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를 색깔로 표현해 달라는 질문에 현빈은 ‘회색’이라고 답했다. 안개가 자욱하거나 비가 내리는 시애틀이라는 공간적인 배경 탓도 있지만, 아픔과 외로움에 스스로를 닫아버린 애나(탕웨이)의 감정은 마치 거대한 회벽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벽에 난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뒤흔드는 것은 훈(현빈)이다. 훈은 매 장면마다 대답도 없고 표정조차 잃은 애나를 향해 웃어 보이고 농담을 건네며, 함께 시애틀의 밤거리를 달린다. 짧은 시간 동안만 허락된 만남이지만, 훈으로 인해 애나는 평생 간직할 추억을 가지게 되었다.
는 현빈에게 연기할 수 있는 부분을 그리 많이 열어 두진 않았다. 카메라 앞에서 극을 지배하는 애나에 비해, 시종일관 애나의 짝으로만 존재하는 훈은 보자마자 대번에 도드라지는 역할은 아니다. 하지만 애나를 향해 웃어 보이고, 애절한 눈빛으로 애나에게 입을 맞추는 훈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현빈의 탁월한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현빈은 훈을 웃을 때조차 저 사람이 진심으로 웃고 있는 건지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인물로 그려냈다. 돈을 받고 상대를 웃게 만드는 호스트, 그래서 과연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서부터가 서비스일까 궁금한 훈은 시야에 희미하게 들어와서 선명하게 각인된다. SBS 의 김주원으로 잊을 수 없는 한 계절을 보낸 현빈에게, 지금 다시 돌아보는 는 어떤 의미였을까.
“탕웨이는 뺏고 싶은 점이 많은 배우” 영화 촬영을 시작하고 1년 정도의 텀을 두고 개봉한다. 다시 보는 기분은 사뭇 다르겠다.
현빈: 작품을 부산국제영화제 때 처음 봤는데, 사실 그 때 바로 개봉이 되었으면 했다. 시간이 지나면 내 연기도 시효가 지나간 연기가 될 거 같고, 지금 다시 를 찍는다면 그 때와는 또 다른 무언가가 나올 거 같다. 물론 어찌 보면 지금 개봉하는 게 잘 된 걸 수도 있다. 관객 수에도 영향을 미칠 테니까. 문제는 그 관객들이 분명 의 영향을 받고 극장을 찾을 거라는 거다. (웃음) 지금의 고민은 그것이 영화를 감상하는 것에 마이너스 요소가 안 됐으면 하는 것이다. 모르겠지만 자신은 있다. 더 플러스가 됐으면 좋겠다. (웃음)
훈이라는 캐릭터를 만들 때 가장 신경 쓴 점은 무엇이었나?
현빈: 애나만큼이나 훈도 닫혀 있는 사람이다. 가족적인 문제도 있고 자기의 처지에 대한 아픔과 쓸쓸함도 있는 친구인데, 그럼에도 훈은 자기보다는 애나를 먼저 생각한다. 훈이 가진 호스트라는 직업 자체가 상대에게 돈을 받고 상대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면서 행복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일이니까. 애나에게 선물 같은 존재라는 것이 훈의 목표였다.
어제 탕웨이가 극 중 훈도 당신도 모두 천사라고 하더라. 탕웨이와의 작업은 어땠나?
현빈: 처음에는 아무래도 문화적, 언어적 차이가 있으니까 다른 작업보단 어려운 점이 있었다. 많은 벽들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훈과 애나로 만나면서 많이 가까워졌다. 애나를 위해 훈이 계속 뭔가 아이디어를 짜내고 말을 건네고 행동을 취하는데, 그 과정에서 장난도 칠 만큼 서로 편해졌다. 탕웨이는 굉장히 몰입을 깊게 하는 배우니까, 나에게 천사라고 말해준 것도 아마 훈이 천사 같은 존재이기 때문 아닐까. (웃음)
공형진은 당신을 두고 같이 작업하는 배우들의 장점을 잘 흡수한다며 ‘빨대’라 불렀다. 탕웨이에게서 흡수하고 싶은 능력들이 있었다면 어떤 것일까.
현빈: 뺏고 싶은 점이 많은 배우다. 그렇다고 탕웨이에게 빨대를 꽂을 수는 없고. (웃음) 높은 몰입도를 배우고 싶었다. 대본 리딩을 할 때도 슬픈 감정을 연기하는 대목에서는 실제로 울어 버려서 중단되기도 했다. 자기는 안정된 연기를 배우고 싶다고 하던데, 나는 탕웨이가 보여주는 순간순간 모습이나 대사처리들을 보면서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그런 순간의 힘을 배우고 싶다.
