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싱가포르 보쿠 필름과 싱가포르 영화위원회는 한국영화 <괴물2>에 총 60억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한국영화에 투자하는 외국 자본의 규모로 볼 때 역대 최대이며, 이 조인식은 제1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PIFAN)의 아시아 판타스틱영화 제작네트워크(이하 NAFF)에서 이루어졌다. 단순한 학술토론이나 아시아 영화인들의 인적 네트워크의 장을 넘어 산업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NAFF는 아시아 영화인들의 영화 제작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시아 장르영화 프로젝트 마켓 ‘잇 프로젝트’, 장르영화 전문교육 및 인재발굴 프로그램 ‘환상영화학교’, 장르영화 산업에 대한 토론의 장인 ‘NAFF 포럼’ 등 다양한 제작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7일간의 일정을 “기분 좋게 마쳤다”는 남종석 운영위원을 만났다.

싱가포르 보쿠 필름과 싱가포르 영화위원회가 <괴물2>에 6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는데, 지금까지 한국영화 투자 규모로는 최고 수준이다. 또 이제 2회째인 NAFF가 거둔 가장 큰 성과이기도 한데.
남종석:
사실 조인식은 본 행사는 아니었다. 작년부터 하고 있었던 ‘스포트라이트’의 일환이었다. 1회 참가국인 중국에 이어 올해는 싱가포르를 선정했는데, 해당 국가의 영화 소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싱가포르의 장르영화 산업 자체를 알리자는 취지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NAFF 개최 한 달 전에 보쿠 필름 쪽에서 연락이 왔다. 청어람과 <괴물2> 투자에 대한 구두계약을 진행 중인데, NAFF의 ‘스포트라이트: 싱가포르’에서 좀 더 논의하면 의미있을 것 같다고. 싱가포르와 한국 영화계의 교류 가능성도 보여줄 수 있어서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사실 이미 한 달 전에 얘기가 오갔고, 열흘 전에 구체적인 계약서를 만들 수 있었다.

“19편 선정작 중 4편은 내년 제작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올해로 2회를 맞는 NAFF는 작년에 비해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세계적인 SF 소설가 테드 창의 강의나 <슈퍼맨 리턴즈>의 제작자 크리스 리 등 참여 게스트들도 화려해졌고, 각 프로그램의 짜임도 견고해지고 있다.
남종석:
부산국제영화제(이하 PIFF)에 부산프로모션플랜(이하 PPP)이 있는 것처럼 PIFAN에는 NAFF가 있다. 규모적으로는 PIFAN의 3분의 1 정도이지만 NAFF와 PIFAN은 서로를 보완해준다. PIFAN이 영화를 상영하고 발굴하는데 특화되어있다면, NAFF는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제작 과정 전반을 다루고 있다. 잇 프로젝트, 인더스트리 프로그램, 환상영화학교처럼 산업적인 부분의 논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하거나 영화인들을 위한 교육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아직 2년 밖에 안됐지만 작년에 비해 올해는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준비한 덕에 싱가포르 영화사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영화진흥위원회도 참여를 했다. 그래서 예산은 작년과 같지만 좀 더 큰 규모가 될 수 있었다.

올해 NAFF는 산업적인 부분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인더스트리 스크리닝의 경우를 비롯해서 실제 경제적인 효과를 거두었나.
남종석:
PIFF처럼 공식적인 필름마켓은 없지만 한국 관계자들이 초대된 해외 선정작이 마음에 들면 NAFF에 온 게스트와 바로 계약을 할 수 있다. 초청된 게스트들이 대부분 계약서에 바로 싸인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특히 프로젝트를 선정해서 투자자들과 연결시켜주는 ‘잇 프로젝트’의 경우 19편 선정작 중 4편은 내년에 제작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반 이상의 투자금을 모았거나, 제작사가 붙은 경우도 있고. 또 ‘스포트라이트: 싱가포르’ 같은 경우 아직은 시나리오 단계임에도 싱가포르 영화위원회에서 25만 달러를 제작비로 지원하는 등 5편의 제작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영화진흥회와 함께 하는 ‘글로벌 기획개발 워크숍 2009’ (이하 KOFIC FDL)은 심사위원들로부터 지난 4년간 가장 신선하고 영화화 가능성이 높은 아이템들이 발굴되었다는 평을 들었다. NAFF가 궁극적으로 필름 마켓이 되고, 그 작품들이 PIFAN에서 상영이 되는 패턴을 구축하는 데 있어 올해가 발판이 되었다.

