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중│재미와 슬픔이 함께 있는 영화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김재중은 아시아 팬미팅 투어 사이에 짬을 내 영화 <자칼이 온다> 시사회에 참석했다.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이 이어지는 일정에 힘든 기색을 완전히 감출 순 없었지만, 한편으론 김재중의 얼굴에선 묘한 설렘도 엿보였다. 특별출연으로 참여했던 일본 영화 <스바루>가 있긴 하지만 사실상 첫 영화라 해도 좋을 <자칼이 온다>는 배우로서 걸음마를 배우고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는 김재중에게 큰 뿌듯함과 그에 못지않은 아쉬움을 안겼다. 스크린으로 본 자신의 모습이 어땠냐는 질문에 그는 “어휴, 창피했어요. 아하하하”라며 멋쩍은 듯 웃었다. “스크린에 제가 나오니까 쑥스럽고 아쉬웠어요. 지나고 나서 보니까 그때 제 컨디션이나 연기의 세세한 업 다운이 다 보이더군요. 저때 저렇게 했으면 하는 후회도 되고, 조금만 더 집중할 걸 싶기도 하고요.” 영화 촬영이 MBC <닥터 진>과 거의 동시에 시작하고 끝난 탓에 김재중은 제대로 자지도 못한 채 촬영장을 오가야 했다. “집중이 잘 안 됐죠. 여기서는 이 캐릭터, 저기 가서는 저 캐릭터를 해야 했으니까. 오메가3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 했어요. (웃음) 두뇌의 혈액순환이 빠르게 되도록 도와주었죠.”



김재중은 어린 나이에 데뷔했고 가수로서 독보적인 인기를 경험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무엇보다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보여주는데 익숙하고 자부심을 갖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완성도가 못내 아쉬운 <자칼이 온다>는 배우 김재중의 커리어에 그다지 인상적인 방점이 되기는 어려운 작품이다. 아무래도 여주인공 봉민정(송지효)의 영화에 가까운 이 작품에서 김재중이 할 수 있는 몫은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현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었던 건 저도 사실 아쉬워요. 좀 까탈스럽고 제멋대로인 애잖아요. 그래서 납치를 당한 초반에는 여전히 기고만장하게 굴지만 점차 시간이 가면서 아, 이게 아니구나 싶어서 납작 엎드리는 캐릭터라는 설명을 들었어요. 그 과정을 좀 자세하게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워요.”



하지만 지금 김재중에게는 연기를 한다는 것, 영화를 찍는다는 것 자체가 주는 의미가 더 크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열띤 감정이 배우로서의 그를 움직이게 하고 있다. “창피한 부분도 있고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영화는 정말 재미있는 것 같아요. 역할을 이해하고 나서 이 사람은 이렇게 행동할 것 같아 라고 생각되는 걸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까요. 바로 또 다음 작품을 찍고 싶어요.” 지쳐 보이던 김재중의 얼굴이 왜 영화가 좋은지 이야기하는 순간엔 생기를 되찾았다. 이제 막 시작한 배우의 삶, 아직은 스스로도 주위 환경도 충분히 여물지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이 마음, 영화와 연기가 좋아서 설레는 이 마음을 계속 품고 간다면 김재중이 고른 아래 작품들처럼 재미와 슬픔이 함께 있는 영화들에서 그를 만날 날이 머지않으리라.

김재중│재미와 슬픔이 함께 있는 영화들


1. <인생은 아름다워> (Life Is Beautiful)
1999년 | 로베르토 베니니
“어릴 때 봤어요. 되게 재밌게 보고 조금 더 커서 또 봤는데 여전히 재미있더라고요. 본인들의 경험에 따라서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아요. 분명 슬픈 내용이지만 한편으론 아버지 캐릭터가 유쾌하시잖아요. 그 유쾌함 때문에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장면들도 많이 있고, 감동과 반전도 있어서 아름다운 영화인 것 같아요.”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의 이 유명한 말이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이렇게 바뀐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비극이다. 이탈리아에서 극악한 파시즘이 맹위를 떨치던 1930년대 말, 독일의 유태인 말살 정책에 따라 수용소에 끌려간 유태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쉽사리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비극적 현실 속에서도 가족들의 눈앞에서 희극을 연기한 한 아버지의 영화다.

