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겨울이었다. 날씨는 추웠고, 수리탐구Ⅰ영역은 입시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어려웠으며, 이 상황이 지나가길 1년 내내 바랐지만 끝나도 그다지 후련하진 않았다. 그리고 오늘, 누군가는 그때의 나와 같은 경험을 한다. 수능을 맞아 ‘독거의 신’이 수능생을 위한 요리를 준비하는 건 그래서다. 이 땅의 독거인 다수는 이미 그 냉정한 통과의례를 거친 성인들이겠지만, 그렇기에 그들의 고민과 욕망에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수험생과 함께 사는 부모님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할, 그들을 위한 진짜 음식을 삼촌으로 혹은 이모로서, 혹은 사촌 형님 누님으로서 집에서 대접하는 것도 독거인의 위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들 수능이라고 머리 좋아지는 음식, 시험을 응원하는 음식을 준비할 때 센스 넘치는 독거인이라면 수능이 끝난 뒤 허기진 욕망을 채워줄 상을 내려주자. 물론 상 중 상은 역시 주안상이다.
오해를 피하자면, 이 주안상은 법적 성년이 된 수험생을 위한 것이다. 다만 직접 주류를 구매할 수 없는 미성년 조카가 대학에 가기 전에 주도를 가르치고 싶은 독거인이 활용한다 해도 어쩔 수는 없겠다. 우선 아이가 좋아하는 술이 뭔지 모르니 소주와 맥주 모두 구입하자. 아이가 언제 술을 먹어봤겠느냐는 원론은 수능 D-100일에 물만 마신 사람만 제기하라. 소주는 저도수로, 맥주는 당신의 위엄을 위해 필스너 계열로 준비하자. 안주도 주종에 맞게, 소주에 보쌈 고기, 맥주에 닭강정, 둘 모두를 커버하는 닭똥집 볶음을 준비하자. 이 조합이 좋은 건, 흔한 2구형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가 있는 집이라면 세 가지를 동시에 만들 수 있어서다. 먼저 냄비로 물을 가열하고, 닭강정을 전자레인지로 데우고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닭똥집을 볶다가 냄비 물이 끓을 때 비닐 포장된 보쌈을 넣으면 된다. 간편하고 맛있고 푸짐한 주안상을 만들었다면 대접 전에 한 가지만 명심하자. 술 들어갔다고 어설프게 인생 상담하기 없기. 아이가 우리처럼 사회 속의 독거인으로 자라는 것도 금방이지만, 우리가 꼰대가 되는 건 순간이니까.
‘수험생을 위한’ 오늘의 교훈 : 생각 없이 살면 너희 간도 나처럼 된다.
글. 위근우 기자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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