KOFIC FDL 경우 일대일 멘토링을 했는데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나. 사실 멘토링이란 것은 굉장히 추상적인 개념인데.
남종석:
일단 시나리오 단계의 한국영화 5편을 선정해서 5명의 멘토가 멘토링을 진행한다. 멘토들 각자는 할리우드나 한국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배리 사바스 같은 경우는 미국 영화 연구소에서 영화 시나리오 작법을 수년 동안 가르치고 있고, 이광훈 감독 같은 경우는 감독으로서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 때 필요한 노하우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코치했다. 마이클 마카리나 자크 카디슨은 20세기 폭스사 같은 장르영화 중심의 회사에서 부사장을 했던 사람들이라 장르영화 시나리오를 많이 읽고, 개발한 경험이 있다. 그들은 선정작들의 제작진이 공동제작을 위해 미국에서 설명회를 갖거나 프로모션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일이 조언해줬다. 멘토들은 조금 더 완성도 있는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는 테크닉과 아이디어, 해외 공동작업 시의 노하우를 제공하는데 주력했다.

또 실제로 NAFF 포럼이나 환상영화학교 강의를 듣는 참가자들의 경우, 실질적인 대안이나 제작 노하우를 좀 더 듣고 싶어하더라. 사실 한두 시간의 강의에선 그런 점들이 해소되기 쉽지 않다.
남종석:
포럼이나 토론을 준비할 때 사전에 조사나 준비가 미흡했을 수가 있다. 또 가장 큰 문제점은 그런 노하우를 제공할 수 있는 멘토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 같은 경우도 영어가 가능하면서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제작자는 손에 꼽을 정도이고, 할리우드 제작자들도 시간이 곧 돈인 사람들이라 NAFF에 올 수 있는 사람들이 한정적이다. 그런 제한된 인적 자원 안에서 성격이 뚜렷한 프로그램을 사전에 완벽히 준비한다는 건 도전에 가까운 일이다. KOFIC FDL 같은 경우도 영진위와 함께 하는 것이 결정된 게 두 달 밖에 되지 않았다. 세부 프로그램은 한 달 만에 짜야했고. 그러다보니 미숙한 점이 있었다.

“환상영화학교 참가자가 PIFAN에 진출하는 것이 최종 목표”

비공개로 진행된 현재 영화감독들을 위한 탤런트 랩은 큰 주제가 SF영화였다. 국내에 거의 전무한 SF 장르를 어떤 식으로 소화했나.
남종석:
우선 우리가 여기서 추구한 SF영화는 특수효과를 마구 사용해서 돈만 있으면 아무나 다 만들 수 있는 종류의 SF영화는 아니었다. 예를 들면 장 피에르 주네의 영화나 미셸 공드리의 <비카인드 리와인드>처럼 컴퓨터 기술보다는 아이디어가 앞선 SF영화를 롤모델로 두고 강좌를 진행했다. 우리가 이 수업을 통해 주고자 했던 것은 뛰어난 특수효과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아이디어를 끌어낼 수 있는 자극이었다. 그래서 영화 음악이나 시나리오 작법 등 SF영화를 만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체험하게 했다. 또 영화를 완성한 후 어떻게 세일즈를 할 건지까지 전체적인 가상 체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그런 전반적인 제작과정을 담아내기에 일주일에 불과한 시간은 많이 부족했을 것 같다.
남종석:
사실 각 과정의 한 강좌가 원래는 한 학기를 들어야 완성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적어도 기본적인 핵심이 뭔지를 알 수 있는 자리로 만들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일주일 동안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여름 캠프 같은 거다. (웃음)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는데, 모든 참가자가 만들고 싶은 영화의 계획은 발표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 발표를 기준으로 내년에 몇 명을 선정해서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또 그게 내년엔 영화화되기 위해 잇 프로젝트 마켓에 진출하고, 결과적으로 PIFAN에 상영하는 구조를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그런 이상적인 구조가 가능하려면 우선 참가자들의 수준이 보장 되어야 할 것 같다.
남종석:
그래서 참가자를 선발하는데 명확한 심사기준이 있었다. 우선 단편을 한 편 이상 만들어야 했고, 감독이 아니더라도 영화 제작 현장에 참여한 경험이 있어야 했다. 물론 제일 중요한 건 열정과 감독이 자신만의 세계를 확실히 구축하고 있어야 했다. 그런 규칙 하에 서류심사, 포트폴리오 심사, 일대일 면접을 거쳐 20여명을 선발했다.

