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더 이상 학생들의 꿈과 희망을 길러내는 배움의 전당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 맺힌 원혼과 악랄한 집단 따돌림, ‘미친개’로 대표되는 교사들이 존재하는 공포의 공간이기도 하다. 굳이 <여고괴담> 시리즈를 예로 들지 않아도 실제 학교는 교사가 학생을 때리고, 학생이 교사를 협박하는 등 공포에 가까운 뉴스를 생산해내고 있다. 그 <9시 뉴스>의 공간에서 이제는 살인사건까지 발생했다. 마의 16세를 성공적으로 넘기고 훈훈하게 자란 유승호가 오랜만에 스크린에 등장했지만 여주인공이었던 김소은이 하차하고, 시나리오가 수정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4교시 추리영역>이 지난 7일 롯데시네마 에비뉴엘에서 공개되었다.

전교도 아닌 전국 1등인 정훈(유승호)은 눈엣가시 같던 태규(조상근)와 한 판 붙고, 함께 주번이 되는 벌을 서게 된다. 아무도 없는 체육시간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태규는 주검이 되어있고, 누가 봐도 태규를 죽인 건 정훈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첫 목격자이자 추리소설광인 왕따 다정(강소라)은 체육시간이 끝나는 4교시 전까지 살인사건을 함께 풀 것을 제안한다. 두 아이들에게 남겨진 시간은 단 40분. 그 안에 살인 누명의 위기를 벗어나야함은 물론 학교 시찰을 나온 장학사 일행과도 마주쳐선 안 된다. 의외로 넓은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살인범을 잡기 위해 두 아이들은 정신없기 뛰기 시작한다.

유승호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기 위해 86분을 견딜 수 있다면


추리소설광인 다정은 살인사건을 기다렸다는 듯 증거수집가방을 열어젖히고, 능숙하게 시신의 사진을 찍어댄다. 지문도 프로페셔널하게 채취하고, 잠긴 학교 곳곳의 문도 손쉽게 딴다. 여름에 쏟아지는 공포물이 아닌 추리물임을 당당히 명시하고 있는 <4교시 추리영역>의 추리는 시신 주변의 1차원적인 증거를 실마리로 삼는 데 머물고, 에서 영감을 받은 아이들의 수사는 탐정놀이를 연상시킨다. 그것은 비단 고등학생들이 살인범을 잡는다는 가벼움 때문이 아니다. 꼬마인 코난도, 소년인 김전일도 자주 살인사건의 중심에 서고, 곧잘 해결해내지만 수사의 고리는 헐겁지 않기에 추리극의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4교시 추리영역>은 공포의 쾌감도 추리의 재미도 제공하지 못한 채 휘청거린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로베스 피에르나 토마스 만의 현학적인 문구들은 본래의 울림을 찾지 못하고 공허할 뿐이고, 전체적인 흐름 안에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튀는 조연들의 과장된 연기는 감정이 가장 고조돼야할 순간에도 실소를 터뜨리게 한다. 추리로 시작해 하이틴 로맨스로 마무리되는 마지막엔 탄식을 내지를 수 밖에 없다. ‘신이시여, 왜 우리 승호에게 이런 시련을!’ “영화의 관람 포인트는 승호군의 성인연기”라고 할 만큼 고르지 않은 영화 안에서 유일하게 사춘기 소년의 감정을 사랑스럽게 살려낸 유승호의 감각과 아름다움만이 고군분투한다.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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