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욱 감독 “기대와는 반대로 초반 코미디에 집중하고 있다”" />
김병욱: 웃으면서 한 이야기인데 제목이 그렇게 나왔다. 하지만 그 때로 돌아간다 해도 결말은 변함이 없었을 거다. 사과하고 싶지도 않고. 물론 시트콤의 취지가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이고 나 역시 내 작품으로 사람들이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은 있다.
“과연 끝까지 완주를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김병욱 감독 “기대와는 반대로 초반 코미디에 집중하고 있다”" />
첫 녹화를 끝내고 보니 어떤가.
김병욱: 사실 녹화 전까지 걱정이 많았다.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늘 생각하는 성격이다 보니 더 그랬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특히 윤계상의 캐릭터가 조금 밋밋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배우가 잘 살려주고 있다. 서지석의 경우도 리딩과 달리 녹화를 하니 좀 낫더라. 두 번째 녹화를 하면서 안내상의 느낌이 정말 좋다는 생각을 했다. 감을 확실히 잡은 것 같다.
의 가장 큰 특징이 아이들과 노인 캐릭터가 빠져 있다는 거다. 이건 어떤 방식으로 작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밤샘도 잦고 점점 무리한 진행이 많을 수밖에 없는 환경일테니.
김병욱: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 늘 미안하지만 현장에서 아이들의 편의를 못 봐주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전 시리즈를 함께 하신 이순재 선생님은 당신만을 위한 특별한 환경을 전혀 원하지 않는 분이셨다. 하지만 아무래도 어른들을 배려를 해드려야 하는 마음 같은 게 있게 마련이니까.
노인과 아이들의 부재로 인한 코미디 상황을 만들어내는 부분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김병욱: 어렵다 당연히. 지금은 시간이 있으니 다행인데 나중에는 이 점이 얼마나 큰 장애로 작용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많이 불안하다. 솔직히 예전엔 아이템이 없으면 이순재 선생님이 ‘네버 엔딩 스토리’ 같은 노래 한곡 만 불러도 커버가 되거나, 해리가 패러디만 해도 되는, 손쉬운 코미디가 가능했다면 이제는 그런데 기댈 수가 없어졌다. 게다가 주요인물들이 나이대가 몰려있고 겹치니까 이야기가 중복될 가능성도 높다. 또한 모든 인물이 등장부터 소멸까지 자기 완결성을 가져하는데, 등장인물들이 많다 보니 과연 그걸 꼼꼼히 담아 낼 수 있을까, 너무 욕심을 부린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다. 뒤가 어떻게 될까.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까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엷어지는 편인데 과연 끝까지 완주를 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완주를 할까 그런 걱정이 많이 든다.
드디어 이순재를 중심으로 성을 바꿔야하는 ‘이씨 집안’ 구도에서 벗어났다. (웃음) 게다가 남매로 등장하는 윤유선과 윤계상은 실제 성이 같다.
김병욱: 우연히도 캐스팅 해 놓고 보니 그랬다. 이번에 유난히 이름이 비슷한 배우들이 많다. 지석, 지선, 하선처럼 말이다. 특히 계상, 내상! 두 사람이 백허그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때 “계상과 내상, 이름조차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둘은 너무 다른 인간이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오기도 한다. 실제 이 두 사람은 극 중에서 가장 반대되는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다. 배우들 실명을 쓰다 보니 부수적으로 얻어진, 작지만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윤계상은 캐스팅을 해 놓고 캐릭터를 잡아간 케이스라고 들었다.
김병욱: 윤계상이 아니었다면 여고생 지원과의 구도는 포기했을 것 같다. 윤계상에게는 나이가 있지만 그런 관계 역시 부담스러워 보이지 않는 풋풋함이 있어서 이걸 밀어붙일 수 있었다. 이후 중요한 멜로가 진행되는 경우라 약간 종합적인 인간으로 설정했는데 아무래도 시트콤이라 다른 캐릭터에 비해 빵빵 터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녹화를 해보니까 다른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강승윤의 등장이 의외였다.
