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 이국적인 풍경, 그 안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공동의 목표로 결합하거나 치열한 혈투를 하는 광경들. 최근 스크린에서 해외 로케이션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국내가 아닌 해외로 발길을 돌리는 일종의 공식이 존재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해외 로케이션 촬영 언제부터 익숙해지기 시작한 걸까.
오는 8월 2일 개봉하는 영화 '비공식작전'(감독 김성훈)은 1987년을 배경으로 중동과 담당 외교관 민준(하정우)가 레바논에서 실종된 외교관의 암호 메시지를 듣고 비공식적으로 동료를 구출하라는 임무에 자원하면서 벌어지는 내용이다. 레바논에 도착한 민준은 우연히 한국인 택시 기사 판수(주지훈)를 만나고 함께 협업한다. 레바논은 영화 속 주요한 배경이지만, 사실 실제 촬영의 70퍼센트 분량은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촬영됐다. 배우 하정우는 "팬데믹이 겹쳐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힘들었다"는 일화를 밝히기도 했다.
모로코라는 해외 지명 어딘가 익숙하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모가디슈'(2021) 역시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가 영화적 배경이지만, 촬영은 100퍼센트 모로코의 서부 도시 에사우이라에서 이뤄졌다. 덕분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색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공간은 마치 관객들이 직접 현지 상황에 들어간 것 같은 생동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같은 선상에서 거론되는 임순례 감독의 영화 '교섭'(2023) 또한 영화 속 배경은 아프가니스탄이지만, 촬영은 요르단에서 진행됐다. 세 작품의 공통점은 뭘까? 단순히 해외 현지촬영을 했다는 것 이전에 세 작품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비공식작전'은 1986년 발생한 레바논 한국 외교관 납치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이 사건은 레바논으로 파견 간 도재승 서기관이 베이루트 시내 한복판에서 벤츠를 탄 무장 괴한들에게 납치당했고, 실종 9개월 뒤 납치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발생했다. 한국 정부는 외교관을 현지로 보냈고 협상을 통해 납치 21개월 만에 복귀한 사건이다.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남북 간 협력해서 12일가량 함께 머물렀던 놀라운 사건이다. 반군과 정부군이 전투를 벌이는 가운데, 한국 대사관과 북한 대사관 모두 위협에 처해있었다. 새로이 외교 관계를 구축한 한국 대사관이 그나마 보호받았다면, 사이가 멀어진 북한 대사관은 내전의 중심지에 방치됐다. 요약하면, 한국 대사관의 강신성 대사와 북한의 대사관이 협업하며 무사히 모가디슈를 빠져나온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교섭'은 2007년 발생한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분쟁 지역인 아프가니스탄에 입국을 강행했던 교인들이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이유로 갔다가 탈레반에게 인질로 붙잡혔고, 이들을 생환시키기 위해 정부가 많은 인원을 작전에 투입했다. 위의 세 영화처럼 실화를 배경으로 하기에 현지 촬영하는 경우도 존재하지만, 극적인 상황을 만들기 위해 공간적 배경을 해외로 설정한 사례도 더러 있다. 그렇다면 한국 최초로 외국 무대로 나가 촬영한 작품은 무엇일까. 홍콩 로케이션을 배경으로 한 1957년 작 '천지유정'(감독 김화랑)은 최초로 해외 로케이션을 배경으로 했고,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는 센세이션한 결과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오며 할리우드만큼 영화산업이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한국 최초의 영화 1919년 '의리적 구토'(감독 김도산)를 시작으로 점차 도약했지만, 일본의 검열과 탄압으로 인해 제작 역시 어려움을 겪었었다. 그 때문에 일찍이 해외 로케이션으로 나갔던 해외의 사례와는 달리 한국은 그 속도가 더뎠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미국의 경우, 1950년대 텔레비전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영화계가 위험을 느꼈고 이에 2.35:1의 화면비를 갖춘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를 도입하면서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더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전까지 1.33:1, 1.37:1 등을 사용했다면, 시네마스코프를 통해 화면의 가로 비율이 더욱 넓어진 스크린으로 관객들이 압도당할 만한 영화를 선보였다.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영화인 헨리 코스터 감독의 1953년 영화 '성의'를 시작으로 데이비드 린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에서의 압도할만한 풍경은 요르단의 와디럼에서 촬영됐고, '닥터 지바고'(1965)는 스페인이나 핀란드 등에서 촬영했다.
