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H.O.T.가 등장했을 때 세상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누군가는 그들이 새로운 시대의 틀을 제시했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그들을 한국 대중음악을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간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 때부터 시작된 아이돌 음악에 관한 수많은 논란들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그 사이 아이돌과 그들의 음악은 한국 대중음악산업의 가장 큰 표준이 됐고, H.O.T.부터 f(x)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아이돌 그룹을 히트시킨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는 한국 대중음악의 중심이 됐다. 그리고 SM이 발표한 수많은 음악의 중심에는 유영진이 있다. SM과 소속 가수에 대한 모든 음악적 성과와 논란은 그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는 수많은 아이돌의 팬들에게는 아이돌 음악의 아버지였고, 어떤 이들에게는 대중음악 시장을 이전에는 없었던 작법과 가사로 물들인 다스베이더였다. 음악에 대해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유영진을 알고, 유영진에 대해 한마디씩 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를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유영진이 이룬 대중적인 성과나 논란을 이야기할 뿐, 한 사람의 뮤지션으로서 그의 음악에 대해 얼마나 이야기했는가. 가 메이저 신의 뮤지션을 초대한 두 번째 시간, 유영진과 그의 음악과 SM과 함께한 지난 15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스베이더도, 제다이도 아닌, 자신의 음악을 꾸준히 하고 싶어 하는 뮤지션의 솔직한 목소리가 여기 있다.
대중들이 당신의 이름은 많이 알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른다. 간단하게 설명해준다면.
유영진 : 일단 나는 SM과 프로듀서가 아닌 아티스트로서 계약했다. 예전에 15년 계약도 아티스트로 했고. 얼마 전에 계약기간이 끝나고 다시 15년 계약을 했다. 나야 여기 평생 있고 싶은 사람이니까. (웃음) 그리고 프로듀서로서 가수들을 위해 곡을 쓰고, 믹싱을 하고, 가수들과 안무에 대해서도 얘기하면서 내가 만드는 곡의 전반적인 부분을 프로듀싱한다. 그리고 우리의 계열사 중에 노래방 기계를 만드는 회사가 있는데, 그 기계를 만드는 회사의 주주 겸 이사이기도 하다.
“뮤지컬처럼 눈과 귀 모두를 충족시키는 음악을 하고 싶다” 노래방?
유영진 : 음악을 만들어서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이 노래방이니까. 우리가 만드는 기계들은 100% 원음으로 사운드를 들려주기 때문에 그 음원의 녹음과 믹싱, 사운드의 균형 같은 것들을 체크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도 프로듀싱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프로듀싱할 때 어떤 부분에 관여하나.
유영진 : 가수들의 의상 콘셉트 같은 건 디자인 팀이 따로 있고, 그건 이수만 선생님과 디자이너가 상의한다. 나는 곡을 쓰는 것 이외에 가수들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해줄 필요가 있을 때는 따로 레슨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만든 곡의 안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안무에서는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유영진 : 노래도 기승전결이 있듯이 춤도 기승전결이 있다. 곡이 진행되는 내내 힘을 주는 것 보다 어느 부분에는 힘을 넣고 어느 부분에 힘을 빼는 게 좋다. 그리고 힘을 넣는 부분에서는 분명하게 악센트를 줘야 하고. ‘Sorry Sorry’에서 손바닥을 비비는 동작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너무 복잡한 부분은 빼기도 하고. 곡을 만들고 후반 작업에서 이런 것들에 많이 신경 쓴다.
당신이 그런 부분에 관여하는 건 역시 당신이 댄서이기도 했고, 아이돌 그룹의 곡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당신의 곡은 언제나 무대를 상상하고 쓰는 것 같다.
유영진 : 그러지 않고는 곡을 쓰기 힘들다. H.O.T. 시절부터 무대와 안무를 어느 정도 구상하고, 특별히 생각나는 안무가 있으면 그걸 안무가에게 만들어준다. 내가 곡을 쓴다는 건 무대와 곡이 일체화되는 작업이다. 노래라고 표현하지만, 뮤지컬처럼 눈과 귀 모두를 충족시키는 음악을 하고 싶다.
특히 최근 곡들은 그런 부분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것 같다. ‘Sorry Sorry’, ‘링딩동’, ‘미인아’ 같은 곡들은 완벽하게 리듬에서 멜로디가 나오는 형태로, 처음부터 어떤 무대를 떠올리게 만든다.