김병욱: 큰 비중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등장한다. Mnet 를 봤는데 처음엔 그 친구 때문에 내가 응원하던 사람들이 떨어지니까 좀 싫었다. 어느 순간 윤종신 말대로 가진 건 요만큼인데 자신감은 정말 이만큼인,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이 매력적이었고 그걸 캐릭터에 이용해보고 싶더라. 고등학교 중퇴하고 혼자 서울에 올라와서 혼자 사는 아이인데 친구들이 교복을 입으니까 교복도 혼자 맞춰서 가내복처럼 입고 다닌다. 그 나이 되도록 꿈이 대통령일 정도라 어떤 이들이 보기에는 약간은 이상해 보이는 전형적인 경상도 의리남이다.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배우간의 화학 작용을 보고 싶다” │김병욱 감독 “기대와는 반대로 초반 코미디에 집중하고 있다”" />
젊은 층이 많이 포진되어 있어서 전체적으로 극의 속도감이 빨라지고 세질까?
김병욱: 글쎄 사실 속도로 치자면 어른과 아이가 나올 때 더 빠르다. 막 생떼를 쓰면서 끝내도 되니까. (웃음) 하지만 가끔 과한 설정이나 요구를 할 때 덜 부담스럽긴 하다. 예를 들어 짜장면을 10초 안에 어떻게 먹겠니? 하면 이 친구들은 그냥 편하게 해볼게요, 하는 식이다. 대신 감정을 다룰 때 젊은 아이들은 너무 오글거려도 안 되고 어느 정도 쿨하게 끌고 가야 하는 데 그게 더 시간과 공이 들어가긴 한다.
고영욱이 캐스팅 된 것은 정말 덕인 건가? (웃음)
김병욱: 원래 고영욱을 좋아하긴 했는데, 그 기사를 읽게 되었다. 기사는 늘 빠지지 않고 읽는 편이니까. 그런데 고영욱이 연습 때는 잘했는데 첫 녹화는 되게 긴장하더라. 흥분해서 말하는 연기를 하는데, 너무 긴장이 되니까 차렷 자세로 몸은 안 움직이고 얼굴만 흥분하는 식으로. (웃음) 고영욱 뿐 아니라 이번에 같이 하는 배우들이 모두 선하고, 그렇다고 무르기만 한 건 아니고, 마인드가 너무 좋아서 사람들 관계 속에 스트레스 받는 일이 거의 없다.
아무래도 시트콤은 방영 기간도 길고 등장인물도 많다 보니 배우 캐스팅에 있어서 인간성도 무시 못 할 제작 환경 중 하나일 것 같다.
김병욱: 나는 늘 성품이 50% 이상이라고 이야기 한다.
지난 시리즈를 돌이켜보면 ‘** 라인’으로 불리워지는 각기 다른 커플에 대한 지지로 패가 나뉘고 때론 그것이 작품 전체의 완성도 이상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다.
김병욱: 실제 배우들이 사랑에 빠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극 내에서는 그 과정이 진짜 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냥 처음부터 화살표 그어 놓고 누구는 누구랑 커플 될 운명, 이렇게 정해 놓는 게 너무 기계적이니까. 이번에도 누가 누구랑 연결돼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 하지만 사실 정해놓은 건 없다. 그래서 배우들도 불안할 거다. 물론 어느 정도의 밑그림이 있지만 결국엔 자연 발생적으로 되어간다고 믿는다. 시청자들이 쟤하고 쟤하고 연결되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믿는 걸 따라가는 느낌으로 열어 놓은 거다.
어떻게 보면 그 부분은 리얼리티 쇼에 가까운 것도 같다. 배우 스스로 되게 열심히 하게 만드는 악마의 제작진 아닌가. (웃음) 뭔가 커플 라인에 끼지 못하면 자연도태 될지도 모르니까.
김병욱: 에이, 그런 거만한 마인드는 아니다. 만약 배우들에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으니 얼마나 잘하는지 보겠어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라면 너무 오만한 거다. 대신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배우들 간의 화학 작용을 자연스럽게 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감히 시청자들의 마음과 제작진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청자들이 보기 좋다고 생각하는 커플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사실 그런 관심은 조금 불편하긴 하다. 물론 멜로가 서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마치 10명이 나오면 그들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 짝짓기를 해야 하는 것 같은 강박이 느껴지니까. 그렇게 말해놓고 그걸로 시청률 올릴 거면서! 라고 말하면 어쩔 수 없지만. (웃음)
하지만 의 경우는 연애가 가능한 연령대의 인물들이 다수로 등장하다보니 그 러브라인에 대한 과열이 예상되긴 한다.
