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 “축구는 잘하고 싶은데, 평범하고 싶어요.” – MBC 스페셜 에서
“재능있다”기보다는 “성실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어느 팀에서든 주전 경쟁부터 시작해야 했다. 자신을 내성적인 성격이라 말한다.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해 피아노 연주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한국인이 그를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등번호 7번을 달고 후반 7분에 골을 넣었”다. 2010 월드컵에서.
박지성
박지성
박지선 : 박지성이 태어날 때 부모가 지은 이름으로 ‘지혜롭고 착하게 살라’(智善)는 뜻이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출생신고를 할 때 동사무소 직원이 잘못 알아듣고 ‘지성’(智星)으로 적었다. 박지성은 어느 팀에서든 전술 이해에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고, 영국의 한 언론은 그에게 ‘Wise star’라는 표현까지 썼으니 지금의 이름이 된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인 듯. 박지성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연예인을 시켜야 하나”라고 생각할 만큼 끼가 충분했고, 사람들 앞에서 춤추길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나이트클럽에 가서 사람들 앞에서 재롱을 부리다 그를 귀여워하는 손님들이 계속해서 춤을 추라고 한 것에 크게 당황, 이후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그의 동료인 안데르손은 박지성에 대해 몸치라고도 했다. 또한 박지성의 어머니 장명자는 임신 중 용과 뱀이 자신의 몸을 감고 하늘로 오르는 꿈을 꿨고, 출산 후 웬 노파가 “크게 될 아이다. 머리는 좋은데 일단 예체능계 일을 하고, 공부는 나중에 한다”고 말했다고.

박성종 : 박지성의 아버지. 원래는 아들이 공무원이 되길 바랐고, 축구를 시작한 뒤에는 “축구로 대학이라도 가길” 바랐다. 하지만 소박한 바람과 별개로 직장에 휴가를 내면서까지 아들의 시합을 관전했고, “아들도 돌보고 고기도 많이 먹일 수 있어” 직장을 관두고 정육점을 냈으며, 박지성에게 집중적인 뒷바라지를 하려고 더 이상 자식을 두지 않았다. 또한 그의 아내는 박지성이 프로에 입단하기 전까지 2000여만 원의 빚을 지며 아들을 뒷바라지 했고, 박지성은 아버지와 마찰이 있어도 “아빠한테 대들면 그 화가 엄마에게 쏠리기 때문에 꾹 참았다”고. 박지성은 일본 프로팀에 입단한 후 처음으로 번 돈 5천만 원을 모두 부모에게 보냈고, 이후 용인에 위치한 최고급 주택을 선물했다. 자식에게 헌신적이고, 부모에게 잘하는 한국 가족의 대표적인 예. 한편, 박성종이 다니던 직장은 가죽을 만드는 회사였는데, 그 가죽의 용도 중 하나는 축구공이었다고 한다.

이학종 : 수원공고 축구팀 감독. 박지성이 역대 국내파 베스트 11에 미드필더로 뽑을 만큼 존경하는 은사다. 당시 진학 문제를 두고 고민하던 박지성은 국가대표 출신인 그의 부임 소식에 수원공고를 선택했다. 이학종 감독은 체력과 기술은 좋지만 키가 160cm가 채 되지 않았던 박지성을 위해 1학년 때는 기본기 위주의 훈련만 시키며 체격을 키우는데 집중했다. 또한 현역에서 은퇴한지 얼마 안 돼 선수들과 함께 연습경기를 뛰었는데, 박지성은 그와 패스를 주고받기 위해 노력하다 선수의 움직임을 읽는 것에 눈을 뜨며 “축구는 머리로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박지성의 기본적인 축구 스타일이 이 때 정립된 셈이다. 또한 당시 박지성은 “발의 모든 곳에 3000번은 공이 닿아야 공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매일 패스와 단거리 훈련을 반복했다. 또 자기관리가 철저해야한다는 생각에 중학교 시절 여중생이 보낸 팬레터에 고민하다 결국 답장도 보내지 않았다. 수원공고는 박지성이 주전으로 뛰던 3학년 시절, 전국대회에서 우승했다.

허정무 : 월드컵 국가대표 감독.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두 번째 상대인 아르헨티나 감독 마라도나와 선수로도 만났었다. 박지성을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발탁하기도 했다. 올림픽 대표팀 감독 시절 명지대와의 연습경기에서 박지성이 “경기를 풀어 나가는 방식이 지능적이고 체력이 좋아” 국가대표로 선발했다. 당시 박지성은 실력은 좋았지만 작은 체격으로 주목받지 못해 명지대에도 마지막 남은 정원으로 합격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허정무 감독이 명지대 감독이던 김희태 감독과 친해 그와 “바둑 두다 박지성을 뽑았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하지만 박지성은 엄청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체력을 길렀고, 올림픽 대표팀 주전이 됐다. 그리고 허정무가 이끄는 이번 월드컵에서도 골을 넣었다. 허정무는 월드컵을 준비하며 선수 선발 문제로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감독은 결과로 말하는 법. 이번에도 그의 선수 선발이 박지성 같은 결과를 낳을까, 아니면 무모한 결정으로 남을까.

