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무환(無患) : 영화를 보면 근심이 없음을 뜻한다
<신세계>의 부라더 케미 황정민과 이정재가 7년 만에 다시 뭉쳤다. 코로나 탓에 마블 DC코믹스 디즈니 등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전무한 노마크 상황이다. 이런 히트 요인과 우호적인 경쟁구도속에서 등장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술술 넘어가는 만화책이나 무협지처럼 108분의 런닝타임이 훌쩍 지나간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극장문을 나설 때 영화의 잔상이 거의 남지 않는 공허함은 어쩔 수 없다.
영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인천, 도쿄, 태국을 오가는 숨가쁜 로케이션의 회전부터가 그렇다. 한국 영화로는 흔치 않게 영화의 80%를 태국에서 찍었다는 국제화는 인정해 줄만 하다. ‘닥치고 액션’을 표방한 영화인 만큼 태국 지방 도시의 시장과 도로에서 펼쳐지는 카 체이싱, 격투신, 기관총과 수류탄까지 동원한 총기 액션 등 한국 액션 영화의 스케일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 온통 화이트 패션에 현란한 문신을 한 이정재의 스타일부터 신 스틸러로 트랜스 젠더역(박정민)을 활용한 것까지 디테일에 신경쓴 흔적도 역력하다.
그러나 색깔만 예쁘게 입힌다고 좋은 그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궁금증을 해소해줘야할 대목에선 그 답이 생략되거나 애매모호한 대사로 뭉개지고, 정작 궁금증을 유발해야 할 대목에선 답이 너무 뻔히 보인다. 한마디로 스토리 구조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국정원 출신의 청부 살인업자 인남(황정민)은 야쿠자 두목의 암살로 마지막 미션을 끝내고 파나마에서 은둔 생활을 하려 한다. 그러나 마지막 청부 살인의 상대는 사람을 거꾸로 매달고 배를 갈라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 백정 레이(이정재)의 형이다. 레이는 형의 복수를 위해 인남을 쫓고, 인남은 8년간 떨어져 있던 옛 애인의 죽음과 함께 자신에게 딸이 있었음을 알게 되고 그 딸을 찾아 나선다. 복수를 위해 인남을 쫓는 레이와, 딸을 찾아 나선 인남이 서로 맞부딪치며 펼치는 액션이 영화의 기둥 스토리다. 그러나 레이에게 형이 어떤 존재였기에, 그토록 복수에집착하는지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하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감독은 레이의 대사 한마디로 더 묻지 말라고 하는 듯 하다. 영화는 인남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트랜스젠더 유이를 빼곤, 인남과 레이 두 사람간의 추격, 복수전의 사실상 액션 버디무비로 전개된다. 그러다보니 인남이 새롭게 맞닥뜨리는 위기에는 늘 레이가 등장하고, 관객은 어느 순간부터 다음 장면이 연상되는 클리셰 탓에 몰입도가 떨어진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포맷과 모티브를 차용하는 영화는 얼마든지 있고, 그 자체가 꼭 비난거리는 아니다. <무간도>를 모티브로 삼은 <디파티드>로 마틴 스코세이지는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을 휩쓸지 않았는가. <다만악>은 토니 스콧 감독, 덴젤 워싱턴 주연의 <맨 온 파이어>와 이정범 감독, 원빈 주연의<아저씨>와 닮은 구석이 적지 않다. 두 영화 모두 젊은 여자 아이를 구하는 전직 특수부대원 출신들의 복수극을 다루고 있다. 이들 영화에서는 캐릭터들의 고뇌와 복수를 해야 하는 이유가 절박하게 다가 온다. <맨 온 파이어>에서는 과거 수많은 살인탓에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자살까지 시도한 덴젤 워싱턴이 자신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고 있는 어린 소녀 다코타 페닝의 일기장을 보곤 삶의 의미를 찾고, 결국자신의 목숨과 맞바꾸는 복수·구출 작전에 나선다. <아저씨>의 원빈은 조직에서 버림받고 아내까지 잃은 이후 고독한 전당포 주인으로 살고 있는 자신에게 ‘옆집 아저씨’라고 부르며 아빠처럼 따르는 김새론의 구출에 자신의 전부인 ‘오늘’을 건다. 기독교 주기도문에서 따온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제목은 구원을 의미하는 듯 하나, 영화를 보면서 그 뜻이 그리 와닿지는 않았다. 이 역시 <맨 온 파이어>에 나오는 로마서 12장 21절(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을 연상케 한다. <다만악>에서 레이의 나름 인상적인 대사 한마디. “내 손에 죽기 전에 인간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뭔지 아나? 이럴 필요까지 없지 않느냐는 말이야” 이는 코엔 형제의 <노인을위한 나라는 없다>의 사이코 패스 살인마 안톤 쉬거의 명대사 “사람들은 늘 똑같이말해. 이럴 필요까지는 없잖아요라고”의 사실상 표절이다.
정통 느와르라기 보다는 대중 액션을 지향하며 15세 관람가로 만든 영향인지 영화가 너무 착하다. 잔인한 분위기는 풍기지만, 정작 소름 끼칠 장면은 없다. 그러다 보니 심장이 쫄깃쫄깃 해질 긴장, 스릴을 느낄 대목이 많지 않다. 욕설이 없지만 폭소 또한 터지지 않는다. 그저 빠른 전개 속에 황정민과 이정재간의 1회전, 2회전, 3회전이 이어지는 느낌이다. 아무리 액션의 신세계를 추구했다고 해도, 영화에는 서사와 메시지가 있어야 하지 않을런지.
