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연예기획사와 국내 ‘최대어’ 아이돌 그룹의 전면전이 시작됐다. 지난 7월 31일, 5인조 그룹 동방신기의 멤버 가운데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 등 세 명의 멤버는 서울 중앙지방법원에 현 소속사 SM 엔터테인먼트(이하 SM)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접수하며 한 발 먼저 포문을 열었다. 6월 이후 팬들 사이에서 떠돌던 해체 관련 루머가 최초로 가시화된 것이다. 그러나 SM측은 8월 1일 새벽 “안타깝고 당혹스럽다. 동방신기는 개인 혹은 일개 기업만이 아닌 국가 및 아시아를 대표하는 그룹이기 때문에 동방신기의 활동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화장품 회사와 관련하여 발생한 이번 문제에 대해 조속히 대처해 나갈 예정”이라는 내용의 보도 자료를 내보내며 발 빠르게 대처했다. 해외 출장 중이던 SM의 이수만 회장은 이번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8월 1일 급히 귀국했고 가처분 신청서를 접수한 세 멤버 역시 8월 2일 일본에서 귀국했다.

한 푼도 못 받는 계약 vs 110억 원을 받았다

그리고 8월 3일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 측은 법무법인 세종을 통해 자신들의 전속 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보다 상세한 입장을 밝혔다.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 뮤직비디오에 대한 저작권침해 방송금지가처분 사건을 비롯해 방송, 통신, 영화 등 콘텐츠 비즈니스 법률 분야를 주로 담당했던 임상혁 변호사가 이들의 법률대리인을 맡았다.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 측은 “2004년 초 데뷔 이후 지금까지 1년에 일주일을 제외하고 하루 3~4시간 정도의 수면 시간 밖에 가지지 못한 채로 한국, 일본, 중국을 넘나들며 스케줄을 소화했다”고 폭로하며 “13년이라는 전속 계약은 사실상 종신 계약을 의미하고, 군 복무 기간을 포함할 경우 15년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들은 SM으로부터 노력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며 “최초 계약에서는 단일 앨범이 50만 장 이상 판매될 경우에만 그 다음 앨범 발매시 멤버 1인당 1,000만원을 받을 수 있을 뿐이고, 50만장 이하로 판매될 경우 단 한 푼도 수익을 배분받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는 근거를 제시하기도 했는데,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2009년 2월 6일 이 조항이 개정된 후에도 멤버들이 앨범 판매로 분배받는 수익금은 앨범 판매량에 따라 1인당 0.4~1%에 불과하다. 그러나 세 멤버 측은 “이번 가처분 신청은 절대로 동방신기의 해체를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며 “멤버들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언제까지나 하나이겠다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같은 날 SM 측 역시 보도자료를 통해 “동방신기와 전속계약 체결 후 총 5회에 걸쳐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갱신, 수정해 왔다”고 반박하며 동방신기가 “데뷔 후 2009년 7월까지 현금만 110억 원을 수령했고, 계약과 상관없는 보너스로 고급 외제차를 제공받은 반면 SM은 동방신기 데뷔 후 4개년 영업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또한 SM 측은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가 투자해 올 4월부터 부모와 함께 참여하고 있는 화장품 사업이 이번 사건이 제기된 실질적 이유라고 주장하며 “화장품 사업에 참여한 3명만이 본 사건을 제기한 것 자체가 결정적 반증”이라고 말했다. 앞서 세 멤버 측은 화장품 사업에 대해 “연예활동과는 전혀 무관한 재무적 투자일 뿐”이라며 “문제의 핵심은 화장품 사업이 아니라 전속 계약의 부당성”이라고 주장한 바 있으나 SM 측은 “초상권 사용 및 각종 행사에 참여한 사실이 파악되고 있으며 동방신기 이미지 실추 및 멤버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조속히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나 자신이 노력한 결과 vs 우리가 키운 덕분

