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 작가│마음이 편해지는 노래들
호랑 작가│마음이 편해지는 노래들
7월 21일. 그날은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는 물론이고 트위터 타임라인에도 온통 그 얘기뿐이었다. 무섭다는 반응은 그나마 평범한 축에 속했다. 심지어 자신이 일하는 사무실에서 몇 초 간격으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는 제보도 있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일종의 복수심에 이곳 저곳으로 그것을 퍼나르기 시작했고, 피해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바로 웹툰 이 단 하루 동안 만들어 낸 진풍경이다. 평소 웹툰을 즐겨보지 않았더라도 ‘2011 미스테리 단편’ 시리즈 중 하나인 을 본 사람은 꽤 많을 것이다. ‘임산부, 노약자, 심장이 약하신 분들은 이용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경고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채 한밤중 지하철 3호선 옥수역에서 귀신을 목격한 남자의 이야기에 몰입하던 독자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마우스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이 작가 뭐야… 무서워…

하지만 의 엔딩에 등장했던 ‘그것’과는 달리, 호랑 작가는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사람이 아니다. 지난 2007년 웹툰 공모전을 통해 으로 데뷔한 호랑 작가는 전래동화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를 거쳐 2009년부터 밴드 만화 를 연재했다. 데뷔 4년 차, 그가 그린 장편 웹툰은 와 가 전부지만, 두 작품을 통해 독자들이 호랑 작가에게 붙여 준 별명이 있다. 해피엔딩을 안 좋아하는 작가. 스스로도 “제 만화가 해피해피, 말랑말랑 하진 않죠”라고 인정했다. 어두운 분위기로 각색한 게 대부분인 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밴드 이야기라는 것만 보고 샤방한 청춘 드라마일 거로 기대했던 는 독자의 범상한 예측을 허락하지 않는 작품이었다. 심지어 그림체가 서정적이기도 한 이 작품은, 하지만 주인공들이 해피엔딩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나도 가혹했다.

“연재할 때 많이 들었던 얘기가 ‘너 사상이 좀 어떻게 된 거 아니냐?’는 거였어요. 독자들의 반응을 고려했다면 전부 다 해피엔딩으로 갔어야 했지만, 저는 부조리하고 역설적인 걸 좋아해요. 기적을 미화시키고 싶진 않거든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되, 그 삶에서 어떻게 살아야 더 행복한지를 보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회를 보면서 ‘드디어 끝났다’는 개운함보다는 비록 찝찝하고 불편하더라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웹툰을 추구하는 그가 이번에는 반대로 ‘마음이 편해지는 노래들’을 추천했다. 하지만 역시 방심해서는 안 된다. 감정의 바닥을 제대로 느끼게 해 줄 이별 노래도 포함돼 있으니.
호랑 작가│마음이 편해지는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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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홀린(Hlin)의 < Remanent (EP) >
“음악은 정말 좋은데 인디밴드라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며 추천한 첫 번째 곡은 홀린의 ‘i’다. “홀린은 음악 색깔도 특이하고 감정적인 컨트롤이 정말 잘 되어 있는 밴드예요. 감정이 살아나야 하는 부분은 확 살아나고 죽는 부분은 확 죽고. ‘i’는 홀린의 그런 음악성이 참 잘 드러난 노래라고 할 수 있어요.” 외로움과 슬픔을 위로하는 여신의 이름을 딴 밴드 홀린은 ‘거인’ 편에 실린 ‘Illusion’이라는 곡을 만들었고 최근 ‘그대를 그린다’가 OCN 로 사용되기도 했다. “만화나 드라마에 쓰여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는 호랑 작가의 말처럼, 홀린은 점차 감정을 쌓아가다가 클라이맥스에서 강렬한 사운드를 내지르는 스타일의 음악을 들려준다.
