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내가 나이 들고 변한 만큼 영화도 변한다”
홍상수 “내가 나이 들고 변한 만큼 영화도 변한다”
홍상수 감독의 10번째 영화 에 부제를 붙인다면 ‘귀여워’가 되지 않을까? 각각 통영에서 여름을 보낸 영화평론가 중식(유준상)과 영화감독 지망생 문경(김상경)의 회상으로 영화는 움직인다. 홍상수 감독의 다른 영화들처럼 이들은 낯선 곳에서 여자 뒤꽁무니를 ㅉㅗㅈ고, 술을 먹고, 거짓말을 하고, 헛소리를 하고, 꿈을 꾼다. 하지만 한심하거나 찌질한 짓을 하느라 여념이 없는 그들의 모습은 밉지 않다. 부터 한층 강하게 감지된 홍상수 감독의 유쾌한 기운은 에서 가장 큰 웃음을 낳는다. 개똥철학 강의에서부터 기상천외한 이별 장면까지, 경악을 금치 못할 행동을 하는 인물들을 결국엔 귀여움으로 귀결시키는 감독의 솜씨는 더 탁월해졌다.

등장인물들이 서로에게 “귀엽네”를 연발하는 것처럼, 감독이 이 징글징글하고 찌질한 인간들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그러하다. 그리고 그 시선은 관객에게도 그대로 전염된다. 다음은 시종일관 폭소가 터져 나왔던 의 언론 시사 이후 진행된 기자간담회를 정리한 내용이다. 홍상수 감독과 김상경, 유준상, 문소리, 예지원, 윤여정, 김영호 등 출연배우가 참석한 대화는 영화처럼 유쾌했다.
라는 제목이 특이하다.
홍상수 감독: 언제인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촬영 직전에 충무로를 택시 타고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가게 간판에 ‘하’ 자가 이상하게 두 개가 겹쳐 있는 걸 보고 돌아섰는데 바로 ‘하하하’가 생각나더라. 여름이 강조되는 거 같고, 웃음소리 같기도 해서 좋았다.

는 그 어떤 전작보다도 유쾌하다. 영화의 시작이 되는 생활적 경험이 있는 걸로 아는데 이번 영화의 출발점은 어떤 것이었나?
홍상수 감독: 영화를 찍을 장소를 찾는다고 문경새재랑 통영을 여행했다. 그러다가 통영에서 본 것들에 자극 받아서 장소를 정하고, 형식 정했다. 두 사람이 같은 곳을 갔던 얘기를 하는데 억지로 즐거웠던 얘기만 하자는 인위적인 틀이 중요해서 그렇게 나온 것 같다.

“홍상수 감독과 한 번 작업하고 싶다”
홍상수 “내가 나이 들고 변한 만큼 영화도 변한다”
홍상수 “내가 나이 들고 변한 만큼 영화도 변한다”
홍상수 “내가 나이 들고 변한 만큼 영화도 변한다”
홍상수 “내가 나이 들고 변한 만큼 영화도 변한다”
문경과 중식이 술을 마시면서 통영에 갔던 얘기를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둘이 술을 마시는 현재 시점은 과거 같은 느낌이 나는 스틸 사진으로, 통영에서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은 현재성이 강조된 영상으로 표현됐더라.
홍상수 감독: 처음 영화를 가편집할 때 정한 것이다. 사실 현재 시점과 과거로 나뉘는 장면인데 거꾸로 하는 게 더 좋겠더라. 시간을 거꾸로 붙인다고 해야 하나? 현재를 과거처럼 표현한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전작 에 이어 까지 이번에 6번째로 칸 영화제에 가게 되었는데.
홍상수 감독: 칸에 가서 영화를 보여주는 게 되게 효과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니까 중요하다. 알게 모르게 칸에 갔다 온 거 때문에 다음 작품 할 때 도움 받는 부분도 있고. 배우들도 같이 가서 구경하고 오면 좋다. (웃음)

윤여정의 경우 한 해에 , 두 편의 작품으로 칸 영화제를 찾게 되었는데, 한국 영화 사상 유래가 없는 일 같다.
윤여정: 칸에 가게 되서 기분 좋다. 육십 평생 한 번도 못 가본 사람이 그것도 두 편이나 가게 되서. 연기를 하도 오래하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해서 즐겁다. (웃음)

