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에서 아이돌로 데뷔한다는 건 해변가에 부화된 거북이 알과 같다. 알에서 깨어난 거북이는 바다에 들어가는 순간 끝없는 자유가 보장되지만, 바다로 가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상당수가 목숨을 잃는 위기에 놓이기 때문이다. 아이돌 역시 데뷔한 직후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 그 시간이 가장 고되고 위험하다. 대부분의 아이돌이 데뷔 직후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고 사라지고, 그 중 살아남은 아이돌은 수많은 무대와 예능 프로그램으로 다시 살아남는다. 그 과정을 거쳐 사람들이 그들을 알아보고, 눈에 띌 만큼의 팬덤이 생긴 뒤에야, 아이돌은 조금씩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 엠블랙은 그 험난한 서바이벌 게임을 거친 작은 승리자들이다. 데뷔 당시 비가 제작하는 아이돌 그룹으로 화제를 모았던 그들은 몇 개월간의 시행착오와 그만큼의 성과를 거두며 조금씩 자신들의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이제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든 그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얼마 전에는 Mnet < M! Countdown >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제 막 바다를 향해 헤엄쳐나갈 준비를 끝낸 그들에게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월드컵은 잘 보고 있어요?
이준: 네. 하이라이트로. (웃음)

왜요? 바빠서?
이준: 네. 정말 바빠요. 제가 원래 연기를 하고 싶어서 데뷔 전에는 요즘 극장에서 뭐 하는지도 다 알았는데, 요즘엔 무슨 작품을 하는지 전혀 몰라요.

“앞으로도 1위하면 계속 잊어버릴 생각이에요”
엠블랙│“너무 바빠서 순수하게 살아요, 시골 청년들처럼” -1
엠블랙│“너무 바빠서 순수하게 살아요, 시골 청년들처럼” -1
월드컵을 못 볼 정도면 그냥 세상하고 단절된 거네요. (웃음)
미르: 월드컵인데! (웃음)
지오: 그래서 순수하게 사는 거 같아요. (웃음) 시골 청년들 사는 것 같고. 가끔씩 시간 나서 동료가수들 만나 보면 “아, 나는 되게 청렴한 청년이구나” 하는 생각이. (웃음)
이준: 진짜 진짜 진짜 그래.

지오 씨는 방송에서 데뷔 전에 20명 여자를 사귀었다는 얘기도 했으면서. (웃음)
지오: 아유, 지금 그건 다 씻겨 내려가고, 다시 거의 백지 상태로 돌아간 느낌에요. (웃음) 뭐든 너무 많이 해버리면 지루하고, 계속 더 자극적인 게 필요하잖아요. 저희는 몇 년 동안 단절된 생활을 하니까 자유롭게 됐을 때 할 게 너무 많을 것 같아서 행복해요.

막내들은 청렴하게 (웃음) 사는 게 괜찮아요?
미르: 전 뜨고 나서 놀겠습니다. (웃음)
승호 : 저 친구는 이미 놀아서, 이미 초심을 잃은 애에요.

미르 씨가 연애하려고 소 팔았다면서요? (웃음)
미르 : 네, 제가 개방적이라서… 하하. 해 볼 건 다 해보고 살았던 것 같아요.

‘Y’가 < M! Countdown >에서 1위를 했는데, 1위 하고 나서 초심은 안 변했어요? (웃음) 1위 끝나고 자축 파티 같은 건 안했나요?
미르: 스케줄 끝나고 연습했죠, 뭐.

초심에 변화가 없군요. (웃음)
승호: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지긴 했어요. 책임감도 더 많이 생기고, 다음 음악은 뭘 해야 할지 하는 생각도 들구요.
천둥: 그냥 그날 울고 잊어버렸어요. 1위한 사실 잊어버리고, 앞으로도 1위하면 계속 잊어버릴 생각이에요.

