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화 밤 11시 10분
내일은 한국전쟁 발발 59년째가 되는 날이다. 해마다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가고 있다는 한탄 속에서도 국방부와 여러 기념단체가 주관하는 행사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열릴 것이다. 하지만 시대의 망각을 슬퍼하고 분노하는 참전세대의 다른 한편에는 아예 처음부터 잊혀져야 하는 존재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늘 소외된 주변부 편에 서 온 은 6.25전쟁기념일을 앞두고 그 전쟁의 또 다른 아픈 이면, 기지촌 여성들의 현실에 카메라를 비추었다. 그 카메라가 잡아낸 할머니들의 주름진 손발과 쇠락한 쪽방촌은 그 자체로 실존적 소멸의 물리적 풍경이었다. 그 좁고 어두운 방 한 구석에서 서서히 빛바래가는 한 할머니의 젊은 시절 흑백 사진처럼. 종전 후 미군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정부의 지원과 관리 속에서 호황을 누렸던 기지촌의 여성들은 현재 그곳에 50여명 정도 남아 있다. 대부분 천장에서 비가 새고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쪽방에 살고 있지만 그마저도 미군기지 이전과 함께 불어온 뉴타운 바람으로 곧 사라질 운명이다. 역사는 그렇게 개발과 발전의 명목 하에 자꾸만 시대의 그늘을 덮으려 한다. 올해는 ‘기지촌 여성들과 함께하는 여성연대’가 주최하여 기지촌 할머니들이 위안부 할머니들과 공식적으로 첫 만남을 가진 해이기도 하다. 시대의 비극 속에서 망각을 강요당한 여성들의 상처는 여전한데 그들을 이용하고 방기했던 사회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고 아픈 사람들만 자꾸 죽어가고 있다. ‘하나님이 어서 이 목숨을 거둬가 주셨으면……’ 한 할머니의 서글픈 기도가 ‘곧 허물어질 쪽방’ 한구석에 울려 퍼지며 은 그렇게 또 한 번 보는 이의 가슴을 쳤다.
글 김선영

<긴급출동 SOS 24> SBS 화 밤 11시 5분
SBS의 화요일은 ‘솔루션의 날’이다. 초저녁에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심야에는 <긴급출동 SOS 24>가 가정문제 해결사를 자처한다. 그중에서 <긴급출동 SOS 24>는 퍽 영리한 전략으로 꾸준히 고정 시청률을 확보해 온 프로그램이다. 주인공의 비행은 음성변조와 모자이크로 충격을 완화한 덕분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꼬마 악마보다 보기에 덜 불편하고, 최신 심리상담기법과 복지시스템을 동원한 전문가들의 활약은 프로그램의 대의명분을 보장한다. 23일의 긴급출동 대상은 최근 등장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아들(손자)의 폭력’이었다. 폭력 묘사보다 솔루션을 강조한 구성이었지만, 성인 남자가 여든 살 조부모에게 손찌검하는 장면은 보기 괴로웠다. 카메라는 근래 방송에서처럼 조부모에게 생활의 전부를 의존하는 무기력한 남자의 일상을 비춘 뒤, 조손가정에서 자란 과거를 원인으로 지목한 다음 전문가 상담으로 심적 상처를 치유해 가는 남자의 변화를 소개했다. 꾸준한 설득으로 한 가정을 살려낸 제작진의 노력은 가상하지만, 상황의 반복에서 오는 도식화와 허전함은 아쉽다. 비슷한 사례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은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제작진보다 앞서 추론할 정도가 됐을 뿐더러, 가족 심리상담 위주의 솔루션은 은연중에 주인공 가정의 불행을 각자 풀어야 할 숙제로 여기게 한다. 어차피 가정해체가 불가피한 현실이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대안은 오히려 이웃 공동체의 사랑 실천과 사려 깊은 사회안전망 아닐까. 만약 가 그 대안을 보여주기 어렵다면 SBS의 다른 교양 프로그램들이 그 짐을 나누어 맡으면 어떨까, 한다면 역시 순진한 생각일까.
글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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