한국 영화계는 해외보다는 더딘 속도로 발전을 가했다. 1945년 해방 이후, 최초로 제작된 외국과의 합작영화인 '천지유정'을 시작으로 한국 영화계는 차츰 해외 촬영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후 스크린에서 낯선 풍경들을 보는 일은 익숙해졌고, 제작비 역시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은 1930년대 만주를 드넓은 대륙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중국 로케이션을 선택했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도둑들'(2012)은 홍콩, 마카오를 배경으로 '태양의 눈물'이라는 다이아몬드를 훔치기 위해 해외로 판을 넓혀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이후 한국 영화를 살펴보면, 일본이나 중국 등의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이 해외 로케이션으로 선택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베트남과 태국 등의 동남아 지역이나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들이 급격하게 많아졌다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다. 특히 '범죄도시' 시리즈의 변천사를 통해 뚜렷한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2017년 개봉한 '범죄도시 1'의 배경은 서울이지만, 조선족 장첸(윤계상) 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이어 2022년 개봉한 '범죄도시 2'는 베트남을 배경으로 도주한 용의자를 인도받아 오라는 설정에서부터 시작하고, 올해 개봉한 '범죄도시 3'의 경우는 배경은 서울이지만 중국과 일본 등의 선택지를 보여준다.
이 중에서 '범죄도시 2'의 베트남은 비록 팬데믹으로 인해 로케이션이 아닌 국내에서 세트 촬영을 진행했지만, 베트남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이제 중국과 일본은 익숙하고 안전한 선택지가 됐고, 우리와 조금은 먼 공간으로 나가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어쩌면 신선한 공간을 스크린에 투영하면서 전략을 세운 것일 수도 있다.
해외라는 배경이 주는 스펙타클함, 그 이전에는 극의 재미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아무리 장대한 광경을 담는다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이야기가 전재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오는 8월 2일 '비공식작전'은 현지 로케이션 배경이 풍기는 분위기가 흥미로운 스토리 두 개를 모두 잡아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기대와 두려움이 든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모로코라는 해외 지명 어딘가 익숙하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모가디슈'(2021) 역시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가 영화적 배경이지만, 촬영은 100퍼센트 모로코의 서부 도시 에사우이라에서 이뤄졌다. 덕분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색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공간은 마치 관객들이 직접 현지 상황에 들어간 것 같은 생동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같은 선상에서 거론되는 임순례 감독의 영화 '교섭'(2023) 또한 영화 속 배경은 아프가니스탄이지만, 촬영은 요르단에서 진행됐다. 세 작품의 공통점은 뭘까? 단순히 해외 현지촬영을 했다는 것 이전에 세 작품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비공식작전'은 1986년 발생한 레바논 한국 외교관 납치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이 사건은 레바논으로 파견 간 도재승 서기관이 베이루트 시내 한복판에서 벤츠를 탄 무장 괴한들에게 납치당했고, 실종 9개월 뒤 납치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발생했다. 한국 정부는 외교관을 현지로 보냈고 협상을 통해 납치 21개월 만에 복귀한 사건이다.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남북 간 협력해서 12일가량 함께 머물렀던 놀라운 사건이다. 반군과 정부군이 전투를 벌이는 가운데, 한국 대사관과 북한 대사관 모두 위협에 처해있었다. 새로이 외교 관계를 구축한 한국 대사관이 그나마 보호받았다면, 사이가 멀어진 북한 대사관은 내전의 중심지에 방치됐다. 요약하면, 한국 대사관의 강신성 대사와 북한의 대사관이 협업하며 무사히 모가디슈를 빠져나온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교섭'은 2007년 발생한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분쟁 지역인 아프가니스탄에 입국을 강행했던 교인들이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이유로 갔다가 탈레반에게 인질로 붙잡혔고, 이들을 생환시키기 위해 정부가 많은 인원을 작전에 투입했다. 