< M Countdown >에서 처음 1위했을 때 승호 씨는 좀 울던데요. 리더로서 소감이 남달랐나 봐요?
승호: 안 울 줄 알았어요. 그런데 1위가 되기 전에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갑자기 말 한 두 마디 하다가도 울컥 해요. 2주만 건강하게 더 계셨어도 새로운 곡도 들려드릴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제가 그 자리에서 두세 마디 하다 보니까 진짜 그림처럼 머릿속에서 예전 일들이 지나가더라구요. 할아버지 생각이 나니까 너무 슬펐어요.
지오: 그리고 미르는 우는 동시에 초심을 잃었죠.
미르: (우는 시늉하며) 뜨-허억-
천둥 : 눈물에다 초심을 흘려보냈어요.
이준: 상암동(프로그램 스튜디오가 있는 곳)에 초심 두고 왔어.
지오: 1위 발표할 때 음반 집계나 심사위원 집계 같은 거 나오잖아요. 그때부터 이미 감정을 끌어올린 다음에 포즈를 딱 잡고 있다가…
천둥: 옆에서 보는데 그 전부터 감정 잡고 있었어요, 얘는.
미르: 다들 한 3-5초 헉하고 놀란 다음에 우는데, 저는 “엠블랙!” 하는 순간 울었죠. 되게 창피하더라고요.

“이번에는 제발 욕먹지 말자는 생각으로 연습했어요”
엠블랙│“너무 바빠서 순수하게 살아요, 시골 청년들처럼” -1
엠블랙│“너무 바빠서 순수하게 살아요, 시골 청년들처럼” -1
‘Y’가 이 정도 반응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곡이 후렴구를 강조하기 보다는 곡 전체에 긴장감을 주는 스타일이라 요즘 트렌드와 다르다고 느낄 수도 있었는데.
승호: 처음 들었을 때 걱정은 됐어요. 요즘 노래들은 다 후렴구에서 승부를 거는데 이건 분위기가 중요한 곡이니까. 그런데 ‘Y’만큼 저희가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었던 곡이 없었어요.

연습할 때는 어땠어요? 전체적으로 미묘하게 변하는 리듬을 맞추지 못하면 노래가 우스워질 수도 있는데.
승호: 일단 무한반복 연습이죠. 그리고 연습할 때 혼신의 힘을 다해서 하는 게 중요해요. 힘을 빼고 라이브처럼 안하고 연습 열 번 하는 것 보다 정말 무대처럼 노래를 불러야 좋아요. 연습실에 마이크가 없어서 생으로 부르는 대신 사운드를 줄여서 노래를 불러 보고 다시 확인 해봐요.

안무와 노래를 같이 하는 건 어때요? 호흡이 하나로 계속 이어지는 노래라 라이브 소화하기가 더 힘들 텐데.
승호: 처음에는 이거 할 수 있나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이런 느낌으로 노래를 부른 적도 없어서 애도 많이 먹고 혼도 많이 났고. 그래서 슬럼프에도 빠져서 내가 노래를 못하는 구나, 이걸 또 춤을 격하게 추면서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도 했는데… 사람이 하니까 다 되더라고요. (웃음)

동작은 몸의 선을 길게 뻗는 동작이 많으면서도 곳곳에 격렬한 동작을 같이 배치했는데, 노래의 호흡은 쭉 이어가야 해서 ‘이걸 시킨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웃음) 싶었어요.
승호: 그렇죠. ‘Oh Yeah’는 강한 퍼포먼스 위주라 보는 분들께 센 느낌만 주면 되는데 ‘Y’는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이 일관되고 분위기를 잘 잡아야 하니까 힘들다고 헉헉대면 춤이 너무 힘들어 보여요. 반대로 노래를 너무 편하게 풀어버리면 지루해질 수 있고.

이준 씨는 시작 부분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 때 곡의 분위기가 잡히잖아요. 노래를 어떻게 해석하고 불렀나요?
이준: 지금도 힘들어요. 그 부분에서는 비트만 나오잖아요. 그리고 안무도 돌자마자 바로 잡고 음을 맞춰야 하고. 그래서 무대 시작 전에 계속 음을 잡으려고 들어가기 전에 “썸- 썸- 썸바디” 이래요. 아직도 방송하면서 음이 약간 달라질 때도 많아요.

노래 부르는 호흡을 계속 이어가는 사이에도 격렬한 동작들이 있어서 계속 근육에 긴장을 줘야 하는데, 연습은 어떻게 했어요?
이준: (이준이 개인 사진 촬영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자) 아, 제가 이 얘기는 하고 가야되는데! (웃음) 하고 싶은 말이 있어가지고.

