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원│“사랑이라는 주제를 얘기하는 건 늘 좋다”
차승원│“사랑이라는 주제를 얘기하는 건 늘 좋다”
“이런 드라마 만난 거 영광인 줄 알아!” MBC 의 독고진은 최종회의 마지막에서 외쳤다. 시청자들을 향해 자신만만한 웃음을 짓던 그는 독고진이었을까? 차승원이었을까? 드라마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던 그 시간은 그대로 차승원과 독고진 사이에도 흐른다. 독고진처럼 톱스타인 차승원은 독고진이 처한 가상의 연예계에서 22년을 살았다. 독고진 또한 차승원의 트레이드 마크인 ‘소자 수염’이나 그가 광고하는 제품을 그대로 가져왔다. 물론 현실의 차승원은 서른일곱 살 미혼남도 아니고, 병약했던 미소년의 과거도 없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사람들은 어느 순간 “대한민국에 독고진이라는 배우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독고진은 차승원이 연기한 독고진이 아니라 별개의 인물”로 존재했다. 캐릭터를 실감나게 소화하고, 역할에 자신의 모습을 박아 넣는 배우는 많다. 그러나 독고진을 한류스타로 믿게 한 차승원처럼 실재와 가상을 뒤섞는 최면을 거는 배우는 많지 않다.

아무리 최고의 사랑을 받았다 하더라도 현재성이 강한 드라마의 캐릭터가 시간의 흐름을 이기기는 쉽지 않다. 독고진 역시 김주원처럼, 구준표처럼 쌓이는 시간에 조금씩 풍화될 것이다. 그러나 독고진은 사라져도 차승원은 남는다. 고백이 아닌 자백, 사랑이 아닌 자랑마저도 “남자의 귀여움”으로 보여준 차승원이라면. 독고진의 부재로 방전의 위기에 처했다면 그와의 인터뷰로 충전 해보는 건 어떨까? 그 위기의 극복 뒤에는 차승원이 거는 또 다른 최면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늘 찍는 촬영분은 어떤 내용인가.
차승원: 마지막 방송에 나오는 웨딩 신이다. 독고진과 구애정이 한 번 휘몰아쳤고 이제 끝마무리니까 소소한 일상들을 보여주는 거다. 구애정이란 여자가 원래 비호감인데 독고진이 우리한테는 이렇게 응원해주는 사람도 많다고 보여주는 장면이다.

“코미디와 정극을 오가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차승원│“사랑이라는 주제를 얘기하는 건 늘 좋다”
차승원│“사랑이라는 주제를 얘기하는 건 늘 좋다”
‘그래서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류의 후일담을 보여줄 만큼 독고진과 구애정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SBS 에서도 조국으로 인기를 끌었던 경험이 있는데 그 때와 체감온도가 많이 다른가.
차승원: 그때랑은 또 다르다. 은 정말 붐업된 드라마니까. 은 지금 이 붐업되니까 같이 잘 되는 것 같다. 대만하고 일본에서도 반응이 있고. 근데 도 워낙 퀄리티가 좋은 드라마였으니까 그게 가능한 거다. 그런 드라마 다시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리고 이번에도 다시 한 번 느끼는 거지만, 작품은 글이 좋아야 된다. 글이 좋아야 인물도 살고, 뭘 해도 어색하지 않고, 사람들한테 감동을 줄 수 있다. 이야기의 본질이 산으로 안 가고. 다 글 덕분인 것 같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에는 분량도 그리 많지는 않았을 텐데 독고진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다가오던가.
차승원: 대본은 한 2부 정도 나와 있었는데 나는 ‘그럴 것 같다’라고 예상되는 인물은 별로 연기하고 싶지 않았다. 보통 이런 드라마에서 나오는 남자주인공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좀 바꿔보고 싶었다. 남자주인공 역할은 늘 멋있고, 또 멋있는 척 하지 않나. 독고진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고, 또 옹졸하다. 자기방어도 되게 심하고. 근데 그게 밉지 않은 거지. 멋지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남자가 제일 멋있을 때는 백퍼센트 로맨틱하지 않은 상황에서 보이는 귀여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걸 해보고 싶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뭘 많이 해 주고 이런 게 아니라, 가끔씩 해주는데 그게 늘 못해주다가 정말 이 사람이 힘들 때 하니까 그 마음이 훨씬 더 전달되는 거다.