김병욱: 아마도 김병욱이 1, 2에서 그 러브라인으로 재미를 봤으니 이번엔 뽕을 뽑을 거다, 항간에는 6각 7각 8각으로 엮을 거다, 라는 예상들을 하는데. (웃음) 솔직히 말해서 그럴 마음이 별로 없다. 같은 작품을 보면 인물들이 끊임없이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데 그것이 꼭 연인관계이기만한 건 아니다. 사고나 경험으로 연결되기도 하니까. 오히려 기대와는 반대로 이번엔 초반엔 멜로보다는 코미디에 집중하고 있다.
“시트콤이 꼭 가져야 되는 것은 감정선과 동시대성” │김병욱 감독 “기대와는 반대로 초반 코미디에 집중하고 있다”" /> (이하 ) 이후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1년 반이 훌쩍 지났다. 어떻게 지냈나.
김병욱: 후유증이 좀 길긴 했다. 어릴 때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여운이 좀 길듯이, 아무리 작품이지만 살아 숨 쉬던 인물들을 보내고 나면서 오는 후유증은 항상 있었다. 하지만 은 작품이 끝난 것에 대한 아쉬움 이상으로 근본적인 뭔가가 있었다. 우울증 비슷한. 기억하겠지만 끝나고 와 인터뷰 할 때도 울컥 눈물이 나기도 했으니까. 사실 우울증이라는 말조차 어느 정도 미화된 부분이 있을 것 같기도 해서 지금 생각하면 좀 부끄럽기도 하다. 어쨌든 3, 4개월은 그런 기간이 있었다. 그 우울의 이유에는 오십이란 나이를 넘기면서 더 심해진 것이 있기도 하다. 이 일을 타의든 자의든 그만두는 상황이 왔을 때를 생각해본다. 그 이후의 삶이 남아있는데 내가 이 생산마저 못하게 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이가 더 들면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감성조차 퇴화 되면 어떡하나, 혹 기계처럼 그냥 사니까 살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서 오는 우울도 있었다.
사실 그런 두려움은 언제나 있게 마련인데 특별한 계기 같은 게 있었던 건가.
김병욱: 작년 가을 아버지가 아프셨다. 처음엔 그냥 식욕이 없으시다고 해서 식사 잘 챙겨 드세요 했는데 알고 보니 바로 수술이 들어갔어야 했을 만큼 심각한 상태셨던 거다. 그 일을 겪으면서 서서히 기억을 좀 잃어가셨다. 병실에 누워 계실 때도 가만히 있다가 “지금 몇 시나 됐냐”고 물으시기도 했고. 하루는 거실에 혼자 앉아 누워 아버지를 바라보는데, 아 당신에게 하루라는 게 얼마나 길까 하는 게 비로소 느껴졌다. 전화 드릴 때는 늘 괜찮다고 하셨지만 그 수많은 시간과 싸우고 계셨던 거다. 나 역시 언젠가 그런 상태에서 삶을 유지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 텐데, 내가 가진 감성이나 추억을 기억조차 못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이 미리 우울함을 가져왔달까. 그리고 올해 1월 아이가 수능결과가 좋지 않아서 재수를 결심하고 눈발이 날리는 날 기숙 학원이 있는 지방으로 갔다. 뭔가 그 허허벌판 같은 곳에 그 녀석이 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내 학창 시절이 너무 악몽 같아서,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고 했는데 계속 괜찮다고 하는 거다. 일단 다음 주에 등록하마 하고 다시 서울로 와서 그날 밤 앉아서 TV를 보고 있는데 너무 슬펐다. 인생의 모든 외로움이 밀려오는 것 같은 기분. 그날 밤 새벽에 아이 방에 갔더니 불은 꺼져 있는데 안자고 있었다. 그래서 너 진짜 괜찮냐? 하고 물었더니 사실 괜찮지 않다고, 하더라. 엄마 아빠에게 미안하고 그러니까 그냥 괜찮다고 한 거라고. 결국 내가 제일 사랑하는 두 사람이 정말 안 괜찮은 상황이었는데 그냥 괜찮다는 그 말로 위안을 삼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나도 괜찮지 않았고. 아이와 그날 밤 오래간 만에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결국 동네에 있는 학원 다니기로 결정하고 그 이후부터는 같이 뉴스 보고 이야기 하고, 시간을 가졌다.
시리즈가 쉬고 있던 지난 1년 반 동안, 사실 대한민국의 사회와 정치계에는 시트콤 보다 더 웃기고 황당하고 기막힌 일들이 벌어졌다. 이런 변화와 일련의 사건 사고들이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시리즈에 반영되는 부분이 있을까?
