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셋 남자아이와 스물 한 살의 여자아이가 연애를 하고 있다. 사귄지는 한 달 정도, 공원에서 손잡고 산책을 하고 바쁜 시간을 쪼개 홍대 골목을 거닐기도 한다. 초등학생들도 여자친구, 남자친구가 있는 요즘 세상에 남들의 ‘연애’는 별다른 얘깃거리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돌’의 연애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난 28일, 연예 매체 는 카라의 구하라와 비스트의 용준형의 교제 사실을 독점으로 공개했다. 데이트 현장을 포착한 사진들과 시간, 장소, 상황 묘사, “본인에게 확인한 결과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다. 지금은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이니 조금 더 지켜봐 달라”는 양측 소속사의 공식 인정까지 담겨 있었다. 기시감이 느껴졌다면 당연한 일이다. 과거 의 기자들이 속해 있던 은 지난 해 10월 말, 배우 신세경과 샤이니 종현의 열애 사실을 최초로 단독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도 물론 저녁 시간 편안한 복장으로 다정하게 길을 걷는 두 사람의 사진과 현장 분위기, 소속사의 ‘조심스런’ 확인이 이어진 바 있다.
아이돌 시장의 특수성과 연애 불가지론 그래서 ‘구하라 용준형’이 나란히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로 떠오른 이 날,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분개했으며 누군가는 허탈해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일개’ 연예인의 연애에 연연하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구하라와 용준형의 교제 인정 기사에 가장 흔히 달린 댓글이 “1세대 아이돌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세상 참 좋아졌다”인 것처럼, 90년대 최고의 뮤지션이자 아이돌이었던 서태지는 최근 이지아와의 이혼 소송 기사가 불거질 때까지 결혼 사실을 숨긴 채 살았고 1세대 아이돌들은 과거의 연애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요즘에야 토크쇼에 나와 당시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솔로 가수나 연기자처럼 비교적 광범위한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연예인에 비해 열광적인 애정과 높은 충성도를 자랑하는 팬덤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아이돌에게 연애는 곧 일, 그 중에서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동경, 연애 감정, 모성애 등 다양한 층위의 애정과 욕망에 의해 형성되고 지탱되는 이 특수한 시장에서 아이돌은 사람 그 자체로서의 상품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아이돌의 역사가 15년에 접어들며 “제 여자친구는 여러분 뿐이에요”라는 멘트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팬들은 드물어졌다. 하지만 종현과 신세경, 용준형과 구하라의 연애가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킨 것은,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애써 외면하고 대외적으로 부정해오던 과거와 달리 양 측이 ‘공식 인정’을 했다는 데 있다. 비록 데이트 중 파파라치 사진이 찍히는 바람에 도저히 열애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바람에 택한 길이라 해도 “지갑으로 낳고 통장으로 키워 온” 팬들의 박탈감은 논리로 해결되지 않는 영역이고, 함부로 조롱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빠’의 여자 친구로 알려진 상대에게 면도칼로 도려낸 사진이나 저주의 편지를 보내던 시절과 달리 초등학생 팬조차 “여자 친구 사귀어도 괜찮아요. 그런데, 사귄다고 말하면 안돼요” 라고 말할 만큼 암묵적인 룰과 함께 일종의 타협점을 찾아 온 아이돌 팬덤의 평화로운 껍질을 깨뜨린 이 게임에서 승자는 아이돌도 팬덤도 대중도 아닌 해당 매체뿐이다.
우리의 가십이 당사자에겐 인생이다 하지만 보답 받지 못한 애정과 무너진 판타지로 인한 원망, 대중의 흥미어린 시선은 ‘사귈 거면 몰래 사귀지 바보같이 들켜 버린’ 열애설의 당사자들에게 집중된다. 한창 일본에서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카라와 일본 시장에 막 진출한 비스트의 멤버가 사귀고 있다는 것이 한류에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치느냐는 사실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연애가 궁극적으로 두 사람의 감정과 관계에 대한 문제라는 점이다. 스무 살을 갓 넘긴, 연애가 커리어에 큰 타격이 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그 사실을 ‘아우팅’ 당했을 때, 그리고 그로 인해 무수한 부정적 반응과 해석에 시달릴 때 그들이 받을 상처는 “풋풋하고 아름다운 만남을 보도했을 뿐”이라는 매체의 입장만큼이나 분명한 ‘팩트’로 존재한다.
공교롭게도 구하라와 용준형의 열애 사실이 공개되기 며칠 전, 신세경과 종현이 올해 초 결별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그들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무슨 이유로 헤어지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전 국민이 훤히 알고 있는 직장인 연예계에서의 공개된 ‘사내연애’가 결코 간단치 않았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최근 종영한 MBC 에서 아이돌 출신의 연예인 구애정(공효진)은 “일반 직장 생활 한 10년 정도 했으면 사내 연애 한 번 한 거 갖고 아직까지 이렇게 씹히고 그러진 않았겠지?” 라며 한탄했다. 누군가에겐 가십이 당사자에겐 인생이다. 우리는 종종 그걸 잊는다.
