

Q. 지금은 이미 아버지(김용건)의 존재감을 눌러버린 배우 하정우의 경우에는 어떤 배역을 따낸다거나 하는 면에서 아버지의 도움을 받는다기 보다, 촬영 현장에 가면 다 아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있으니 마음이 편하다는 점에서 도움이 됐다 말하기도 했다. 그런 이점은 확실히 있겠다.
이유비 : 그렇다. <구가의 서>의 경우에도 유동근 선배님이 엄마와 JTBC <무자식 상팔자>를 같이 하셨다. 또 내가 잘 몰랐던 분들도 촬영 하다 ‘그 분 딸이었어?’라며 더 신경써주시곤 한다.

Q. 아무튼 이제 <구가의 서>라는 큰 작품이 막을 내렸다. 다 끝난 시점에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이유비 : (한참을 생각하더니) 즐겁게 일하고 싶다. 재미있는 화보를 찍고 싶기도 하고, 아주 신나는 일을 해보고 싶다.

Q. 보통은 작품을 끝내면 여행을 가고 싶다던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하는데 벌써 일을 하고 싶다니 의외다.
이유비 : 아직은 내가 하나를 했다고 해서 보상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조금 신나는 것을 하고 싶다는 바람은 있다.

Q. 아까 야망이 크지 않다고 했는데, 일 욕심은 많은 것 같다(웃음).
이유비 : 욕심은 아니고, 일을 하면서 얻는 희열이 지금은 너무 신나서 그렇다. 그런데 그 희열이 나의 실력이 늘어나서 느끼는 희열은 또 아니고 아주 소소한, 예를 들어 화보를 찍었는데 예쁘게 찍혔을 때 기쁜 마음, 이런 정도의 사소한 희열이다(웃음).

[INTERVIEW] 〈구가의 서〉이유비, 이유비는 이제 이유비일 뿐이다
에서 청조를 연기한 이유비" /><구가의 서>에서 청조를 연기한 이유비

Q. 끝으로 이제 기억 저편으로 보내버려야 할 청조를 어떤 사람으로 품고 있는지 정의 내려달라.
이유비 : 하~ 정말이지 청조를 연기하게 돼 많이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았던 경험이었다. 아, 정의를 하라고 했지. 나와는 많이 달랐던 청조라는 아이는… 물 위에 있는 연꽃 같은 그런 느낌의 아이였다. 봉우리가 폈다 졌다 하는. 이 아이의 인생에 있어서 피는 시절도 있고 오므려지는 시절도 있지 않았나. 요란하지 않아 티는 나지 않지만 왠지 자꾸만 마음이 쓰여 바라보게 되는 그런 아이.

Q. 아직 청조에게서 못 벗어난 것 같다.
이유비 : (눈시울을 붉히며) 그런 것 같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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