“요즘은 연기하는 재미를 더 많이 느끼고 있다” 상대 배우뿐 아니라 낯선 공간에서 주연 배우로서 현장에 적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시애틀에 먼저 갔다고.
현빈: 잘 하려고 먼저 간 거다. 나와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촬영장의 90퍼센트가 넘는 현장이니까, 그들의 문화를 알고 거리감을 좁히고 싶었다. 영어 수업 받으러 학교 다니듯 프로덕션 사무실로 출석하기도 했고. 작품에 관련된 일도 계속 했다. 두 달 반 정도 감독님과 대본 이야기도 하고, 영어로 바뀐 번역본을 다시 한국어로 바꿔서 대사를 손보고 그걸 다시 영어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탕웨이와도 서로 간의 이질감을 없애기 위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당신은 작품 선택에 공을 들이는 배우로 유명하다. 20대에 노희경과 인정옥, 곽경택과 김태용을 모두 만난다는 건 쉬운 경험이 아니니까. 김태용 감독과 함께한 작업은 어땠나?
현빈: 김태용 감독님은 착한 욕심쟁이다. 말투가 나하고 비슷해서 조용조용하시고 느릿느릿하시다. 그런데 그렇게 늘 웃고 느릿느릿 말하면서도 작품에 대한 애정으로 결국은 원하던 것들을 다 만들어 내신다. 미국 시스템은 한국과 달라서 12시간 이상 촬영을 할 수 없다. 감독님도 처음엔 분명 시계를 안 차고 다니셨는데, 어느 순간부터 시계를 차고 계시더라. 안타깝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그 안에 다 해내셨다. 그리고 굉장히 섬세하시다. 시애틀에서 작품을 완성하고도 한국에 와서 후시 작업을 굉장히 오래 했다. 감독님은 그걸 또 계속 편집하시고, 늘 쉬지 않고 뭔가 하고 계셨다. 지금도 부산국제영화제 버전과는 음악이나 편집이 달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 대단하신 분이다.
당신이 현장에서 이야기하면서 추가한 신이나 대사 같은 게 혹시 있나?
현빈: 처음부터 같이 만들어 간 대본이었다. 처음 영어 대본을 리딩한 후에 훈이의 캐릭터에 맞게 대사를 고쳤다. 훈이는 미국에 간 지 얼마 안 된 친구니까, 그 정도 영어 실력이 되었을 때 썼을 법한 단어들도 고려했고, 훈이의 직업상 사용할 법한 표현들도 고민했다. 그 다음에는 다시 한국말로 고쳐서 ‘이게 정말 내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대사를 쳤을까’를 고민하면서 대사를 다시 수정했다. 그걸 다시 한 문장 한 문장 스크립터와 함께 영어로 번역했다. 리허설도 연극 연습 하듯 하나씩 맞춰 갔다. 영화 초반의 버스 장면은 정말 버스 내부처럼 간의 의자들을 배치해 놓고, 감독님과 촬영감독님, 미술감독님, 탕웨이와 다 같이 모여서 논의했다. 어디쯤 앉을지 부터 동선체크까지 다 하고. 촬영을 12시간 밖에 못 하다 보니, 모두가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어야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시작해서 이제 데뷔 8년 차 배우가 되었다. 본인의 연기 지론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현빈: 연기에 수학 문제처럼 답이 있다면 좀 더 쉽게 갈 수 있겠지만, 답이 없다는 게 가장 어렵다. 그래도 요즘은 연기하는 재미를 더 많이 느끼고 있다. 배우로서의 목표는 모니터하면서 후회하지 않는 배우가 되는 거다. 분명 나는 최선을 다 해서 연기했다고 생각을 하는데, 컷 사인이 나고 가서 모니터를 보면 ‘왜 저렇게 했을까’라는 질문이 먼저 나온다. 그래서 언제쯤 모니터를 보면서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자신의 연기에 좀처럼 만족을 못 하나보다. 욕심이 많은 편이다.
현빈: 욕심쟁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이기적인 부분도 있고. 그런데 그러고 싶다. 그래야 되는 거 같다. 일단 돈이 들어 가 있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있기에 욕심을 안 내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욕심을 부려야 내가 떳떳할 수 있다.
