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 메시니, 김창기, 엑소, 브로큰 발렌타인(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팻 메시니, 김창기, 엑소, 브로큰 발렌타인(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팻 메시니, 김창기, 엑소, 브로큰 발렌타인(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내 이름 내 얼굴 내 뇌를 바꿔버리고 싶어, 내가 했던 모든 말들을 먹어버리고 싶어
김창기 ‘지혜와 용기’ 中

팻 메시니 〈Tap- John Zorn’s Book of Angels, Vol.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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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기타리스트 팻 메시니(Pat Metheny)와 프리 아방가르드의 거장 존 존(John Zorn)이 만났다. 팻 메시니는 국내에서 가장 폭넓게 사랑받는 재즈 아티스트다. 일례로 팻 메시니 내한공연을 보러갔다가 강용석 전 의원과 마주친 일도 있다. 어쩌면 팻 메시니는 재즈의 매력에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좋은 텍스트 중 하나일 것이다. 일반인에게도 어필하는 리리시즘부터, 퓨전재즈, 비밥, 프리 아방가르드에 이르기까지 손대지 않은 것이 없으니 말이다. 이 앨범은 팻 메시니가 존 존이 자신의 뿌리인 유대인 민속음악에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들을 연주한 일종의 송북(songbook) 해석집이다. 둘은 이 앨범 작업 기간 동안 메일을 주고받으며 의견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굉장히 난해한 연주가 담겼을 거라 예상하면 오산이다. 존 존의 곡은 중동 풍의 멜로디부터 아방가르드 성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존 존의 곡을 연주하는 팻 메시니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고 즐거워 보인다. 이 작품 덕분에 존 존이라는 훌륭한 아티스트가 더 많이 알려지겠지. 뿌듯하다.

김창기 〈내 머리 속의 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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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의 새 앨범 소식이 무척 반가웠다. 참 많은 사람이 그랬을 것이다. 동물원보다 김창기 개인의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내 머리 속의 가시〉라는 제목, 그리고 앨범재킷 속 고통스러운 표정은 의아했다. 무엇이 그를 괴롭혔을까? 김창기는 “또 실패할까봐, 즉,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들이 될까봐 두려웠다”고 설명하는데, 그가 상업적인 미진함을 두려워하는 지는 미처 몰랐다. 작년에 어렵게 구한 김창기·이범용의 공동작품 〈창고〉를 들었을 때는 그가 그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으니까. 새 앨범의 가사는 자기고백으로 들리는데 내용은 어둡지만 목소리 톤은 그리 어둡지 않게 들린다. 황망해야 황망한 노래가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이제 김창기에게는 김광석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 자신이 평소 가까이 하고 즐기는 음악 이야기가 더 궁금한 시점이다.

엑소 〈XOXO (Kiss & H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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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엔터테인먼트는 엑소(Exo)를 통해 여러 가지를 실험 중이다. 엑소케이, 엑소엠 두 가지 버전을 통해 한국과 중국을 동시에 공략한다는 시작부터가 달랐다. 그런데 정작 음악적인 면에서는 어떤 새로움을 보여줬는지 의문이다. 가령 엑소케이, 엑소엠의 ‘Mama’와 같은 곡이 이전 SM 선배들의 곡에 비해 신선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을 감지했는지 정규 1집에서는 보다 진취적인 모습이 엿보인다. 첫 싱글 ‘늑대와 미녀’의 뮤직비디오, 무대 구성부터 상당히 의욕적이다. 특히 12명이 동시에 합을 맞추는 엑소의 군무는 기존에 보지 못했던 위압감을 전한다. 최근 소녀시대, 샤이니의 새 앨범을 통해 음악적으로 변화를 취하고 있는 SM은 엑소를 통해서도 뭔가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려 하는 모양이다.

브로큰 발렌타인 〈Alumin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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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 발렌타인이 더욱 강력해졌다. 브로큰 발렌타인은 게이트 플라워즈와 함께 본래 아마추어 밴드의 경연으로 기획된 KBS 밴드 서바이벌 〈탑밴드〉의 수준을 높인 주범(?)으로 꼽힌다. 이로써 〈탑밴드〉는 프로페셔널 밴드의 격전지가 됐고, 그간 공중파 프로그램에 나가지 못한 한을 푸는 성토의 장이 되기도 했다. 브로큰 발렌타인으로서는 이제 〈탑밴드〉의 이슈가 걷혔으니 보다 편한 마음으로 새 앨범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 1집에 이어 2집에는 포스트 그런지 록부터 하드록, 뉴 메탈 등 헤비한 록 사운드가 담겼다. 브로큰 발렌타인은 작년에 나온 1집 타이틀곡 ‘Shade’를 “앞으로 나오게 될 곡들의 예고편 격”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2집 수록곡들은 ‘Shade’의 에너지를 가볍게 뛰어넘고도 남는다. ‘Smashing Your Face’와 같은 멋진 곡을 TV 순위 프로그램에서 보고 싶다.

줄리아 하트 〈영원의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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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발매됐던 줄리아 하트의 2집 〈영원의 단면〉이 새로운 녹음으로 발매됐다. 8년이 지난 음반을 다시 녹음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재작년이었던가?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본인의 앨범을 재발매할 의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정선 선생은 “지나간 세월은 그냥 지나간 대로 나뒀으면 좋겠다”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이번 재발매의 제작비는 팬들의 소셜 펀딩으로 조달됐다. 새로 녹음을 하기 까지는 팬들의 열망 외에 줄리아 하트의 리더 정바비의 애착도 작용했을 것이다. 원작에 참여한 연주자 중 남은 이는 리더 정바비 뿐. 이러한 변화가 기존 팬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갈까? 앨범 제작과 관련된 구구절절한 사연은 정바비가 직접 쓴 소개 글을 참고하길. 한편 이번 앨범 발매와 함께 원작의 음원서비스는 중단된다.