김재중│재미와 슬픔이 함께 있는 영화들


2. <타이타닉> (Titanic)
1998년 | 제임스 캐머런
“중학교 2학년 때인가 처음 봤는데 열 번을 봐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 저는 재미와 슬픔이 같이 있는 영화가 좋은데 이 영화도 그런 점에서 좋아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맡은 배역은 멋있지만 내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너무 힘들 것 같아요. 빈민가의 낮은 신분에서부터 귀족 같은 모습까지 캐릭터가 표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정을 보여준 영화니까요.”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만난 가장 아름다운 기억. 때로 사람은 이 기억 하나만으로도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빚어 사람으로 만들면 이 남자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했던 젊은 시절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신분과 죽음을 초월한 사랑을 보여준 세기의 로맨스 영화다. 2012년 3D 영화로 재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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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피아니스트> (The Pianist)
2003년 | 로만 폴란스키
“스무 살 무렵에 봤어요. DVD로 봤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굉장히 멋있었던 피아니스트가 폐허 속에서 혼자 살아남으려고 먹을 것을 뒤지고 공포에 떠는 표정이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소리 하나 없는 공간에서 혼자, 그 사람만이 느끼는 공포가 작은 행동과 표정 속에 깃들어 있잖아요. 장군이 나타나서 피아노 쳐 보라고 했을 때 떨면서 딱 쳤을 때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유명한 유대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애드리언 브로디)은 방송국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던 도중 폭격을 당한다. 날로 흉폭해지는 나치의 억압 속에 가족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은 스필만은 허기와 고독의 공포 속에서 근근이 버틴다. 극한의 순간, 무엇이 있다면 당신은 생애의 의지를 끝까지 붙잡을 수 있을까? 2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에서 살아남은 한 남자에게 그것은 피아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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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
1998년 | 스티븐 스필버그
“전쟁 영화 중에 베스트 오브 베스트인 것 같아요. 원래 전쟁 영화를 즐겨 보진 않고, 누가 재미있다고 하면 보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내용이 무겁다 보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정말 재미있었어요. 실화가 배경이거나 사실적인 내용을 그린 영화들을 좋아해요. 아무래도 더 진짜 같은 감동이 있으니까.”



2차 세계 대전이 종전을 향해 가는 치열한 상황 중, 미국 행정부는 4형제가 모두 전쟁에 참전한 라이언 가의 3형제가 전사하고 막내만이 생존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를 구하기 위한 특별 작전이 실시된다. 지금은 사실적인 전쟁 영화가 특별히 신선할 것이 없지만, 1998년 당시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기존의 전쟁 영화에 대한 인식을 뒤집는 작품이었다. 특히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극도로 섬세하게, 그래서 더욱 잔인하게 그린 오프닝 신은 전쟁이라는 이름의 지옥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명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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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용의자 X의 헌신>
2009년 | 니시타니 히로시
“아, 이 영화는 진짜,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죠. 물리학자로 나오는 일본 배우 후쿠야마 마사하루 씨가 참 멋있어요. 가수기도 하고 배우이기도 한데 그 나이에도 그렇게 멋지실 수 있다니. 사실 그분 때문에 본 영화인데 정말 감동적이라서 뭐라고 표현을 잘 못 하겠어요. 그런데 영화 속 주인공의 순정은 너무 바보 같아요. 일방적이고, 결국 자기 인생을 버리는 거잖아요. 너무 헌신하기 때문에 여주인공이 부담스러워하는 마음도 공감했어요.”



우발적으로 전남편을 살해한 옆집 여자 야스코(마츠유키 야스코)를 위해 가장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남자 이시가미(츠츠미 신이치). 그리고 이시가미의 동창이자 이 완벽하게 위장된 사건의 틈을 발견하는 남자 유카와(후쿠야마 마사하루). 이시가미와 유카와의 두뇌 대결과 거듭되는 반전이 추리 영화로서의 재미를 담보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속살은 처절한 사랑 이야기다. 세상에는 이런 사랑도 있다. 제목의 ‘헌신’이라는 표현이 너무나도 적확하게 어울리는 그런 사랑이.

김재중│재미와 슬픔이 함께 있는 영화들


<자칼이 온다> 속 최고의 한류 스타 최현은 김재중의 화려한 외모에 빚진 캐릭터다. 큰 눈과 새하얀 피부, 확실히 비현실적인 외모다.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아 보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아이돌가수로 활동할 때보다 더 폭넓고 다양한 대중과 호흡해야 하는 배우가 된 이상, 이 아름다운 외모는 의도치 않은 굴레가 되기도 한다. “이 생김새가 배우로서는 약점이 더 많아요. 아무래도 강하고 독하고 싸가지 없을 것 같은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시더라구요. 데뷔작이었던 일본 드라마 <솔직하지 못해서>를 할 때는 제가 연기한 인물이 어리바리하다 보니 최대한 착해 보이려고 눈도 동그랗게 하고 다녔어요. 하하.” 그래서일까, 대중들이 당신에게 갖고 있는 오해 중에 무엇을 풀고 싶냐는 물음에 그는 “저 이렇게 생겼어도 되게 좋은 놈입니다. 예의 바른 놈이고, 생각보다 괜찮은 놈입니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칭찬만 받으려고 연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라고 운을 뗀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였다. “욕을 먹어도 어쩔 수 없어요. 얘는 왜 이렇게 성장 속도가 느려? 이런 말을 듣더라도 똑같은 걸 보여 드리기는 싫어요. 나이에 비해 연기 경험이 많이 부족하니까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 드리면서 경험을 최대한 빨리 늘리고 싶어요.” 생각보다 괜찮은, 신인 배우의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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