히딩크 : 월드컵 4강, 챔피언스 리그 4강, 유로 4강 등 ‘4강 트레블’을 이뤘다고 해도 좋을 감독. 박지성을 2002 월드컵 대표로 발탁, 그가 결정적인 활약을 하도록 만들었고, 이후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으로 스카웃했다. 하지만 그가 박지성에게 끼친 가장 큰 영향은 축구를 대하는 마인드다. 박지성은 선수들이 부진해도 질책대신 결과에 대해 토론하게 만드는 히딩크의 방식에 큰 충격을 받았고, “그런 정신력이라면 축구선수로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칭찬에 용기를 얻었다. 또한 “최전방 라인과 미드필드 라인에서 교묘하게 움직이며 상대를 움직일 줄 아는 선수”라는 이유로 공격수에 발탁, 멀티 플레이어의 가능성을 열었다. 이후 박지성은 PSV 아인트호벤 시절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좌-우-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기도 한다. 박지성이 히딩크를 “잠재력을 이끌어 내준 분”이라고 말하는 이유. 히딩크는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부상을 당하자 자신과 함께 일하는 물리 치료사를 보내기도 했다. 또한 그는 2002 월드컵 준비를 하던 당시 박지성에게 “넌 프리미어리그에 갈 수 있어”라는 말도 했다고.

이영표 : 월드컵 국가대표. 박지성과 PSV 아인트호벤에서 함께 뛰었고, 이후 프리미어리그에서도 함께 활약했다. 박지성은 그와 함께 영어를 배우는 등 네덜란드에서 함께 생활하며 첫 유럽리그 생활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박지성은 이적 첫 해 무릎 부상에도 무리하게 경기를 뛰다가 부상이 깊어졌고, 이후 슬럼프에 빠져 홈 팬들의 야유를 받을 정도가 됐다. 축구를 하면서 언제나 시련의 연속이었던 그에게 가장 큰 시련이 찾아온 순간. 하지만 히딩크는 “(이영표 외에도) 동료들과 장난치며 팀 생활을 즐겨라”라고 말하며 한동안 그가 원정경기 위주로 뛰도록 배려했고, 박지성은 컨디션을 조절한 끝에 데뷔 다음해부터 팀의 확실한 주전이 됐다. 이탈리아 스포츠 전문지 는 PSV 아인트호벤과 AC밀란의 챔피언스리그 4강전을 앞두고 박지성을 가리켜 “누가 이 작은 악마를 막겠는가”라는 기사를 썼고, 데뷔 시절 그를 질책했던 반 봄멜은 자신이 경솔했다며 사과했다. 그리고 그는 맨체스터로 갔다.

퍼거슨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박지성의 영입을 적극적으로 주도했고, 그를 “환상적인 에너지와 스피드를 갖고 있다. 다양한 옵션을 주는 선수”라고 평했다.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2012년까지 연봉 73억 원에 재계약했을 만큼 팀에서 확실한 위치를 다졌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경기에 따라 공격, 미드필더, 수비를 가리지 않고 기용했고, 챔피언스리그전처럼 상대팀의 전술을 빨리 파악해야할 때 경기의 흐름을 잘 읽는 박지성을 특히 중용했다. 그는 2007~2008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팀 평균 이동거리인 1만1022m보다 940m 긴 1만1962m를 달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루니, 호날두 등 최고의 공격수들이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보이지 않는 영웅’이다. 하지만 대신 그는 골 결정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이 때문에 퍼거슨은 박지성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그를 스타팅에서 제외했으며, 필요에 따라 그를 결장시킨다. 늘 자신의 현재보다 한 단계 우위에 있는 선수들이 있는 곳에서 활약하면서, 박지성은 자신이 앞에 나서서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에브라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 박지성과 가장 친한 친구 중 한명으로, 그에게 깜짝 생일 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그는 일본-네덜란드-영국을 거치며 선수생활을 하면서 선수들과 친분을 쌓는 것의 중요성을 절감했고, 언제나 현지의 언어를 익히기 위해 통역을 거의 쓰지 않고 직접 부딪쳤다. 네덜란드 시절에는 형용사 30개의 뜻과 발음을 단 두 번 듣고 맞출 정도로 언어 능력이 좋았다고. 그는 과거 “영어를 배우고 싶어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싶다”고도 했다. 또한 그는 평소 술을 거의 마시지 않고, 컨디션 관리를 위해 자는 시간, 전화하는 시간, 계단을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의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어린 시절에는 시장에 있는 사람들을 축구선수라 생각하고 가상으로 그들을 피하고 패스하는 훈련도 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한국인 선수가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려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 영국 의 스티브 커리는 “메시가 선천적인 재능을 가진 선수라면 박지성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천재가 됐다”고 말했다.

홍명보 : 올림픽 국가대표팀 감독. 현역으로 뛰던 2002 월드컵 시절 박지성과 함께 방을 썼다. 박지성은 그에게 어떻게 호칭을 불러야할지 몰라 “저기요”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홍명보는 박지성에게 곤란한 질문에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특유의 인터뷰 스킬 등을 가르쳤다. 그리고 박지성은 8년 뒤 월드컵의 주장이 됐다. 그는 ‘박지성 쉬프트’라는 말이 나올 만큼 국가대표팀의 핵이 됐고, 후배들은 그를 롤모델로 여긴다. 내성적이던 성격의 그는 일본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일본이 약해진 것 같다”며 도발하기도 하고, 그리스전을 앞두고는 선수들에게 “즐기는 축구”를 할 것을 강조한다. 한국 대표팀의 캡틴은 그렇게 이어지고, 축구 문화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은퇴 후 유소년 축구 육성에 힘을 기울일 것이다. 박지성은 앞에 나서지 않았다. 스타이고 싶지도 않았다. 대신 조용히 노력하고, 전체의 판을 읽었다. 그리고 조용히 한국의 축구를 이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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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과 함께 CF에 출연한 비와 함께 KBS 에 나온 김성수가 출연 중인 KBS 의 탁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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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석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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