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톤스의 4집 앨범 < Beginner`s Luck >에는 신재평과 이장원의 지금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예쁜 음악’의 목표치에 거의 가깝게 만들”었던 3집을 작업하며 경험한 성취와 혼란 이후 두 사람은 “멍청해지자는 암묵적인 모토”를 공유하고 처음 음악을 시작했던 마음으로 돌아가 옷을 벗고 화장을 지웠다. 그래서 < Beginner`s Luck >은 두 가지 방식으로 들을 것을 권한다. 이런 날이 계속 된다면 누군가를 미워할 일도 없을 것 같은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듣자. 겨울 내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옷더미를 벗고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에 되었을 때처럼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늦은 밤 불 꺼진 방에서 볼륨을 높이고 눈을 감은 채 들어보자. 전보다 단순해졌다고 느꼈던 음들이 사실 한 땀 한 땀 공들인 자수처럼 단아하고 단단하다는 걸 알게 된다. 스스로를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마음은 축제가 열리는 강당 무대에 선 고교생 밴드의 그것으로 돌아간 페퍼톤스와의 대화 역시 그렇게 가볍고도 단단했다.
앨범 발매 후 첫 무대였던 ‘뷰티풀 민트 라이프’에서 팬들의 호응이 대단했다고 들었다.
신재평:
팬들이 기대치를 많이 낮춰두셔서 ‘어? 생각보다 잘 하네?’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웃음) 아마 좀 조마조마 하셨을 거다. 객원보컬 없이 5인조 밴드를 구성해서 공연한 게 몇 번 안 된다. 작년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이 처음이었는데 그 때 노래를 너무 못 해서 많이 창피했다. 반성을 정말 많이 했다. 이번엔 새 앨범 나온 뒤 첫 공연이기도 해서 각오를 남다르게 했다. 그래서 좀 무난하게 할 수 있었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괜찮았다고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셔서 우리도 기분이 좋았다. (웃음)
이장원: 단독 공연이 아니라 페스티벌이니까 아군만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여러 가지로 긴장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기분 좋게 잘 했다.

“이제는 너무 꾸미면 부담스러운 나이인 것 같다”



신재평 “3집 이후 우리한테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앨범의 첫 인상은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봄을 맞아 간편한 차림이 되었을 때의 반가움 같은 것도 느껴졌다.
신재평:
우리는 오랜 시간 작업을 하면서 4계절을 다 거치니까 특별히 계절감을 의도하고 만든 건 아니다. 다만 우리 음악이 듣는 분들에게 불러일으키는 고유한 느낌이 있는 것 같더라. 가볍거나 부담스럽지 않고 계절로 치면 지금 같은. 무거운 옷도 좀 벗고 바깥에도 한 번 나가볼까 하는 기분과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이장원: 편곡적으로 과거에 굉장히 많은 악기들을 집어넣었다면 이번에는 처음부터 기타, 베이스, 건반이 주가 되고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밴드 사운드를 목표로 삼았다. 악기 수가 줄어서 가볍게 들릴 수 있지만 각각의 악기는 더 정교하고 복잡해졌다.