김병욱: 알다시피 나는 평소에 정치적 신념이 뚜렷한 사람도 아니고, 어디 당원도 아니고, 사실 주장을 작품을 통해서 펼 만큼 그 분야에 아는 게 많지도 않다. 또한 작품이 프로파간다가 되는 것에 대한 경계도 있고. 다만 미시적인 관점에서 개인이 바라보는 사회를 바라보는 눈은 정치색에 상관없이 늘 가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건 말하자면 의무 같다. 심지어 사랑에서 조차 그런 함의가 들어가 있어야 하는 거고. 요즘 KBS 를 보면 정말 진화되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배 아플 때도 있다. ‘생활의 발견’ 같은 코너를 보면 시트콤의 영역을 침해당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비상대책위원회’ 같은 코너는 그 속에 정말 많은 걸 담고 있다. 시트콤의 경우도 그 정도의 비판 의식 정도도 없다면 정말 죽은 드라마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마저도 못하면 우리가 뭘 하겠는가. 우리가 같은 대작을 만들 것도 아니고. 그래서 늘 작가들에게 늘 이야기 한다. 우리는 두 가지만 잘하면 된다고. 하나는 감정선을 다루는 데는 귀재가 되어야 한다는 거다.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감정선마저도 못 살리면 존재 이유가 없다고. 두 번째는 동시대인이 사회를 바라보는 눈, 새로운 시각을 가지라는 거다.
를 만드는데 영감을 받은 영화로 영화 을 이야기했다.
김병욱: 영감을 받았다 까지는 아니고 참 좋았던 작품이다. 여고생과 나이 많은 남자의 사랑이 나오는데, 특히 그 두 사람이 처음 사랑에 빠지는 방식이 좋았다. 처음부터 세대 간의 격차를 무시하면서 사랑을 한다. 그저 전형적인 멜로의 장면처럼 그려진 첫 만남의 순간이 신선했다. 그리고 학교 교육을 받아야 하는 가에 대해 선생과 학생이 벌이는 논쟁 같은 것도 좋았다. 학교를 나가겠다는 학생도 그걸 말리는 선생도 입장의 차이일 뿐이지 다 맞는 이야기지 않나. 영화 전체의 균형 잡힌 시각이 좋더라.
에서 전체 해설을 하는 이적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설정이 있다. 어쩌면 감독이 가장 많이 투영된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병욱: 내가 우울증이 걸려봐서 아는데 (웃음) 그렇게 되면 오히려 주변 사람을 관찰하고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이적은 우울증이긴 한데 돈을 벌기 위해 매일 남들의 항문을 봐야 하는 항문 외과를 차린다. 어쩌면 우울함 속에서 계속 시트콤을 만드는 내가 많이 투영된 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 이적의 내레이션은 초반에는 매회 오프닝과 엔딩을 감싸는 식이 될 거다.
사실 다시 가족 이야기라서 놀랐다. 마지막 인터뷰에서 받은 기대는 한국판 였는데 말이다.
김병욱: 는 혈연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족과는 또 다른 어떤 방식의 정이 붙는 이야기인데 역시 유선의 집과 지원의 집이 땅굴로 연결되어 있어서 가족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들 중에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를 만들고 싶었는데 가족 시트콤이 필요한 시간대라 사무실로 갈 수는 없었던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걸 이런 방식으로 절충한 거랄까. (웃음)
그나저나 땅굴이라니! 어쩌다가 그런 생각을 했나.
김병욱: 워낙 어디에 웅크리고 숨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릴 때도 삼단요 같은 걸 접어서 그 안에 들어가는 걸 좋아했는데 나에게는 그런 아늑한 공간이 너무 귀중하고 필요하다. 불완전하고 자급자족도 안 되는 그런 공간이 그리울 때가 있었다. 작품에서 땅굴은 일단은 몸 개그가 만들어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가장 크다. 기어 가야하고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철학적인 부분은 뒤늦게 그 공간이 변화되는 과정에서 나올 거다. 처음엔 그저 도피처지만 이후엔 누군가에게 응접실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밀회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게 점점 그 공간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 공간이 변해간다는 것은, 즉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변해간다는 것이니까.