유영진 : 확실히 그런 게 있다. ‘링딩동’은 처음에 비트 하나를 만들고는 그걸 반복시킨 상태에서 멜로디를 다 썼다. 리듬에도 음정이 분명히 있고, 그런 음의 연결이 기본적으로 어떤 코드의 진행이라고 생각하면 멜로디는 무한하게 나올 수 있다. 리듬이 멜로디의 서브가 아니라, 곡의 메인이다. 어떤 사람은 음악을 만들면서 가사가 중요하고, 어떤 사람은 멜로디를 중요하게 생각하듯이 나는 리듬을 먼저 생각한다. 그 다음에 편곡으로 살을 붙인다.
“완벽한 퍼포먼스를 위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 목표” 당신은 가요계에서 리듬을 멜로디 이상으로 중요하게 생각한 첫 세대다. 그 전에는 멜로디를 먼저 만들고 리듬을 붙였는데, 당신은 리듬을 먼저 만들고 멜로디를 자유롭게 변주했었다.
유영진 : 내가 쓴 곡이 2000곡이고, 발표한 게 180곡 정도 된다. 그런데 한 두곡 빼고는 무조건 리듬부터 만들었다. 발라드라도 그렇다.
그만큼 당신이 곡을 만드는 이유는 다른 작곡가들과 다른 것 같다. 결국 당신의 목표는 무대 위에서 가수가 정말 멋있는 순간을 연출하는 것 아닌가 싶다.
유영진 : 정확히 봤다. 댄스 음악은 춤을 추는 음악이기 때문에 어떤 곡이든 정말 드라마틱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떤 곡은 음악만 들었을 때는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무대를 같이 보면서 만들어진 음악이니까.
SM만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 SMP(SM Music Performance)는 그런 배경에서 만들어진 건가. SMP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 위의 춤을 부각시키는데 초점을 맞춘 음악인데.
유영진 : 나는 처음 곡을 만들 때부터 가능하면 드라마틱한 댄스 음악을 하고 싶었다. 내가 MBC 무용단에 있을 때 한창 자넷 잭슨의 ‘Rhythm nation’ 같은 곡이 유행했었다. 그 때 그런 음악과 무대를 보면서 곡이 하나의 흐름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 것 보다 곡의 흐름을 맺고 끊고, 음악에 브레이크를 걸거나 비트의 속도를 늦추면서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랐다. 그건 어떻게 보면 한 곡 안에 다섯 곡을 리믹스하는 것과 같은 효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H.O.T. 시절에 다양한 장르를 한 곡 안에 넣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건가.
유영진 : 이수만 선생님도 리믹스를 했는데 마치 한 곡처럼 연결되는 곡을 해보고 싶어 하셨다. “내가 쓴 곡들 중에서 이 곡의 1절이 끝나면 2절은 네가 쓴 다른 곡의 이 부분에서 가져와서 섞어 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도 하셨고. 그래서 앨범에서 중요한 곡이 세 곡쯤 되는데, 그런 곡을 아예 한 곡처럼 만들어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 그게 이 앨범을 보여주는 게 아니냐고 하셨다. SMP는 그런 바탕에서 시작됐다.
그 점에서는 당신의 작법은 힙합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심플한 비트 위에 여러 아이디어를 조합하는 거니까.
유영진 : 맞다. 내가 힙합을 좋아하기도 했었고. 같은 비트라도 래퍼가 어떻게 랩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이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내 음악도 비트를 만들고 그 위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결합한다.
하지만 당신은 그런 작법에 랩 대신 록이나 R&B를 섞는다. 그 노래를 부르는 건 아이돌이고. 그래서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사실 기존의 작법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부분도 있으니까.
유영진 : 맞다. 욕도 많이 먹고. (웃음) 내 음악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고, 항상 모니터링을 한다. 다만 나는 문화라는 게 누군가 충격을 주면 새로운 방향으로 바뀐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설익은 작품이나 너무 한 쪽 방향으로 치우쳐서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들리는 곡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하다 보면 그게 언젠가는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멜로디를 작곡한다면, 나 같은 작곡가가 하나 있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좋든 싫든 간에 음악이 세계화 되고 있는데, 그들에게 우리가 뭘 해왔다고 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 그들이 너희 음악이 뭐냐고 물었을 때 완벽한 퍼포먼스를 위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
“‘Nu ABO’는 순간적인 감각에 따라서 즉흥적으로 썼다” 한국 음악이 서구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유영진 : 내 예전 곡을 해외 아티스트에게 모니터를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의 R&B를 R&B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치 R&B에서 영향 받은 새로운 동양 음악처럼 받아들였다. 꼭 SM이 아니라도 그들이 추구하는 음악을 그냥 쫓기보다 우리가 하는 음악의 어떤 독특한 부분과 동양가수가 결합돼서 그 사람들에게 신선한 문화 충격이 될 때 성공할 거라고 생각한다.
