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사카모토 류이치의 마지막 연주
20여곡을 담은 콘서트 필름
떨리는 숨결, 집중하는 순간들이 주는 아우라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스틸컷. /사진제공=씨네룩스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스틸컷. /사진제공=씨네룩스
故 사카모토 류이치(1952.01.17~2023.03.28)의 마지막 연주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감독 네오 소라)는 단순한 구성으로 관객들의 마음에 안착한다. 단일한 장소, 최소한의 세팅, 어떠한 미사여구도 없이 사카모토 류이치가 연주하는 장면을 조심스레 담아냈다.

1952년생 일본 출생, 사카모토 류이치는 3인조 음악 그룹 YMO(Yellow Magic Orchestra)의 멤버이자, 우리에겐 영화 음악 감독으로 익히 알려져있다. 외국이나 한국에서는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지만, 이는 서양식 표기법이다. 그는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에서 테마곡인 'Merry Christas Mr. Lawerence'를 작곡하며 전세계적으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데이비드 보위와 공동으로 주연을 맡으며 일본군 장교로 출연하기도 한다)
영화 '마지막 황제', '남한산성', '괴물' 스틸컷.
영화 '마지막 황제', '남한산성', '괴물' 스틸컷.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1987), '마지막 사랑'(1990), '리틀 부다'(1993), 피터 코스민스키 감독의 '폭풍의 언덕'(1992),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 이상일 감독의 '분노'(2016), 코고나다 감독의 '애프터 양'(2021) 등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데, 황동혁 감독의 영화 '남한산성'(2017)에서는 매서운 추위보다 참혹한 나라를 잃을 위기에 놓인 비통함을 스크린 위에 새겨넣기도 했다. 지난 11월 29일 국내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2023)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유작이기도 하다.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이러한 사카모토 류이치의 이력이나 필모그래피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저 사카모토 류이치가 지나온 시간의 발자취가 담긴 연주를 관객들에게 제공하는 징검다리 역할로서만 작동할 뿐이다. 다큐멘터리의 첫 장면은 사카모토 류이치가 피아노 연주를 하는 뒷모습이다. 너무나 고요해 적막이 내려앉은 공간에는 피아노 연주 사이에 간간이 들어오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떨리는 숨소리가 들려온다.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스틸컷. /사진제공=씨네룩스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스틸컷. /사진제공=씨네룩스
점점 줌인하며 유영하는 카메라는 연주에 흠뻑 빠져든 사카모토 류이치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거리를 유지하며 다가간다. 어느새 카메라는 다시 빠져나와 제자리를 찾는데, 이는 네오 소라 감독이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를 통해 말하려는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삶이 담긴 연주를 관찰자로서 거리를 유지하며 전달하겠다는 말. 어떠한 설명도 없지만, 카메라의 움직임은 네오 소라 감독이 어떤 말을 하고자 하는지를 머금고 있다.

지나온 세월의 흔적을 정리하듯, 차분한 연주로 자서전을 써 내려가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얼굴에는 파노라마처럼 그간 지나온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무심결에 번져 나오는 순수한 미소에서 소년다움이, 입술을 앙다물고 집중하는 꼿꼿함한 모습에서 청년의 우직함이, 몇백 번을 반복했을 연주를 마지막으로 펼쳐놓는 노인의 초연함이 엿보이는 듯하다.

고독하고 쓸쓸하다기보다는 일종의 비장함이 느껴지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연주는 103분가량의 러닝타임 안에서 계속된다. 다큐멘터리 안에 삽입된 20여곡을 직접 선곡 및 편곡, 녹음 작업까지 했다는 사카모토 류이치는 '한번 더 납득할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본인의 의지처럼 치열하게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2022년 9월 8일부터 9월 15일까지 총 8일간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암 투병 중이었던 사카모토 류이치는 하루 3곡 정도를 2~3번의 테이크를 거쳐 완성해냈다.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스틸컷. /사진제공=씨네룩스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스틸컷. /사진제공=씨네룩스
중간중간 이게 아니라는 듯, '쓰읍' 하며 피아노 건반에서 손을 떼고는 같은 구간을 반복해서 연주하는 장면은 특히나 인상적이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을 대하는 자세처럼 느껴지는 이 장면은 필모그래피를 가득 채운 모든 작품이 허투루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작품의 매끄러움을 위해서 해당 장면을 잘라낼 수도 있었을 테지만, 네오 소라 감독은 그 과정마저 연주의 일부분이라는 듯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다시 합시다", "잠깐 쉬죠. 무지 애쓰고 있거든"이라는 대사가 전부지만, 유독 마음에 오래 남는 순간 중 하나다. 그 외에도 사카모토 류이치의 안경에 비친 피아노 건반, 실루엣, 피아노 페달, 마이크, 의자 등의 인서트는 공간의 분위기와 질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스틸컷. /사진제공=씨네룩스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스틸컷. /사진제공=씨네룩스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2018), '류이치 사카모토: 에이싱크'(2018)가 사카모토 류이치를 구성하는 키워드를 펼쳐놓는 방식으로 보여줬다면,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외부 요인들을 모두 소거하고 오롯이 음악과 사카모토 류이치만을 남겨뒀다.

마지막 장면은 모든 연주가 끝난 뒤, 연주자가 사라진 피아노가 스스로 연주하고, 누군가 공간을 나가는 발걸음 소리만 들려온다. 마치 사카모토 류이치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음악만은 그 자리에 남아 영원히 함께한다는 것처럼.

한 가지 아쉬운 점은 20여 곡의 이름을 따로 표기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그간 영화를 보던 감상법과는 달리, 잠시 눈을 감고 온전히 연주를 느껴보는 것도 추천한다. 어떤 때는 눈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것도 좋을 테니까. 그의 연주가 하나의 언어가 되어 그대에게 말을 걸어줄 것이다.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12월 27일 개봉. 러닝타임 103분. 전체 관람가.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연주곡 세트리스트다.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SET-LIST

01: lack of love
02: BB
03: andata
04: solitude
05: for Johann
06: aubade 2020
07: ichimei - small happiness
08: mizu no naka no bagatelle
09: bibo no aozora
10; aqua (*note: the sequence with “piano tuning break”)
11: tong poo
12: the wuthering heights
13: 20220302 - sarabande
14: the sheltering sky
15: 20180219 (w/prepared piano)
16: the last emperor
17: trioon
18: happy end
19: merry christmas Mr. Lawrence
20: opus - ending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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