얼마든지 하세요. (웃음)
이준: 제가 춤출 때 계속 뚝뚝 끊기면서 몸을 튕겨줄 때가 있는데, 그 때 노래는 자연스럽게 이어지거든요. 사실 ‘Oh Yeah’ 할 때 라이브 때문에 비난도 받고 그래서 이번에는 제발 욕먹지 말자는 생각으로 연습했는데 안되더라구요. 사실 지금도 잘 안되는데, 정말 몇 백번 하니까 이제 심장이나 이런 기관들이 뚝뚝 끊어져서 나오는 것 같아요. (웃음)

“지훈이 형이 엠블랙에게 강조한 것은 자립심”
엠블랙│“너무 바빠서 순수하게 살아요, 시골 청년들처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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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에서 군무가 포인트인데, 하이라이트에서 안무를 맞춰보는 건 어땠어요? 연습 과정이 다른 팀하고 좀 달랐을 것 같은데.
승호: 굉장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서 안무가 나왔어요. 데뷔 때하고는 다르게 멤버들 개인 활동도 있어서 모이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까 한 번 모였을 때 정말 집중해야 하고, 다음날 꼭 마스터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죠.
지오: 노래가 아주 대중적이라고 할 수는 없어서 춤을 대중적으로 춰서 사람들이 따라 하기 쉽게 할지, 춤도 노래하고 비슷한 분위기로 갈지도 고민이 많았어요.
승호: 연습할 때 같이 춤출 때 한 명만 빠져서 네 명을 봐요. 그렇게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다섯 번을 해요. 데뷔 때부터 이렇게 연습을 해서 서로의 의견이 많이 나올 수 있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메라로 찍은 걸 다섯 명이 보면서 모니터하면 연습이 빨리 되더라구요.

미르 씨는 랩을 하는 만큼 다른 멤버들하고는 또 다른 상황이었는데.
미르: 계속 부담이 되죠. (웃음) 1집 때는 아예 곡 시작을 제가 했는데, 부담이 컸어요. 스타트를 끊는 게 힘드니까요.

그것도 무려 데뷔곡을. (웃음)
미르: 네. 그리고 지훈이 형도 “처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부담을 주시고. 게다가 ‘Y’는 보컬 애드립이 없고 그 부분에 제 랩이 나와요. 곡 거의 끝날 때 쯤 임팩트를 줘야 하니까 부담스럽죠. 그 때 지훈이 형이 가이드를 직접 해주셨는데, 너무 어렵더라구요. 그리고 무대에서는 흥분된 상태에서 하니까 호흡을 조금만 잘못해도 랩이 못 나오고.

엠블랙은 가이드 보컬 녹음도 비 씨가 하고, 비 씨에게 배우기도 했지만 보컬 스타일은 비 씨와 달라요. 보통 제작자에 따라 노래 스타일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엠블랙은 어떻게 트레이닝을 받았나요?
지오: 저희는 데뷔전에 경력들이 많아서 스스로 노래를 불렀던 시간이 길어요. 노래 각각의 느낌은 어느 정도 전달을 받긴 하지만 기본적인 목소리나 창법은 저희가 갖고 있는 소리를 내자고 했어요.
승호: 이번 앨범은 저희 의견이 많이 반영된 편이기도 하고, 지훈이 형이 어떤 강요를 하진 않아요. 예를 들면 다른 멤버에게 어울리는 파트를 굳이 다른 멤버에게 연습시켜서 맡으라고 하지도 않구요. 노래에서 파트 분배도 거의 저희가 하고.

멤버들이 알아서 하는군요.
승호: 지훈이 형이 강조한 게 자립심이었거든요. 다음 앨범에는 저희가 썼던 곡들이 수록될 것 같기도 해요. 강제적으로 뭘 하라는 게 아니라 뒤에서 살살. (웃음) 그래서 부담을 안 느끼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엠블랙이 이런 느낌의 팀이라고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 같아요. 무대를 이미 마음속으로 그리고 곡을 줘서 그 느낌을 딱 맞게 하는 것 같아요.

비 씨가 MBC ‘라디오 스타’에서 엠블랙에게 처음에는 이미지 신경 쓰라고 했다가 방송 하는 거 보니 그냥 놔두면 되겠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정말로 그런 지시를 했나요?
승호: 처음에는 저희가 주로 가요 프로그램에만 나갔고, 강한 이미지가 있었잖아요. 그래서 지훈이 형도 별로 신경 쓸 게 없었는데 저희가 예능을 하나 둘씩 하는 걸 보면서 “뭐 이런 애들이 있나” 싶었나 봐요. 그러다 이게 점점 수습이 안 돼서. (웃음) “니네가 이렇게 웃긴 줄 몰랐다”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시더라구요.

인터뷰. 강명석 two@
인터뷰. 최지은 fiv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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