SM도 요즘에는 외국 곡들을 받아서 한국식으로 바꾼다. 당신도 그 작업을 하는데,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유영진 : ‘아미고’, ‘주문’, ‘Nu ABO’ 같은 곡들이 외국 작곡가의 곡이고, 어떤 곡을 쓰겠다는 결정을 하게 되면 나를 비롯한 여러 작곡가들이 편곡을 하고 가사를 붙인다. 일단 나는 외국곡을 그대로 쓰지는 않는다. 그쪽 친구들은 멜로디, 가사, 편곡이 모두 굉장히 심플해서 나는 거기에 우리나라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더한다. 어떤 경우에는 원곡에서는 서브로 깔려 있는 멜로디를 메인으로 만들기도 하고, 아예 멜로디를 새로 만들기도 한다. 곡의 전체적인 흐름은 좋지만 클라이막스가 약한 곡은 그런 부분을 만들어 주고. ‘Nu ABO’에서 루나가 후반에 부르는 부분도 그렇다. 그 부분은 아예 흐름을 바꿔주는 건데, 곡을 끊어주더라도 분위기를 확실히 전환하면서 임팩트를 주는 게 한국적인 부분 같다.
가사를 쓰는 건 어떤가.
유영진 : 물론 외국곡을 손볼 때 가장 신경 쓰는 건 사운드겠지만 가사를 한국어로 바꾸는 것도 굉장히 힘들다. 음절이 굉장히 짧게 나눠져 있어서 어떤 단어를 써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가장 힘든 게 샤이니의 ‘아미고’였다. 원래 노래 제목이 ‘Turn it up’이었는데, 그 세 자에 우리나라 말을 썼을 때 유치하지 않은 게 없었다. 그래서 나는 원곡의 음절, 음률, 끝음 처리를 원곡과 비슷하게 맞추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래야 리듬이 바뀌지 않으니까. 리듬이 바뀌면 아예 다른 노래가 된다.
요즘 작업한 곡들을 보면 특히 리듬이나 곡의 전개가 변화될 때 쉽게 귀에 들어올 수 있는 가사를 쓰는데 신경 쓰는 것 같다.
유영진 : 맞다. 댄스음악의 가사를 쓸 때는 일단 원곡의 느낌에 충실해야 하고, 동시에 작사의 방향에 대해 선택해야 한다. 몇 마디의 멜로디 안에 정말 의미를 함축하는 대신 운율을 포기하든가, 아니면 가사 내용에 대한 임팩트를 떨어뜨려도 운율을 살려서 노래가 딱딱 맞아떨어지게 하든가 해야 한다. 나는 후자 쪽이다. 예를 들어 ‘Nu ABO’의 ‘미스테릭’ 같은 가사는 없는 단어인데, ‘미스테리’라고 하면 끝 음이 약해서 ‘미스테릭’으로 끊어줬다. 그런 부분 때문에 아예 없는 단어를 쓴다거나, 첫 발음을 세게 할 수 있는 단어를 쓴다.
하지만 그래서 ‘Nu ABO’의 가사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영진 : ‘Nu ABO’는 순간적인 감각에 따라서 즉흥적으로 썼다. 왜냐하면 ‘Nu ABO’는 그 걸 부르는 f(x)의 아이들 자체가 굉장히 귀엽고, 엉뚱하기도 하다. 예를 들어 설리가 너무 예쁘면서도 가끔 엉뚱한 행동을 하는데, 그걸 가사로 옮겨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가사의 맥락이 연결이 안 되거나 말이 안 된다는 비판도 있다.