글. 백은하 기자 on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
아직도 누군가는 그를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 버렸으면 좋겠어요”라는 애절한 주문 속에 영원히 봉인되어 버린 안타까운 한 남녀의 사랑을 떠나보낸 지도 벌써 1년 6개월. 2010년 3월 19일 종영한 MBC 의 다음 시리즈, 오늘 9월 19일 첫 방송을 앞둔 MBC (이하 )의 김병욱 감독을 가 만났다.제작발표회가 끝나고 “ 결말 사과한다”식의 기사가 많이 나왔더라.
김병욱: 웃으면서 한 이야기인데 제목이 그렇게 나왔다. 하지만 그 때로 돌아간다 해도 결말은 변함이 없었을 거다. 사과하고 싶지도 않고. 물론 시트콤의 취지가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이고 나 역시 내 작품으로 사람들이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은 있다.
“과연 끝까지 완주를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김병욱 감독 “기대와는 반대로 초반 코미디에 집중하고 있다”" />
첫 녹화를 끝내고 보니 어떤가.
김병욱: 사실 녹화 전까지 걱정이 많았다.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늘 생각하는 성격이다 보니 더 그랬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특히 윤계상의 캐릭터가 조금 밋밋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배우가 잘 살려주고 있다. 서지석의 경우도 리딩과 달리 녹화를 하니 좀 낫더라. 두 번째 녹화를 하면서 안내상의 느낌이 정말 좋다는 생각을 했다. 감을 확실히 잡은 것 같다.
의 가장 큰 특징이 아이들과 노인 캐릭터가 빠져 있다는 거다. 이건 어떤 방식으로 작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밤샘도 잦고 점점 무리한 진행이 많을 수밖에 없는 환경일테니.
김병욱: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 늘 미안하지만 현장에서 아이들의 편의를 못 봐주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전 시리즈를 함께 하신 이순재 선생님은 당신만을 위한 특별한 환경을 전혀 원하지 않는 분이셨다. 하지만 아무래도 어른들을 배려를 해드려야 하는 마음 같은 게 있게 마련이니까.
노인과 아이들의 부재로 인한 코미디 상황을 만들어내는 부분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김병욱: 어렵다 당연히. 지금은 시간이 있으니 다행인데 나중에는 이 점이 얼마나 큰 장애로 작용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많이 불안하다. 솔직히 예전엔 아이템이 없으면 이순재 선생님이 ‘네버 엔딩 스토리’ 같은 노래 한곡 만 불러도 커버가 되거나, 해리가 패러디만 해도 되는, 손쉬운 코미디가 가능했다면 이제는 그런데 기댈 수가 없어졌다. 게다가 주요인물들이 나이대가 몰려있고 겹치니까 이야기가 중복될 가능성도 높다. 또한 모든 인물이 등장부터 소멸까지 자기 완결성을 가져하는데, 등장인물들이 많다 보니 과연 그걸 꼼꼼히 담아 낼 수 있을까, 너무 욕심을 부린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다. 뒤가 어떻게 될까.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까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엷어지는 편인데 과연 끝까지 완주를 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완주를 할까 그런 걱정이 많이 든다.
드디어 이순재를 중심으로 성을 바꿔야하는 ‘이씨 집안’ 구도에서 벗어났다. (웃음) 게다가 남매로 등장하는 윤유선과 윤계상은 실제 성이 같다.
김병욱: 우연히도 캐스팅 해 놓고 보니 그랬다. 이번에 유난히 이름이 비슷한 배우들이 많다. 지석, 지선, 하선처럼 말이다. 특히 계상, 내상! 두 사람이 백허그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때 “계상과 내상, 이름조차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둘은 너무 다른 인간이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오기도 한다. 실제 이 두 사람은 극 중에서 가장 반대되는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다. 배우들 실명을 쓰다 보니 부수적으로 얻어진, 작지만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윤계상은 캐스팅을 해 놓고 캐릭터를 잡아간 케이스라고 들었다.
김병욱: 윤계상이 아니었다면 여고생 지원과의 구도는 포기했을 것 같다. 윤계상에게는 나이가 있지만 그런 관계 역시 부담스러워 보이지 않는 풋풋함이 있어서 이걸 밀어붙일 수 있었다. 이후 중요한 멜로가 진행되는 경우라 약간 종합적인 인간으로 설정했는데 아무래도 시트콤이라 다른 캐릭터에 비해 빵빵 터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녹화를 해보니까 다른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강승윤의 등장이 의외였다.
