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정훈이 한국을 떠났던 이유를 밝혔다.
지난 2일 방송된 MBN '특종세상'에서는 김정훈의 근황이 공개됐다.
이날 방송에서 원조 하이틴스타 배우 이승현이 김정훈의 소식을 알고 있다고. 이승현에게 김정훈은 1970년대 전성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이자 콤비였다고. 이승현은 "1960년대, 1970년대 대 스타라고 볼 수 있다. 도피했다, 빚을 져서 나갔다 별의별 얘기가 소문으로 났지만, 한국에 다시 정착해서 생활을 다시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박준규는 "우리 아버지랑 같이 연기할 정도의 대선배님이고 원로배우시다. 연기 생활한 지 50~60년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제가 이 원로 대선배님한테 반말한다. 귀엽고, 물어주고 싶고, 깨물고 싶다. 그분이 예뻐서 볼을 많이 꼬집히지 않았나?"라고 힘을 보탰다.
이승현과 박준규가 말한 사람은 바로 '꼬마신랑' 김정훈이었다. 김정훈은 4살에 데뷔해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장한 원조 국민 남동생이었다. 귀여운 외모와 나이답지 않은 연기력까지 갖춘 최고의 아역스타였다. 이후 하이틴 스타 반열에 올라섰지만 돌연 자취를 감췄다고.
김정훈은 두 곳에 집이 있다. 오래전에 미얀마로 이민을 떠나 그곳에 정착했다. 3년 전 일 때문에 귀국했다가 지금까지 떠나지 못한 건 이곳에 마음이 묶였기 때문. 아내, 아이들과 생이별을 감수하면서까지 당분간 한국에 있기로 한 건 부모님 때문이었다. 예전과 달리 눈에 띄게 연로해진 부모님의 모습에 그냥 떠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만 같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정훈은 "1968년에 '꼬마신랑'이 대히트를 쳤다. 그러면서 '미워도 다시 한번'이나 '꼬마'가 들어가는 영화 수십 편들이 나왔다. 그거를 계속 찍었다"고 밝혔다. 이어 "한 달에 대본이 들어오면 거의 열 작품씩 들어온다. 한꺼번에 찍는 거다. 그때 집 한 채에 100만원쯤 주면 샀었다. 영화 하나 찍어서 20만 원 받는다 그러면 세 작품, 네 작품 찍으면 얼마냐. 집 한 채 사는 거나 마찬가지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정훈은 "그때는 내 시간이 없었고 내가 하고 싶은 걸 못 했다. 소풍도 못가, 수학여행도 못 가, 애들하고 놀지도 못하니까 고민이 되기 시작하더라.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라며 "더 들어오는 영화를 받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대만으로 나가버렸다. 어디 가서 보이지 않으니까 죽었다는 소문도 났다"고 털어놨다.
김정훈은 "너무 오래 떠나서 있다 보니까 어떻게 다시 시작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외국 왔다 갔다 하면서 보고 배웠던 걸 가지고 조그맣게 사업을 시작했다"며 "속된 말로 당했다. 심근경색을 앓고 쓰러지고 손을 완전히 뗐다. 일이 안 되고 망가지고 이러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배신감, 배반감 이런 거 있지 않나. 그때까지도 나를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까 한국이 너무 싫어지더라"고 말했다.
강민경 텐아시아 기자 kkk39@tenasia.co.kr
지난 2일 방송된 MBN '특종세상'에서는 김정훈의 근황이 공개됐다.
이날 방송에서 원조 하이틴스타 배우 이승현이 김정훈의 소식을 알고 있다고. 이승현에게 김정훈은 1970년대 전성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이자 콤비였다고. 이승현은 "1960년대, 1970년대 대 스타라고 볼 수 있다. 도피했다, 빚을 져서 나갔다 별의별 얘기가 소문으로 났지만, 한국에 다시 정착해서 생활을 다시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박준규는 "우리 아버지랑 같이 연기할 정도의 대선배님이고 원로배우시다. 연기 생활한 지 50~60년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제가 이 원로 대선배님한테 반말한다. 귀엽고, 물어주고 싶고, 깨물고 싶다. 그분이 예뻐서 볼을 많이 꼬집히지 않았나?"라고 힘을 보탰다.
이승현과 박준규가 말한 사람은 바로 '꼬마신랑' 김정훈이었다. 김정훈은 4살에 데뷔해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장한 원조 국민 남동생이었다. 귀여운 외모와 나이답지 않은 연기력까지 갖춘 최고의 아역스타였다. 이후 하이틴 스타 반열에 올라섰지만 돌연 자취를 감췄다고.
김정훈은 두 곳에 집이 있다. 오래전에 미얀마로 이민을 떠나 그곳에 정착했다. 3년 전 일 때문에 귀국했다가 지금까지 떠나지 못한 건 이곳에 마음이 묶였기 때문. 아내, 아이들과 생이별을 감수하면서까지 당분간 한국에 있기로 한 건 부모님 때문이었다. 예전과 달리 눈에 띄게 연로해진 부모님의 모습에 그냥 떠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만 같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정훈은 "1968년에 '꼬마신랑'이 대히트를 쳤다. 그러면서 '미워도 다시 한번'이나 '꼬마'가 들어가는 영화 수십 편들이 나왔다. 그거를 계속 찍었다"고 밝혔다. 이어 "한 달에 대본이 들어오면 거의 열 작품씩 들어온다. 한꺼번에 찍는 거다. 그때 집 한 채에 100만원쯤 주면 샀었다. 영화 하나 찍어서 20만 원 받는다 그러면 세 작품, 네 작품 찍으면 얼마냐. 집 한 채 사는 거나 마찬가지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정훈은 "그때는 내 시간이 없었고 내가 하고 싶은 걸 못 했다. 소풍도 못가, 수학여행도 못 가, 애들하고 놀지도 못하니까 고민이 되기 시작하더라.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라며 "더 들어오는 영화를 받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대만으로 나가버렸다. 어디 가서 보이지 않으니까 죽었다는 소문도 났다"고 털어놨다.
김정훈은 "너무 오래 떠나서 있다 보니까 어떻게 다시 시작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외국 왔다 갔다 하면서 보고 배웠던 걸 가지고 조그맣게 사업을 시작했다"며 "속된 말로 당했다. 심근경색을 앓고 쓰러지고 손을 완전히 뗐다. 일이 안 되고 망가지고 이러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배신감, 배반감 이런 거 있지 않나. 그때까지도 나를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까 한국이 너무 싫어지더라"고 말했다.
강민경 텐아시아 기자 kkk39@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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