유영진 : 가사의 운율을 맞추다보면 내가 쓴 내용에서 중간 중간에 있는 단어만 발췌하면서 말을 이어가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다 보니까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나는 내가 쓴 글의 전체 내용을 알고 발췌를 하는 거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걸 알지 못하니까. 나는 그 의미를 모두 담고 싶지만 이런 스타일의 음악에서는 쓸 수 있는 단어의 폭이 좁아져서 쉽지 않다. 내가 아직 노력해야할 부분이다. 내 머릿속에서는 정리가 됐는데, 다른 사람은 정리가 안 된다고 하더라. (웃음)
글. 강명석 two@
사진. 이진혁 eleven@
그는 수많은 아이돌의 팬들에게는 아이돌 음악의 아버지였고, 어떤 이들에게는 대중음악 시장을 이전에는 없었던 작법과 가사로 물들인 다스베이더였다. 음악에 대해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유영진을 알고, 유영진에 대해 한마디씩 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를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유영진이 이룬 대중적인 성과나 논란을 이야기할 뿐, 한 사람의 뮤지션으로서 그의 음악에 대해 얼마나 이야기했는가. 가 메이저 신의 뮤지션을 초대한 두 번째 시간, 유영진과 그의 음악과 SM과 함께한 지난 15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스베이더도, 제다이도 아닌, 자신의 음악을 꾸준히 하고 싶어 하는 뮤지션의 솔직한 목소리가 여기 있다.
대중들이 당신의 이름은 많이 알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른다. 간단하게 설명해준다면.
유영진 : 일단 나는 SM과 프로듀서가 아닌 아티스트로서 계약했다. 예전에 15년 계약도 아티스트로 했고. 얼마 전에 계약기간이 끝나고 다시 15년 계약을 했다. 나야 여기 평생 있고 싶은 사람이니까. (웃음) 그리고 프로듀서로서 가수들을 위해 곡을 쓰고, 믹싱을 하고, 가수들과 안무에 대해서도 얘기하면서 내가 만드는 곡의 전반적인 부분을 프로듀싱한다. 그리고 우리의 계열사 중에 노래방 기계를 만드는 회사가 있는데, 그 기계를 만드는 회사의 주주 겸 이사이기도 하다.
“뮤지컬처럼 눈과 귀 모두를 충족시키는 음악을 하고 싶다” 노래방?
유영진 : 음악을 만들어서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이 노래방이니까. 우리가 만드는 기계들은 100% 원음으로 사운드를 들려주기 때문에 그 음원의 녹음과 믹싱, 사운드의 균형 같은 것들을 체크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도 프로듀싱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프로듀싱할 때 어떤 부분에 관여하나.
유영진 : 가수들의 의상 콘셉트 같은 건 디자인 팀이 따로 있고, 그건 이수만 선생님과 디자이너가 상의한다. 나는 곡을 쓰는 것 이외에 가수들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해줄 필요가 있을 때는 따로 레슨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만든 곡의 안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안무에서는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유영진 : 노래도 기승전결이 있듯이 춤도 기승전결이 있다. 곡이 진행되는 내내 힘을 주는 것 보다 어느 부분에는 힘을 넣고 어느 부분에 힘을 빼는 게 좋다. 그리고 힘을 넣는 부분에서는 분명하게 악센트를 줘야 하고. ‘Sorry Sorry’에서 손바닥을 비비는 동작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너무 복잡한 부분은 빼기도 하고. 곡을 만들고 후반 작업에서 이런 것들에 많이 신경 쓴다.
당신이 그런 부분에 관여하는 건 역시 당신이 댄서이기도 했고, 아이돌 그룹의 곡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당신의 곡은 언제나 무대를 상상하고 쓰는 것 같다.
유영진 : 그러지 않고는 곡을 쓰기 힘들다. H.O.T. 시절부터 무대와 안무를 어느 정도 구상하고, 특별히 생각나는 안무가 있으면 그걸 안무가에게 만들어준다. 내가 곡을 쓴다는 건 무대와 곡이 일체화되는 작업이다. 노래라고 표현하지만, 뮤지컬처럼 눈과 귀 모두를 충족시키는 음악을 하고 싶다.
특히 최근 곡들은 그런 부분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것 같다. ‘Sorry Sorry’, ‘링딩동’, ‘미인아’ 같은 곡들은 완벽하게 리듬에서 멜로디가 나오는 형태로, 처음부터 어떤 무대를 떠올리게 만든다.