“해병대 입대 선택에는 후회가 없다” 의 열풍으로 다시 대중의 인기의 정점에 섰다. MBC 이후 오랜 시간을 거쳐 다시 로맨틱 코미디를 선택했는데.
현빈: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작품들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결정들은 당연히 많은 분들이 보고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내린 거였는데, 잘 된 작품들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 한 작품들도 있었다. ‘이게 나만의 잘못된 선택인가? 나를 기다렸던 사람들은 이런 걸 원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 보니 과 을 제외하고는 늘 보고 나면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을 했던 것 같더라. 그렇다면 그냥 웃으면서 가볍게 볼 수 있는 작품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때 마침 제의가 들어왔다. 그래서 선택을 하게 된 건데 어떤 기사들을 보면 그냥 ‘팬들이 원하는 걸 하려고 했다’는 식으로 기사가 난 것도 있고, ‘지금껏 내가 원하는 걸 했으니 이젠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한다’ 이런 뉘앙스로 기사가 난 것도 있더라.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여러 가지 상황이 맞았다.
물론 당신은 작품 선택에 공을 많이 들이고 그 결과로 늘 좋은 작품으로 호평을 받아 왔지만, 말한 것처럼 그것이 늘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 했다. 그런 면에서 오는 아쉬움은 없나?
현빈: 가 많은 사랑을 받으면 좋지만 또 가 많은 사랑을 받지 못 하더라도 여태껏 내가 해왔던 행동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후에 로맨틱 코미디나 재벌 2세 역할의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 그런 작품들을 안 했던 이유는 내가 이미 했던 거니까 안 했던 거다. 안 해봤던 역할들을 찾아 한 작품씩 쌓아 왔기 때문에 이번에 김주원을 만들 수 있었다. (김)주원이를 연기하며 얻었던 것들이 분명 다른 작품들을 통해서 표현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고, 를 통해 얻은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많은 팬들이 아쉬워하고 있는데.
현빈: 많은 분들이 “너는 왜 쓸데없는 선택을 했냐,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하더라. 어렸을 때부터 늘 생각했던 점이라 조용히 진행해 왔고, 그래서 이번 선택에도 후회는 없다. 기다려 주신 분들께 약속드릴 수 있는 건, 2년 후에는 조금 더 단단해져 있을 거라는 거다. 지금의 인기가 언제 사라질 지도 모르고, 2년 후에 또 상업적인 요소로 참패를 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기의 면에서, 인간 현빈의 측면에서는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 같다.
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와 사진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글. 이승한 fou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는 현빈에게 연기할 수 있는 부분을 그리 많이 열어 두진 않았다. 카메라 앞에서 극을 지배하는 애나에 비해, 시종일관 애나의 짝으로만 존재하는 훈은 보자마자 대번에 도드라지는 역할은 아니다. 하지만 애나를 향해 웃어 보이고, 애절한 눈빛으로 애나에게 입을 맞추는 훈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현빈의 탁월한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현빈은 훈을 웃을 때조차 저 사람이 진심으로 웃고 있는 건지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인물로 그려냈다. 돈을 받고 상대를 웃게 만드는 호스트, 그래서 과연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서부터가 서비스일까 궁금한 훈은 시야에 희미하게 들어와서 선명하게 각인된다. SBS 의 김주원으로 잊을 수 없는 한 계절을 보낸 현빈에게, 지금 다시 돌아보는 는 어떤 의미였을까.
“탕웨이는 뺏고 싶은 점이 많은 배우” 영화 촬영을 시작하고 1년 정도의 텀을 두고 개봉한다. 다시 보는 기분은 사뭇 다르겠다.
현빈: 작품을 부산국제영화제 때 처음 봤는데, 사실 그 때 바로 개봉이 되었으면 했다. 시간이 지나면 내 연기도 시효가 지나간 연기가 될 거 같고, 지금 다시 를 찍는다면 그 때와는 또 다른 무언가가 나올 거 같다. 물론 어찌 보면 지금 개봉하는 게 잘 된 걸 수도 있다. 관객 수에도 영향을 미칠 테니까. 문제는 그 관객들이 분명 의 영향을 받고 극장을 찾을 거라는 거다. (웃음) 지금의 고민은 그것이 영화를 감상하는 것에 마이너스 요소가 안 됐으면 하는 것이다. 모르겠지만 자신은 있다. 더 플러스가 됐으면 좋겠다. (웃음)
훈이라는 캐릭터를 만들 때 가장 신경 쓴 점은 무엇이었나?
