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항상 저에게 어떤 도전할 거리를 주는 작품이었던 거 같아요. 그런 열정을 가지고 시작을 하다가, 그러다 보면 너무 힘들어서 ‘난 왜 이렇게 힘든 길만 가는 거야?’ 이렇게 후회하고, (웃음) 그러니 항상 내가 잘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에 두려운 거 같아요. 그러다 결과물을 보고 나름 내가 전달하고자 했던 게 전달되면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죠. 긴장과 불안과 고민의 연속인 거 같아요.” 지금까지 그녀가 배우로서의 자신을 만들어온 과정은 그래서 그녀의 목소리와 닮았다. 예쁘지만 단순히 미녀 배우로, <가발>과 <검은 집>, <이끼>에 출연해 어딘가 섬뜩한 기운이 있는 연기를 보여줬지만 호러 퀸이라 규정할 수 없는 그런 독특함이.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말처럼 도저히 만만하지 않은 배역에 도전하고 그때마다 고민하고 힘겨워하고 극복하며 하나의 의미 있는 연기 경력의 지층을 자신에게 남기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최근 <이끼>의 거의 유일한 여자 캐릭터로서 유선이 그 어느 때보다 주목을 받는 건 일회적인 행운이 아니다. 그보다는 “분명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면서 얻는 희열이 있고, 그 과정만으로 얻는 것들”이 있다고 말하는 이 여배우가 SBS <그 여자가 무서워>와 <떼루아>, 그리고 KBS <솔약국집 아들들> 같은 드라마와 앞서 언급한 영화들에 출연하며 자기 안에 차곡차곡 쌓아왔던 연기적 내공이 비로소 하나의 또렷한 개성으로 드러났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녀의 독특한, 그리고 매력적인 목소리처럼. 고등학교 방송반 시절 듣던 음악부터 최근 멜로 연기를 위해 듣고 있는 음악까지 그녀가 골라준 다음의 플레이리스트는 그런 면에서 그녀 안의 감성적 지층을 쌓아준 음악들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게리 무어의 음반을 선물 받아서 처음 듣게 됐는데 기타 선율이 정말 마음에 확 와 닿아서 좋아하게 됐어요. 또 그땐 방송반 활동을 하느라 엘튼 존, 이글스 등 팝을 많이 들을 때였거든요.” 유선이 가장 먼저 추천한 곡은 게리 무어의 ‘Still Got The Blues’다. 이미 스스로도 전설의 밴드 데프레파드의 멤버인 비비안 캠블은 게리 무어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가장 빠르고 가장 소울적이며 가장 창조적이고 가장 맛있게 연주한다.” 자신의 음악적 영웅에 대한 지나친 찬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블루스에서 헤비메탈, 그리고 다시 블루스로 돌아오며 현란한 테크닉과 블루지한 느낌이 공존하는 연주를 들려주는 그의 곡을 듣노라면 비비안의 찬사가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특히 그의 곡 중 가장 대중적인 넘버인 ‘Still Got The Blues’는 강렬한 메탈 기타리스트로서의 경력을 쌓아오던 그가 다시 블루스로 회귀한 의미 있는 곡이라 할 수 있다.
“데미안 라이스는 되게 많이들 추천하시죠? 그래도 워낙 감성적인 곡이라 추천하고 싶어요. 어쨌든 데미안 라이스는 영화 <클로저>의 수록곡인 ‘The Blower`s Daughter’ 때문에 좋아하게 됐고, 이번에도 ‘The Blower`s Daughter’를 추천하고 싶어요.” 유선의 말대로 데미안 라이스는, 그중에서도 ‘The Blower`s Daughter’는 이 코너를 통해 수많은 이들이 언급한 그야말로 국민 팝송이라 할 만한 곡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 선곡이 빤하다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영화를 보며 잠시 스치는 순간에도 이 곡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가슴에 박혔는지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란하거나 멜로디컬하진 않지만 서정적인 울림을 주는 어쿠스틱 기타와 데미안 라이스 특유의 우울하면서도 슬며시 마음에 번져드는 목소리가 최상의 조합을 이룬 곡이다.
“사실 비비 와이넌스에 대해서는 아예 이름도 모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지인이 여러 곡을 모아 녹음해준 음반에 비비 와이넌스의 ‘Love Thang’이 있는데 정말 그 곡 하나만 너무 좋아서 계속 듣게 됐어요. 그래서 이게 누군가 싶어서 찾아보니 가스펠 가수더라고요. 제가 크리스천이다 보니 그 사실을 알고 더 좋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꼭 그런 종교적 이유가 없는 분이 들어도 부드럽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귀에 쏙쏙 들어올 거예요.” 가스펠이라는 장르에 있어 최고의 슈퍼스타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비비 와이넌스의 ‘Love Thang’은 흑인 영가에 기반을 둔 가스펠 대부분이 그러하듯 리듬 앤 블루스의 스타일과 흑인 가수 특유의 풍성한 목소리가 아름다운 곡이다. 그러면서도 흔히 말하는 ‘소몰이 창법’의 느끼함이 없기 때문에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감미로운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요 근래에 여기저기서 자주 들려서 누군가 싶어 찾아 들어봤는데 정말 앨범의 곡들이 다 좋더라고요. 그래서 근래에 가장 좋아하게 된 뮤지션이에요. 그중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곡은 ‘Geek In The Pink’고요. 아, 그런데 이 곡을 씨앤블루의 정용화 씨가 불렀다고요? 스타일이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 제이슨 므라즈에겐, 그중에서도 < Mr. A-Z > 앨범 안에는 정말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명곡들이 가득하지만 그중에서도 역시 가장 대중적인 넘버는 ‘Geek In The Pink’라 할 수 있다. 들으면서 절로 고개를 까딱까딱하게 되는 그 맛있는 그루브는 그 어떤 일렉트로닉 댄스곡보다 신나고, 살짝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속도감은 심장의 박동수를 더욱 빠르게 한다.
“사실 마이클 잭슨을 굉장히 유명하고 대중적인 팝스타라고만 생각하고 굳이 음악을 찾아 들어본 적은 없었어요. 그러다 마이클 잭슨 사후에 나온 영화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을 보고 한 예술가로서의 마이클 잭슨을 존경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그의 음악을 찾아들었고 그 중 ‘Jam’을 추천하고 싶어요. 유명한 곡이 정말 많지만 그 중에서도 ‘Jam’은 비트가 강하고 그 가운데 마이클 잭슨의 필이 충만하게 묻어 나와서 내 안의 심장이 고동치는 기분이 들거든요.” 아마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으로만 이 코너를 채워도 중복 없이 수많은 업데이트가 가능할 것이다. 그만큼 이 20세기 최고의 슈퍼스타가 이룬 업적은 말로 쉽게 설명할 수준의 것이 아니다. 사실 ‘Heal The World’ 같은 곡에서 알 수 있듯 < Dangerous > 앨범부터의 마이클 잭슨은 너무 평화의 사도 같은 모습을 보이며 퍼포머로서의 활력을 잃는 듯 했지만 유선이 추천한 곡 ‘Jam’에서는 정말 ‘어디 가지 않는’ 오직 마이클 잭슨이기에 가능한 격렬하면서도 유연한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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