김병욱: 큰 비중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등장한다. Mnet 를 봤는데 처음엔 그 친구 때문에 내가 응원하던 사람들이 떨어지니까 좀 싫었다. 어느 순간 윤종신 말대로 가진 건 요만큼인데 자신감은 정말 이만큼인,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이 매력적이었고 그걸 캐릭터에 이용해보고 싶더라. 고등학교 중퇴하고 혼자 서울에 올라와서 혼자 사는 아이인데 친구들이 교복을 입으니까 교복도 혼자 맞춰서 가내복처럼 입고 다닌다. 그 나이 되도록 꿈이 대통령일 정도라 어떤 이들이 보기에는 약간은 이상해 보이는 전형적인 경상도 의리남이다.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배우간의 화학 작용을 보고 싶다” │김병욱 감독 “기대와는 반대로 초반 코미디에 집중하고 있다”" />
젊은 층이 많이 포진되어 있어서 전체적으로 극의 속도감이 빨라지고 세질까?
김병욱: 글쎄 사실 속도로 치자면 어른과 아이가 나올 때 더 빠르다. 막 생떼를 쓰면서 끝내도 되니까. (웃음) 하지만 가끔 과한 설정이나 요구를 할 때 덜 부담스럽긴 하다. 예를 들어 짜장면을 10초 안에 어떻게 먹겠니? 하면 이 친구들은 그냥 편하게 해볼게요, 하는 식이다. 대신 감정을 다룰 때 젊은 아이들은 너무 오글거려도 안 되고 어느 정도 쿨하게 끌고 가야 하는 데 그게 더 시간과 공이 들어가긴 한다.
고영욱이 캐스팅 된 것은 정말 덕인 건가? (웃음)
김병욱: 원래 고영욱을 좋아하긴 했는데, 그 기사를 읽게 되었다. 기사는 늘 빠지지 않고 읽는 편이니까. 그런데 고영욱이 연습 때는 잘했는데 첫 녹화는 되게 긴장하더라. 흥분해서 말하는 연기를 하는데, 너무 긴장이 되니까 차렷 자세로 몸은 안 움직이고 얼굴만 흥분하는 식으로. (웃음) 고영욱 뿐 아니라 이번에 같이 하는 배우들이 모두 선하고, 그렇다고 무르기만 한 건 아니고, 마인드가 너무 좋아서 사람들 관계 속에 스트레스 받는 일이 거의 없다.
아무래도 시트콤은 방영 기간도 길고 등장인물도 많다 보니 배우 캐스팅에 있어서 인간성도 무시 못 할 제작 환경 중 하나일 것 같다.
김병욱: 나는 늘 성품이 50% 이상이라고 이야기 한다.
지난 시리즈를 돌이켜보면 ‘** 라인’으로 불리워지는 각기 다른 커플에 대한 지지로 패가 나뉘고 때론 그것이 작품 전체의 완성도 이상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다.
김병욱: 실제 배우들이 사랑에 빠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극 내에서는 그 과정이 진짜 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냥 처음부터 화살표 그어 놓고 누구는 누구랑 커플 될 운명, 이렇게 정해 놓는 게 너무 기계적이니까. 이번에도 누가 누구랑 연결돼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 하지만 사실 정해놓은 건 없다. 그래서 배우들도 불안할 거다. 물론 어느 정도의 밑그림이 있지만 결국엔 자연 발생적으로 되어간다고 믿는다. 시청자들이 쟤하고 쟤하고 연결되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믿는 걸 따라가는 느낌으로 열어 놓은 거다.
어떻게 보면 그 부분은 리얼리티 쇼에 가까운 것도 같다. 배우 스스로 되게 열심히 하게 만드는 악마의 제작진 아닌가. (웃음) 뭔가 커플 라인에 끼지 못하면 자연도태 될지도 모르니까.
김병욱: 에이, 그런 거만한 마인드는 아니다. 만약 배우들에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으니 얼마나 잘하는지 보겠어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라면 너무 오만한 거다. 대신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배우들 간의 화학 작용을 자연스럽게 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감히 시청자들의 마음과 제작진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청자들이 보기 좋다고 생각하는 커플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사실 그런 관심은 조금 불편하긴 하다. 물론 멜로가 서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마치 10명이 나오면 그들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 짝짓기를 해야 하는 것 같은 강박이 느껴지니까. 그렇게 말해놓고 그걸로 시청률 올릴 거면서! 라고 말하면 어쩔 수 없지만. (웃음)
하지만 의 경우는 연애가 가능한 연령대의 인물들이 다수로 등장하다보니 그 러브라인에 대한 과열이 예상되긴 한다.