현빈: 애나만큼이나 훈도 닫혀 있는 사람이다. 가족적인 문제도 있고 자기의 처지에 대한 아픔과 쓸쓸함도 있는 친구인데, 그럼에도 훈은 자기보다는 애나를 먼저 생각한다. 훈이 가진 호스트라는 직업 자체가 상대에게 돈을 받고 상대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면서 행복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일이니까. 애나에게 선물 같은 존재라는 것이 훈의 목표였다.
어제 탕웨이가 극 중 훈도 당신도 모두 천사라고 하더라. 탕웨이와의 작업은 어땠나?
현빈: 처음에는 아무래도 문화적, 언어적 차이가 있으니까 다른 작업보단 어려운 점이 있었다. 많은 벽들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훈과 애나로 만나면서 많이 가까워졌다. 애나를 위해 훈이 계속 뭔가 아이디어를 짜내고 말을 건네고 행동을 취하는데, 그 과정에서 장난도 칠 만큼 서로 편해졌다. 탕웨이는 굉장히 몰입을 깊게 하는 배우니까, 나에게 천사라고 말해준 것도 아마 훈이 천사 같은 존재이기 때문 아닐까. (웃음)
공형진은 당신을 두고 같이 작업하는 배우들의 장점을 잘 흡수한다며 ‘빨대’라 불렀다. 탕웨이에게서 흡수하고 싶은 능력들이 있었다면 어떤 것일까.
현빈: 뺏고 싶은 점이 많은 배우다. 그렇다고 탕웨이에게 빨대를 꽂을 수는 없고. (웃음) 높은 몰입도를 배우고 싶었다. 대본 리딩을 할 때도 슬픈 감정을 연기하는 대목에서는 실제로 울어 버려서 중단되기도 했다. 자기는 안정된 연기를 배우고 싶다고 하던데, 나는 탕웨이가 보여주는 순간순간 모습이나 대사처리들을 보면서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그런 순간의 힘을 배우고 싶다.
“요즘은 연기하는 재미를 더 많이 느끼고 있다” 상대 배우뿐 아니라 낯선 공간에서 주연 배우로서 현장에 적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시애틀에 먼저 갔다고.
현빈: 잘 하려고 먼저 간 거다. 나와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촬영장의 90퍼센트가 넘는 현장이니까, 그들의 문화를 알고 거리감을 좁히고 싶었다. 영어 수업 받으러 학교 다니듯 프로덕션 사무실로 출석하기도 했고. 작품에 관련된 일도 계속 했다. 두 달 반 정도 감독님과 대본 이야기도 하고, 영어로 바뀐 번역본을 다시 한국어로 바꿔서 대사를 손보고 그걸 다시 영어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탕웨이와도 서로 간의 이질감을 없애기 위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당신은 작품 선택에 공을 들이는 배우로 유명하다. 20대에 노희경과 인정옥, 곽경택과 김태용을 모두 만난다는 건 쉬운 경험이 아니니까. 김태용 감독과 함께한 작업은 어땠나?
현빈: 김태용 감독님은 착한 욕심쟁이다. 말투가 나하고 비슷해서 조용조용하시고 느릿느릿하시다. 그런데 그렇게 늘 웃고 느릿느릿 말하면서도 작품에 대한 애정으로 결국은 원하던 것들을 다 만들어 내신다. 미국 시스템은 한국과 달라서 12시간 이상 촬영을 할 수 없다. 감독님도 처음엔 분명 시계를 안 차고 다니셨는데, 어느 순간부터 시계를 차고 계시더라. 안타깝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그 안에 다 해내셨다. 그리고 굉장히 섬세하시다. 시애틀에서 작품을 완성하고도 한국에 와서 후시 작업을 굉장히 오래 했다. 감독님은 그걸 또 계속 편집하시고, 늘 쉬지 않고 뭔가 하고 계셨다. 지금도 부산국제영화제 버전과는 음악이나 편집이 달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 대단하신 분이다.
당신이 현장에서 이야기하면서 추가한 신이나 대사 같은 게 혹시 있나?
