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식 평론가가 추천하는 이 작품]
수많은 관객에게 사랑 받는 대작부터 소수의 관객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숨은 명작까지 영화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텐아시아가 '영화탐구'를 통해 영화평론가의 날카롭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우리 삶을 관통하는 다채로운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박태식 평론가가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미스비헤이비어'입니다.
성적 대상화를 국민 스포츠로 만든 세계적인 축제 미스월드에 맞서 진정한 자유를 외친 여성들의 유쾌한 반란을 담은 이야기로, 다채로운 여성 캐릭터들의 주체적인 여성 서사를 다뤄 호평 받았습니다.
![영화 '미스비헤이비어' 포스터 / 사진제공=판씨네마](https://img.hankyung.com/photo/202009/BF.23662548.1.jpg)
'미스비헤이비어'(감독 필립파 로소프)를 보면서 이제까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여성해방운동(Women's Liberation Movement)'이라는 용어가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 '여성해방이 인간해방'이라는 구호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난 예쁘지 않아요, 난 추하지도 않아요, 난 단지 화가 났을 뿐!"이라는 말이 유래된 곳 등등이다. 내게는 셋 다 익숙한 어휘들인 까닭에 영화에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인류를 움직인 중대한 역사 하나를 공부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최초로 백인 아닌 유색인종이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뽑힌 것도 70년 미스월드 대회였다.
![영화 '미스비헤이비어' 스틸 / 사진제공=판씨네마](https://img.hankyung.com/photo/202009/BF.23662595.1.jpg)
세 여성 외에 미스월드 대회 전체기획자인 에릭 몰리(리스 이반)와 대회에 특별초대 손님으로 출연한 미국 코미디언 밥 호프(그렉 키니어)도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말하자면 주인공이 다섯이나 되는 셈이다. 이 다섯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가 미인대회 당일 날 한 곳에서 만난다. 그러니 관객 입장에서는 차분하게 미스월드 행사 당일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이야기 전개에 긴장감을 한껏 높인 수준 있는 연출이라 하겠다.
![영화 '미스비헤이비어' 스틸 / 사진제공=판씨네마](https://img.hankyung.com/photo/202009/BF.23662587.1.jpg)
돌이켜 보면 왜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 전 세계로 생방송 되는 가운데 벌어졌는지 궁금해진다. 오늘의 시각에서 몹시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 말이다. 영화에서는 모든 문제가 가부장적 사고로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여자란 본디 가정주부로서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하고, 남성들의 일에 참견하지 말아야하며, 혹 대외활동을 하더라도 남성에게 순종적이어야 한다. 그러니 미인대회에 나와서 남성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일은 장려 받아 마땅하다. 영화 곳곳에서 어떻게 남성들의 여성비하적인 시각이 드러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길 바란다.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을 다큐멘터리 감각으로 풀어냈다. 그래서 미스월드 대회 후 주인공들의 행적을 뒤쫓았는데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독립된 인격체로 스스로의 삶을 자유롭게 선택하며 살아간 것이다. 역사학 교수로, 고등 법무관으로, 그리고 조산원으로 자신의 앞날을 개척했는데 그들의 행동 자체가 여성해방운동의 살아있는 증거다.
![영화 '미스비헤이비어' 스틸 / 사진제공=판씨네마](https://img.hankyung.com/photo/202009/BF.23662586.1.jpg)
영화를 보면서 오늘날 한국에서 대세를 이루는 이른바 '걸 그룹'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A(남자 MC)씨의 엔진에 부스터를 달아줄 'XX소녀'의 무대를 보여드립니다"라는 소개를 받고 무대에 오른 여섯 명의 XX소녀들이 과연 인격으로 판단 받을 수 있을까. '미스비헤이비어'에 그려진 상황과 소녀들의 성을 상품화시키는 풍조가 만연한 우리나라와 과연 무엇이 다를까. 좋은 영화를 보고나서 괜스레 우울한 맘이 든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박태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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