김병욱: 아마도 김병욱이 1, 2에서 그 러브라인으로 재미를 봤으니 이번엔 뽕을 뽑을 거다, 항간에는 6각 7각 8각으로 엮을 거다, 라는 예상들을 하는데. (웃음) 솔직히 말해서 그럴 마음이 별로 없다. 같은 작품을 보면 인물들이 끊임없이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데 그것이 꼭 연인관계이기만한 건 아니다. 사고나 경험으로 연결되기도 하니까. 오히려 기대와는 반대로 이번엔 초반엔 멜로보다는 코미디에 집중하고 있다.
“시트콤이 꼭 가져야 되는 것은 감정선과 동시대성” │김병욱 감독 “기대와는 반대로 초반 코미디에 집중하고 있다”" /> (이하 ) 이후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1년 반이 훌쩍 지났다. 어떻게 지냈나.
김병욱: 후유증이 좀 길긴 했다. 어릴 때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여운이 좀 길듯이, 아무리 작품이지만 살아 숨 쉬던 인물들을 보내고 나면서 오는 후유증은 항상 있었다. 하지만 은 작품이 끝난 것에 대한 아쉬움 이상으로 근본적인 뭔가가 있었다. 우울증 비슷한. 기억하겠지만 끝나고 와 인터뷰 할 때도 울컥 눈물이 나기도 했으니까. 사실 우울증이라는 말조차 어느 정도 미화된 부분이 있을 것 같기도 해서 지금 생각하면 좀 부끄럽기도 하다. 어쨌든 3, 4개월은 그런 기간이 있었다. 그 우울의 이유에는 오십이란 나이를 넘기면서 더 심해진 것이 있기도 하다. 이 일을 타의든 자의든 그만두는 상황이 왔을 때를 생각해본다. 그 이후의 삶이 남아있는데 내가 이 생산마저 못하게 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이가 더 들면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감성조차 퇴화 되면 어떡하나, 혹 기계처럼 그냥 사니까 살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서 오는 우울도 있었다.
사실 그런 두려움은 언제나 있게 마련인데 특별한 계기 같은 게 있었던 건가.
김병욱: 작년 가을 아버지가 아프셨다. 처음엔 그냥 식욕이 없으시다고 해서 식사 잘 챙겨 드세요 했는데 알고 보니 바로 수술이 들어갔어야 했을 만큼 심각한 상태셨던 거다. 그 일을 겪으면서 서서히 기억을 좀 잃어가셨다. 병실에 누워 계실 때도 가만히 있다가 “지금 몇 시나 됐냐”고 물으시기도 했고. 하루는 거실에 혼자 앉아 누워 아버지를 바라보는데, 아 당신에게 하루라는 게 얼마나 길까 하는 게 비로소 느껴졌다. 전화 드릴 때는 늘 괜찮다고 하셨지만 그 수많은 시간과 싸우고 계셨던 거다. 나 역시 언젠가 그런 상태에서 삶을 유지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 텐데, 내가 가진 감성이나 추억을 기억조차 못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이 미리 우울함을 가져왔달까. 그리고 올해 1월 아이가 수능결과가 좋지 않아서 재수를 결심하고 눈발이 날리는 날 기숙 학원이 있는 지방으로 갔다. 뭔가 그 허허벌판 같은 곳에 그 녀석이 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내 학창 시절이 너무 악몽 같아서,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고 했는데 계속 괜찮다고 하는 거다. 일단 다음 주에 등록하마 하고 다시 서울로 와서 그날 밤 앉아서 TV를 보고 있는데 너무 슬펐다. 인생의 모든 외로움이 밀려오는 것 같은 기분. 그날 밤 새벽에 아이 방에 갔더니 불은 꺼져 있는데 안자고 있었다. 그래서 너 진짜 괜찮냐? 하고 물었더니 사실 괜찮지 않다고, 하더라. 엄마 아빠에게 미안하고 그러니까 그냥 괜찮다고 한 거라고. 결국 내가 제일 사랑하는 두 사람이 정말 안 괜찮은 상황이었는데 그냥 괜찮다는 그 말로 위안을 삼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나도 괜찮지 않았고. 아이와 그날 밤 오래간 만에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결국 동네에 있는 학원 다니기로 결정하고 그 이후부터는 같이 뉴스 보고 이야기 하고, 시간을 가졌다.