특히 두 작품 다 이름이 같은 ‘상수’ 감독들과 작업을 했는데, 두 감독을 비교한다면?
윤여정: 평론가도 아니고 두 사람 다 너무 다른 상수들이라 비교하기는 좀 그렇다. (문)소리가 더 잘 알지 않을까? (웃음)
문소리: 에전에는 두 분 다 노출이 많았던 거 같은데 이제 한 분은 이불을 덮어 주시고 한 분은 여전히 이불을 안 덮어주시죠? (웃음)
윤여정: 몰라. 나는 직접 안 해봐서. (웃음)
문소리: 임상수, 홍상수 두 분 다 굉장히 유쾌하다. 뭐 이창동 감독님보다는 훨씬 더 유쾌하지. (웃음)
윤여정: 홍상수 스타일의 작업은 늙은 나로서는 처음 배우는 형식이고, 전체 대본도 없었고 환경도 아주 열악했다. 그래서 너무 힘들어서 성질을 있는 대로 피웠다. 그런데 오늘 영화를 처음 보니까 인제부터는 내가 연기를 좀 잘하려나보다. 예전 작품에선 다른 배우들을 보면 ‘쟤는 왜 저렇게 연기를 못할까’ 했는데, 이번에는 다들 너무 잘해서 나도 다시 한 번 하고 싶다. (웃음)

“이런 영화를 홍상수가 아니고 누가 하겠나”
홍상수 “내가 나이 들고 변한 만큼 영화도 변한다”
홍상수 “내가 나이 들고 변한 만큼 영화도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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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경은 벌써 홍상수 감독과 세 번째 작품을 함께 했는데.
김상경: 감독님 영화는 보는 사람마다 시각이 다르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맨날 영화가 똑같다고 하는데 나는 할 때마다 너무 다르다. 는 오늘 보니까 행복하다. 물론 촬영은 힘들었지만. (웃음) 감독님과 여러 번 작업했지만 할 땐 너무 힘들다. 찍을 때는 안 힘든 척 한 거다. 감독님을 아는 만큼 연기할 때 힘든 표현이 많았다.

유준상은 유독 귀여운 모습이 돋보였는데, 특히 강아지를 붙잡고 오열하는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유준상: 그 날 아침에 강아지 한 마리가 감독님이 글을 쓰고 있는 옆을 지나갔다. 그래서 감독님이 강아지를 써야겠다 해서 섭외가 시작됐다. (웃음) 그 신을 찍는 날 감독님과 낮부터 소주를 마셨고, 너무 재밌게 찍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런 적이 있었나, 내가 어떻게 그렇게 했나 싶다.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나와서 즐거웠고 그 신을 찍기 위해 했던 여러 가지 것들이 맞물리면서 신기했다. 촬영하면서 워낙 갑자기 일어난 상황이 많아서 즐거웠다. 어떤 신에선 계단에서 넘어져서 NG가 났는데 그 다음 날 감독님이 허리 많이 아프지 침 맞으러 가자 하시면서 침 맞는 신을 넣은 거다. 허리 치료고 할 겸 가서 누워있어라 하시더라. (웃음) 그런 것들이 너무 재밌었다. 배우가 넘어졌는데 그 다음날 침 맞는 신 찍는 걸 누가 하겠나? 정말 하하하 하면서 촬영했다.

촬영하는 동안 매일 일지도 썼다고 하던데.
유준상: 공연하거나 영화를 찍으면 일기나 사진, 글을 남기는데 이번엔 장소가 통영이라 그림도 많이 남기고 감독님이 한 얘기도 적어봤다. 한참을 잊고 있다가 최근에 그 일기를 펼쳐보니까 재밌더라. 감독님이 적어준 ‘황금 갈매기’란 시가 있는데 그건 나밖에 모른다. (웃음) 감독님은 쑥스러워 하는데 읽을수록 많은 게 담겨있는 시다. 혼자 갖고 있다가 삼십 년 뒤에 풀어볼까?