확실히 독고진은 잘해주고도 생색내고, 현실적인 계산 때문에 사랑 앞에서 망설이기도 했다.
차승원: 기존의 드라마에서는 ‘제가 이렇게 해서 사랑하게 됐고요, 제 마음은 이렇게 돼서 준 거 였어요’하고 속내를 말로 다 비치지 않나. 그게 난 싫었다. 속을 내비치진 않지만 속에 있는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거에서 확 가는 거다. 그 이후로는 이 사람이 어떤 미운 행동을 해도 그건 이 사람의 본심이 아니야, 그냥 이 사람은 성격상 그런 사람이야 이해하고. 시청자들도 쟤가 저런 짓을 할 때도 저 사람은 나쁜 놈은 아니야 하고 옹호하게 된다. 이렇게 가면 나중에 이 여자가 벼랑 끝에 있을 때 탁 잡아주면 모든 여자들은 허물어지는 거지. (웃음) 은 그런 장치들이 굉장히 잘 돼 있는 드라마였다. 늘 코미디도 하고 정극도 할 수 있는 배우, 그 둘을 왔다갔다 하는 역을 하고 싶었는데 그걸 할 수 있는 장치가 굉장히 좋았던 드라마였다. 코미디했다가 정극했다가 되게 이상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는데 한 신 안에서도 코미디와 정극이 있다. 슬픈 장면인데 슬프게 안 끝나고 웃기게 끝나는 거지. 뒤에선 슬퍼서 눈물을 흘릴 거야, 이게 아니라 되게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웃음을 주면서 끝나는 거. 이게 반복에 반복이 되다보면서 다른 드라마하고 차별이 될 수 있는 캐릭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말했듯이 독고진 캐릭터가 일반적인 남자 주인공과 다를 수 있었던 부분 중 하나가 코믹함이었다. 최근 작품들에선 일명 ‘차승원표’ 코미디라고 하는 특기를 볼 수 없었던 게 사실인데 오랜만에 코믹한 설정들을 마음껏 가지고 노는 게 보이더라.
차승원: 내가 하는 코미디는 일상적이지 않은 코미디다. 다분히 만들어내고 테크니컬적인 코미디다. 이게 어떻게 보면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데 독고진과 잘 맞았다. 사실은 반신반의했다. 말투나 행동 같은 것들이 코드가 세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사람들이 되게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얘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다 된다. 이런 캐릭터들은 그냥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돌아만봐도 웃긴 거다. 희한한 의성어나 대사를 해도 얘는 괜찮은 거다. 독고진이 혼자 하는 “극뽁” 같은 것들도 사실 일상적이지 않지만 얘는 그런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게 다 커버되는 거다. 그래서 여러가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 거지. (공)효진이는 다분히 리얼리티가 강한 배우니까 나하고 만났을 때 두 캐릭터가 상충이 돼서 드라마가 더 풍부해졌다. 만약에 일상적인 캐릭터가 둘이 만났으면 굉장히 심심했을 거고, 그렇지 않은 캐릭터가 둘이 만났으면 너무 세졌을 거고. 은 아주 밸런스가 잘 맞았다.

“독고진은 나하고는 많이 다르다”
차승원│“사랑이라는 주제를 얘기하는 건 늘 좋다”
차승원│“사랑이라는 주제를 얘기하는 건 늘 좋다”
편안하게 코믹한 요소들을 마음껏 내보일 수 있는 환경이지만 또 한 신안에서 멜로와 코믹을 오가고 후반에서는 시간에 ㅉㅗㅈ기며 대본을 봐야하는 현장에서 그 밸런스를 맞춘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차승원: 될 수 있으면 대본을 많이 보려고 애를 쓴다. 나는 대본을 숙지해야지 마음 편하게 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완벽하게 대본을 숙지를 해서 내가 그 다이얼로그를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을 때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볼 수 있다. 극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연극도 그렇고 드라마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단순히 그냥 리얼한 걸로 해서는 안 되는 계산적인 부분들이 있다. 나는 그걸 터부시하는 사람도 아니고, 대본을 보면 볼수록 여러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여러가지 말이 생각난다. 그걸 적재적소에 써먹는 거고. 관객들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흥미를 느끼고 보는 거기 때문에 그 관계를 여러 가지 각도와 시각으로 보려고 애를 많이 쓴다. 둘이서 연기한다고 해도 삼자의 입장에서 봐야 되고, 상대편의 입장에서도 봐야 되고, 내 입장에서 봐야 된다는 생각을 늘 한다.

독고진은 실제 차승원이라는 스타가 하고 있는 광고를 끌어오거나 ‘소자 수염’을 부각시키는 등 캐릭터와 배우 사이의 경계를 지우면서도 또 굉장히 다르다. 연기하면서 그 경계를 왔다갔다하는 경험은 어땠나.
차승원: 그럼, 독고진은 나하고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독고진 역시 연예인이고, 배우니까 나하고 접합점이 많았다. 그래서 쉽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한 편으로 봤을 땐 나하고 되게 다른 사람이더라. 근데 재밌는 얘기를 들은 게, 사람들이 독고진이라는 연예인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는 거다. 대한민국에 독고진이라는 배우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재밌는 현상인 것 같다. (웃음) 차승원이 연기한 독고진이 아니라 독고진은 또 다른 별개의 인물로 비춰지니까.