글. 윤필영
주말 OTT 뽀개기가 취미인 보통 직장인. 국내 한 대기업의 영화 동호회 총무를 맡고 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시각으로 영화 이야기를 전해 준다.
영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인천, 도쿄, 태국을 오가는 숨가쁜 로케이션의 회전부터가 그렇다. 한국 영화로는 흔치 않게 영화의 80%를 태국에서 찍었다는 국제화는 인정해 줄만 하다. ‘닥치고 액션’을 표방한 영화인 만큼 태국 지방 도시의 시장과 도로에서 펼쳐지는 카 체이싱, 격투신, 기관총과 수류탄까지 동원한 총기 액션 등 한국 액션 영화의 스케일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 온통 화이트 패션에 현란한 문신을 한 이정재의 스타일부터 신 스틸러로 트랜스 젠더역(박정민)을 활용한 것까지 디테일에 신경쓴 흔적도 역력하다.
그러나 색깔만 예쁘게 입힌다고 좋은 그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궁금증을 해소해줘야할 대목에선 그 답이 생략되거나 애매모호한 대사로 뭉개지고, 정작 궁금증을 유발해야 할 대목에선 답이 너무 뻔히 보인다. 한마디로 스토리 구조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국정원 출신의 청부 살인업자 인남(황정민)은 야쿠자 두목의 암살로 마지막 미션을 끝내고 파나마에서 은둔 생활을 하려 한다. 그러나 마지막 청부 살인의 상대는 사람을 거꾸로 매달고 배를 갈라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 백정 레이(이정재)의 형이다. 레이는 형의 복수를 위해 인남을 쫓고, 인남은 8년간 떨어져 있던 옛 애인의 죽음과 함께 자신에게 딸이 있었음을 알게 되고 그 딸을 찾아 나선다. 복수를 위해 인남을 쫓는 레이와, 딸을 찾아 나선 인남이 서로 맞부딪치며 펼치는 액션이 영화의 기둥 스토리다. 그러나 레이에게 형이 어떤 존재였기에, 그토록 복수에집착하는지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하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감독은 레이의 대사 한마디로 더 묻지 말라고 하는 듯 하다. 영화는 인남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트랜스젠더 유이를 빼곤, 인남과 레이 두 사람간의 추격, 복수전의 사실상 액션 버디무비로 전개된다. 그러다보니 인남이 새롭게 맞닥뜨리는 위기에는 늘 레이가 등장하고, 관객은 어느 순간부터 다음 장면이 연상되는 클리셰 탓에 몰입도가 떨어진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포맷과 모티브를 차용하는 영화는 얼마든지 있고, 그 자체가 꼭 비난거리는 아니다. <무간도>를 모티브로 삼은 <디파티드>로 마틴 스코세이지는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을 휩쓸지 않았는가. <다만악>은 토니 스콧 감독, 덴젤 워싱턴 주연의 <맨 온 파이어>와 이정범 감독, 원빈 주연의<아저씨>와 닮은 구석이 적지 않다. 두 영화 모두 젊은 여자 아이를 구하는 전직 특수부대원 출신들의 복수극을 다루고 있다. 이들 영화에서는 캐릭터들의 고뇌와 복수를 해야 하는 이유가 절박하게 다가 온다. <맨 온 파이어>에서는 과거 수많은 살인탓에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자살까지 시도한 덴젤 워싱턴이 자신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고 있는 어린 소녀 다코타 페닝의 일기장을 보곤 삶의 의미를 찾고, 결국자신의 목숨과 맞바꾸는 복수·구출 작전에 나선다. <아저씨>의 원빈은 조직에서 버림받고 아내까지 잃은 이후 고독한 전당포 주인으로 살고 있는 자신에게 ‘옆집 아저씨’라고 부르며 아빠처럼 따르는 김새론의 구출에 자신의 전부인 ‘오늘’을 건다. 기독교 주기도문에서 따온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제목은 구원을 의미하는 듯 하나, 영화를 보면서 그 뜻이 그리 와닿지는 않았다. 이 역시 <맨 온 파이어>에 나오는 로마서 12장 21절(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을 연상케 한다. <다만악>에서 레이의 나름 인상적인 대사 한마디. “내 손에 죽기 전에 인간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뭔지 아나? 이럴 필요까지 없지 않느냐는 말이야” 이는 코엔 형제의 <노인을위한 나라는 없다>의 사이코 패스 살인마 안톤 쉬거의 명대사 “사람들은 늘 똑같이말해. 이럴 필요까지는 없잖아요라고”의 사실상 표절이다.
정통 느와르라기 보다는 대중 액션을 지향하며 15세 관람가로 만든 영향인지 영화가 너무 착하다. 잔인한 분위기는 풍기지만, 정작 소름 끼칠 장면은 없다. 그러다 보니 심장이 쫄깃쫄깃 해질 긴장, 스릴을 느낄 대목이 많지 않다. 욕설이 없지만 폭소 또한 터지지 않는다. 그저 빠른 전개 속에 황정민과 이정재간의 1회전, 2회전, 3회전이 이어지는 느낌이다. 아무리 액션의 신세계를 추구했다고 해도, 영화에는 서사와 메시지가 있어야 하지 않을런지.
글. 윤필영
주말 OTT 뽀개기가 취미인 보통 직장인. 국내 한 대기업의 영화 동호회 총무를 맡고 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시각으로 영화 이야기를 전해 준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