시리즈가 쉬고 있던 지난 1년 반 동안, 사실 대한민국의 사회와 정치계에는 시트콤 보다 더 웃기고 황당하고 기막힌 일들이 벌어졌다. 이런 변화와 일련의 사건 사고들이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시리즈에 반영되는 부분이 있을까?
김병욱: 알다시피 나는 평소에 정치적 신념이 뚜렷한 사람도 아니고, 어디 당원도 아니고, 사실 주장을 작품을 통해서 펼 만큼 그 분야에 아는 게 많지도 않다. 또한 작품이 프로파간다가 되는 것에 대한 경계도 있고. 다만 미시적인 관점에서 개인이 바라보는 사회를 바라보는 눈은 정치색에 상관없이 늘 가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건 말하자면 의무 같다. 심지어 사랑에서 조차 그런 함의가 들어가 있어야 하는 거고. 요즘 KBS 를 보면 정말 진화되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배 아플 때도 있다. ‘생활의 발견’ 같은 코너를 보면 시트콤의 영역을 침해당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비상대책위원회’ 같은 코너는 그 속에 정말 많은 걸 담고 있다. 시트콤의 경우도 그 정도의 비판 의식 정도도 없다면 정말 죽은 드라마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마저도 못하면 우리가 뭘 하겠는가. 우리가 같은 대작을 만들 것도 아니고. 그래서 늘 작가들에게 늘 이야기 한다. 우리는 두 가지만 잘하면 된다고. 하나는 감정선을 다루는 데는 귀재가 되어야 한다는 거다.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감정선마저도 못 살리면 존재 이유가 없다고. 두 번째는 동시대인이 사회를 바라보는 눈, 새로운 시각을 가지라는 거다.
를 만드는데 영감을 받은 영화로 영화 을 이야기했다.
김병욱: 영감을 받았다 까지는 아니고 참 좋았던 작품이다. 여고생과 나이 많은 남자의 사랑이 나오는데, 특히 그 두 사람이 처음 사랑에 빠지는 방식이 좋았다. 처음부터 세대 간의 격차를 무시하면서 사랑을 한다. 그저 전형적인 멜로의 장면처럼 그려진 첫 만남의 순간이 신선했다. 그리고 학교 교육을 받아야 하는 가에 대해 선생과 학생이 벌이는 논쟁 같은 것도 좋았다. 학교를 나가겠다는 학생도 그걸 말리는 선생도 입장의 차이일 뿐이지 다 맞는 이야기지 않나. 영화 전체의 균형 잡힌 시각이 좋더라.
에서 전체 해설을 하는 이적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설정이 있다. 어쩌면 감독이 가장 많이 투영된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병욱: 내가 우울증이 걸려봐서 아는데 (웃음) 그렇게 되면 오히려 주변 사람을 관찰하고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이적은 우울증이긴 한데 돈을 벌기 위해 매일 남들의 항문을 봐야 하는 항문 외과를 차린다. 어쩌면 우울함 속에서 계속 시트콤을 만드는 내가 많이 투영된 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 이적의 내레이션은 초반에는 매회 오프닝과 엔딩을 감싸는 식이 될 거다.
사실 다시 가족 이야기라서 놀랐다. 마지막 인터뷰에서 받은 기대는 한국판 였는데 말이다.
김병욱: 는 혈연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족과는 또 다른 어떤 방식의 정이 붙는 이야기인데 역시 유선의 집과 지원의 집이 땅굴로 연결되어 있어서 가족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들 중에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를 만들고 싶었는데 가족 시트콤이 필요한 시간대라 사무실로 갈 수는 없었던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걸 이런 방식으로 절충한 거랄까. (웃음)
그나저나 땅굴이라니! 어쩌다가 그런 생각을 했나.
김병욱: 워낙 어디에 웅크리고 숨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릴 때도 삼단요 같은 걸 접어서 그 안에 들어가는 걸 좋아했는데 나에게는 그런 아늑한 공간이 너무 귀중하고 필요하다. 불완전하고 자급자족도 안 되는 그런 공간이 그리울 때가 있었다. 작품에서 땅굴은 일단은 몸 개그가 만들어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가장 크다. 기어 가야하고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철학적인 부분은 뒤늦게 그 공간이 변화되는 과정에서 나올 거다. 처음엔 그저 도피처지만 이후엔 누군가에게 응접실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밀회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게 점점 그 공간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 공간이 변해간다는 것은, 즉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변해간다는 것이니까.
글. 백은하 기자 on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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