유영진 : 확실히 그런 게 있다. ‘링딩동’은 처음에 비트 하나를 만들고는 그걸 반복시킨 상태에서 멜로디를 다 썼다. 리듬에도 음정이 분명히 있고, 그런 음의 연결이 기본적으로 어떤 코드의 진행이라고 생각하면 멜로디는 무한하게 나올 수 있다. 리듬이 멜로디의 서브가 아니라, 곡의 메인이다. 어떤 사람은 음악을 만들면서 가사가 중요하고, 어떤 사람은 멜로디를 중요하게 생각하듯이 나는 리듬을 먼저 생각한다. 그 다음에 편곡으로 살을 붙인다.
“완벽한 퍼포먼스를 위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 목표” 당신은 가요계에서 리듬을 멜로디 이상으로 중요하게 생각한 첫 세대다. 그 전에는 멜로디를 먼저 만들고 리듬을 붙였는데, 당신은 리듬을 먼저 만들고 멜로디를 자유롭게 변주했었다.
유영진 : 내가 쓴 곡이 2000곡이고, 발표한 게 180곡 정도 된다. 그런데 한 두곡 빼고는 무조건 리듬부터 만들었다. 발라드라도 그렇다.
그만큼 당신이 곡을 만드는 이유는 다른 작곡가들과 다른 것 같다. 결국 당신의 목표는 무대 위에서 가수가 정말 멋있는 순간을 연출하는 것 아닌가 싶다.
유영진 : 정확히 봤다. 댄스 음악은 춤을 추는 음악이기 때문에 어떤 곡이든 정말 드라마틱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떤 곡은 음악만 들었을 때는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무대를 같이 보면서 만들어진 음악이니까.
SM만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 SMP(SM Music Performance)는 그런 배경에서 만들어진 건가. SMP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 위의 춤을 부각시키는데 초점을 맞춘 음악인데.
유영진 : 나는 처음 곡을 만들 때부터 가능하면 드라마틱한 댄스 음악을 하고 싶었다. 내가 MBC 무용단에 있을 때 한창 자넷 잭슨의 ‘Rhythm nation’ 같은 곡이 유행했었다. 그 때 그런 음악과 무대를 보면서 곡이 하나의 흐름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 것 보다 곡의 흐름을 맺고 끊고, 음악에 브레이크를 걸거나 비트의 속도를 늦추면서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랐다. 그건 어떻게 보면 한 곡 안에 다섯 곡을 리믹스하는 것과 같은 효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H.O.T. 시절에 다양한 장르를 한 곡 안에 넣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건가.
유영진 : 이수만 선생님도 리믹스를 했는데 마치 한 곡처럼 연결되는 곡을 해보고 싶어 하셨다. “내가 쓴 곡들 중에서 이 곡의 1절이 끝나면 2절은 네가 쓴 다른 곡의 이 부분에서 가져와서 섞어 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도 하셨고. 그래서 앨범에서 중요한 곡이 세 곡쯤 되는데, 그런 곡을 아예 한 곡처럼 만들어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 그게 이 앨범을 보여주는 게 아니냐고 하셨다. SMP는 그런 바탕에서 시작됐다.
그 점에서는 당신의 작법은 힙합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심플한 비트 위에 여러 아이디어를 조합하는 거니까.
유영진 : 맞다. 내가 힙합을 좋아하기도 했었고. 같은 비트라도 래퍼가 어떻게 랩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이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내 음악도 비트를 만들고 그 위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결합한다.
하지만 당신은 그런 작법에 랩 대신 록이나 R&B를 섞는다. 그 노래를 부르는 건 아이돌이고. 그래서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사실 기존의 작법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부분도 있으니까.
유영진 : 맞다. 욕도 많이 먹고. (웃음) 내 음악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고, 항상 모니터링을 한다. 다만 나는 문화라는 게 누군가 충격을 주면 새로운 방향으로 바뀐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설익은 작품이나 너무 한 쪽 방향으로 치우쳐서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들리는 곡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하다 보면 그게 언젠가는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멜로디를 작곡한다면, 나 같은 작곡가가 하나 있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좋든 싫든 간에 음악이 세계화 되고 있는데, 그들에게 우리가 뭘 해왔다고 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 그들이 너희 음악이 뭐냐고 물었을 때 완벽한 퍼포먼스를 위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
“‘Nu ABO’는 순간적인 감각에 따라서 즉흥적으로 썼다” 한국 음악이 서구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유영진 : 내 예전 곡을 해외 아티스트에게 모니터를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의 R&B를 R&B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치 R&B에서 영향 받은 새로운 동양 음악처럼 받아들였다. 꼭 SM이 아니라도 그들이 추구하는 음악을 그냥 쫓기보다 우리가 하는 음악의 어떤 독특한 부분과 동양가수가 결합돼서 그 사람들에게 신선한 문화 충격이 될 때 성공할 거라고 생각한다.
