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 첫 항해 열일곱, 나루토 사스케와의 첫 만남 열넷, 이치고 첫 번째 사신 대행 열일곱. 흔히 소년이 주인공이라 소년만화라고 하지만 ‘원.나.블’의 주인공들은 모두 하나 같이 십대에 모험을 시작해 최소 연재 10년이 넘은 지금까지 단 두 살만을 더 먹었다. 즉, 여전히 그들은 십대의 삶을 산다. 수많은 장애 앞에서 그들이 가진 근거 없는 자신감과 호기로운 근성은 나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40대의 아저씨가 되었을 때도 그 자신감과 근성이 남아있을 수 있을까. 남아있더라도 그것이 과거의 그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일 수 있을까. 세상을 다 가질 거라 믿었던 십대의 그들이 30년 뒤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지내는지 추적해보았다.

“솔직히 내가 크로커다일한테 이길 줄 알고 덤볐겠냐고. 아직 위대한 항로에선 ‘뉴비’였었는데 그냥 깡으로 부딪힌 거잖아.” “알아, 아는데 그렇게 칠무해 잡고, 매번 너보다 싸움 잘하는 애들이랑 피 터지게 싸우면서 얻은 게 뭐냐? 원피스? 나 참… 내가 너한테 그 사실 듣고 어이가 없어서…” 입을 놀리던 나루토가 입이 바싹 말랐는지 앞에 놓인 맥주를 쭈욱 들이켰다. “나도 어이가 없었지. 빌어먹을 골 D. 로저 영감. 무슨 찾으면 세상을 다 줄 것처럼 그러더니, 세상 끝에 숨겨 놓은 게 진짜 땡땡이 무늬 원피스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리 엄마도 안 입을 그런 걸… 어이, 샹디, 500 한 잔만 더 줘.” “야, 바에서 안주도 안 시키고 기본 칩 안주에 500만 마시는 건 너희 둘밖에 없다.” “칩은 니미… 손가락에도 안 들어가는 강냉이 가지고. 야, 그러지 마라. 우리가 보통 사이냐? 한 때 위대한 항로에서 날렸던 밀짚모자 해적단 아니냐.” 본인 말에 따르면 젊었을 적에는 그렇게 찰질 수 없었다지만 지금 루피의 고무고무 뱃살은 허리 아래까지 축 늘어졌다. 그런데도 맨몸에 빨간 조끼만 걸치고 다녀 동네 사람 대부분이 피하는 그에게 마음 편한 시간은 오랜 친구 샹디가 운영하는 ‘오올블루스’에서 나이 마흔 일곱이 되도록 노란 머리를 유지해 역시 동네 사람들이 싫어하는 나루토와 외상술을 마시며 젊었을 적 무용담을 늘어놓을 때뿐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요즘 애들은 안돼요. 깡따구가 없다니까 깡따구가? 내가 30년 전에는…”
“거기 두 분 조용히 좀 드시죠? 술집 전세 낸 것도 아니고.” 한 쪽에서 비싼 글렌피딕을 마시던 두 젊은이였다. 루피의 축 늘어진 고무고무 눈꺼풀이 꿈틀거렸다. “뭐어? 조용히? 이 어린노무 섀퀴들이(나도 못 먹는 양주를 마시고, 아이고 빡쳐).” 출렁하며 앞으로 뻗은 루피의 고무고무 주먹은 하지만 늦었다. 이미 거나하게 취해 몸에 봉인한 구미호의 공격 본능이 튀어나온 나루토가 술이 반 쯤 남은 500 잔을 그쪽 테이블로 집어던진 뒤였다. “이 놈들아, 내가 바로 우즈마키 나루토다. 호카게가 될 사내. 우아아아, 차크라가, 차크라가 넘쳐난다.” 이성을 잃어 꼬리 아홉 개가 몽땅 튀어나온 그는 청년 한 명의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차크라가 단전에 모이고 있어! 아, 따뜻해. 하체가 따뜻해지고 있어.” 샹디가 다급하게 외쳤다. “야, 이 망할 자식아, 술집에서 옷 입은 채로 쉬하지 말랬지! 야, 야, 야, 옷 벗고 쉬하란 소리가 아니잖아!”