페이퍼컷 프로젝트 〈불공정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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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인사동 거리를 지나다보면 이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버스킹(거리 공연) 뮤지션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조금 식상하지기도 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버스킹 뮤지션들이 꽤 진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혼자 즉흥연주를 하는 재즈 기타리스트도 있고, 색소폰과 타악기를 번갈아 다루는 연주자도 볼 수 있었다. 페이퍼컷 프로젝트는 고창인(보컬), 유경표(기타), 김두현(퍼커션)으로 이루어진 3인조 그룹. 기존의 버스킹 밴드를 연상케 하는 음악이지만, 이들은 프로페셔널한 연주가 돋보인다. 유경표의 어쿠스틱 기타와 김두현이 다루는 타악기 까혼(Cajon)은 포크부터 재즈의 스윙 리듬까지 소화해내며 고창인의 노래를 보좌한다. 장기호의 ‘왜 날’을 리메이크해 수록했다.

문진오 〈걷는 사람〉
문진오 - 앨범자켓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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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이라는 콘서트가 있다. 매달 민중가요 진영의 음악인들을 초대하는 릴레이 콘서트다. ‘동행’을 시작할 무렵 제작진의 고민 중 한 가지는 최근 새 앨범을 내는 민중음악인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작년 11월 시작된 동행은 현재까지 매번 다른 뮤지션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양병집, 이광석 이쪽 계열의 새 음반도 심심치 않게 나와 주고 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햇빛세상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문진오의 정규 4집 〈걷는 사람〉도 같은 맥락에서 반가움을 전하는 앨범. 툭툭 내뱉듯이 노래하는 문진오의 목소리는 진중하다. 이와 함께 ‘우리 아빠’ ‘꽃과 나’와 같이 동요적인 감성부터 ‘내 맘 속 나를 보는 눈’과 같이 프로그래밍이 가미된 포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표정의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이채롭다.

송용창 〈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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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송용창의 노래 ‘당신은 천사인가요’를 들었을 때 그가 단지 재즈 기타리스트가 아니라 꽤 괜찮은 싱어송라이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꽤 능숙한 스캣을 들려줬으며 재즈 보컬리스트의 범주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2집 〈입술〉은 하나음악을 계승한 레이블 푸른곰팡이에 둥지를 틀고 처음 내놓은 앨범이다. 송용창은 재즈적인 어법에서 한발 물러나 좀 더 팝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다. 소울·R&B의 색체도 느껴지는데, 송용창은 감정을 실어서 노래하는 타입이라 이런 소울풀한 스타일과 매우 잘 어울린다. 그리고 네오소울보다는 도니 해서웨이와 같은 고전적인 색체가 더 맞는 옷일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본래 기타리스트이기에 어쿠스틱기타 연주 역시 발군이다. 송용창의 음악이 푸른곰팡이에 어떤 활력을 불어넣을지도 기대해본다.

토니 베넷, 데이브 브루벡 〈The White House Session, Live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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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계의 두 거인인 토니 베넷과 데이브 브루벡의 1962년 백악관 실황을 담은 앨범. 영화 〈대부〉를 보면 크루너 보컬리스트 조니 폰테인이 만찬에서 노래할 때 마이클 꼴레오네(알 파치노 분)가 농담으로 “방에 가서 토니 베넷 레코드나 들어야겠군”이라고 눙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토니 베넷은 프랭크 시나트라, 빙 크로스비, 팻 분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크루너 보컬리스트로 80세 중반을 넘어선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작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브루벡은 재즈와 클래식의 크로스오버를 뜻하는 써드 스트림(Third Stream)의 선두주자이면서 재즈 사상 최고의 슈퍼스타 중 하나. 케네디 대통령 집권기인 1962년에 토니 베넷은 36세, 데이브 브루벡은 42세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다. 두 명의 베스트 연주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 앨범이다. 무엇보다도 베넷의 젊은 목소리가 반갑다.

이상 〈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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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얼마나 자기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연주자는 얼마나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을까? 일단 자기 의지대로 살려면 많은 경험이 필요할 테고, 자유롭게 연주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멜로디와 리듬을 체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내려놓을 정도로 내공이 되면 조금이나마 자유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이상의 멤버들인 오정수(기타), 김창현(베이스), 비안(피아노), 김홍기(드럼)는 자신의 색을 찾으려 하는 진지한 연주자들이다. 이미 여러 재즈 음반에 참여했던 이들은 거의 3년여 동안 이상으로 활동하며 기존의 어법에서 벗어나 자의식을 담은 연주를 시도하려 했다. 앨범에는 ‘Folk Song’처럼 로킹한 곡도, ‘Dawn’처럼 서정적인 곡도, ‘Liberalism’처럼 ‘사이코패스’같은 연주도 있다. 혼란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연주자에게뿐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필요하다. 각성을 위해. 다시 활력을 찾기 위해.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사진제공. SM엔터테인먼트, 푸른곰팡이, 프라이빗커브, 롤링컬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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