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경의 인서트》
'데뷔 20주년' 김유정·진지희, 첫 연극 도전
티켓값 훌쩍 오른 무대로 간 아역 배우
김유정, 진지희 /사진=텐아시아 DB
김유정, 진지희 /사진=텐아시아 DB
《강민경의 인서트》
영화 속 중요 포인트를 확대하는 인서트 장면처럼 강민경 텐아시아 기자가 영화계 이슈를 집중 조명합니다. 입체적 시각으로 화젯거리의 앞과 뒤를 세밀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아역 배우로 시작해 지금껏 연기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배우 김유정과 진지희가 연극에 처음 도전했다. 두 사람은 99년생 동갑내기로 올해 계묘년, 토끼띠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특히 데뷔 20주년을 맞은 김유정과 진지희가 나란히 무대에 도전해 눈길을 끈다.

김유정은 지난달 28일 개막한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통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1998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이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사랑으로 탄생했다는 유쾌한 상상에서 출발한 작품. 슬럼프에 빠져있던 셰익스피어가 연극배우를 꿈꾸는 여성 비올라와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극 중 김유정은 셰익스피어의 사랑이자 부유한 상인의 딸로, 당시 여성에게는 금기됐던 연극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당찬 여성 비올라 드 레셉스를 연기한다. 김유정은 첫 연극을 통해 1인 3역으로 다양한 매력을 드러낸다. 사랑스러운 비올라 아가씨, 연극배우를 꿈꾸지만, 여자임을 숨기기 위해 쇼트커트 가발을 쓰고 콧수염을 붙인 켄트 그리고 줄리엣까지.

김유정은 연극배우의 꿈을 좇다가도 셰익스피어와의 사랑을 키워간다. 켄트를 연기할 때는 성별을 가리기 위해 낮은 톤으로, 비올라와 줄리엣을 연기할 땐 흔히 알고 있는 김유정의 우아한 톤으로 대사를 내뱉는다. 무대 위 김유정을 처음 마주한 순간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김유정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자기의 템포에 맞춰 서서히 관객의 시선을 집중하게 만든다. 씹히는 대사 없이 정확한 딕션으로 대사를 전달하고, 감정 이입하게 만든다. 물론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현란한 무대 장치도 한몫한다.
김유정 /사진제공=어썸이엔티
김유정 /사진제공=어썸이엔티
드라마, 영화, OTT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연기 활동을 펼친 김유정이 무대로 간 까닭은 바로 '꿈' 때문이었다. 김유정은 "연극 무대가 처음이어서 모든 게 새롭다. 사실 연극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연극은 꿈 같은 존재였다"고 밝혔다. 이어 "데뷔 20주년이라기보다 이 작품은 저에게 도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꿈이기에 하고 싶었고, 그래서 참여하게 됐다. 오랫동안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일을 해나가면서 지치거나 힘든 순간이 올 수도 있는데, 그때 여기서 느낀 열정이나 사랑,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릴 것 같다. 매 공연, 매일 소중하고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송한샘 프로듀서는 김유정을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16세기 런던에서는 연극이 넷플릭스였고, BTS 콘서트였다고 생각한다. 현대에 와서는 연극이 일부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향유되는 게 아쉬웠다. 셰익스피어의 연극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했다"며 "결국은 엔터테인먼트였다.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정말 좋은 배우, 스타들의 힘이 필요했다. 단순히 스타라서가 아니라 연극배우로서 이미 자질을 갖춘 배우를 모시게 됐다. 그 덕에 엔터테인먼트로서 본질을 유지한 채 관객과 만나게 됐다. 이 캐스팅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김유정이 지금 관객과 만나고 있다면, 진지희는 최근 '갈매기' 공연을 마무리했다. 진지희 역시 김유정과 마찬가지로 처음 연극에 도전했다. 진지희가 출연한 '갈매기'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극작가 안톤 체홉의 희곡을 원작으로 했으며 인물들 간의 비극적인 사랑과 처절한 갈등, 인간 존재의 이유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 진지희는 배우가 되고 싶은 욕망을 가진 아름다운 사람인 니나를 연기했다.

김유정에게 연극이 꿈이었다면 진지희에게는 이순재와의 재회 때문이었다. 진지희는 "이순재 선생님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대학생 시절 희곡을 많이 접했기에 '갈매기'는 저에게도 익숙하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이순재 선생님께서 연출하신다는 말을 듣고 그 작품이 뭐든 바로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진지희 /사진제공=아크컴퍼니
진지희 /사진제공=아크컴퍼니
동국대학교 연극학부 출신인 진지희는 "이순재 선생님께서 학교에서 많이 공부했던 고전 '갈매기'를 한다고 하시니 저한테는 의미가 남달랐다. 많이 읽기도 했고, 정말 싫어서 싫증도 냈지만, 애착을 가진 작품이다. 선생님과 '갈매기'가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가 탄생할까?'라는 기대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진지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빵꾸똥꾸야'라고 외친 어린아이다. 13년이 지난 지금 '펜트하우스' 시리즈 속 제니를 거쳐 새로운 이미지를 개척해나가고 있는 상황. 니나를 연기한 진지희는 또 다른 얼굴을 선보였다. 배우라는 순수한 꿈을 가진 모습부터 사랑에 대한 욕망 등을 그려냈다. 1막에서 마지막 4막으로 갈수록 발성은 안정되고 반전 매력을 뽐냈다. 밝음에서 점점 어둠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어 가게 만들었기 때문.

김유정과 진지희는 공통점이 있다. 아역 배우로 데뷔해 지금까지 활동 중이며, 데뷔 20주년에 첫 연극에 도전한 것과 배우를 꿈꾸는 인물을 연기했다는 점이다. 이제는 드라마, 영화, OTT 등의 경계가 없어진 상황. 무대와 매체 역시 마찬가지다. 배우 조정석, 전미도, 정문성 등도 무대 출신이지만, 매체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유정과 진지희도 아역 배우의 타이틀을 떼고 성인 연기자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 중이다. 연극 도전도 같은 맥락이다.

김유정이 출연 중인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처음으로 VIP석이 10만원이 넘었다. 지난해부터 뮤지컬 티켓값이 오른 상황에서 연극계도 함께 상승한 것. 송한샘 프로듀서는 "아마 공연을 보신 분들은 지금의 가격으로 책정된 이유에 대해 납득하리라는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있다. 무대에 여러 장치가 사용됐기에 제작비가 올랐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티켓 가격을 올렸다고 말씀드린다"고 설명했다. 아역배우 출신인 김유정과 진지희가 티켓값이 훌쩍 오른 무대로 간 건 꿈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연극과 매체의 경계가 허물어졌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다.

강민경 텐아시아 기자 kkk39@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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