미투데이에서도 독고진과 차승원 사이에서 스스로도 왔다갔다 할 때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차승원: 최근에는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시간보다 독고진으로 촬영을 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더 많다. 아무래도 그 습관이나 습성 같은 게 몸에 배겠지. 그러니까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저 사람은 저렇게 빙의가 돼서 연기를 하는구나 하겠지만 (웃음) 24시간 풀로 촬영하니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은 독고진이란 스타 뿐 아니라, 구애정이라는 생계형 연예인에 매니저, 사생활을 캐는 기자,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몰고가는 악플 등 연예계를 판타지가 아닌 현실로 묘사하고 있다.
차승원: 대본에는 그게 더 잘 나온다. 요즘 악플들 때문에 난리지 않나, 독고진이 악플러를 고소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 나오는 악플러들이 대학교수, 초딩, 멀쩡한 주부인 거다. 그런데 구애정이 사고가 났는데 애는 안 떨어졌나 뭐 이런 얘기를 한단 말이지. 왜 그랬냐고 이유를 물어봐도 그냥, 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것처럼 내가 우리 드라마를 좋게 보는 이유 중 하나가 단순히 연예계에서 일어나는 재밌는 일만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건 가족”
차승원│“사랑이라는 주제를 얘기하는 건 늘 좋다”
차승원│“사랑이라는 주제를 얘기하는 건 늘 좋다”
연예계라는 정글에서 20년이 넘게 살아왔는데 그런 묘사를 접하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 것 같다.
차승원: 너무 자기만 생각하는 거 같다. 어떤 사람이 한번 공격을 받기 시작하면 그 사람한테 특별히 악의가 없더라도 하거든. 그런데 그게 점점 더 심해진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을 하고 되짚어봤으면 좋겠다다. ‘내가 왜 특별히 저 사람을 싫어하지? 내가 왜 공격하지?’에 대해서. 그런데 지금은 이유가 없는 것 같다. 그냥이라지 않나. 씁쓸하지.

드라마에서도 나오지만 단순히 악플을 다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자정 차원을 넘어 그런 악플이나 소문을 기사화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매체들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차승원: 영화 를 찍을 때 인터뷰를 했는데 (최)승현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기자가 최승현 씨 연기가 어떠셨어요? 하고 묻더라. 그 나이또래에 연기 경험이 없는데 당연히 못하지. 하지만 걔는 연기를 되게 쉽게 보지 않는 애다. 연기에 대해서 나름의 가치를 느끼면서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을 높이 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돌 스타라고 그런 거 없다, 승현이는 3개월 동안 정말로 그 인물로 살면서 열심히 했다고 말했는데 그냥 ‘최승현 연기 못한다’ 이렇게 쓴 거다. 반성해야 하는 기자들도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문제에 대해 다들 고민해봐야 한다고 본다.

얼마 전에 김승우 씨가 MBC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독고진 역할이 탐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웃음) 사실 동년배 배우들 중에서도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을 할 수 있는 배우가 거의 없다. 그게 굉장한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지위를 계속 유지해야 된다는 긴장감도 있을 것 같다.
차승원: 로맨틱 코미디는 굉장히 해보고 싶었던 장르다. 앞으로 몇 개를 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랑 얘기는 늘 좋은 것 같다. (웃음) 해보니까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얘기하는 건 앞으로도 영원히 불변일 것 같아서 또 해보고 싶다. 문제는 그런 거지. 이제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나 하는 건데… 예전에는 장르적으로 봤을 때 어둡고, 삶의 고난과 역경 같은 걸 연기해야 높이 사줬지만 나는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만 생각하는 건 선택의 기회나 폭이 너무나 없는 거고, 여러 장르를 통해서 보여줄 수 있는 배우들이 너무나 많은데 단순히 그런 것들로 인해서 평가절하된다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배우들 나름대로의 색깔이 있으니까 점점 그런 것을 존중받는 분위기로 가지 않을까?

독고진은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도 구애정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했다. 차승원이라는 사람이 마지막까지 꼭 지키고 싶은 건 무엇인가.
차승원: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건 가족이다. 그렇다고 가족만은 아니고, 나를 포함한 가족. 내가 있어야지 그들을 지킬 수 있으니까, 가족을 내가 꼭 지키고 싶고, 울타리가 돼 주고 싶다. 내가 이런 직업을 하니까 그런 울타리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요소들이 굉장히 많으니까 내가 지켜줘야 된다. 전에도 말 했지만 나는 굉장히 공격적인 사람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할 때는 사람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들어도 상관없다. (웃음)

글. 이지혜 seven@
사진. 이진혁 el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