요즘은 기계음을 활용하는 2인조 밴드가 늘어났다. 그런데 정작 당신들은 밴드 사운드로 돌아갔다.
신재평:
대중예술이라도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흔한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나쁜 게 없는 것 같다.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건데 음악을 하는 데 있어서는 좋은 방향의 생각이라고 믿는다. 이 ‘흔한’의 의미도 내외부에서 찾을 수 있다. 처음 페퍼톤스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들고 나왔을 때는 우리의 방식이 독특했고 그것만으로도 주목받을 수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허밍 어반 스테레오나 라이너스의 담요처럼 아기자기하고 예쁜 사운드에 쏠렸던 트렌드 덕도 봤고. 그런데 그 때 우리가 열심히 시도하고 연구했던 사운드들이 지금은 더 이상 최첨단이라고 얘기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자각을 했다. 우리가 하나의 작은 비전을 제시한 것이었다면 그런 요소를 자연스럽게 자기 음악에 집어넣고 잘 하는 팀들이 많아진 걸 보면서 다른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적으로도 우리가 변화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들었을 때 느끼는 재미를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음악을 만드는 본인들에게도 새로운 재미가 필요했을 것 같다.
신재평:
매번 도전하는 마음으로 앨범을 제작해왔는데 지난 3집이 많은 변화를 줄 수 있었던 타이밍이었다. 안테나뮤직으로 옮기면서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 제약이 많이 없어졌다. 예를 들어 현을 쓰고 싶으면 준비만 하면 쓸 수 있는 상황이 된 거지. 그래서 당시 목표는 1, 2집 때 제약 때문에 충분히 완성하지 못 했던 팝 사운드를 제대로 구현해보자는 것이었다. 열심히 했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예쁜 음악’의 목표치에 거의 가깝게 만들었다. 그럼 더 팬시(fancy)한 걸 추구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비슷한 음반이 나오지 않을까? 싶더라. 그래서 이번엔 싹 달라지자, 어떻게 달라질까 생각하다가 기원으로 돌아가는 식의 발상을 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록과 일렉트로닉에 한 발씩 담그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록으로 기운 것 같다. 예전에 비해 듀오라기보다 밴드의 느낌이 강해졌다.
신재평:
요즘 음악들이 미니멀해지고 있지 않나. 일렉트로닉에서 미니멀하다는 게 악기 구성이 단출해지고 각각의 소리들이 비중을 갖고 딱 딱 정리가 되는 것이라면 밴드 구성으로도 못 할 건 없겠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학창 시절에 밴드를 했고 밴드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밴드 키드였다. 너바나 음악 듣고 기타 리프 하나에 심장이 두근거렸던 남자애들이었니까 그걸로 돌아가는 건 억지를 안 부려도 되겠구나 싶었다. 치장된 옷을 벗고 진짜 알맹이를 쑤욱 찔러 보는 느낌도 있었다. 밴드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시작했고 그 후 `시부야케이`를 알게 되면서 막 예쁘게 화장을 했다면 이번에는 다 벗은 거지. 그게 삼십대가 된 우리의 코드와도 맞아 떨어졌다. 이제는 너무 꾸미면 부담스러운 나이인 것 같다. 원숙한 맛도 슬슬 나야 하고.

화장을 지운다는 의미에서 또 하나의 큰 도전이 보컬이다. 객원 보컬 비중을 줄였다는 사실을 알고 들으려니 사실 좀 조마조마하더라. 라이브가 아니니까 엄청난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웃음) 그런데 생각보다 보컬이 괜찮았다.
신재평:
더 잘 하고 싶었는데 그 이상은 잘 안 되더라. (웃음) 그래도 이 정도면 납득되지 않을까라고 생각될 때까지 반복해서 연습도 하고 편곡으로 키도 조정하면서 열심히 했다. 녹음도 엔지니어가 신경을 많이 써주고 에디팅도 세심하게 하면서 굉장히 장시간동안 했다.

“이번 앨범에는 우리가 온 길이 다 녹아 있다”



타이틀곡인 ‘행운을 빌어요’는 사운드 자체는 흥겨운데 가사나 멜로디는 갈수록 오히려 하강하는 느낌이다. 이를테면 ‘울면서 달리기’하는 것 같다고 할까?
신재평:
‘행운을 빌어요’는 이별과 배웅에 관한 노래다. 정들었던 사람을 떠나보내면서 잘 가라, 행운을 빈다고 하는 장면을 빠른 비트의 연주로 힘차게 손 흔들어주는 느낌으로 그렸다. 그래서 그냥 들었을 때는 신나는 노래라고 느끼기 쉽다. 하지만 알고 보면 슬픈 노래인 거지. 애틋한 장면을 빠른 비트로 풀어내면서 약간 꼬여있는 건데 그게 듣는 재미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울면서 달리기’가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기쁨을 주는 음악’이라는 큰 틀은 유지하되, 막연히 무책임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인정한 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내자고 말하는 것 같다.
신재평:
예를 들어 좋아하는 케이크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막 연애를 시작한 기분을 노래한다면 당연히 기쁜 음악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나. 무엇에 관해서 노래를 써야지 생각하는 순간 그림이 딱 그려지는 건데 이번 앨범의 소재 자체는 굉장히 다양하다. 이걸 기반으로 만들면 기쁜 노래가 나오겠지 라고 생각해서 사건이나 감정들을 고른 게 아니라 우리한테 자극이 되었던 많은 일로 노래를 쓰되 이를 바라보는 시선, 태도는 긍정적으로 갖자고 생각했다.