문소리는 사투리를 굉장히 자연스럽게 구사하더라.
문소리: 고향이 부산이다. 초등학교 때까지 부산에서 살았고, 6학년 때 서울로 오긴 했지만 그 말투를 잊을 순 없다. 처음부터 사투리를 쓰기로 했던 건 아닌데 통영 내려가기 직전에 감독님이 사투리를 안 써도 되는데 쓸 수 있냐고 해서 저 부산이에요 했더니 아 그럼 다행이네 좀 써볼까 해서 그렇게 됐다. 다른 사람들은 서울에서 와서 서울말을 쓰니까 섞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술 취하면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사람들한테 잘 보이고 싶을 땐 서울말을 쓰고. (웃음)

“통영에서 보낸 한 달이 너무 즐거웠다”
홍상수 “내가 나이 들고 변한 만큼 영화도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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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내가 나이 들고 변한 만큼 영화도 변한다”
홍상수 “내가 나이 들고 변한 만큼 영화도 변한다”
영화 대사 중에 좋은 것만 본다는 말이 계속적으로 등장하던데,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홍상수 감독: 아직은 나한테 약간 버거운 말인데 그런데도 붙잡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그 말을 붙잡고 있으면 나의 진화를 도와줄 거 같다. 아직 내가 그 단계까지는 가있지 않지만 그 말에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맴도는 말이라 영화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 같다.

에서는 여성 캐릭터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긍정적이다. 남자들은 여전히 찌질하고 미성숙한데에 비해 여자들은 순정이 있기도 하고 그들을 보듬어준다.
홍상수 감독: 계획을 미리 짜서 그렇게 찍은 건 아니고, 그냥 내가 나이 들고 변한 만큼 안에서 짜여 있다가 나오는 것 같다. 여성 인물들을 묘사하는 거나 영화의 변화나 다 내 속에 자연스러운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작품들보면 제주, 제천, 통영 등지에서 찍었다. 장소가 주는 의미가 클 거 같은데, 모두에게 통영은 어떤 의미였나?
홍상수 감독: 어머니 고향이라 구경삼아 갔다가 보니까 좋더라. 거기 사람들도 약간 다르고. 문화가 느껴지고 매력이 있었다. 좋은 것들이 그렇게 조그만 데 갖춰있는 것도,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온 것도 신기하고. 물론 영화 찍을 때는 통영이 주는 것보다도 같이 한 사람들이 주는 게 열배 이상 강하다. 같이 해줘서 정말 감사하다.
윤여정: 얘네들은(함께한 배우들을 가리키며) 술 취해서 한 애들이고 나만 맨 정신으로 연기했다. 체력상 그 술을 먹고 연기 할 수가 없다. 촬영하면서 MT 같다는 말을 했는데 나한텐 훈련 같았다. 통영도 너무 멀고 혼자서 여관방에서 많은 날을 보내려니까 신경질도 났다. 외롭고 힘든 작업인데다 배우로 새로 데뷔하는 기분까지 들고. 얘네들은 아침서부터 거나하게 취해있어서 촬영 나가면 다들 비틀비틀하지. 여관방에서 혼자 머리하면서 여기저기 엄청나게 다치고. 다들 인조이하는데 나만 인조이 못 한 거 같다. 감독이 아마 제일 싫어한 배우가 나일 거다. (웃음)
문소리: 아니다. 선생님 서울 가고 나면 감독님이 늘 하신 말씀이 있다. ‘너무 귀엽지? 저 나이에 어떻게 저렇게 귀여울 수가 있어?’라고. (웃음) 감독님이 사람한테 하는 최고의 칭찬이 ‘귀엽다’다. 통영에서 보낸 한 달이 다시는 올 수 없지만 너무 즐거웠다. (예)지원이랑 이 섬, 저 섬 구경도 다니고. 찍으면서 이렇게 일하면서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는 걸 알게 됐다.
예지원: 마지막 장면에 중식이 나한테 ‘이그, 천사 새끼’라고 하는데, 날 천사로 만들어줘서 너무 감사하다. (웃음) 통영엔 이번에 처음 가봤는데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정말 좋은 것만 보다 온 거 같다. 통영의 태풍, 바람, 수박…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면 정말 행복할 거 같다.
유준상: 통영에서 7월 한 달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한 달 안에 다 겹쳤을까 할 정도로 희로애락을 다 느꼈다. 마지막 촬영 끝나고 김상경이 전복을 사와서 감독님과 아침 열한 시부터 소주 세 병을 먹었는데 그 때가 제일 행복했다. 전복을 최근에도 먹었는데 그 맛이 안 나더라. 언제쯤 그 맛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아침에 소주 먹기도 쉽지 않은데 진짜 물보다 더 맛있었다. (웃음) 다시는 못 올 순간이라 슬프기도 하고 너무 행복했다.
김상경: 오늘 아침에 뉴스를 봤는데 통영에 바람이 많이 분다며 강구안이 나오더라.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갔을 텐데 멈추게 되더라. 통영이 나한테 어떤 의미가 생겼더라.

글. 이지혜 seven@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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