위의 세 영화처럼 실화를 배경으로 하기에 현지 촬영하는 경우도 존재하지만, 극적인 상황을 만들기 위해 공간적 배경을 해외로 설정한 사례도 더러 있다. 그렇다면 한국 최초로 외국 무대로 나가 촬영한 작품은 무엇일까. 홍콩 로케이션을 배경으로 한 1957년 작 '천지유정'(감독 김화랑)은 최초로 해외 로케이션을 배경으로 했고,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는 센세이션한 결과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오며 할리우드만큼 영화산업이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한국 최초의 영화 1919년 '의리적 구토'(감독 김도산)를 시작으로 점차 도약했지만, 일본의 검열과 탄압으로 인해 제작 역시 어려움을 겪었었다. 그 때문에 일찍이 해외 로케이션으로 나갔던 해외의 사례와는 달리 한국은 그 속도가 더뎠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미국의 경우, 1950년대 텔레비전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영화계가 위험을 느꼈고 이에 2.35:1의 화면비를 갖춘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를 도입하면서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더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전까지 1.33:1, 1.37:1 등을 사용했다면, 시네마스코프를 통해 화면의 가로 비율이 더욱 넓어진 스크린으로 관객들이 압도당할 만한 영화를 선보였다.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영화인 헨리 코스터 감독의 1953년 영화 '성의'를 시작으로 데이비드 린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에서의 압도할만한 풍경은 요르단의 와디럼에서 촬영됐고, '닥터 지바고'(1965)는 스페인이나 핀란드 등에서 촬영했다.
한국 영화계는 해외보다는 더딘 속도로 발전을 가했다. 1945년 해방 이후, 최초로 제작된 외국과의 합작영화인 '천지유정'을 시작으로 한국 영화계는 차츰 해외 촬영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후 스크린에서 낯선 풍경들을 보는 일은 익숙해졌고, 제작비 역시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은 1930년대 만주를 드넓은 대륙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중국 로케이션을 선택했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도둑들'(2012)은 홍콩, 마카오를 배경으로 '태양의 눈물'이라는 다이아몬드를 훔치기 위해 해외로 판을 넓혀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이후 한국 영화를 살펴보면, 일본이나 중국 등의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이 해외 로케이션으로 선택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베트남과 태국 등의 동남아 지역이나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들이 급격하게 많아졌다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다. 특히 '범죄도시' 시리즈의 변천사를 통해 뚜렷한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2017년 개봉한 '범죄도시 1'의 배경은 서울이지만, 조선족 장첸(윤계상) 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이어 2022년 개봉한 '범죄도시 2'는 베트남을 배경으로 도주한 용의자를 인도받아 오라는 설정에서부터 시작하고, 올해 개봉한 '범죄도시 3'의 경우는 배경은 서울이지만 중국과 일본 등의 선택지를 보여준다.
이 중에서 '범죄도시 2'의 베트남은 비록 팬데믹으로 인해 로케이션이 아닌 국내에서 세트 촬영을 진행했지만, 베트남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이제 중국과 일본은 익숙하고 안전한 선택지가 됐고, 우리와 조금은 먼 공간으로 나가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어쩌면 신선한 공간을 스크린에 투영하면서 전략을 세운 것일 수도 있다.
해외라는 배경이 주는 스펙타클함, 그 이전에는 극의 재미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아무리 장대한 광경을 담는다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이야기가 전재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오는 8월 2일 '비공식작전'은 현지 로케이션 배경이 풍기는 분위기가 흥미로운 스토리 두 개를 모두 잡아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기대와 두려움이 든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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