현재 가장 뚜렷한 쟁점은 무엇보다 ‘돈’으로 보인다. SM 측에서 밝힌 대로 데뷔 후 동방신기 다섯 멤버가 수령한 현금 110억 원을 5년 반의 기간으로 나누어 보면 이들의 연 수입은 4억 원 가량, 또래의 직장인이나 연예인에 비해서도 적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6월 말 일본의 앨범집계차트인 오리콘 매거진이 발표한 ‘2009년 상반기 세일즈 랭킹’에 따르면 동방신기는 콘서트 수익과 공연 물품 판매 수익을 제외하고도 2009년 발표한 정규 앨범과 DVD 수익을 합해 6개월 동안 총 25억 엔(한화 약 33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 측이 주장한 대로 “아티스트로서의 꿈을 이루기보다는 회사의 수익 창출을 위한 도구로 소모되고 말 것”이라고 판단했을 정도의 활동이 낳은 결과다. 결국 이는 그동안 동방신기로 인해 발생한 총 수익이 각 멤버들에게 정당하게 지급되었는가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근본적인 시각차는 연예인, 특히 아이돌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으로부터 나온다. 십대 시절부터 연예인 지망생을 선발하고 춤, 노래, 외국어 등 다양한 트레이닝을 거치게 해 스타로 만들어내는 연예기획사의 입장이 “우리가 키운 덕분”이라면 연예인 당사자의 입장은 “나 자신의 노력과 매력이 작용한 결과”에 가깝다. 소속 연예인에 대해 ‘아티스트’로 홍보하다가도 분쟁이나 갈등이 생기면 ‘상품’으로 취급하는 연예기획사의 태도는 이 분야의 특수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래서 이번 SM과 동방신기 사건은 2001년 역시 SM 소속이었던 인기 그룹 H.O.T. 해체 이후로도 끊임없이 불거졌던 아이돌 가수와 소속사 간 갈등의 블록버스터 판이라 할 수 있다. 유노윤호,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 최강창민 등 다섯 명의 멤버로 구성된 동방신기는 1집 타이틀곡 ‘허그’로 데뷔하며 스타덤에 올랐고 지난해에는 4집 앨범 ‘미로틱’이 판매량 50만 장을 돌파하며 국내 최정상급 아이돌의 자리를 굳혔다. 2005년부터는 본격적인 일본 활동을 시작,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인기를 끌며 지난 7월에는 ‘꿈의 무대’로 불리는 도쿄돔에서 일본 전국 투어를 성공리에 마무리하기도 했다. 동방신기의 커리어가 정점에 올랐을 때 발생한 이번 사건이 유독 눈길을 끄는 이유다.

해체라는 최악의 수순을 밟을까

이러한 논란의 한가운데서도 동방신기는 지난 8월 1일 일본 구마모토에서 열린 에이벡스 소속 가수들의 합동 공연 ‘에이-네이션 09’의 무대에 올랐다. 동방신기의 일본 내 음반 유통과 매니지먼트를 함께 담당하고 있는 에이벡스 엔터테인먼트 측은 이 날 홈페이지를 통해 “동방신기의 향후 일본 활동에 변경은 없다. 6일 도쿄에서 열리는 불꽃놀이 행사에도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동방신기는 8월 말까지 몇 차례 더 잡혀 있는 ‘에이-네이션 09’ 공연과 16일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리는 SM 타운 라이브 콘서트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가처분 신청에 동참하지 않은 리더 유노윤호는 9월 방영 예정인 MBC 수목 미니시리즈 <맨땅에 헤딩>의 주연 차봉군 역에 발탁되었으며 또 다른 멤버 최강창민은 SM과 삼화 네트웍스가 공동 제작해 올 하반기 방영 예정인 <파라다이스 목장>에 캐스팅된 상태다. 뛰어난 라이브와 퍼포먼스, 국내 최대 규모의 팬덤, 일본 시장에서의 성공 등으로 ‘아이돌의 꿈’이라 불렸던 동방신기와 그들을 길러낸 SM의 갈등은 현재 극적인 화해를 이루지 못하는 한 첨예한 법정공방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해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현될 경우 양측 모두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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