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이발관의 기타 이능룡이 “GMF는 초식동물을 위한 페스티벌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바람을 가르고의 보컬 준수는 “GMF 관객은 시크하다”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야외 피크닉존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양 옆으로 몸을 흔드는 관객들이 대부분이고, 스탠딩석도 기껏해야 박수를 치거나 노래에 맞춰 두 팔을 휘젓는 정도니까. 지난 10월 23~24일 올림픽 공원에서 열린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이하 GMF)에서는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이소라가 “별 하나 달 하나가 뜬 하늘” 아래서 노래를 부르고 느릿한 말투로 멘트를 이어갈 때도 관객들은 차분하게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했다. 그래서 GMF에는 열광보다 심취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그런 GMF의 색깔이 가장 잘 드러난 공간은 에피톤 프로젝트, 정재형, 이지형, 10cm 등 어쿠스틱 뮤지션들의 공연으로 구성된 ‘Loving Forest Garden’ 무대였다. 노을이 지고 하늘이 어두워질수록 건반과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은 더욱 짙어졌고, 데뷔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무대에 서는 것이 떨린다는 차세정은 ‘선인장’을 부르는 도중 객석으로부터 퍼져 나오는 비누 방울을 보고 할 말을 잃는 감성을 지닌 뮤지션이었다. 88호수를 등지고 꽉 찬 객석을 마주하는 무대만큼 서정적인 공간이 또 있을까. 관객들이 수변무대에 한 번 들어가면 잘 나오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그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은 욕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꽉 찬 스탠딩석,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피크닉존을 본 페스티벌 레이디 한효주의 한 마디는 “짱 신기해요!”. 하지만 뮤지션들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한 관객들 역시 신기한 감정을 느끼긴 마찬가지였다. “가장 큰 무대에서 가장 조촐한 악기를 들고 나왔다”며 수줍어하던 재주소년이 앵콜곡으로 탬버린을 치며 차세대 감성 트로트, `지하철 드 로망스`를 들려줄 거라고 그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유상봉(기타)은 “이런 곡을 GMF에서 부르게 될 줄 몰랐다”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지만 관객들 역시 이런 노래를 GMF에서, 그것도 착하고 순한 느낌의 재주소년 무대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을 거다. 게다가 남성 팬들의 구호에 맞춰 “우윳빛깔 한효주”를 함께 외치는 한효주라니! 노을이 지는 야외무대에서 탬버린 소리를 곁들인 트로트와 어우러진 “우윳빛깔 한효주”야말로 “짱 신기”한 광경이다.





두 명의 일일 DJ가 동시에 디제잉을 하는 ‘Goast Dancing’은 GMF 속 실내 아지트였다. 하얀 천막 안에 들어가 헤드폰을 끼는 사람만이 디제잉을 들을 수 있는 이곳은 침묵과 격렬한 몸짓이 공존하는, 일종의 모순적 공간이었다. 화려한 디제잉, 헤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쥑이네, 췍췍”, “여러분, 춤 안 추실 거에요?” 라는 추임새에 목석처럼 가만히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 관객은 두 DJ가 서로 자신의 무대로 데려가려고 탐낼 정도로 격렬하게 몸을 흔들었고, 침묵의 원칙을 어겨 “밖에서 조용히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올 만큼 시끌벅적했던 데이브레이크 보컬 이원석의 디제잉은 거의 팬 미팅에 가까운 무대였다. 신나면 흔들고 더 신나면 소리 지르는 이들은 초식동물도, 시크한 관객도 아니었다. 단지 부드러운 선율 앞에서는 초식동물로, 마음껏 뛰고 춤추고 싶을 땐 와일드한 육식동물로 변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첫 문장을 이렇게 고쳐보는 건 어떨까. GMF는 ‘지킬앤하이드’들을 위한 페스티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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