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의 부녀자를 성폭행한 뒤 살해했다. 살해 현장을 재현하고 돌아오는 길에 태연하게 오늘 점심 메뉴를 물었다던 살인마처럼, 피해자의 가족 앞에서도 끔찍한 저주를 내뱉고 스스로가 저지른 일에 죄책감 같은 것은 느끼지 못한다. 영화 <집행자>는 이렇게 잔악한 존재인데도 인간이기는 하니 죽이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이런 짐승만도 못한 놈은 죽여야 하는가를 묻는 대신, 사형 집행자들이 겪는 고통을 통해 간접적으로 사형제도에 대해 질문한다. 국가의 보호 아래 벌어지는 살인인 사형제도에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손을 더해야 하는 교도관들이야말로 제도와 실제의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된 희생자들이기 때문이다.

사형제도에 대한 간접의문문


영화 속에서 사형의 실제 집행을 담당하게 되는 세 교도관 재경(윤계상), 종호(조재현), 김교위(박인환)는 사실 한 사람이다. 거의 시간이 멈춘 것이나 마찬가지인 교도소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보낸 한 사람의 처음과 중간, 그리고 나중을 각각 표현하는 것 같은 세 사람은, 이들이 경험한 교도소에서의 시간에 따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사형 제도를 받아들이게 되는가를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아무 것도 모르고 교도관이 되었다가 일과 사랑 모두에서 끔찍한 폭력의 순간을 경험한 뒤에도 여전히 교도소에 머무르는 신입 교도관 재경을 연기한 윤계상은, 많은 대사 없이도 점차 변화하는 표정과 얼굴의 그늘로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갈무리한다. 사형이 집행되지 않던 시간 동안 사형수와 친구가 된 김교위 역의 박인환은, 뒤늦게 제 손에 묻은 피의 무게를 느끼고 친구를 보내는 한 사람의 얼굴 위로 중년 그 이후의 남자들이 느끼는 삶의 회한까지 함께 담아낸다. 재경과 종호, 김교위는 한 사람의 과거와 미래가 되어 서로를 비추면서, 이들 안에 쌓인 폭력의 상흔이 어떻게든 이들의 삶을 지배할 것임을 보여준다.

사실 <집행자>가 사형제도라는 폭력에 대해 깊이 있는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화는 사형제도에 대해 하나의 입장을 기울어져 있는데, 그 입장만 보여주지 않기 위해 다양한 사건들에 모두 의미를 부여하느라 하나의 이야기로서의 집중력은 떨어진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인 합의 없이 강력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사형제도에 대해 소모적인 논의가 오고가는 지금, “저런 놈은 죽여도 싸지”를 외치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과 피해자, 그리고 그 반대편에 선 사형수가 아니라 사형이라는 무거운 행위에 실질적으로 동참해야 하는 사형집행자의 입장을 통해 그 경계를 재확인 하려는 <집행자>의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것이다. <집행자>는 11월 5일 개봉한다.

글. 윤이나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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