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은의 10 Voice] 서른 셋 이효리, 좋아 보여
[최지은의 10 Voice] 서른 셋 이효리, 좋아 보여
스무 살의 이효리는 예뻤다. 루즈삭스와 왕 리본, 다소 청승스런 흰 원피스처럼 유행 지나고 나면 촌스럽기 그지없을 의상에도 가무잡잡한 피부에 발랄한 눈웃음의 ‘효리 언니’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핑클은 청순한 여고생 콘셉트의 걸 그룹이었지만 도발적인 섹시함과 묘하게 장난기 서린 눈빛을 지닌 이효리는 그들이 데뷔했던 90년대 후반, 또래의 아이돌은 물론 여성 연예인을 통틀어서도 드문 매력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블루 레인’과 ‘내 남자친구에게’, ‘영원한 사랑’ 등의 수많은 히트곡을 통해 지고지순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이길 자처했던 핑클은 당대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걸 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최고의 스타 이효리에서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으로
[최지은의 10 Voice] 서른 셋 이효리, 좋아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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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3년이 지났다. MBC 의 구애정(공효진)이 그랬듯 부침이 심한 연예계에서, 그것도 젊음과 미모를 최대 무기로 삼았던 아이돌이 살아남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전성기의 뜨거웠던 인기는 보존되긴 커녕 바닥을 치는 펀드 수익률처럼 쑥쑥 줄어들고, 한창 쌓아놓았던 인지도 때문에 비싼 유명세를 치르거나 괜한 구설수에 오르기 일쑤다. 그룹이기 때문에 누렸던 시너지는 초라한 솔로 무대에서 역력히 드러나고, 연기나 MC 같은 새 분야에 도전해보지만 ‘인기 아이돌’이라는 후광이 사라진 뒤의 연예계만큼 팍팍한 곳은 없다. 이효리가 흥미로운 스타였던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2003년 그의 첫 번째 솔로 앨범 타이틀곡 ‘10 Minutes’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이효리는 KBS ‘쟁반 노래방’ 등 예능 프로그램의 MC와 수많은 CF의 모델로 활약했다. 실패한 연기 도전이었던 SBS 나 표절 의혹으로 활동을 일찍 접어야 했던 2집 앨범을 제외하면, 2009년 SBS ‘패밀리가 떴다’로 유재석과 연예대상 공동 대상을 수상했을 만큼 이효리는 다방면에서 성공을 거둔 최초의 아이돌 출신 연예인이었고 인기와 인지도를 두루 갖춘 톱스타였다. ‘패밀리가 떴다’에서 ‘잘난 척 게임’을 할 때 그가 던졌던 “나, 이효리다”는 농담인 동시에 사실이었다. 2010년 프로듀서의 타이틀을 걸고 야심차게 내놓은 4집 앨범 수록곡 다수가 표절 의혹에 휘말리기 전까지는.

바닥을 친 것처럼 보였다. 대한민국에서 서른이 넘은, 춤과 노래 실력이 톱이라기보다 무대 위에서의 화려함과 자신감 넘치는 매력으로 정상에 올랐던 여성 가수가 다시 그 자리를 되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20대의 젊음도, 최강의 디바에 대한 판타지도 잃은 이효리에게 과연 갈 곳이 있을까. 하지만 요즘 이효리는 그 어느 때보다 ‘이효리’만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동물보호단체 활동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직접 참여하며, 공개적으로 모피 반대 의사를 표한다. 물론 이러한 활동에 대해 여성 연예인들 사이에 유행처럼 퍼진 이미지 메이킹이라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효리의 행보가 인상적인 것은 그가 일회적 이벤트 대신 일상 속에서 대중과 직접 소통하며 자신의 신념을 실천해가는 방식 때문이다. 길고양이들에 대한 영화를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영화표 수십 장을 ‘쏘고’, 수익금을 전액 유기동물 보호소 건립기금으로 기부하는 달력 화보를 촬영하며 “연예활동에만 충실하면 좋겠다. 나서지 말라”는 싸늘한 반응에 오히려 “달력 좀..(사 달라)”라고 너스레를 떠는 것은 대중의 시선을 모으고 그들을 즐겁게 만드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다운 태도다. 그래서 과거 이효리의 일상을 ‘보여주려’ 했지만 “효리 미니홈피 구경하는 기분”이라는 반응을 얻은 Mnet 보다 지금의 이효리는 자신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대중을 설득한다.

데뷔 후 그 어느 때보다 매력적인 ‘인간’
[최지은의 10 Voice] 서른 셋 이효리, 좋아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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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일본군 강제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 시위 1000회를 하루 앞두고 그가 트위터에 “잊혀져가는 할머니들을 한 번 더 생각하는 밤이 되길 바랍니다”라는 글과 한 편의 시를 옮겨 적은 것은 특히 인상적이다. 연예인, 특히 여성 연예인, 그 중에서도 아이돌 출신의 연예인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목소리 내는 것을 지극히 조심하거나 꺼리는 사회에서 이효리는 점점 더 많은 것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행동한다. “효리야 계집이면 방구석에 처박혀서 조용히 드라마나 보고 화분에 물이나 줘라” 라는 비아냥거림에 “자국민도 이러니…”라며 강단지게 받아치는 방식도 이효리답다. 그리고 과의 인터뷰에서 “내 마음에 와 닿는 대로 동물을 돕는 것을 먼저 시작하고 보니 그 전에 보이지 않았던 불쌍한 사람들, 열악하게 사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고백한 그는 독거노인들을 위해 난방비를 기부한 것이 알려지자 “아이고 칭찬받을 일도 아닙니다~”라며 수줍어한다.

물론 여전히 가장 ‘핫’한 연예인인 이효리가 세상과 자신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 나가는 과정은 만만치 않다. 한우홍보대사였던 그가 채식을 한다고 했을 때는 논란에 휩싸였고, 지각없는 누군가는 ‘이효리 사망설’을 만들어 퍼뜨리며, 연예 매체들은 그가 동물보호단체 활동을 하다 만난 뮤지션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더 자세히 캐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집 앞에 잠복한다. 하지만 “나를 위해 살던 때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살기 위해 연예인으로서 유명세를 유지하고 더 잘하고 싶다는 이효리는 지금 데뷔 후 그 어느 때보다 매력적인 ‘인간’임이 분명하다. 스물에서 서른셋까지, 우리와 함께 나이 들어 온 스타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것은 나 역시 나이듦에 따라 앞으로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싱글즈, 이효리 트위터

글. 최지은 fiv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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