글. 최지은 five@
편집. 이지혜 seven@
지난 28일, 연예 매체 는 카라의 구하라와 비스트의 용준형의 교제 사실을 독점으로 공개했다. 데이트 현장을 포착한 사진들과 시간, 장소, 상황 묘사, “본인에게 확인한 결과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다. 지금은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이니 조금 더 지켜봐 달라”는 양측 소속사의 공식 인정까지 담겨 있었다. 기시감이 느껴졌다면 당연한 일이다. 과거 의 기자들이 속해 있던 은 지난 해 10월 말, 배우 신세경과 샤이니 종현의 열애 사실을 최초로 단독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도 물론 저녁 시간 편안한 복장으로 다정하게 길을 걷는 두 사람의 사진과 현장 분위기, 소속사의 ‘조심스런’ 확인이 이어진 바 있다.
아이돌 시장의 특수성과 연애 불가지론 그래서 ‘구하라 용준형’이 나란히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로 떠오른 이 날,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분개했으며 누군가는 허탈해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일개’ 연예인의 연애에 연연하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구하라와 용준형의 교제 인정 기사에 가장 흔히 달린 댓글이 “1세대 아이돌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세상 참 좋아졌다”인 것처럼, 90년대 최고의 뮤지션이자 아이돌이었던 서태지는 최근 이지아와의 이혼 소송 기사가 불거질 때까지 결혼 사실을 숨긴 채 살았고 1세대 아이돌들은 과거의 연애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요즘에야 토크쇼에 나와 당시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솔로 가수나 연기자처럼 비교적 광범위한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연예인에 비해 열광적인 애정과 높은 충성도를 자랑하는 팬덤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아이돌에게 연애는 곧 일, 그 중에서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동경, 연애 감정, 모성애 등 다양한 층위의 애정과 욕망에 의해 형성되고 지탱되는 이 특수한 시장에서 아이돌은 사람 그 자체로서의 상품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아이돌의 역사가 15년에 접어들며 “제 여자친구는 여러분 뿐이에요”라는 멘트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팬들은 드물어졌다. 하지만 종현과 신세경, 용준형과 구하라의 연애가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킨 것은,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애써 외면하고 대외적으로 부정해오던 과거와 달리 양 측이 ‘공식 인정’을 했다는 데 있다. 비록 데이트 중 파파라치 사진이 찍히는 바람에 도저히 열애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바람에 택한 길이라 해도 “지갑으로 낳고 통장으로 키워 온” 팬들의 박탈감은 논리로 해결되지 않는 영역이고, 함부로 조롱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빠’의 여자 친구로 알려진 상대에게 면도칼로 도려낸 사진이나 저주의 편지를 보내던 시절과 달리 초등학생 팬조차 “여자 친구 사귀어도 괜찮아요. 그런데, 사귄다고 말하면 안돼요” 라고 말할 만큼 암묵적인 룰과 함께 일종의 타협점을 찾아 온 아이돌 팬덤의 평화로운 껍질을 깨뜨린 이 게임에서 승자는 아이돌도 팬덤도 대중도 아닌 해당 매체뿐이다.
우리의 가십이 당사자에겐 인생이다 하지만 보답 받지 못한 애정과 무너진 판타지로 인한 원망, 대중의 흥미어린 시선은 ‘사귈 거면 몰래 사귀지 바보같이 들켜 버린’ 열애설의 당사자들에게 집중된다. 한창 일본에서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카라와 일본 시장에 막 진출한 비스트의 멤버가 사귀고 있다는 것이 한류에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치느냐는 사실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연애가 궁극적으로 두 사람의 감정과 관계에 대한 문제라는 점이다. 스무 살을 갓 넘긴, 연애가 커리어에 큰 타격이 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그 사실을 ‘아우팅’ 당했을 때, 그리고 그로 인해 무수한 부정적 반응과 해석에 시달릴 때 그들이 받을 상처는 “풋풋하고 아름다운 만남을 보도했을 뿐”이라는 매체의 입장만큼이나 분명한 ‘팩트’로 존재한다.
공교롭게도 구하라와 용준형의 열애 사실이 공개되기 며칠 전, 신세경과 종현이 올해 초 결별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그들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무슨 이유로 헤어지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전 국민이 훤히 알고 있는 직장인 연예계에서의 공개된 ‘사내연애’가 결코 간단치 않았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최근 종영한 MBC 에서 아이돌 출신의 연예인 구애정(공효진)은 “일반 직장 생활 한 10년 정도 했으면 사내 연애 한 번 한 거 갖고 아직까지 이렇게 씹히고 그러진 않았겠지?” 라며 한탄했다. 누군가에겐 가십이 당사자에겐 인생이다. 우리는 종종 그걸 잊는다.
글. 최지은 fiv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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