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이 돌아왔다. 그것도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살육의 한복판에 선 뱀파이어 헌터로. 일본, 홍콩 등을 돌며 시사회에서 와이어 액션, 검술까지 선보인 의욕을 나타낸 전지현의 영화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이하, <블러드>)가 4일 용산 CGV에서 공개되었다. <블러드>는 원작이 없는 다른 ‘블러드 프로젝트’와 달리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제작됐다. 이는 게임과 소설, 애니메이션 모두 사야라는 뱀파이어 소녀가 중심이지만 각기 다른 시공간적 배경과 독립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영화는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가 제작한 애니메이션과 같은 지하철 신으로 문을 연다. 베트남전이 한창인 일본의 미군 기지에서 벌어진 사야(전지현)의 뱀파이어 사냥에 뱀파이어와 인간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야의 내면적인 갈등, 앨리스(앨리슨 밀러)와의 만남, 아버지의 복수를 첨가했다.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사야의 모습은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 등 슈퍼 히어로들에게서 발견되는 설정과 흡사하다. 더욱이 영화에서 사야는 “마지막 희망”으로 불리며 그녀를 새로운 ‘액션 히어로화’ 하는 움직임이 강하다. 그녀의 영웅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과도한 액션신과 절대 선에 대한 의지는 “상업적인 측면을 생각하다보니 액션에 좀 더 치중”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500억 원을 들인 ‘액션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블러드>가 베트남전과 반전, 미국의 개입이라는 음모론 등 다층적인 세계관을 함축하고 있는 ‘블러드 프로젝트’라는 큰 그림 안에서 의미 있는 퍼즐 조각이 될 수 있을까.

피를 두려워하지 않는 뱀파이어 킬링 머신 사야, 전지현
“감정 연기를 하는 액션배우가 되고자 했다.” 사야는 뱀파이어의 피가 흐르는 스스로를 부정하고 아버지와 사부의 복수를 위해 뱀파이어 헌터의 길을 택했다. 뱀파이어의 우두머리인 ‘오니겐’을 제거하는 것만이 사는 이유인 기계 같은 심장은 우연히 그녀와 엮인 앨리스에 의해 온기를 되찾는다. 원작에서 표현된 투박함에 가까운 거친 사야보다 전지현의 사야는 앨리스와의 교감으로 인간적인 측면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감정을 연결해서 액션을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며 데뷔 이후 최초로 액션 영화에 도전한 전지현은 드라마와 액션 연기 사이에서 느낀 어려움을 토로했다. 인간과 뱀파이어의 정체성과 자신의 뿌리, 영생과 죽음 등 사야의 복합적인 감정을 폭발시키는 데 있어 그녀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와호장룡>, <영웅> 등의 대작들을 만든 제작자, 빌 콩
개봉 전부터 전지현의 할리우드 진출작이다, 아니다를 두고 벌어진 논란을 마무리 지으려는 듯 제작자 빌 콩은 “<블러드>는 전 세계 개봉을 목표”로 했음을 분명히 밝혔다. 영화 <와호장룡>, <영웅> 등의 거작들을 제작하면서 세계적인 제작자로서의 행보에 박차를 가해온 빌 콩은 <블러드>로 “처음으로 한국 배우와 함께 합작해 세계 진출”을 노리고 있다. 영어와 액션 연기가 처음인 전지현에 대한 우려에 “촬영 첫 날부터 전지현을 캐스팅하기를 잘했다고 확신했다. 그녀는 완벽했다”며 만족을 나타냈다. 또 “<블러드>는 총 3부작의 영화”가 될 것이라며 “속편에서도 사야로 전지현 이상의 배우를 생각할 수 없다”고 전지현에 대한 깊은 신뢰를 표했다. 그러나 영화의 대부분을 사야에 의지해야 하는 <블러드>가 전지현의 스타로서의 존재감에 영향을 받지 않는 국가의 관객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관전 포인트
원작에 비해 귀엽다고까지 느껴질 뱀파이어들의 왜소함과 평이한 사야의 과거사 등 다소 느슨한 극 전체의 긴장감은 사야로 분한 전지현에 기대는 부분이 크다. 실제로 그녀는 영어 대사를 “100번씩 외웠다”는 노력이 엿보이듯 대사 처리에 있어 크게 어색한 부분이 없었고, 홀로 고군분투하는 액션 신은 영화 , <트랜스 포터> 등에 참여한 원규 무술 감독에 의해 완성도를 답보했다. 그러나 <와호장룡> 제작사단의 중국식 무협이 반영된 스타일은 전체적인 분위기와 충돌하는 경우가 눈에 띈다. 더욱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다수의 마니아를 확보했던 원작 애니메이션의 인기에 기대기에도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은 흥행으로 가는 장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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