가사는 어떻게 작업했나? 오랫동안 함께 해왔어도 어떤 상황에 대해 표현하는 단어는 각자 다를 수 있을 것 같은데.
신재평:
이번 앨범은 내가 전부 썼지만 살아온 시간들의 기록이기 때문에 우리 밴드가 온 길이 자연스럽게 다 녹아 있다. ‘바이킹’은 둘이서 제주도로 여행을 갔을 때 마지막 날 머물던 펜션에서 잼을 하면서 만들어진 노래다. 가사도 우리가 머물렀던 제주도의 풍경에서 나온 것이고. 물론 정말 개인적인 얘기들도 있고 사소한 모티브에서 왔기 때문에 삶에서 찾을 수 없는 아주 동떨어진 노래도 있다. ‘검은 산’도 내가 검은 산을 직접 넘으면서 쓴 건 아니거든. (웃음)

‘검은 산’은 앨범 안에서 튀는 곡이다. 그런데 앨범 마지막 트랙에 넣거나 보너스 트랙의 개념이 아니라 7번 트랙이다.
이장원:
중간에 변화가 좀 있는 게 맞다. (웃음) 우리가 열 두 트랙짜리 앨범을 낼 때 1월, 2월이나 1시, 2시 이런 식으로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사실 굉장히 전략적으로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니다. ‘아시안 게임’, ‘검은 산’으로 이어지면서 환기의 느낌을 주는 거지.
신재평: 우리가 고민한 건 오히려 1번 트랙이었다. 처음 데모로 작업할 때부터 ‘wish-list`가 계속 1번이었다. 그런데 ‘for all dancers’를 녹음하고 나니 `아, 이게 1번 트랙이구나!` 싶더라.

이유가 무엇인가?
이장원:
1번 트랙의 전주는 멋있어야 한다는 우리만의 법칙이 생겼다고 할까? 그래서 ‘wish-list’랑 ‘for all dancers’ 중 뭐가 더 멋있냐 이런 걸로 고민한 거지. (웃음) 노래 하나의 의미보다 앨범이란 게 결국엔 엮어내는 것이지 않나? ‘검은 산’이 전체랑 안 맞아 보인다고 뒤로 보내는 건 너무 무책임하지. (웃음)
신재평: 오히려 튀는 애를 적극적으로 배치했을 때 말이 되는 경우도 있고 재미있더라. 트랙 리스트 짜는 게 되게 재밌다. 정말 시간을 많이 쓰게 되는데도 조금씩 옮겨가면서 다 들어본다.

앨범으로 듣는다는 걸 전제로 두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신재평:
음원으로 듣는 시대지만 그래도 앨범으로 들어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 우리는 싱글형 가수가 아니라 앨범을 만드는 사람들이니까 접근법 자체도 ‘이런 곡을 만들어야지’가 아니라 ‘이런 앨범을 만들어야지’가 되는 것 같다.

재킷을 비롯한 전체적인 아트워크까지 연결되는 것일 텐데, 이번 재킷의 배경이 제주도다. 원래 좋아하는 장소라고 알고 있는데 본인들에게 의미 있는 공간을 드러낸다는 의미도 있나?
신재평:
고집한 건 아니다. 바다를 배경으로 시원하게 얘기하고 싶었고 제주도가 예쁘니까 제일 좋았다. 그런데 그 때가 3월이라 제주도가 바람도 세고 비도 많이 온다더라. 날씨가 불안해서 다른 곳을 찾아보려고도 했지만 도박을 했다. 그 핑계로 제주도에 한 번 더 가고. (웃음)
이장원: 동해 바다 가는 것보다 제주도 가는 게 빠르더라. 비행기 타고 가니까. (웃음)

“DJ는 인생 통틀어 소중한 경험”



이장원 “기본적으로 나는 현재 상황에서 기쁜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신재평은 지난해 EBS 라디오 <아름다운 밤 우리들의 라디오>(이하 <아우라>)로 DJ 경험을 했다. 굉장히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신재평:
그 시간은 그냥 즐거웠던 정도가 아니라 인생을 통틀어서 되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사람이 좀 바뀌었다. (웃음)
이장원: 재평이가 할까 말까 고민할 때 하라고 권했다. 나는 학교를 다니니까 그래도 사람을 좀 만나지만 얘는 처박혀 있었는데 나와서 돌아다니니까 보기 좋더라. 물론 너무 착해지는 것 같아서 좀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우리가 4집 때는 나름 록커 흉내를 내기로 약속했는데 얘가 ‘보이는 라디오’ 카메라 앞에서 막 착한 표정만 짓고. (웃음)
신재평: 일부러 착하게 보이려고 그런 거 아니야. 마음을 착하게 먹으면 착하게 생겨지는 거야. (웃음) 그런데 <아우라> 듣는 사람들 진짜 다 착했다. 나도 그 동네 살면서 너무 착해졌어. (웃음)

이장원도 게스트로 ‘심야의 행진곡-뮤직 프로파일링’을 함께 했지 않나? 사연을 듣고 청취자를 난도질할 때 예리함과 순발력에 놀랐다.
이장원:
내가 나쁜 말 할 때 재평이가 옆에서 되게 신나했다. (웃음) 사실 누군가를 평가하는 거니까 안 좋게 말할수록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나. 그래서 막 얘기하고 마지막에는 또 힘내라고 하는 패턴이었다. 재평이랑 같이 방송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둘이 십 년 넘게 쓸데없는 소리를 계속 해왔는데 그걸 남들이 듣는다고 생각하니까 묘한 쾌감이 있었던 것 같다. 마음대로 얘기하는데 이걸 누가 들을 수밖에 없다는!

