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연기 호흡을 맞추고 있는 박정민(왼쪽), 문근영/ 사진제공=(주)샘컴퍼니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연기 호흡을 맞추고 있는 박정민(왼쪽), 문근영/ 사진제공=(주)샘컴퍼니
“당신, 참 아름답군요”라는 단순한 말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손을 거치면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재탄생한다. 올해, 셰익스피어의 서거 40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도 양정웅 연출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났다.

연극 무대에 오른 ‘로미오와 줄리엣’은 지난 9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막을 열었다.

정승호 무대 디자이너가 크리에이티브로 참여해 세련미와 신선함을 더했다. 현대적이며 단조로워 보이기까지 한 세트가 고전의 극과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세트에 색감을 얹어, 어슴푸레한 달빛과 환하게 빛나는 별빛도 찬란하게 표현해냈다.

6년 만에 연극 무대를 택한 문근영이 줄리엣을, 영화 ‘동주’와 드라마 ‘안투라지’ 등을 통해 떠오르고 있는 박정민이 로미오를 각각 연기한다. 두 사람은 원캐스트로 공연을 이끌어간다. 베테랑 연기자들도 모였다. 손병호, 서이숙, 배해선, 김호영, 김찬호, 이현균, 양승리, 김성철 등이 작품의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이고도 아름다운 사랑을 그리는 이 작품은 그간 오페라, 발레, 연극, 뮤지컬,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재해석됐다.

양정웅 연출은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작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고자 했다. 셰익스피어가 써 내려간 주옥같은 대사를 고스란히 살린 것.

박정민(왼), 문근영 / 사진제공=(주)샘컴퍼니
박정민(왼), 문근영 / 사진제공=(주)샘컴퍼니
무대 위 로미오, 줄리엣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한편의 시처럼 읊어대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도 사물과 자연에 빗대어 형상화한다. 과연 원작이 지닌 매력이 오롯이 담겨, 음미하는 맛이 있다.

다만 갓 개막해 대사가 입에 익지 않은 탓인지, 박정민과 문근영은 몇 차례 겉도는 느낌을 준다.

‘클로저’에 이어 두 번째 연극 도전인 문근영은 탁월한 감성 연기로 몰입을 높이고, 줄리엣의 순수하고 가녀린 이미지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무대 연기를 전문적으로 하는 배우가 아니기에 발성에 있어서 다소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대극장이 아닌 달오름극장에서 마이크를 찼음에도 불구하고 극장을 울릴 만큼의 힘이 부족했고, 목 상태도 좋지 못 했다. 이는 감정을 담아 눈물을 흘리고 소리쳐야 하는 장면이 많은 2막에서 특히 더 아쉬웠다.

문근영/ 사진제공=(주)샘컴퍼니
문근영/ 사진제공=(주)샘컴퍼니
1막과 2막의 색깔은 확연히 다르다.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며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로 시작한다.

박정민은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이 대중에게 심어놓은 강렬한 여운과 두터운 장벽을 조심스럽게 넘고 있는 중이다. 유쾌하지만 가볍지는 않고, 생기 넘치지만 과하지 않게 그는 로미오의 옷을 입었다.

하지만 2막은 비극으로 치닫는 과정을 담아내기에 1막과 비교해 훨씬 무겁고 진지하다. 로미오 역시 순식간에 심각하고 어둡게 몰입해야 하는데, 그 간극을 좁히기가 쉽지 않다. 관객들을 몰입시킬 만큼의 내공이 부족해 보이며, 극의 개연성도 모자랐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내년 1월 15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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