호랑 작가│마음이 편해지는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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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응플라워의
를 열심히 본 독자라면 응플라워라는 뮤지션이 익숙할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밴드 ‘The Cloud’가 처음 공연을 했던 ‘으악’ 편, 주인공 재희가 돌아가신 부모님의 환상에 사로잡혀 괴로워했던 ‘기억에 갇히다’ 편 등을 위해 응플라워가 직접 곡을 만들었고 웹툰 속 캐릭터가 직접 부르는 느낌이 나도록 매 곡마다 객원 보컬을 섭외했다. 이후 그 곡들을 모아 앨범까지 발매하는 등 응플라워는 호랑 작가와 인연이 깊은 뮤지션이라 할 수 있다. “홀린이 격렬한 느낌이라면 응플라워의 음악은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개인적으로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처럼 감성적인 음악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작업할 때 자주 듣곤 하는데, 특히 ‘녹아내린’은 곡명처럼 진짜 마음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에요. 하하.”
호랑 작가│마음이 편해지는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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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타루(Taru)의 < Color Of City (White) >
평소 ‘홍대여신’ 타루의 팬이라고 밝힌 호랑 작가는 타루의 노래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예뻐할게’를 추천했다. “사랑에 빠진 여자가 남자에게 불러주는 ‘상콤한’ 노래예요. 서로에 대한 사랑,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정말 예쁘게 표현했더라고요. 들을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곡이죠.” 사랑하는 여자가 달콤한 목소리로 ‘항상 이렇게 날 사랑해주면 내가 너보다 많이 예뻐할게’라고 속삭여준다면 어떤 기분일까. 평소에 늘 보던 TV, 늘 하던 샤워인데도 괜스레 웃음이 나고 자신을 둘러싼 이 모든 상황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하는 여자의 들뜬 마음을 러블리하게 써내려 간 노래다.
호랑 작가│마음이 편해지는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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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니아(Nia)의 < Good Bye (Single) >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호랑 작가는 걸 그룹 소녀시대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한 번은 웹툰 말미에 ‘소녀시대 컴백 관계로 다음 주 쉬고 싶습니다’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적어 넣었고, 호랑 작가 팬 카페의 ‘호랑의 여자들’ 메뉴에는 윤아를 포함한 소녀시대 멤버 4명의 사진 폴더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걸 그룹도 아니고 밴드 멤버가 모두 여자라니, 팀 구성이 특이해서 한 번 노래를 찾아봤어요”라는 말에서 어쩐지 예쁜 ‘걸 밴드’를 기대한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쉽게도) 예상은 빗나갔다. “제가 만화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밴드 니아도 그런 스타일의 음악들을 많이 하더라고요.” 호랑 작가가 추천한 ‘Goodbye’는 노래 버전과 랩 버전으로 나눠 발매됐으며, 그 중 랩 버전은 힙합듀오 프리스타일의 미노가 피처링에 참여했다.
호랑 작가│마음이 편해지는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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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에피톤 프로젝트의
“되게 슬픈 노래예요.” 이 한마디만으로도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라는 곡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다.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고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미안함을 느끼는 내용의 노래는 많다. 하지만 이 곡은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는 독특한 표현을 비롯해 절절한 노랫말을 꽉꽉 눌러 담았지만, 그것이 결코 터지거나 넘쳐흐르는 법 없이 끝까지 잔잔함을 유지하는 목소리 덕분에 여느 이별노래와는 또 다른 아련함을 가져다준다. “노래에 리듬이 별로 없고 그냥 얘기하는 느낌이라 처음에는 좀 생소했어요. 그런데 듣다 보니 은근히 중독되더라고요. 계속 들어도 안 질려요.” 노래를 불러준다기보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비 오는 날 혼자 들으면 몇 번이고 다시 재생버튼을 누르게 만든다.
호랑 작가│마음이 편해지는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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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호랑 작가는 차기작 명랑로봇만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좀 더 명랑만화 느낌이 날 거예요. 무거운 이야기는 과거 회상장면에만 넣고 전반적으로 캐릭터들이 반짝반짝 거리면서 즐거운 로봇만화인 척! 하다가 (웃음) 뒤통수를 좀 때릴 것 같아요.”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 하나는 타고난 그가 이번에는 또 어떤 반전의 묘미를 보여줄까.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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