이장원은 학업과 음악을 병행하고 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이장원:
진로는 민감한 문제다. 왜냐하면 지금 박사 과정을 하고 있을 거라고 예전에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어떤 면에선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한편으론 멍청한 생활을 하고 있는 건데 기본적으로 나는 현재 상황에서 기쁜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과거 인터뷰에서 페퍼톤스의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 일종의 사명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했다. 기대를 배신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음악을 만드는 게 늘 과제일 것 같다.
신재평:
요새 고민하는 것이기도 하다. 벌써 다음 앨범 생각도 슬슬 하는데 또 어떻게 새로운 걸 만들어낼까 고민하게 된다. 아직 정리가 된 건 아닌데 이런 건 어떨까? 각 앨범의 컬러가 조금씩 더 뚜렷해지면 그것들이 쌓였을 때 듣는 분들이 그 날 자기한테 필요한 음악을 꺼내서 들을 수 있는 컬렉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티 없이 맑고 귀여운 음악을 듣고 싶으면 3집을 꺼내서 듣고 풋풋하고 패기 넘치는 음악을 듣고 싶으면 1집, 잘 조립된 음악을 듣고 싶으면 2집을 듣는다던지. 그렇게 우리 안에서 컬러 스펙트럼을 조금씩 넓혀가도 좋지 않을까 싶다.

완전히 다른 컬러를 기대할 수도 있을까?
신재평: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게 세상을 보는 시선하고 어느 정도 일치하는데 우리가 기본적으로 시니컬한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갑자기 변신한답시고 되게 아픈 얘기 위주로 염세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좀 책임감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음악을 듣고 기분이 좋아진다면 계속 그런 역할을 하고 싶으니까. 물론 기대치를 충족시키는데 만족하면 제자리걸음밖에 안 되니까 새로운 걸 던져줘야 하는 건 확실한 것 같다.

30대가 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고민도 있지 않나? 이제 뒤돌아보거나 곁눈질하면서 걸어가기 힘들어진다는 두려움도 생길 것 같다.
신재평:
3집 때 그걸 무진장 심하게 겪어서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그 때는 상황이 너무 확 확 변해서 ‘우리 지금 제대로 사는 거 맞나?’ 같은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은 둘이 만나면 음악 얘기만 하지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까 같은 얘기는 잘 안 한다. 눈에 보이는 게 확실하고 그냥 그걸 하면 되겠구나 생각한다. 되게 단순해지고 약간 멍청해진 것 같기도 하다. ‘멋있으면 된다! 어떻게 하면 기타를 더 멋있게 칠까!’ 이런 고민만 하고 있지. (웃음)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로 돌아간 것 같겠다.
이장원:
맞다. 회사 옮기고 나서 연예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도 만나면서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고 저게 살 길인가 싶기도 했다. 사실 흉내를 내보려고도 했다. 생전 안 나가던 자리에 나가서 인사도 하고. 그러면서 무턱대고 음악을 만들어대던 시기에서 조금 멀어져버린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4집은 멍청해지자는 암묵적인 모토가 있었던 것 같다. 이거 멋있냐, 저거 멋있냐만 생각했지 이거 하면 사람들이 여기, 2분 30초 시점에서 막 반응하겠지 같은 건 생각 안 했다. (웃음) 우리가 상업음악을 만드는 대중음악가로서 뭔가 전략을 짜서 하는 데 소질이 좀 부족하더라. 그런데서 오는 좌절감이나 고민을 겪은 뒤라 이번 앨범은 그냥 음악에만 집중한 것 같다. 어렸을 때의 마음을 다시 갖기 위해서 멍청이 여행도 다녀 온 거다. 대작을 만들러 갔다가 맥주만 대작하고 온.
신재평: 와, 그 말 재밌다, 우하하하. 살다 보면 뭔가에 영향을 받는 타이밍이 생기지 않나? 그런데 어떤 흐름에 휩쓸리고 있는 동안은 약간 판단이 흐려지는 것 같다. 생각할 게 너무 많아서 정돈을 못 하거나 겁이 나서 눈앞에 있는 걸 제대로 못 보기도 하고. 그래서 3집 때보다 지금 우리가 더 똑똑하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스물아홉, 서른에 그 시기를 겪으면서 우리한테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가 이번 앨범에 담겨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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