현빈: 처음부터 같이 만들어 간 대본이었다. 처음 영어 대본을 리딩한 후에 훈이의 캐릭터에 맞게 대사를 고쳤다. 훈이는 미국에 간 지 얼마 안 된 친구니까, 그 정도 영어 실력이 되었을 때 썼을 법한 단어들도 고려했고, 훈이의 직업상 사용할 법한 표현들도 고민했다. 그 다음에는 다시 한국말로 고쳐서 ‘이게 정말 내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대사를 쳤을까’를 고민하면서 대사를 다시 수정했다. 그걸 다시 한 문장 한 문장 스크립터와 함께 영어로 번역했다. 리허설도 연극 연습 하듯 하나씩 맞춰 갔다. 영화 초반의 버스 장면은 정말 버스 내부처럼 간의 의자들을 배치해 놓고, 감독님과 촬영감독님, 미술감독님, 탕웨이와 다 같이 모여서 논의했다. 어디쯤 앉을지 부터 동선체크까지 다 하고. 촬영을 12시간 밖에 못 하다 보니, 모두가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어야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시작해서 이제 데뷔 8년 차 배우가 되었다. 본인의 연기 지론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현빈: 연기에 수학 문제처럼 답이 있다면 좀 더 쉽게 갈 수 있겠지만, 답이 없다는 게 가장 어렵다. 그래도 요즘은 연기하는 재미를 더 많이 느끼고 있다. 배우로서의 목표는 모니터하면서 후회하지 않는 배우가 되는 거다. 분명 나는 최선을 다 해서 연기했다고 생각을 하는데, 컷 사인이 나고 가서 모니터를 보면 ‘왜 저렇게 했을까’라는 질문이 먼저 나온다. 그래서 언제쯤 모니터를 보면서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자신의 연기에 좀처럼 만족을 못 하나보다. 욕심이 많은 편이다.
현빈: 욕심쟁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이기적인 부분도 있고. 그런데 그러고 싶다. 그래야 되는 거 같다. 일단 돈이 들어 가 있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있기에 욕심을 안 내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욕심을 부려야 내가 떳떳할 수 있다.
“해병대 입대 선택에는 후회가 없다” 의 열풍으로 다시 대중의 인기의 정점에 섰다. MBC 이후 오랜 시간을 거쳐 다시 로맨틱 코미디를 선택했는데.
현빈: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작품들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결정들은 당연히 많은 분들이 보고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내린 거였는데, 잘 된 작품들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 한 작품들도 있었다. ‘이게 나만의 잘못된 선택인가? 나를 기다렸던 사람들은 이런 걸 원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 보니 과 을 제외하고는 늘 보고 나면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을 했던 것 같더라. 그렇다면 그냥 웃으면서 가볍게 볼 수 있는 작품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때 마침 제의가 들어왔다. 그래서 선택을 하게 된 건데 어떤 기사들을 보면 그냥 ‘팬들이 원하는 걸 하려고 했다’는 식으로 기사가 난 것도 있고, ‘지금껏 내가 원하는 걸 했으니 이젠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한다’ 이런 뉘앙스로 기사가 난 것도 있더라.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여러 가지 상황이 맞았다.
물론 당신은 작품 선택에 공을 많이 들이고 그 결과로 늘 좋은 작품으로 호평을 받아 왔지만, 말한 것처럼 그것이 늘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 했다. 그런 면에서 오는 아쉬움은 없나?
현빈: 가 많은 사랑을 받으면 좋지만 또 가 많은 사랑을 받지 못 하더라도 여태껏 내가 해왔던 행동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후에 로맨틱 코미디나 재벌 2세 역할의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 그런 작품들을 안 했던 이유는 내가 이미 했던 거니까 안 했던 거다. 안 해봤던 역할들을 찾아 한 작품씩 쌓아 왔기 때문에 이번에 김주원을 만들 수 있었다. (김)주원이를 연기하며 얻었던 것들이 분명 다른 작품들을 통해서 표현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고, 를 통해 얻은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많은 팬들이 아쉬워하고 있는데.
현빈: 많은 분들이 “너는 왜 쓸데없는 선택을 했냐,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하더라. 어렸을 때부터 늘 생각했던 점이라 조용히 진행해 왔고, 그래서 이번 선택에도 후회는 없다. 기다려 주신 분들께 약속드릴 수 있는 건, 2년 후에는 조금 더 단단해져 있을 거라는 거다. 지금의 인기가 언제 사라질 지도 모르고, 2년 후에 또 상업적인 요소로 참패를 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기의 면에서, 인간 현빈의 측면에서는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 같다.
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와 사진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글. 이승한 fou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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