김순경이 체념하듯 말했지만 루피도 고집을 피웠다. “싫다. 나도 자존심이 있지. 김순경, 내가 젊었을 때 얼마나 잘나갔는지 들었지? 내가 그 유명한…” “네, 군자동 밀짚모자. 그리고 저기 저분은 연신내 꼬리 아홉. 아무리 젊었을 때 잘나갔어도 술집에서 떠들고 행패 부린 걸 용인할 수는 없는 겁니다.” 최대한 자제력을 발휘하며 씹어뱉듯 말했지만 이번에는 피해자들이 반발했다. “저희 합의 못해요. 대한민국에서 시끄러워서 시끄럽다고 한 마디 했다고 이렇게 맞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그래 놓고선 잘못한 기색도 없고.” “그래, 나도 합의할 생각 없었다. 오늘 너희들한테 해적의 정의가 뭔지 가르쳐주마.” 길게 뻗어난 루피의 팔이 상대방의 멱살을 잡는 순간 경찰서 문이 벌컥 열리며 까칠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이치고 아저씨!” 김순경이 구원이라도 받은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 씨, 이 형, 이 선생님, 놓고 얘기해, 놓고 얘기해.” 이치고에게 귀를 잡히고 끌려 나간 나루토가 다급하게 말했다. 역시 이치고의 다른 손에 구레나룻을 잡혀 끌려 나간 루피도 버둥거리며 외쳤다. “이 씨, 그냥 어린 애들 겁만 좀 주려던 거야. 아아, 너 내 피 같은 구레나룻 한 올이라도 뽑히면 가만 안 둔다? 이거 없으면 쪽팔려서 모자 못 써.” 경찰서에서 한참을 더 가서야 그 둘을 놓아준 이치고는 한숨을 쉬었다. “너희 둘, 이제 제발 사고 좀 그만 쳐라. 옷도 좀 평범하게 입고, 남들 봤을 때 성실해 보이는 일도 하고. 내가 우리 상점에서 일 시켜준다고 했잖아.” 잠시 적막이 흘렀다. 아까보다 훨씬 차분해진 목소리로 하지만 조금은 울컥대며 루피가 말했다. “알아, 이 씨. 이 씨가 항상 우리 신경 써주는 거. 그런데… 우리가 꼭 과거를 부정하며 살아야 하는 거야?” “과거를 부정하라는 게 아니라…” “그래, 키스케 아저씨에게 우라하라 상점을 물려받고 성실히 살고 있는 네 눈에 우리가 얼마나 꼰대 같아 보일지 알아. 하지만 원피스의 정체는 땡땡이 원피스라는 게 밝혀졌고 해적단은 해산했고, 샹디는 황학동에서 술집, 조로는 신림동에서 헬스클럽을 하고 있어. 지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과거의 내가 부정되는 것 같다고.” 이를 악 물고 말을 잇는 루피의 어깨를 나루토가 살며시 잡아주었다. 루피가 훌쩍이며 말했다. “나루토… 우리는 그저 그런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말없이 걸었다. 여자들은 이제 흐느끼고 있었지만 마치 아무 것도 안 들리는 것처럼 루피, 나루토, 이치고는 집이 있는 방향으로 아주 천천히 걸었다. 목은 메었고 팔은 부들부들 떨렸다. “야, 나루토.” “응?” “우린 그저 그런 어른이 아닌 거 같다.” “…” “우린 최악의 어른이 되어버렸어. 나, 이대로는 이 밀짚모자를 쓰고 다닐 자신이 없어.” 루피가 발걸음을 멈췄다. “뱃살이 늘어지고 젊은 친구들이 기피하는 꼰대가 됐지만 아닌 건 아닌 거 같다.” 루피의 말에 나루토와 이치고는 시선을 교환했다. 나루토는 이마의 서클렛을 고쳐 매고 있었다. 이치고는 참백도를 움켜쥐며 말했다. “이번 일은 경찰서 훈방으로 안 끝날지도 몰라.” “흥, 난 이미 특급 해적들이 수감되던 임펠다운을 한 번 뒤집었던 몸이라고.” “어이, 어이, 나쁜 일 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왜 재수 없게 감옥 걱정부터 하고 그래. 나선환 한 방만 ‘후까시’로 날려주면 그냥 다들 알아서 도망갈지도 몰라.” 다시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골랐다. 으드득, 이 악무는 소리. “하나, 둘, 셋, 돌격!” 이제는 50대를 바라보는 세 남자가 기합과 함께 아까의 골목을 향해 뛰어나갔다. 달리면서 서로를 바라보는 그 얼굴이, 왠지 씨익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글. 위근우 기자 eight@
일러스트레이션. 이크종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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