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송사
임을 위한 송사
날이 가고 달이 바뀌는 게 뭐 그리 별거냐 라고 생각하다가도, 지난 주말처럼 에어컨과 모기 혹은 열대야 같은 단어가 초고속으로 다가오는 낮과 밤을 견뎌내고 나니 지금 이 1시간이 혹은 이 1분이 세상의 온도와 색을 야금야금 바꾸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그나저나 낮선 더위 속에 간밤에도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지난 저녁의 온도를 더욱 올려놓았던 것은 아마도 ‘1박 2일’을 떠나던 김C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웬만해선 세상만사 그리 호들갑스러울 것 없던 이 남자가, 이수근의 눈물 앞에 마치 첫사랑에게 모진 이별을 선고한 열아홉 소년처럼 어쩔 줄 몰라 하던 모습이라니요. 그가 마른세수를 어색하게 이어나갈 때 TV 앞의 저는 계속 고장 난 에어컨의 리모컨을 벅벅 누르고 있었습니다. 더위가 찾아오기 전엔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그 녀석이 오늘따라 어찌나 아쉽던지.

사실 지난 ‘인터뷰 100’에서 만난 김C는 “녹화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1박 2일’ 떠나는 주는 월요일부터 계속 우울한 느낌이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이 말을 인터뷰 내용에서 제외시키면서도 이미 이별을 어렴풋이나마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요, 너를 잊겠다는 거짓말을 하고 돌아서긴 했지만.

떠나는 그를 보며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영화 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의도치 않게 시작된 의사행세에 어쩌다보니 사람 목숨도 구하고, 위기도 넘기고, 그렇게 이제는 그만이라는 이야기를 할 틈도 없이 마을 사람들의 신뢰와 사랑을 얻게 된 시골 의사 선생. 결국 아무도 없는 새벽거리에 의사가운을 벗어 던지고 사라지던 그 뒷모습에 어렴풋이 김C가 겹쳐졌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잘한다는 칭찬에, 따뜻한 격려에, 주위의 기대에 의사 가운을 벗어 던질 타이밍을 놓쳐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남은 길을 우울하게 혹은 투덜거리며 살아갑니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었다고, 나는 이 길을 원 한 적 없노라고.

엄마 떠난 ‘1박 2일’엔 당분간 빈자리가 보이겠지요. 하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기타를 잡은 김C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입니다. 이제 곧 다가올 진짜 여름도 잘 이겨내자구요. 당신은 당신 자리에서, 우리는 우리 각자의 길 위에서.

글. 백은하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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