영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NAFF 포럼이나 탤런트 랩 외에도 환상영화학교에 공개강좌를 개설하는 등 PIFAN을 찾는 일반 관객들과 접점을 찾으려는 모습도 보였다.
남종석:
NAFF 참가자들을 위한 비공개 랩 뿐 아니라 초청강사들이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사람, 예를 들어 테드 창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SF 소설가라 내한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 문의가 많이 왔다. 그래서 공개강좌로 하는 게 좋겠다고 결정했다. 강의가 열리는 경기아트홀은 500석 규모라 관객 수용에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았고. 아무래도 경기도와 부천시에서 지원을 받고 있기에 부천시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고 싶었다. 이 기조는 앞으로도 유지할 것이다.

해외 게스트 초청상황을 보면 당초에 초대했던 인원을 훨씬 웃돈다. 자비를 들여 NAFF에 참가한 해외 게스트들도 있다고 하던데.
남종석:
아직까지 우리는 게스트들 초대 비용을 전적으로 제공한다. PPP도 7년까지, 홍콩필름마켓도 5년까지 게스트들을 지원했다. 올해 같은 경우도 게스트 지원을 기본으로 했지만 한정된 예산이라 40여명의 초청 인원이 금세 차버렸다. 그런데 NAFF가 소문이 나다 보니까 문의 해오는 분들이 많았고, 자비를 쓸 테니 초청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실제로 6개 회사에서 그런 방식으로 오기도 했다. 1회 때보다 NAFF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산업적으로 풍부한 NAFF를 만들고 싶다”

23일 NAFF가 폐막하는데,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를 낸 프로젝트나 아쉬웠던 점에 대해 말해달라.
남종석:
환상영화학교의 성공이 굉장히 흡족하다. ‘스포트라이트: 싱가포르’도 단순한 영화 소개에서 그친 게 아니라 앞으로 사업을 함께 추진할 수 있을 정도로 싱가포르 영화사들과의 관계가 공고해졌다. 또 심사위원들이 잇 프로젝트 선정작들의 작품성 뿐만 아니라 상업성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이 무척 고무적이다. 물론 세세한 행사 진행에서의 미숙함과 홍보 부족은 아쉽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는 방법을 구체적이고, 효과적으로 시스템화 해야 할 것 같다. NAFF에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 줄 몰랐다, 알았으면 왔을 텐데 등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 적어도 내년에는 그런 일이 없도록 사전에 홍보 작업을 적극적으로 벌일 생각이다.

이제 3번째 NAFF에 대해서도 구상하고 있을 것 같다. 내년 NAFF는 어떤 방향으로 운영될 예정인가?
남종석:
우선 NAFF의 기본적인 3가지 메인프로그램, 잇 프로젝트와 인더스트리 프로그램, 환상영화학교는 지속시킬 것이다. 올해 열렸던 KOFIC FDL 경우는 내년엔 어떤 다른 단체와 하게 될 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계속 영상자료원이나 디지털콘텐츠진흥원 등의 기관과 접촉하고 있다. 그리고 인터스트리 스크리닝이나 배급에 관한 산업적인 측면도 계속 확대, 유지할 생각이다. 이제 두 번째로 치루고 나니까 노하우가 좀 쌓이는 거 같다. (웃음) 무엇보다 산업적으로 훨씬 풍부한 NAFF를 만들고 싶다.

사진제공_ PIFAN

글. 부천=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부천=이진혁 (el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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