SM도 요즘에는 외국 곡들을 받아서 한국식으로 바꾼다. 당신도 그 작업을 하는데,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유영진 : ‘아미고’, ‘주문’, ‘Nu ABO’ 같은 곡들이 외국 작곡가의 곡이고, 어떤 곡을 쓰겠다는 결정을 하게 되면 나를 비롯한 여러 작곡가들이 편곡을 하고 가사를 붙인다. 일단 나는 외국곡을 그대로 쓰지는 않는다. 그쪽 친구들은 멜로디, 가사, 편곡이 모두 굉장히 심플해서 나는 거기에 우리나라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더한다. 어떤 경우에는 원곡에서는 서브로 깔려 있는 멜로디를 메인으로 만들기도 하고, 아예 멜로디를 새로 만들기도 한다. 곡의 전체적인 흐름은 좋지만 클라이막스가 약한 곡은 그런 부분을 만들어 주고. ‘Nu ABO’에서 루나가 후반에 부르는 부분도 그렇다. 그 부분은 아예 흐름을 바꿔주는 건데, 곡을 끊어주더라도 분위기를 확실히 전환하면서 임팩트를 주는 게 한국적인 부분 같다.
가사를 쓰는 건 어떤가.
유영진 : 물론 외국곡을 손볼 때 가장 신경 쓰는 건 사운드겠지만 가사를 한국어로 바꾸는 것도 굉장히 힘들다. 음절이 굉장히 짧게 나눠져 있어서 어떤 단어를 써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가장 힘든 게 샤이니의 ‘아미고’였다. 원래 노래 제목이 ‘Turn it up’이었는데, 그 세 자에 우리나라 말을 썼을 때 유치하지 않은 게 없었다. 그래서 나는 원곡의 음절, 음률, 끝음 처리를 원곡과 비슷하게 맞추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래야 리듬이 바뀌지 않으니까. 리듬이 바뀌면 아예 다른 노래가 된다.
요즘 작업한 곡들을 보면 특히 리듬이나 곡의 전개가 변화될 때 쉽게 귀에 들어올 수 있는 가사를 쓰는데 신경 쓰는 것 같다.
유영진 : 맞다. 댄스음악의 가사를 쓸 때는 일단 원곡의 느낌에 충실해야 하고, 동시에 작사의 방향에 대해 선택해야 한다. 몇 마디의 멜로디 안에 정말 의미를 함축하는 대신 운율을 포기하든가, 아니면 가사 내용에 대한 임팩트를 떨어뜨려도 운율을 살려서 노래가 딱딱 맞아떨어지게 하든가 해야 한다. 나는 후자 쪽이다. 예를 들어 ‘Nu ABO’의 ‘미스테릭’ 같은 가사는 없는 단어인데, ‘미스테리’라고 하면 끝 음이 약해서 ‘미스테릭’으로 끊어줬다. 그런 부분 때문에 아예 없는 단어를 쓴다거나, 첫 발음을 세게 할 수 있는 단어를 쓴다.
하지만 그래서 ‘Nu ABO’의 가사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영진 : ‘Nu ABO’는 순간적인 감각에 따라서 즉흥적으로 썼다. 왜냐하면 ‘Nu ABO’는 그 걸 부르는 f(x)의 아이들 자체가 굉장히 귀엽고, 엉뚱하기도 하다. 예를 들어 설리가 너무 예쁘면서도 가끔 엉뚱한 행동을 하는데, 그걸 가사로 옮겨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가사의 맥락이 연결이 안 되거나 말이 안 된다는 비판도 있다.
유영진 : 가사의 운율을 맞추다보면 내가 쓴 내용에서 중간 중간에 있는 단어만 발췌하면서 말을 이어가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다 보니까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나는 내가 쓴 글의 전체 내용을 알고 발췌를 하는 거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걸 알지 못하니까. 나는 그 의미를 모두 담고 싶지만 이런 스타일의 음악에서는 쓸 수 있는 단어의 폭이 좁아져서 쉽지 않다. 내가 아직 노력해야할 부분이다. 내 머릿속에서는 정리가 됐는데, 다른 사람은 정리가 안 된다고 하더라. (웃음)
글. 강명석 two@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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